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은 이미 지나갔는데, 이제야 보인다… 장경숙 ‘관념의 정원’은 끝난 뒤에 도착한다
봄을 기다리는 지금, 벚꽃은 이미 피어야 하는데 아직 아닌 시간입니다. 이 어긋난 시점에서 지난 2월 제주문예회관에 걸렸던 장경숙 개인전 ‘관념의 정원-疊疊’을 다시 떠올립니다. 그때는 스쳐 지나갔지만 지금은 멈춰 서게 됩니다. 전시는 이미 끝났지만, 지금에서야 제대로 읽힙니다. 꽃이 아니라 ‘꽃 다음’을 오래 붙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 가장 또렷한 순간을 지나친다, 그래서 오래 남는 전시는 꽃이 가장 선명해지는 지점을 비켜갑니다. 올라오던 기운이 꺾이고, 색이 내려앉고, 형태가 흐트러지는 구간을 더 길게 끌고 갑니다. 완성 직전이 아니라, 이미 조금 무너진 상태입니다. 보이는 것은 꽃이 아닙니다. 지금 막 변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완결된 모습이 아니라, 아직 끝나지 않은 흔들림이 남습니다. ■ 사라지지 않아, 안으로 밀려 들어간다 여기서 흔적은 지워지지 않습니다. 겹쳐지고, 눌리고, 잠깐 사라졌다가 다른 자리에서 다시 드러납니다. 없어진 것이 아니라, 안쪽으로 밀려 들어갔다가 다시 올라옵니다. 그래서 이 그림은 매끈하지 않습니다. 대신 오래 남습니다. 한 번에 끝난 자리가 아니라, 여러 번 지나간 자국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 형태는 늦게 따라온다, 보는 순서가 바뀐다 먼저 들어오는 것은 색입니다. 형태는 그 다음입니다. 무엇인지 알아보기 전에, 먼저 감각이 닿습니다. 잡히는 순간 흐트러지고, 이해하려는 순간 방향이 바뀝니다. 확정되는 지점은 계속 뒤로 밀립니다. 이 전시는 무엇을 그렸는지를 설명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보게 되는지가 남습니다. ■ ‘첩첩’, 겹친 것이 아니라 밀린 시간이다 ‘첩첩’은 여러 장면을 쌓아 올린 상태가 아닙니다. 서로 다른 시간이 한 자리에 밀려 들어온 상태입니다. 밝아졌다가 가라앉고, 비워졌다가 다시 채워집니다. 이 흐름은 반복처럼 보이지만 같은 자리를 맴돌지 않습니다. 계속 다른 방향으로 밀려갑니다. 그림은 한 순간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시간이 겹쳐 있는 자리를 드러냅니다. ■ 바꾸지 않았다, 끝까지 밀어붙였다 장경숙은 대상을 바꾸지 않았습니다. 방식을 밀어붙였습니다. 형태를 앞세우던 방식에서 벗어나, 색과 시간의 흐름을 전면으로 끌어냈습니다. 완성하려는 태도에서, 이어지게 두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변화는 있었지만 선택은 하나였습니다. 같은 것을 끝까지 가져갔습니다. ■ 꽃을 그린다, 그러나 꽃에 머물지 않았다 전시는 꽃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피어나는 순간을 붙잡지 않고, 그 이후를 따라갑니다. 올라오고, 멈추고, 내려앉고, 다시 올라오는 그 흐름이 더 길게 이어집니다. 꽃은 중심에 머물지 않습니다. 변화를 드러내는 통로로 남습니다. 작업은 재현이 아니라, 시간을 붙드는 방식입니다. ■ 끝났는데, 지금에서야 제 시간이다 이 전시는 이미 끝났습니다. 그런데 지금에서야 읽힙니다. 계절이 어긋났기 때문입니다. 피어야 할 때 피지 않은 지금, 이 그림은 더 또렷해집니다. 결국 이 전시는 지나간 것이 아니었습니다. 지금에서야 도달합니다. ■ 같은 것을 버리지 않았다, 다루는 법을 바꿨다 장경숙은 제주대학교와 같은 대학원에서 서양화를 전공했습니다. 2013년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이번 전시까지 11회의 개인전을 열었습니다. 주제를 갈아치우기보다 같은 것을 오래 붙들어 왔습니다. 그 사이에서 선과 형태는 뒤로 물러났고, 색이 겹쳐지는 방식이 앞으로 나왔습니다. 여러 번 덧입히고 멈췄다가 다시 손대는 과정을 반복해 왔습니다.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하며 제주를 기반으로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2026-03-23
제주방송 김지훈(jhkim@ji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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