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는 인천에서 떴다, 판이 열렸다... 초대형 ‘전세’ 크루즈가 흔든 한국 관광의 질서
축구장 세 개 길이의 초대형 크루즈가 인천에서 출항합니다. 한국 크루즈 산업이 처음으로 ‘출발지’라는 지위를 손에 쥔 순간입니다. 다만 출항 자체가 곧 성과를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이 산업의 성패는 언제나 그 다음에서 갈리기 때문입니다. 27일 롯데관광개발이 세계 3대 크루즈 선사 MSC 크루즈와 체결한 계약은, 단순히 취항 소식 하나로 끝나지 않습니다. 이날 롯데관광개발은 롯데관광 서울지점에서 MSC 크루즈와 3년간의 전략적 파트너십을 구축하고, MSC 크루즈의 첫 한국 시장 공식 진출을 알리는 전세선 크루즈 계약식을 진행했다고 밝혔습니다. 전세로 투입되는 ‘MSC 벨리시마’는 17만 톤급 초대형 크루즈입니다. 길이 315.83m로 축구장 세 개를 잇는 규모이며, 높이는 65m로 20층 아파트에 달합니다. 승객 정원은 5,600여 명, 승무원은 약 1,500명입니다. 규모도 규모지만, 이번 취항의 핵심은 ‘전세(차터)’라는 방식입니다. 좌석 일부를 판매하는 구조가 아니라, 선박 전체를 책임지는 선택입니다. 한국 크루즈 시장이 가장 깊은 방식의 시험 무대에 올라섰다는 뜻입니다. ■ ‘전세’라는 선택… 가장 위험하고, 가장 통제력이 큰 방식 전세 크루즈는 크루즈 산업에서 가장 부담이 큰 방식입니다. 운항 일정과 가격, 콘텐츠 구성, 수요 관리까지 모든 책임이 계약 주체에 귀속됩니다. 성공하면 시장의 질서를 바꾸지만, 실패하면 손실 역시 온전히 떠안게 됩니다. 여행업계 한 관계자는 “전세선은 한 시즌의 수요를 통째로 책임지겠다는 판단이 없으면 시도하기 어렵다”며 “선사와 운영사 모두 해당 시장을 전략 시장으로 보지 않으면 성립되기 힘든 계약”이라고 말했습니다. MSC 크루즈가 한국 시장 첫 공식 진출 방식으로 전세선을 택했다는 점은, 한국 수요에 대한 기대와 함께 운영 역량을 전제로 한 검증의 시작으로 읽힙니다. ■ 롯데관광개발의 전제… 전세는 경험 없이는 불가능하다 이번 계약은 단발성 도전이 아닙니다. 롯데관광개발은 2010년 이후 전세 크루즈를 지속적으로 운영해 온 국내에서 드문 사업자입니다. 코스타 세레나호 등 기존 전세 운항을 통해 수요 예측과 가격 설계, 선내 프로그램 기획 경험을 축적해 왔습니다. 백현 롯데관광개발 대표이사 사장은 “이번 전세 계약은 15년간 이어온 전세선 운영 노하우와 글로벌 선사로부터의 신뢰가 집약된 결과”라며 “MSC 크루즈와의 파트너십을 통해 한국 크루즈 시장의 수준을 끌어올리고, 세계 최고 수준의 경험을 제공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관광 학계 한 인사는 “17만 톤급 초대형 선박을 전세로 들여온다는 것은 시장에 대한 확신 없이는 선택할 수 없는 결정”이라며 “이번 계약은 한국 크루즈 시장이 일정한 운영 단계에 도달했음을 보여준다”고 평가했습니다. ■ 기항과 전세는 달라… 주도권이 이동한다 그동안 제주를 포함한 국내 크루즈 관광은 기항 중심이었습니다. 선박 일정은 선사가 쥐고, 지역은 이를 수용하는 구조였습니다. 전세 크루즈는 다릅니다. 일정을 조정할 수 있고, 콘텐츠를 설계할 수 있으며, 여행의 앞과 뒤를 하나의 흐름으로 엮을 여지가 생깁니다. 여행업계에서는 이를 두고 “기항은 맞이하는 관광이고, 전세는 설계하는 관광”이라고 진단합니다. 이 차이가 체류 시간과 소비 밀도를 가릅니다. ■ 숫자가 말하는 제주… 크루즈는 이미 성장 구간에 들어섰다 이 전세 전략이 공중에 뜬 기획만은 아니라는 점은 제주의 지표가 보여줍니다. 