사람들은 말합니다.
제주 4.3은 다 됐다고, 이제 끝났다고...
강산이 바뀌어도 7번이나 바뀌었을 70년의 세월이면 됐다고들 합니다.
하지만 4.3의 소용돌이 속에 억울하게 망가져 버린 우리 이웃들의 삶이 어찌 한 둘 이겠습니까?
우리가 만난 제주 4.3 수형인들은
재심 개시 결정이 이뤄진 이제부터가 시작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제주섬은 잠들지 않는 남도라고 부르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김동은 기잡니다.
제주 4.3 당시 제주 도민들은 너무도 큰 희생을 치렀습니다.
희생자 수만 3만명 가량으로 추산돼 당시 제주 인구의 10분의 1에 이를 정돕니다.
하지만 아직도 진상 조사는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15년전 4.3 진상조사 보고서가 발간됐지만, 특히 4.3 수형인에 대한 진상 조사는 미흡하기만 합니다.
현재 4.3 수형인의 기록을 확인할 수 있는 정부 자료로는 이 수형인 명부가 유일합니다.
이 수형인 명부에는 전국 14곳의 형무소에 2530명을 수감시킨 것으로 기재돼 있습니다.
일부 수형 생존자들의 재심 청구 요청이 받아들여지면서 당시 불법 구금과 폭행 등으로 제대로된 재판이 없었다는 사실이 확인됐을 뿐입니다.
게다가 이들 중 상당수는 한국전쟁 이후 돌아오지 못해 생사를 알 수 없는 행방불명 상탭니다.
아직도 4.3 희생자로 등록하지 못한 수형인이 상당수고,
수형인 가운데 생존자는 이제 30명 정도에 불과합니다.
우리가 수형인 문제에 집중하는 건,
수형인을 통해 4.3으로 개인과 가족의 삶이 얼마나 파괴될 수 있는지,
왜 4.3을 기억해야 하는지 제대로 알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일본에서 교육을 받을 정도로 꿈 많던 한 스무살 처녀는 간첩이라는 무서운 누명을 쓰고 삶이 송두리째 뒤바꼈습니다.
일본에서 온 전보 내용 대한민국을 조선으로 번역했다는 이유였습니다.
모진 고문과 불법 구급에 피폐해진 통한의 삶은 수십년동안 자식들에게 조차 밝히지 못할 비밀이었습니다.
자신의 배움을 제주도민들에게 베풀려고 했던 구순을 넘긴 박순석 할머니의 억울한 외침에 이제 우리가 답해야 할 차롑니다.
말하자면 기가 막혀서...
말하고 싶지도 않아요.
그당시 모든 것들을...
너무도 너무도...
박순석(91세)
법원에 내 누명을 좀 벗겨달라고
폭도, 간첩 이 누명만 벗겨달라고...
나는 폭도도 아니고 간첩도 아니라고
나는 과거라는게 없었어요.
자식들에게 말하지 못했어요.
4.3이 역사적인 사건이 돼서야
아이들에게 나는 이런 사람이다.
내 나이 91세...
무슨 바람이 있겠습니까...
(70년전) 직장 생활을 하고 싶었죠.
내가 교환원으로 해서 3개월도 못해보고 박탈당했는데,
일본에서 내가 지내온 모든 것을 우리 한국어로 번역하고 싶었어요.
지금도 그 생각이 아주 간절해요.
"나는 폭도도, 간첩도 아니다"
JIBS 김동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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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4.3은 다 됐다고, 이제 끝났다고...
강산이 바뀌어도 7번이나 바뀌었을 70년의 세월이면 됐다고들 합니다.
하지만 4.3의 소용돌이 속에 억울하게 망가져 버린 우리 이웃들의 삶이 어찌 한 둘 이겠습니까?
우리가 만난 제주 4.3 수형인들은
재심 개시 결정이 이뤄진 이제부터가 시작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제주섬은 잠들지 않는 남도라고 부르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김동은 기잡니다.
제주 4.3 당시 제주 도민들은 너무도 큰 희생을 치렀습니다.
희생자 수만 3만명 가량으로 추산돼 당시 제주 인구의 10분의 1에 이를 정돕니다.
하지만 아직도 진상 조사는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15년전 4.3 진상조사 보고서가 발간됐지만, 특히 4.3 수형인에 대한 진상 조사는 미흡하기만 합니다.
현재 4.3 수형인의 기록을 확인할 수 있는 정부 자료로는 이 수형인 명부가 유일합니다.
이 수형인 명부에는 전국 14곳의 형무소에 2530명을 수감시킨 것으로 기재돼 있습니다.
일부 수형 생존자들의 재심 청구 요청이 받아들여지면서 당시 불법 구금과 폭행 등으로 제대로된 재판이 없었다는 사실이 확인됐을 뿐입니다.
게다가 이들 중 상당수는 한국전쟁 이후 돌아오지 못해 생사를 알 수 없는 행방불명 상탭니다.
아직도 4.3 희생자로 등록하지 못한 수형인이 상당수고,
수형인 가운데 생존자는 이제 30명 정도에 불과합니다.
우리가 수형인 문제에 집중하는 건,
수형인을 통해 4.3으로 개인과 가족의 삶이 얼마나 파괴될 수 있는지,
왜 4.3을 기억해야 하는지 제대로 알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일본에서 교육을 받을 정도로 꿈 많던 한 스무살 처녀는 간첩이라는 무서운 누명을 쓰고 삶이 송두리째 뒤바꼈습니다.
일본에서 온 전보 내용 대한민국을 조선으로 번역했다는 이유였습니다.
모진 고문과 불법 구급에 피폐해진 통한의 삶은 수십년동안 자식들에게 조차 밝히지 못할 비밀이었습니다.
자신의 배움을 제주도민들에게 베풀려고 했던 구순을 넘긴 박순석 할머니의 억울한 외침에 이제 우리가 답해야 할 차롑니다.
말하자면 기가 막혀서...
말하고 싶지도 않아요.
그당시 모든 것들을...
너무도 너무도...
박순석(91세)
법원에 내 누명을 좀 벗겨달라고
폭도, 간첩 이 누명만 벗겨달라고...
나는 폭도도 아니고 간첩도 아니라고
나는 과거라는게 없었어요.
자식들에게 말하지 못했어요.
4.3이 역사적인 사건이 돼서야
아이들에게 나는 이런 사람이다.
내 나이 91세...
무슨 바람이 있겠습니까...
(70년전) 직장 생활을 하고 싶었죠.
내가 교환원으로 해서 3개월도 못해보고 박탈당했는데,
일본에서 내가 지내온 모든 것을 우리 한국어로 번역하고 싶었어요.
지금도 그 생각이 아주 간절해요.
"나는 폭도도, 간첩도 아니다"
JIBS 김동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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