셔터는 멈추지 않았다… 사건과 일상 사이, 제주를 증언한 1년
사건이 지나간 자리에는 언제나 질문이 남습니다. 무엇이 있었고, 우리는 무엇을 보았는가. 사진은 그 질문에 가장 단호한 방식으로 답합니다. 말이 아닌 사실로, 해석이 아닌 장면으로. 제주의 지난 1년을 통과한 사진기자들의 시선이 하나의 전시로 묶입니다. 제주도사진기자회가 마련한 ‘2025 제주보도사진전’이 오는 24일부터 29일까지, 제주문예회관 제1전시실에서 열립니다. 이번 전시는 ‘아름다운 사진’을 감상하는 자리가 아닙니다. 카메라를 들고 가장 먼저 현장에 도착했던 이들이, 가장 마지막까지 남아 기록한 시간의 집합입니다. 제주의 공간이 겪어낸 사건과 감정, 그 안에서 흔들렸던 일상의 결이 고스란히 꺼내집니다. ■ 속보의 뒤편, 사진이 맡아온 역할 이번 사진전에는 제주일보와 한라일보, 연합뉴스, 뉴시스 제주본부 등 한국사진기자협회 소속 기자들과 명예회원들이 출품한 사진 100여 점이 전시됩니다. 사진들은 단신 기사 아래에서 소비되고 사라지는 이미지로 머물지 않습니다. 속보의 호흡이 지나간 뒤에도 남아, 사회가 외면하고 싶어 했던 장면들을 다시 불러옵니다. 폭염 속 하늘을 가르던 패러글라이딩의 찰나, 연삼로를 가득 메운 차 없는 거리의 흐름, 우도에서 발생한 교통사고 현장의 무게까지. 그 순간마다 사진은 설명하지 않고, 대신 증언합니다. 독일의 철학자이자 미학 평론가인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이 말한 ‘아우라(Aura)’는 여기서 다른 방식으로 작동합니다. 감상의 대상이 아니라, 다시 마주해야 할 현실로서의 아우라입니다. 이 사진들은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예술이 아니라, 관람자를 다시 현장으로 되돌려 보내는 장치로 다가옵니다. ■ 미학이 아니라 윤리, 사진이 선택한 위치 보도사진의 미학은 종종 오해를 낳습니다. 극적인 구도나 빛의 완성도가 목적이라고 여겨지기 쉽습니다. 그러나 이 전시에서 사진이 서 있는 위치는 분명합니다. 선택의 미학이 아니라, 책임의 윤리입니다. 사진기자는 렌즈를 통해 무엇을 보여줄지 선택합니다. 동시에 무엇을 외면하지 않을지도 스스로 결정합니다. 프랑스 철학자 자크 랑시에르(Jacques Rancière)가 말한 ‘감성의 분할(Le partage du sensible)’은 바로 이 지점을 가리킵니다. 무엇이 보이고, 무엇이 들리며, 누구의 목소리가 공적 영역에 도달할 수 있는지를 가르는 보이지 않는 질서입니다. 보도사진은 그 경계 위에 서 있습니다. 전시는 그 경계를 ‘제주’라는 구체적 공간 위에 정확히 내려놓습니다. 사건과 일상, 축제와 사고, 환호와 침묵이 뒤섞인 1년의 장면들은 관람객의 시선을 피하지 않습니다. ■ “역사의 현장을 지킨다”… 어느 사진기자의 고백 고봉수 제주도사진기자회장은 이번 전시를 두고 “언론의 사명으로 진실의 창을 두드리는 사진기자들은 늘 역사의 현장을 묵묵히 지키고 있다”며 “앞으로도 무거운 사명감으로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 말은 선언이기보다 고백에 가깝습니다. 카메라를 든다는 것은 늘 위험과 피로, 그리고 윤리적 판단을 동반합니다. 그럼에도 셔터를 멈추지 않았던 이유가, 이번 전시의 모든 사진 속에 고스란히 스며 있습니다. ■ 제주를 다시 본다는 것 ‘2025 제주보도사진전’은 과거를 정리하는 자리가 아니라,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위치를 다시 확인하게 만드는 장치입니다. 사진은 지나간 시간을 붙잡는 동시에 현재를 향해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는 이 장면들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그리고 다음 장면 앞에서 어떤 선택을 하게 될 것인가를 묻습니다. 전시는 조용하지만 강합니다. 설명하지 않지만 분명합니다. ‘제주’라는 이름 아래 스쳐 지나왔던 얼굴과 사건들이 더 이상 배경으로 머물지 않도록, 관람객의 시선을 붙잡습니다. 이들의 사진은 말하지 않습니다. 대신 끝까지 남아, 우리를 보게 만듭니다.
2026-01-20
제주방송 김지훈(jhkim@ji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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