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는 풍경이 되기 전에, 누군가의 삶이었다
같은 제주를 살아도 마음에 남는 것은 모두 다릅니다. 누군가는 바다를 떠올리고, 누군가는 창문 너머 스며들던 빛을 기억합니다. 어떤 이에게 제주는 세월 묻은 우체통이고, 또 다른 이에게는 골목에서 만난 고양이입니다. 누군가에게는 스쳐 가는 풍경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오랫동안 곁을 지킨 하루입니다. 그림동아리 ‘남들과달리’가 창립 3년 만에 첫 단체전 《남들과 다르게, 지키다 제주(Out of Ordinary, Save the JEJU)》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2일 제주시 관덕로 갤러리세이브에서 시작한 전시에는 강형용, 김가은, 김채현, 남윤경, 박영광, 신주연, 정다연, 최경준, 최한결, 최지운, 황재원 등 11명의 작가가 참여했습니다. ■ 같은 제주를 그렸는데, 같은 풍경이 없어 전시장에는 서로 다른 제주가 걸려 있습니다. 잔잔한 바다를 표현한 회화가 있는가 하면, 창문 너머 풍경을 옮긴 작품도 있습니다. 꽃과 화분, 고양이와 빨간 우체통도 화면 곳곳에 자리합니다. 사실적인 묘사부터 선과 색으로 풀어낸 드로잉까지 표현 방식도 다양합니다. 화풍도, 재료도, 접근 방식도 다릅니다. 하지만 작품들이 향하는 곳은 닮아 있습니다. 제주를 하나의 모습으로 규정하지 않습니다. 작가들은 자신에게 오래 남아 있던 제주를 각자의 방식으로 풀어냈습니다. 바다는 여행지의 절경을 넘어 누군가 매일 마주했던 일상이 되고, 우체통은 거리의 사물이 아니라 시간이 머문 대상으로 남습니다. 전시는 익숙했던 섬을 다시 소개하는 자리가 아닙니다. 각자가 살아낸 제주를 꺼내놓은 첫 기록입니다. ■ 같은 공간도, 머문 시간에 따라 다른 장소가 된다 미국 문화지리학자 이푸 투안(Yi-Fu Tuan)은 저서 「공간과 장소(Space and Place)」에서 사람이 경험을 쌓으며 공간에 의미를 부여할 때 장소가 된다고 설명했습니다. 전시는 그 생각을 작품 안에서 자연스럽게 풀어냅니다. 같은 바다 앞에서도 서로 다른 그림이 나옵니다. 눈앞에 보이는 대상은 같아도 그곳에 머문 시간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누군가에게 바다는 어린 시절이고, 창문은 계절을 느끼던 자리입니다. 길모퉁이 우체통과 이름 모를 꽃 한 송이 역시 오래 함께한 사람에게는 특별한 의미를 갖습니다. 그렇게 그림은 보이는 것을 옮기는 데서 멈추지 않고, 자신만의 제주를 남기는 또 다른 언어가 됩니다. ■ 그림보다 먼저 쌓인 것은 함께한 시간 ‘남들과달리’는 제주시 노형동 그림공방 ‘묘랑묘다’에서 시작됐습니다. 전공이나 나이, 직업은 달랐지만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모였습니다. 회원들은 작업실 안에만 머물지 않았습니다. 햇살 좋은 날에는 잔디밭에 앉아 그림을 그리고, 흐린 날에는 카페 창가에서 제주의 풍경을 마주했습니다. 종이와 캔버스, 아이패드까지 표현 도구는 달랐지만 익숙한 대상을 조금 더 오래 붙잡으려는 마음은 같았습니다. 서로의 작품에서 새로운 표현 방식을 배우고, 각자의 생각을 나누며 쌓아온 3년이 이번 첫 단체전으로 이어졌습니다. ■ ‘지킨다’는 것은 오래 보는 일 제목에는 ‘지키다’라는 말이 담겼습니다. 그렇지만 거창한 메시지를 앞세우지 않습니다. 매일 지나던 길, 창문을 스치는 바람, 늘 같은 자리에 있던 우체통, 계절마다 피어나는 꽃처럼 가까이에 있던 것들을 다시 발견합니다. 특별해서 남은 것이 아닙니다. 오래 함께했기에 의미를 갖게 된 것들입니다. 남윤경 대표는 “빠르게 변하는 시대 속에서도 제주의 자연은 늘 삶의 리듬을 함께 만들어 왔다”며 “이번 전시가 익숙했던 제주를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함께 지켜야 할 가치를 생각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전시 취지를 전했습니다. 노형동 작은 그림공방에서 출발한 모임은 3년 동안 각자의 방식으로 제주를 담아냈고, 첫 전시를 통해 서로 다른 표현을 하나의 공간에 모았습니다. 회화와 드로잉, 디지털 작업으로 풀어낸 《남들과 다르게, 지키다 제주》전은 오는 13일까지 제주시 관덕로 갤러리세이브에서 열립니다. 관람료는 무료입니다.
2026-07-03
제주방송 김지훈(jhkim@ji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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