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릴 적 아버지를 키웠던 90대 유모를 건물에서 내쫓으려던 아들의 시도가 무산됐습니다. 아버지는 자식보다는 자신을 잘 돌봐준 유모 편에 섰고 결국 법정 공방 끝에 승소했습니다.
9일 대한법률구조공단에 따르면, 서울동부지법 제3민사부는 40대 아들 A씨가 90대 유모 B씨를 상대로 제기한 건물인도 소송 항소심에서 A씨의 청구를 기각해 유모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유모는 아버지 C씨가 어릴 때부터 함께 살면서 그를 키우고 집안일을 해왔습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집을 나와 기초생활수급자가 됐고, 폐지를 주우면서 생활을 이어 나가야 했습니다. 그러다 치매가 오면서 더욱 어려운 처지가 됐습니다.
유모의 형편을 안타깝게 여긴 아버지 C씨는 지난 2014년에 7평(23㎡) 크기의 오피스텔을 매입해 유모를 거주하도록 했습니다.
다만, 소유 명의는 3자간 등기명의신탁을 통해 아들인 A씨로 해뒀습니다. 유모가 사망한 이후에는 자연스럽게 아들에게 넘겨주려는 의도였습니다.
아들은 2021년 돌연 유모를 상대로 오피스텔을 비우라고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더구나 유모가 그동안 납부하지 못했던 임차료의 일부인 1,300만원도 지급해달라는 요구까지 했습니다.
아들은 '전문직으로 일하면서 모은 돈과 대출을 통해 자금을 확보해 오피스텔을 구입했다'며, 본인이 진짜 건물의 소유주라고 주장했습니다.
아버지는 참지 않았습니다.
유모를 위해 성년후견인을 자처해 법정 싸움에 나섰을 뿐만 아니라, 이 사건과는 별개로 아들 명의로 오피스텔이 등기된 것에 대해 무효라며 소유권이전등기 말소 청구소송까지 진행했습니다.
1심 재판부는 "오피스텔의 실질적인 소유주는 아버지 C씨"라며 A씨의 청구를 기각했고, 항소심에서도 결과는 바뀌지 않았습니다. 해당 오피스텔 매매당시의 공인중개사와 매도인이 증언이 결정적 역할을 했습니다. 이들이 오피스텔 계약 당시 사실을 기억해 법정 증언을 한 것입니다.
결국 아들은 유모를 내쫓기도 못하고, 추후 본인에게 돌아올 건물의 소유권마저 잃게 됐습니다.
유모를 대리해 소송을 진행한 공단 소속 김기환 변호사는 "명의신탁 법리에 따르면 승소가 쉽지 않았다"며 "길러주신 은혜를 잊지 않고 최선의 노력을 다한 아버지의 의지가 승소로 이끌었다"고 말했습니다.
한편, 법률구조공단은 이 사건을 '2023년 법률구조 우수사례'로 선정했습니다.
JIBS 제주방송 신동원 (dongwon@jibs.co.kr)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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