제주도는 올해 크루즈 관광객이 8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2023년 10만 명 수준에서 3년 만에 크게 늘어난 수치입니다. 올해 제주항과 강정항을 통한 크루즈 기항은 총 362차례(27일 기준)로 예정돼 있습니다. 기항 횟수와 방문객 수 모두 뚜렷한 상승 흐름을 보이고 있습니다. 또다른 관광 학계 한 관계자는 “제주 크루즈 관광은 이미 회복 단계를 넘어 성장 국면에 들어섰다”며 “이제는 규모보다 체류와 소비 구조를 따져야 할 시점”이라고 내다봤습니다. ■ 크루즈는 사람을 남기지 않는다… 구조를 남긴다 크루즈 산업이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불리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한 척에 수천 명이 움직이며 쇼핑, 교통, 식음료, 항만 수입이 동시에 발생합니다. 제주도 분석에 따르면 승객 3천 명이 탄 크루즈 1척이 기항할 경우 쇼핑·식음료 소비 약 6억 6,000만 원, 전세버스·통역 안내 등 민간 수입 9,300만 원, 터미널 이용료·입항료 등 항만 수입 4,400만 원의 효과가 발생합니다. 문제는 이 소비가 몇 시간에 머무를지, 며칠로 확장될지입니다. 전세 크루즈는 바로 이 지점을 겨냥한 방식입니다. ■ 제주와의 접점, 가능성은 열렸지만 자동은 아니다 이 지점에서 다시 제주가 거론됩니다. 롯데관광개발은 전세 크루즈 운영과 동시에 제주 드림타워 복합리조트를 직접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동과 체류를 하나의 흐름으로 설계할 수 있는 드문 구조입니다. 다만 업계의 시선은 신중합니다. 가능성과 실현 사이에는 여전히 조건이 존재합니다. 여행업계 한 관계자는 “전세 크루즈 승객이 제주에 하루 더 머물 이유를 만들어내지 못하면, 전세의 효과는 항구에서 끝난다”며 “체류는 자연스럽게 생기지 않고, 설계될 때만 남는다”고 말했습니다. ■ 출발지는 확보됐다… 이제 남은 건 체류의 이유와 설득력 초대형 전세 크루즈의 인천 출항은 한국 관광 산업이 한 단계 더 깊은 선택을 했다는 신호입니다. 가장 부담이 큰 방식을 택했다는 점에서, 이는 선언에 가까운 결단입니다. 관건은 ‘전세’라는 선택이 항구에서 끝날지, 아니면 다른 체류 공간으로 이어질 수 있느냐입니다. 바다는 인천에서 열렸습니다. 그 다음 항로가 어디로 이어질지는, 지금부터의 설계와 실행이 결정합니다. 지역 여행업계 한 관계자는 “전세 크루즈는 기항 횟수를 늘리는 전략이 아니라, 여행의 흐름을 다시 짜는 방식”이라며 “제주가 일정과 동선, 체류 콘텐츠를 유기적으로 엮어낼 수 있다면 기항지를 넘어 전략적인 체류 거점으로 전환될 여지는 충분하다”고 말했습니다. 이번 계약에 따라 롯데관광개발은 2027년 6월, MSC 벨리시마를 타고 대만과 일본을 기항한 뒤 인천으로 돌아오는 6박 7일 일정의 전세선 크루즈 상품을 선보일 예정입니다. 롯데관광개발은 전세 크루즈 사업을 시작한 이후 아웃바운드 전세 크루즈는 물론 프린세스 크루즈, 코스타 크루즈, 로얄캐리비안 크루즈, MSC 크루즈, NCL 크루즈, 바이킹 크루즈 등 주요 글로벌 선사의 한국 기항 인바운드 크루즈 운영을 맡아오며 국내 크루즈 시장을 개척해 왔습니다. 올해는 이러한 운영 경험을 바탕으로 연간 약 5만 명 규모의 크루즈 관광객 유치를 목표로 사업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2026-01-28
제주방송 김지훈(jhkim@ji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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