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을 떠나 제주에 왔다… K콘텐츠가 만든 이동, 정책은 따라왔나
외국인 관광의 지도가 달라지고 있습니다. 서울은 여전히 가장 큰 방문지지만, 이제 여행은 서울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관광의 중심이 ‘유명한 곳’에서 ‘이유가 있는 이동’으로 옮겨가면서, 그 변화의 한복판에 제주가 들어왔습니다. 동시에 경북과 경남 등 일부 비수도권 지역으로 외국인 관광의 발길이 확장되고 있다는 점도 확인됩니다. 이러한 흐름 자체는 분명 성과라는 평가가 나옵니다. 다만 이같은 변화가 곧바로 정책의 결과인지, 아니면 콘텐츠·국제행사·교통 여건 등 외부 요인이 만든 기회를 각 지역이 받아낸 결과인지는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함께 제기됩니다. ■ 제주 방문율 10.5%… ‘관심’이 아니라 ‘실제 이동’이 발생했다 21일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의 외래관광조사에 따르면 외국인 관광객의 제주 방문율은 올해 1분기 8.9%, 2분기 9.0%, 3분기 10.5%로 분기마다 상승했습니다. 지난해 연간 수치(9.9%)도 넘어섰습니다. 같은 기간 3분기 서울 방문율은 77.3%로 지난해(78.4%)보다 1.1%포인트 낮아졌지만, 여전히 외국인 관광의 중심지라는 위치는 유지했습니다. 제주의 상승 흐름은 3월 공개된 폭싹 속았수다의 방영 시점과 맞물립니다. 한국관광데이터랩 기준 제주 외국인 관광객 증감률은 4월부터 전년 동월 대비 증가로 전환됐고, 7월에는 76.0%까지 치솟았습니다. 이번 변화는 단순히 화제성이나 노출 효과로만 설명하기는 어렵다는 분석입니다. 콘텐츠가 실제 항공 이동을 자극하고, 체류와 소비로 이어지는 단계에 진입했다는 점에서, 여기까지의 흐름은 성과로 평가해도 무리가 없어 보입니다. ■ 경북·경남도 늘었다… 제주만의 성과? 전국적 흐름? 물론 제주만의 현상은 아닙니다. 같은 조사에서 경북과 경남의 외국인 관광객 방문율도 지난해보다 올랐습니다. 경북은 경주를 중심으로 국제회의와 대형 행사를 계기로 외국인 방문이 늘었고, 경남 역시 부산을 거점으로 한 관광 수요가 남해안권으로 확장되는 흐름이 확인됐습니다. 관광 업계에서는 이를 두고 “외국인 관광이 ‘서울’이라는 단일축에서 벗어나, 콘텐츠와 이벤트를 매개로 지역으로 분산되기 시작한 신호”라는 해석을 내놓습니다. 이 지점에서 제주가 마주한 질문도 더 분명해집니다. 증가세가 제주만의 정책 성과인지, 아니면 전국적으로 나타나는 흐름의 일부인지를 가려내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 관광객 1,341만·외국인 219만… 성과는 인정, 해석은 신중해야 제주자치도는 올해 들어 지난 20일까지 누적 관광객 1,341만여 명, 외국인 관광객 219만 명으로 집계됐다고 밝혔습니다. 외국인 관광객이 200만 명을 넘은 것은 2016년 이후 처음입니다. 도 당국은 여행주간 운영, 단체관광 인센티브, 개별여행 지원, 각종 마케팅 정책이 관광 반등으로 이어졌다고 설명합니다. 외국인과 내국인 관광이 동시에 회복됐다는 점도 성과로 제시합니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다소 해석을 달리합니다. 지역 관광 업계 한 관계자는 “관광객 수가 늘어난 건 분명하지만, 그 증가분이 어떤 지역과 업종으로 흘러갔는지는 잘 체감되지 않는다”며 “그저 보이는 숫자만으로 정책 성과를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 자화자찬이 앞서면, 다음 판단이 흐려진다 성과를 둘러싼 또 하나의 쟁점은, 그 성과를 너무 빨리 ‘확정’하려는 태도입니다. 관광객 수 반등이 확인되자마자 정책 성과로 연결 짓는 흐름이 이어지면서, 현장에서는 “자화자찬이 앞서는 것 아니냐”는 뼈 아픈 지적도 나옵니다. 관광정책을 분석해온 한 현장 전문가는 “성과를 빠르게 선언할수록 정책의 검증 단계가 생략될 위험이 커진다”며 “관광은 반등 이후에도 같은 문제가 반복되지 않는지를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지금은 잘했다는 평가보다, 무엇이 작동했고 무엇이 아직 작동하지 않는지를 구분해야 할 시점”이라고 덧붙였습니다. ■ 정책 성패는 ‘몇 명이 왔는가’가 아니라 ‘어디로, 얼마나, 어떻게’ 또 다른 전문가들은 외국인 관광 정책의 성패를 방문객 수 하나로 판단하는 데에는 한계가 분명하다고 지적합니다. 관광객이 어디로 분산됐는지, 평균 체류 기간은 늘었는지, 소비가 특정 지역이나 업종에 쏠리지 않았는지, 가격과 품질에 대한 불만은 줄었는지가 함께 제시돼야 정책 성과를 평가할 수 있다는 주문입니다. 관광 데이터 분석 분야의 한 전문가도 “현재 공개되는 자료는 양적 증가에 집중돼 있다”며 “정책이 실제로 이동 동선과 체류 구조를 바꿨는지에 대한 설명은 충분하지 않다”고 지적했습니다. ■ 콘텐츠는 이동을 만들었다… 정책은 체류를 만들고 있나 K콘텐츠가 만든 유입 효과는 분명합니다. 하지만 그 유입 흐름이 지역 상권과 장기 체류로 연결되는 구조는 아직 명확하지는 않습니다. 이는 제주뿐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도 공통으로 제기되는 문제입니다. 또 다른 관광 업계 한 관계자는 “경북은 국제행사 이후를, 제주는 콘텐츠 이후를 고민해야 하는 시점”이라며 “체류와 소비를 설계하지 못하면 반등은 지역을 막론하고 오래가기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 성과 이후의 단계… 전국 흐름 속에서 제주의 선택 이번 외국인 관광 확산은 제주만의 사건이 아니라, 전국 관광 지형이 재편되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제주는 그 흐름의 선두에 섰지만, 동시에 다른 지역과 나란히 비교 평가를 받는 위치에도 올라섰습니다. 남은 것은 선택입니다. 관광객 수 증가 자체를 성과로 관리할 것인지, 아니면 이동·체류·소비가 어디에서 어떻게 발생하도록 제주만의 구조를 설계하는 단계로 넘어갈 것인지에 대한 선택입니다. 수요는 정책 밖에서 시작됐습니다. K콘텐츠와 국제행사, 교통 여건이 움직임의 출발점이 됐습니다. 하지만 그 수요가 일회성으로 스쳐 갈지, 반복되고 축적되는 구조로 남을지는 정책 설계에 달려 있습니다. 이번 반등이 전국 흐름 속 한 장면으로 남을지, 제주만의 구조로 굳어질지는 그 선택의 결과로 갈리게 됩니다. ‘회복’이라는 이름으로 관광객 수는 이미 답을 냈습니다. 이제 정책이 답을 내야 할 차례입니다.
2025-12-21
제주방송 김지훈(jhkim@ji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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