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은 달리는 존재가 아니다, 우리가 태워온 의미다”
2026년 병오년, 붉은 말의 해입니다. 그러나 이 전시는 길운(吉運)을 말하지 않습니다. 말은 오랫동안 힘의 상징이었습니다. 왕권의 표식이었고, 전장의 동력이었으며, 속도의 은유였습니다. 늘 앞을 향해 달렸고, 우리는 그 등에 의미를 태웠습니다. 고경빈과 김연숙은 그 익숙한 장면을 멈춥니다. 말을 그리되, 그 상징에 기대지 않습니다. 19일 제주시 아라갤러리에서 열리는 2인전 ‘나의 말, 너의 말’은 형상을 보여주는 전시가 아닙니다. 형상이 어떻게 시대 속에서 다시 읽히는지를 드러내는 자리입니다. 같은 대상을 두고 두 작가는 전혀 다른 전략을 취합니다. ■ 이미지를 해부하는 고경빈 고경빈의 말은 완성된 동물이 아닙니다. 겹쳐지고, 분해되고, 다시 조합됩니다. 연필 선은 근육을 묘사하면서 동시에 구조를 드러냅니다. 하나의 말 안에 여러 시선이 충돌합니다. 표현의 변주가 아니라 인식의 조건을 드러내는 방식입니다. 이미지는 이제 알고리즘을 통해 생산됩니다. 데이터는 학습되고, 형상은 조합됩니다. 고경빈은 그 조건을 정면으로 다룹니다. 반복적 드로잉은 수행에 가깝습니다. 손의 압력과 시간이 화면에 남습니다. 기계적 생성과 인간의 감각 사이의 차이를 물질로 드러냅니다. 알루미늄 작업은 ‘Exvoto’ 구조를 차용합니다. 봉헌물의 형식을 빌리되 숭배를 재현하지 않습니다. 말이 지녔던 신성, 권력, 노동의 층위를 병치합니다. 상징은 강화되지 않습니다. 상징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드러냅니다. 그의 말은 동물이 아니라, ‘구조’ 그 자체입니다. ■ 김연숙, 속도를 멈추고 밀도를 세우다 김연숙의 말은 달리지 않습니다. 멈춰 있습니다. 하지만 그 멈춤은 공백이 아닙니다. 고개를 숙인 형상, 별빛 아래를 가로지르는 흰 말, 붉은 몸을 응축한 화면. 외부의 운동 대신 내부의 긴장을 세웁니다. 아크릴 물감은 흩어지고, 겹쳐지고, 다시 쌓입니다. 점은 입자이고, 입자는 기억입니다. 화면에 남은 흔적은 풍경이 아니라 시간의 퇴적입니다. 그의 회화는 힘을 과시하지 않습니다. 힘이 응축되는 순간을 보여줍니다. 질주는 사회적 속도입니다. 도약은 존재의 결단입니다. 김연숙은 말의 활력과 자유를 차용하면서, 이면의 사색을 붙잡습니다. 붉은 색은 과장되지 않습니다. 불꽃이 아니라 내면의 열로 남습니다. ■ 두 궤적, 하나의 장 고경빈은 제주에서 출발해 암스테르담을 기반으로 활동해왔습니다. 성신여자대학교와 샌드버그 인스티튜트를 거쳤고, 스테델릭 뮤지엄과 반아베 뮤지엄, 포르토 디자인 비엔날레, 베니스 아트 프로젝트, 싱가포르 아트사이언스 뮤지엄 등 국제 전시 현장에서 작업을 선보였습니다. 구조를 읽는 감각은 그 이력에서 나옵니다. 김연숙은 이화여자대학교 서양화과와 제주대학교 교육대학원을 졸업했습니다. 개인전 19회, 국내외 단체전 350여 회를 이어왔고, 제주도립미술관장을 역임했습니다. 지역 미술 생태계를 직접 통과한 시간은 그 화면에 밀도로 남아 있습니다. 한 사람은 형상의 작동 방식을 드러내고, 한 사람은 형상의 밀도를 세웁니다. 같은 말이지만, 다루는 방식은 다릅니다. 그래서 이 전시는 비교가 아니라 긴장입니다. ■ 병오년의 말, 다시 놓이다 붉은 말은 쉽게 기념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전시는 기념을 택하지 않습니다. 말은 더 이상 달리는 형상이 아닙니다. 우리가 얹어온 의미의 총합입니다. 두 작가는 그 안장을 내려놓습니다. 말을 비워두지 않고, 다시 배치합니다. 달리는 것은 형상이 아니라 시대였습니다. 이번 전시는 그 속도를 잠시 멈춥니다. 전시는 28일까지 이어집니다. 관람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가능합니다.
2026-02-14
제주방송 김지훈 (jhkim@ji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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