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어떻게 다시 일어나는가… 양순열은 그 질문을 호텔 로비에 남겨뒀다
전시는 대개 따로 마련된 공간에서 시작됩니다. 벽이 있고, 빛이 정돈돼 있고, 사람은 작품을 보기 위해 그 안으로 들어갑니다. 이번 전시는 그 익숙한 순서를 비껴갑니다. 사람이 작품을 찾아가는 대신, 작품이 먼저 사람들 사이로 들어옵니다. 그랜드 조선 제주에서 8일 개막하는 전시 ‘웜스 인 블룸(Warmth in Bloom): 사랑’은 그 점에서 이미 한 번 방향을 틉니다. 힐 스위트 웰컴 로비와 고메 라운지 ‘그랑 제이’, 본관 로비까지, 호텔 안을 오가는 길목마다 회화와 조각 11점이 놓입니다. 따로 전시장 안으로 들어가 마주하는 감상이 아니라, 걷다가, 기다리다, 잠시 머무는 사이 불쑥 시선에 걸리는 방식입니다. 그래서 이번 전시는 ‘보러 간다’는 말보다 ‘마주친다’는 말이 더 정확합니다. 체크인을 기다리는 짧은 틈, 로비를 가로지르는 몇 걸음, 의자에 앉아 숨을 고르는 사이에 작품이 들어옵니다. 감상은 준비된 행위에 맞물리지 않습니다. 먼저 걸음을 늦추게 만드는 것이 있고, 그다음에야 시선이 붙습니다. ■ 호텔은 이제 잠만 자는 공간이 아니다 요즘 호텔은 객실과 서비스만으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어디에서 묵었는가보다, 그 안에서 어떤 시간을 보냈는지가 더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좋은 침대와 넓은 방, 정돈된 편의만으로는 여행자의 감성을 오래 붙들기 어려워졌습니다. 그 사이 호텔은 미식과 웰니스, 향과 음악, 문화 프로그램과 전시를 안으로 끌어들이기 시작했습니다. 하룻밤을 파는 데 머물지 않고, 머무는 시간 전체의 결을 만지는 쪽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랜드 조선 제주가 갤러리 리마(LIMAA)와 함께 이어가는 아트 프로젝트 역시 그 흐름 위에 있습니다. 다만 이번 전시는 공간을 보기 좋게 꾸미는 수준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로비를 장식하는 대신, 로비라는 장소를 다시 보게 합니다. 그곳은 누군가에게는 그냥 지나치는 통로이고, 또 누군가에게는 여행의 호흡이 잠깐 멈추는 자리입니다. 예술은 바로 그 틈으로 스며듭니다. 가장 생활적인 장소에서 가장 사적인 감정이 건드려지는 순간. 전시는 그 조용한 충돌 위에 서 있습니다. ■ 붙잡아온 것은 ‘다시 일어나는 몸’ 양순열의 작업을 말할 때 가장 먼저 따라오는 것은 ‘오똑이(Ottogi)’ 연작입니다.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는 형상. 누구나 곧장 이해할 수 있는 이미지입니다. 그런데 이 작가의 작업은 거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둥글고 부드러운 형상 안에는 생각보다 질긴 시간이 들어 있습니다. 사람은 생각보다 자주 기울고, 중심은 생각보다 쉽게 무너집니다. 삶에서 균형을 잃는 일은 예외라기보다 반복에 가깝습니다. 양순열은 그 사실을 피하지 않습니다. 대신 다른 쪽을 봅니다. 넘어지지 않는 존재가 아니라, 넘어진 뒤에도 다시 몸을 세우는 존재. 작업이 오래 남는 이유는 바로 그 차이에 있습니다. 대표 연작 ‘드림(Dream)’에서도 시선은 밖으로 크게 뻗기보다 안쪽으로 가라앉습니다. 풍경을 보여주는 듯하면서도 실은 마음의 상태를 더듬습니다. 무엇이 사람을 다시 일으키는지, 흔들린 뒤에도 왜 삶은 아주 닫혀버리지 않는지, 작가는 설명 대신 형상으로 오래 붙들어 왔습니다. 그래서 양순열의 작업은 보기 편한 이미지로만 소비되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맑고 따뜻하게 보입니다. 그런데 조금 더 오래 바라보면 다른 결이 올라옵니다. 귀엽다거나 편안하다는 말로는 다 닿지 않는 층이 분명히 있습니다. 위로의 표정이라기보다, 버티고 회복해온 몸의 기억에 가깝습니다. ■ ‘사랑’은 감상이 아니라 끝내 자신을 놓지 않는 힘 전시 제목에 붙은 ‘사랑’도 이번에는 쉽게 읽히지 않습니다. ‘Warmth in Bloom’이라는 말은 부드럽고 온화합니다. 하지만 이번 전시가 끝내 데려가는 곳은 장식적인 따뜻함이 아닙니다. 여기서 피어나는 것은 회복입니다. 한 번 기울어진 마음이 다시 중심을 찾는 과정, 다친 자리가 완전히 지워지지 않았는데도 다시 살아가게 되는 힘, 주저앉은 뒤에도 끝내 자기 자신을 놓지 않게 만드는 내면의 온기입니다. 전시에서 사랑은 누군가를 향한 감정의 표면이라기보다, 삶을 다시 세우는 힘의 또다른 이름입니다. 그래서 양순열의 형상은 조용한데도 약하지 않습니다. 밝은데 얕지 않습니다. 말없이 서 있는데도 보는 사람 쪽에서 먼저 자기 삶의 기울기를 마주하게 만듭니다. 왜 흔들렸는지, 무엇으로 버텨왔는지, 정말 다시 일어난 적이 있었는지. 작품은 대답하지 않는데도 그 질문은 이상하리만큼 오래 남습니다. 그랜드 조선 제주 관계자는 “제주를 찾은 고객들이 편안한 휴식과 함께 양순열 작가의 작품을 감상하며 따뜻한 순간을 떠올릴 수 있도록 전시를 준비했다”라고 밝혔습니다. 작가는 그 답을 굳이 드러내진 않습니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오가고, 가장 쉽게 지나칠 수도 있는 자리 한복판에 그 질문만 가만히 놓아둡니다. 그 앞에서 잠시라도 걸음이 느려진다면, 전시는 이미 충분히 제 몫을 한 셈입니다. 전시는 8월 30일까지 이어집니다. 힐 스위트 웰컴 로비와 본관 로비는 24시간 관람할 수 있고, 힐 스위트 고메 라운지 ‘그랑 제이’에서는 오전 11시부터 밤 9시까지 만날 수 있습니다.
2026-03-07
제주방송 김지훈(jhkim@ji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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