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는 끝났고, 사물만 남았다... 양묵의 회화는 왜 더 이상 ‘보는 것’이 아니라 ‘마주치는 것’인가
지금 너무 많은 이미지를 봅니다. 그리고 거의 아무것도 실제로 마주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오늘의 예술은 더 이상 무엇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대신 무엇이 여기에 남아 있을 수 있는지를 묻습니다. 이 질문은 회화라는 형식으로 밀려 들어옵니다. 그리지 않습니다. 놓아둡니다. 10일부터 제주시 조천읍 대섬아트스페이스에서 시작한 양묵 작가의 개인전 ‘Self-Existence’는, 회화가 이미지 생산을 멈춘 이후 무엇이 가능해지는지를 보여주는 전시입니다. 존재가 작동하는 방식에 대한 실험입니다. ■ 이건 회화가 아니라, 회화가 멈춘 자리 이 작업 앞에서 우리는 먼저 멈춥니다. 왜냐하면 이건 ‘볼 거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화면은 무엇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설명하지 않고, 서술하지 않습니다. 그냥 있습니다. 이건 재현이 아니라 현존입니다. 표현이 아니라 잔존이며, 이미지가 아니라 사물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해석자가 아니라 목격자가 됩니다. ■ 검정은 색이 아니라 상태 전시 작품들은 거의 모두 검은 중력을 품고 있습니다. 화면 중앙을 가르는 수직의 검은 띠는 깊이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밀도입니다. 빠져드는 공간이 아니라, 버티는 질량입니다. 전시에서 검정은 배경이 아닙니다. 상태입니다. 의미가 소진된 이후에, 이미지가 고갈된 이후에 남는, 설명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이후에 남은 상태입니다. 그래서 이 검정은 비어 있지 않습니다. 포화되어 있습니다. 너무 차 있어 침묵합니다. ■ 긁힘은 제스처가 아니라 마찰 이 긁힘은 표현이 아닙니다. 감정이 아니고 스타일도 아닙니다. 이건 몸과 물질이 서로를 밀어낸 자리입니다. 힘이 지나갔고, 시간이 통과했고, 표면만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이 회화는 이미지가 아니라 마주침의 잔여입니다. ■ 해석을 거부하지 않는, 무력화하는 작업 이건 해석이 불가능한 작업이 아닙니다. 해석이 쓸모없어지는 작업입니다. 우리는 의미보다 먼저 무게를, 개념보다 먼저 밀도를, 언어보다 먼저 존재감을 느낍니다. 그래서 이건 ‘무슨 말이냐’가 아니라, ‘왜 이렇게 무겁냐’가 먼저 나옵니다. ■ 그래서 지금 이 회화, 정치적이다 이건 도발이 아닙니다. 사실입니다. 이미지가 과잉인 시대, 이미지를 만들지 않겠다고 결정하는 것은 어쩌면 정치적 선택입니다. 소비 가능한 것을 거부하고, 전송 가능한 것을 거부하고, 설명 가능한 것을 거부하고, 오직 여기 있어야만 가능한 것을 택하는 것. 미학이 아니라 태도입니다. ■ 작품이 아니라, 남아 있음 이건 메시지가 아니고, 발언이 아니며 주장이 아닙니다. 남아 있음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앞에 서 있습니다. 그래서 전시는 묻지 않습니다. 대신 이렇게 말합니다. “여기, 아직 사라지지 않은 것이 하나 있다.” 그리고 그것이면 충분합니다. 중앙대학교 대학원 회화과를 졸업한 작가는, 1990년대 후반부터 ‘사물’과 ‘존재’를 중심으로 한 작업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사물의 관계’, ‘욕망의 수사’, ‘History…Self-Existence’ 연작을 거치며 회화를 이미지가 아닌 물성의 문제로 밀어붙여 왔습니다. 터키 안탈리아 시립미술관, 중국 친황다오 특별전시관, 일본·유럽 주요 갤러리 개인전을 비롯해 바젤 볼타, 비엔나 컨템포러리, 아트 파리, 아트 시카고 등 국제 아트페어에 참여하며 독특한 작업을 확장해 왔습니다. 현재는 제주대학교 교육대학 교수로 재직하며 예술 교육 현장에서도 ‘이미지 이전의 태도’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Self-Existence’는 18번째 개인전으로, 30일까지 이어집니다.
2026-01-11
제주방송 김지훈(jhkim@ji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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