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아리는 녹고, 그림은 벽을 나왔다… 하나의 형상이 끝난 뒤
항아리의 몸체가 물처럼 일그러집니다. 둥근 배를 따라 먹이 번지고, 안쪽을 채운 흰 덩어리는 얼음처럼 투명합니다. 아래에는 이미 녹아 흘러내린 듯한 흔적이 고여 있습니다. 현덕식의 〈유시도(流澌島)〉입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는 그림이 벽에서 빠져나옵니다. 조기섭의 〈고지음〉은 장지에 은분을 올린 30×30㎝ 크기의 단위 70개를 이어 공간 안에 세웁니다. 검고 은빛 나는 표면 사이로 빈자리가 끼어들고, 반사면에는 실제 작품과 비친 형상이 한꺼번에 들어옵니다. 여다함의 〈부싯〉에서는 다른 일이 벌어집니다. 노랑과 청록, 분홍의 색면 사이를 선이 가로지르고 인쇄된 이미지가 불쑥 끼어듭니다. 전단과 포스터가 붙었다 뜯겨나간 도시의 벽처럼 먼저 있던 흔적 위에 다음 흔적이 올라앉습니다. 생김새도, 재료도, 만드는 방법도 다른 세 작업이 제주시 원도심의 한 공간에서 만났습니다. 작품을 따라가다 보면 같은 질문 앞에 서게 됩니다. 한번 만들어진 형상은 언제까지 그 모습으로 남을 수 있을까. 오늘(29일) 스튜디오126에서 문을 연 기획전 《경계의 번역》은 그 질문을 세 작가의 서로 다른 방식으로 풀어냅니다. ■ 항아리는 언제까지 항아리일까 현덕식은 오랫동안 얼음을 그려왔습니다. 〈유시도〉라는 이름부터 흐르는 얼음의 섬을 품고 있습니다. 얼음은 단단한 부피와 표면을 갖지만 온도가 바뀌는 순간 형태를 잃기 시작합니다. 작가는 장지 위에 먹을 거듭 쌓아 올리며 견고함과 소멸이 함께 진행되는 상태를 화면으로 옮겨왔습니다. 이번 작품에서는 얼음이 항아리의 몸을 얻었습니다. 그릇은 안과 밖을 가릅니다. 무엇인가를 담으려면 그 구획이 유지돼야 합니다. 그런데 현덕식의 항아리는 그 조건부터 위태롭습니다. 얼음 같은 몸체는 아래로 흘러내리고 형태를 붙들던 외곽마저 흔들립니다. 그러자 무엇을 그렸는가보다 다른 문제가 눈에 들어옵니다. 어디까지 항아리라고 부를 수 있는가. 작가가 얼음이라는 물질에 욕망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감각을 투영해왔다면, 이번 전시에서는 그 얼음이 또 하나의 시간을 끌어들입니다. 형상이 만들어진 뒤 다시 그 모습을 잃어가는 시간입니다. 완성된 모습을 붙잡기보다 무너지기 시작한 순간을 남겼습니다. ■ 70개의 그림, 그리고 거기 없는 자리 조기섭의 〈고지음〉은 반대편에서 움직입니다. 형태가 사라지는 대신 계속 이어집니다. 작업의 기본 단위는 30×30㎝. 장지에 은분을 사용한 70개의 사각형이 반복되고, 각각의 화면에는 검은 표면과 흰 흔적이 얽혀 있습니다. 이를 벽에 가지런히 거는 데서 끝내지 않았습니다. 이어 붙이고 방향을 틀어 공간으로 끌어냅니다. 반사면까지 맞물리면서 작품의 앞과 뒤, 실물과 비친 이미지가 겹칩니다. 70개로 시작한 작업은 눈앞에서 더 이상 70개로 셀 수 없는 풍경으로 바뀝니다. 한 걸음 옮겨 보면 은분이 받아들이는 빛이 달라지고 반사면에 들어오는 모습도 바뀝니다. 작품이 차지하지 않은 빈 곳까지 시야 안으로 들어옵니다. 70개의 사각형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그래서 그 사이에 있는, 세지 않은 자리입니다. 올해 제5회 제주비엔날레 《허끄곡 모닥치곡 이야홍: 변용의 기술》에도 참여한 조기섭은 평면을 틀에 가두기보다 그것이 놓인 장소와 보는 사람의 위치까지 작업에 끌어들여 왔습니다. 그림을 보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그림 사이를 보고 있습니다. ■ 뜯긴 뒤에야 나타난 색 여다함의 출발점은 도시의 표면입니다. 〈부싯〉에서는 잘 정돈된 풍경이 기다리지 않습니다. 포스터가 붙었던 자리, 전단이 뜯겨나간 흔적, 다른 이미지에 가려진 글자와 색처럼 사람들이 지나간 뒤 남은 것들입니다. 거리의 벽에서는 의도하지 않은 편집이 매일 일어납니다. 오늘 붙은 이미지는 내일 찢기고, 그 아래 숨어 있던 이전의 색이 다시 드러납니다. 누군가는 붙이고 다른 누군가는 떼어갑니다. 여다함은 그 표면을 채집한 뒤 실크스크린으로 옮깁니다. 