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기 침묵하고 당은 멈췄다… 민주당이 결단 미룬 사이, 책임이 증발하고 있다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를 둘러싼 일련의 의혹은 이제 사실 공방의 단계를 지나 정치가 책임을 처리하는 방식 자체를 묻는 국면으로 넘어갔습니다. 정청래 대표는 “매우 심각하게 보고 있다”고 말했고, 김 원내대표는 “며칠 뒤 입장을 밝히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사이 의혹은 누적되고, 당의 판단은 정지돼 있습니다. 사안은 개인 비위 논란이 아니라 여당이 권력 내부 문제를 어떻게 정리하는가에 대한 무대로 바뀌고 있습니다. ■ “심각하다”는 말과 “지켜보겠다”는 태도 사이의 공백 27일 정치권에 따르면, 전날 정청래 대표는 김 원내대표와 통화 사실을 공개하며 “송구하다는 말을 들었다”, “며칠 뒤 입장을 발표하겠다고 했다”고 전했습니다. 동시에 “원내대표 자리는 막중하다”, “지켜보고 있다”, “국민께 죄송하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 발언 어디에도 판단은 없었습니다. 책임을 어떻게 물을지, 언제까지 무엇을 확인할 것인지, 어떤 기준으로 정리할 것인지는 제시되지 않았습니다. 발언은 있었지만 방향이 없고, 메시지는 있었지만 결론이 없었습니다. 이 공백이 지금 민주당의 가장 큰 리스크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 의혹은 늘어나고, 해명은 쪼개진다 김 원내대표를 둘러싼 의혹은 한 갈래가 아닙니다. 대한항공 숙박권 제공, 공항 의전 요청 논란, 보좌진 사적 지시 및 텔레그램 대화 유출 공방, 그리고 국정감사 질의 이후 대가성 후원금 의혹에 더해 쿠팡 임원과의 식사 및 인사 관련 접촉, 병원 진료 특혜 의혹까지 잇따르고 있습니다. 문제는 각각의 사실관계가 아니라 이 모든 사안이 공적 지위와 사적 관계의 경계를 넘나들고 있다는 점입니다. 김 원내대표 측은 개별 사안마다 “떳떳하다”, “친분 관계였다”, “정당한 절차였다”고 설명하지만, 그 설명들이 하나의 구조로 설명되지 않으면서 오히려 불신을 키우고 있다는 평가입니다. ■ ‘메신저 공격’으로 이동한 대응 방식이 남긴 신호 김 원내대표 측이 보좌진 텔레그램 대화방을 공개하며 제보자 신뢰도를 문제 삼은 장면은 이 사안의 성격을 바꿨습니다. 논쟁이 ‘무슨 일이 있었는가’에서 ‘누가 말했는가’로 이동했기 때문입니다. 이 방식은 당장 방어에는 도움이 될 수 있지만, 공적 책임의 설명으로는 기능하지 않습니다. 특히 여당 원내대표라는 자리는 개인의 명예를 지키는 자리가 아니라, 공적 기준을 대표하는 자리입니다. ■ 왜 지금, 당은 결단하지 않나 민주당 내부에는 현실적 부담이 있습니다. 원내대표 사퇴 시 대행 체제의 정당성, 차기 선출 과정의 계파 갈등 가능성, 지도부 재편에 따른 혼선이 모두 부담입니다. 하지만 이 계산은 정치 기술일 뿐 정치 책임은 아닙니다. 정치를 운영하는 편의와 정치가 감당해야 할 책임은 같은 것이 아닙니다. 지금 민주당이 선택한 것은 결단이 아니라 유예이고, 설명이 아니라 시간입니다. 그러나 시간은 문제를 줄이지 않습니다. 시간을 쓰는 동안 의혹은 쌓이고, 신뢰는 빠집니다. ■ 사안의 본질은 ‘김병기 개인’이 아니다 이 사건은 한 정치인의 거취 문제가 아닙니다. 여당이 내부 권력 문제를 어떻게 다루는지, 책임을 언제 어떤 방식으로 확정하는지, 설명과 판단 사이를 어떻게 연결하는지에 대한 문제입니다. 사과는 나왔고, 유감은 표현됐고 심각하다는 말도 반복됐습니다. 그렇지만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감정 표현이 아니라 결정입니다. 지금 민주당에는 감정은 있지만 결정이 없고, 말은 있지만 기준이 없습니다. 김병기 원내대표의 거취는 결국 본인이 결정할 수밖에 없지만, 그 결정이 나올 때까지 당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중립이 아니라 방치라는 지적은 불가피해 보입니다. 정치권에선 “이 사안의 결말은 한 정치인의 운명을 넘어, 여당이 권력을 어떻게 관리하고 책임을 어떻게 처리하는지에 대한 기록으로 남게 될 가능성이 크다”며 “지금 민주당 앞에 놓인 것은 정치적 곤란이 아니라 정치의 자격에 대한 질문”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2025-12-27
제주방송 김지훈(jhkim@ji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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