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란바토르 한복판에 선 ‘제즈머라이즈’… 제주 농산물, 글로벌 브랜드의 문 두드렸다
몽골 울란바토르의 한 대형 마트 매대에 ‘제즈머라이즈(Jesmerize)’라는 문구가 선명하게 붙었습니다. 감귤과 키위, 월동무가 한데 놓여 있고, 제주를 이미지화한 부스가 소비자 시선을 붙잡습니다. 제주시농협이 몽골 이마트와 손잡고 제주산 농산물의 수출과 판촉 무대를 동시에 가동하기 시작했습니다. 현지 소비자가 직접 맛보고 판단하는 자리. 제주 농산물이 ‘한국산’이라는 범주를 넘어 독립된 브랜드로 인정받을 수 있는지 시험하는 순간입니다. ■ 감귤·키위·월동무를 하나로… “제주 자체를 상품으로 걸었다” 농협 제주본부는 지난 11월 27일부터 오는 10일까지 제주시농협이 울란바토르 이마트에서 판촉행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3일 밝혔습니다. 감귤, 샤인키위, 월동무가 나란히 놓이고, 시식 이벤트와 현장 응대가 곁들여졌습니다. 판촉행사이자, 소비자 반응을 수집하고 향후 선호 품목과 가격 전략까지 참고할 자료를 직접 얻어내겠다는 의미입니다. 이번 프로모션은 한 달 전 제주시농협 농산물산지유통센터에서 열린 몽골 선적행사의 연장선입니다. 이후 감귤 17톤, 키위 0.5톤, 월동무 0.4톤을 추가 선적했고 2025년산 제주산 농산물 기준 감귤 100톤, 키위 10톤, 월동무 3톤 시범 수출이라는 목표까지 잡혀 있습니다. 단순히 세일즈만 하는 게 아니라, 수출 물량과 품종을 현지 반응에 맞춰 조정하는 구조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 “수출 계약서 하나로 끝내지 않았다”… 3년간 쌓아올린 설득의 기록 제주시농협의 몽골행은 비교적 조용하게 시작됐습니다. 현지 시장 조사 과정에서 원하는 품종과 특성이 맞물려야 했고, 물류 조건은 현장 확인을 통해 조율해야 했습니다. 포기해도 이상하지 않을 시간들이 있었지만, 수년간 방향을 고쳐잡으며 설득을 이어간 끝에 2023년 몽골에서 첫 업무협약(MOU), 2024년 제주에서 재확인 MOU를 이끌어냈습니다. 이번 수출과 프로모션은 그 결과물입니다. 제품을 해외에 내보내고 반응을 기다리는 수동적 방식이 아니라, 브랜드를 세워놓고 직접 현장에서 반응을 해석하며 전략을 고도화하는 능동형 접근입니다. ■ ‘Jesmerize’라는 이름… 수출 품목이 아니라 세계에 건네는 제주 정체성 제주시농협은 2019년 수출 통합 브랜드 ‘Jesmerize’를 출시했습니다. 독자적인 포장 디자인이면서, 감귤·키위·월동무를 하나의 스토리로 묶어 시장에 제시하는 방식입니다. 여기에는 메시지도 깔려 있습니다. “개별 품종이 아니라, 제주라는 생산 시스템 전체가 가치다.” 한국 농산물 수출 시장은 보통 단일 품목 단위로 움직입니다. 그렇지만 이번 수출은 품목을 한 브랜드 아래에 묶어 ‘제주산’이라는 정체성을 전면에 내세웠습니다. 브랜드를 선행 구축하고 품목을 그 안에 배치하는 전략입니다. 패키지 수출의 실험판이기도 합니다. ■ GAP 인증과 수출 검역단지, 그리고 올해의 평가 제주시농협은 2020년 농림축산식품부가 지정한 도내 최초 감귤류 전문생산단지이자 뉴질랜드 수출 검역단지로 선정됐습니다. 이어 글로벌 GAP 인증을 취득했고, 올해 농수산식품유통공사 단지평가에서는 최우수 단지로 지정됐습니다. 농가 물량을 모아 해외로 보내고 끝내는 조직이 아니라, 해외 유통 요구 수준에 맞춘 생산 체계를 운영한다는 뜻입니다. 안정적인 품질과 검증된 생산 관리 체계가 이번 수출과 판촉의 기반이기도 합니다. ■ “왜 몽골인가”… 작지만 방향이 보이는 시장 몽골 시장은 인구 규모로 보면 크다고 하긴 어렵습니다. 그러나 워낙 ‘K-컬쳐’로 대표되는 한국 문화 영향력이 강하고, 수입산 신선 농산물에 대한 선호가 높아 가격·품질 기준을 한국 기준에 맞추어 볼 수 있는 곳입니다. 중앙아시아로 연결된 무역 허브로서 가능성도 커, 실제 소비자 반응을 체감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울란바토르 이마트 매대에서 감귤이 어떤 속도로 빠져나가는지, 소비자들이 어떤 품종을 반복 구매하는지 확인하는 과정 자체가 제주 농업의 다음 전략을 설계하는 데이터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 현장 찾은 고봉주 조합장 “브랜드를 정착시키는 시작점 될 것” 프로모션 현장을 직접 찾은 고봉주 제주시농협 조합장은 그간 준비 과정을 돌아보며 “이번 프로젝트는 제즈머라이즈 브랜드와 제주산 농산물이 현지에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출발점”이라면서 “앞으로도 감귤, 키위, 채소류를 하나의 브랜드로 묶어 세계 시장에서 인정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에는 수출 물량 확대보다, 브랜드 정착과 농가 소득이라는 현실적인 목표가 담겼습니다. ■ 제주, ‘수출 실험’이 아니라 미래 농업 모델을 테스트 중 한국 농산물은 이미 신선도와 품질 면에서 세계에서 경쟁력을 인정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품목 중심 수출이 반복되며, 지역 브랜드가 스스로의 세계관을 갖고 시장에 진입하는 사례는 거의 없었습니다. 그런 면에서 이번 제주시농협의 통합 브랜드 진출은 제주 농업이 글로벌 시장을 바라보는 방식 자체를 바꾸려는 시도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몽골이라는 대륙의 실험장에서 얻는 반응은 다음 수출국, 품종 개량 방향, 가격 전략에 모두 영향을 미칠 것이란 관측입니다. 제주 농업이 만드는 장면은, 어느 한 낯선 진열대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제주라는 가치가 세계 시장에서 작동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고, 지금 제주시농협은 그 답을 데이터로 얻으려 하고 있습니다. 울란바토르 이마트 매장, 한 부스 위에는 ‘Be Mesmerized by Jeju’라는 문구가 걸려 있었습니다. 영어 카피처럼 보이지만, 현장 분위기와 맞물리면서 조금 다르게 작동했습니다. 감귤의 신맛, 월동무의 결, 키위 속 과육의 향을 직접 확인하는 순간, 소비자들은 이 말을 ‘제주에 반해보라’는 권유가 아니라 제주자연이 품은 온도와 생산지 시간에 스스로 빠져보라는 메시지로 읽어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주시농협이 이번 프로젝트에서 확인하려던 핵심 질문과도 맞닿아 있었습니다. 제주 농산물은 상품이 아니라 하나의 경험으로 어떻게 설명될 수 있는지. ‘Mesmerized’는 그 가치를 드러내는 방식이자, 제주 농업이 세계 시장 앞에 내놓은 선언으로 새겨지고 있습니다.
2025-12-03
제주방송 김지훈(jhkim@ji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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