원래 모습을 되살리는 복원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가져온 흔적을 분해하고 색과 선, 이미지 조각을 다시 배열합니다. 아무 관계가 없던 것들이 한데 놓이며 처음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연결이 생깁니다. 〈부싯〉에서도 화면을 지배하는 중심은 좀처럼 잡히지 않습니다. 선명한 색면 옆으로 느슨한 선이 지나고, 인쇄된 이미지가 들어왔다가 다른 색 아래 일부를 감춥니다. ‘번역’이라는 전시명은 이 지점에서 구체성을 얻습니다. 한 언어를 다른 언어로 옮기는 동안 원문의 모든 결을 그대로 가져갈 수 없듯, 거리에서 채집한 흔적 역시 여다함의 손을 거치면서 이전의 문맥에서 벗어납니다. 사라진 자리에는 다른 이미지가 들어옵니다. 잃어버린 만큼 이전에는 없던 조합이 생겨납니다. ■ ‘경계’를 그리지 않았다 흥미로운 점은 정작 어느 작가도 경계를 선으로 설명하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현덕식에게 경계는 녹으면서 움직입니다. 조기섭에게서는 사물과 빈 공간 사이에 생깁니다. 여다함의 화면에서는 한 이미지가 끝나기도 전에 다른 이미지가 그 위로 들어옵니다. 공통된 양식으로 묶기는 어렵습니다. 대신 세 작업 모두 다른 상태로 넘어가는 과정에 놓입니다. 얼음은 형상을 얻었다가 녹고, 규격화된 평면은 설치되는 순간 공간으로 번지며, 도시에서 수집한 흔적은 인쇄를 거치면서 원래의 쓰임을 잃습니다. 권주희 스튜디오126 대표는 전시 서문에서 《경계의 번역》이 바라보는 지점을 “형상이 되기 전의 감각과 그 감각이 하나의 형상으로 옮겨지는 과정, 그리고 형상이 다시 다른 언어와 관계 속으로 이동하는 순간”으로 읽습니다. 경계는 무언가를 나누는 선이 아니라, 서로 다른 것들이 만나 새로운 형상을 만들어내는 자리입니다. 작품은 그 설명보다 먼저 물질로 움직입니다. 먹은 번지고, 은분은 빛을 되받아치며, 잉크는 다른 이미지 위에 올라갑니다. 경계는 그 움직임이 멈추지 않는 곳에서 생겼다가 다시 흐려집니다. ■ 제주를 그리지 않아도 제주에 닿는 법 세 작가를 제주라는 이름 아래 묶는 방식도 익숙한 지역전과는 다릅니다. 제주의 바다나 오름, 돌담을 작품의 공통 소재로 호출하지 않습니다. 참여 작가들은 제주와 관계를 맺으면서 섬 밖으로 작업의 반경을 넓혀왔습니다. 현덕식은 지난해 인천아트플랫폼에서 개인전 《녹아 흐르는 섬》을 열었고 올해 광주화루 10인 작가상을 받았습니다. 조기섭은 지난해 종근당 예술지상에 선정된 데 이어 올해 제주비엔날레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여다함 역시 제주와 서울을 오가며 작업하면서 지난해 국립현대미술관 《소멸의 시학》 등에 참여했습니다. 전시는 이들을 하나의 지역적 정체성 안에 밀어 넣기보다 각자가 안과 밖을 오가며 얻은 거리와 경험에 주목합니다. 전시를 관통하는 또 다른 말은 ‘섬-땅-틈’입니다. 여기서 제주는 풍경이 아니라 구조입니다. 지도에서 섬의 가장자리는 선명하지만 실제 해안의 끝은 파도와 바람을 만나 계속 달라집니다. 밭담도 돌과 돌을 빈틈없이 붙이지 않습니다. 그 사이로 바람이 지나갈 자리를 남깁니다. 막아 세운 곳에 틈이 있고, 그 틈 때문에 구조가 버팁니다. 2019년 제주에 문을 연 스튜디오126의 지난 7년도 이 문맥과 겹칩니다. 섬 안에 자리하면서 바깥의 작가를 불러들이고, 제주에서 작업하는 작가를 다른 미술 현장과 연결해왔습니다. 그런 공간이 7년을 지나며 자신의 자리를 돌아보기 위해 고른 말이 ‘중심’이 아니라 ‘경계’라는 점도 이번 전시를 읽는 한 갈래가 됩니다. 《경계의 번역》은 오늘(29일)부터 10월 20일(화)까지 제주시 북성로 스튜디오126에서 이어집니다. 여다함, 조기섭, 현덕식의 회화와 설치 10여 점을 선보입니다. 관람료는 무료이며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관람할 수 있습니다. 매주 목요일은 오후 3시에 마감하고, 일요일과 법정 공휴일은 휴관합니다.
2026-09-29
제주방송 김지훈(jhkim@ji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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