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 사라지더라… 정미숙이 끝내 찍지 못한 제주
카메라를 들었을 때는 있었습니다. 셔터를 누를 즈음에는 조금 달라져 있었습니다. 사진을 확인했을 때, 그 구름은 이미 없었습니다. 몇 초 사이 윤곽은 풀리고 빛이 옮겨갑니다. 방금 전까지 하나였던 덩어리가 갈라지고, 그 틈으로 다른 색의 하늘이 들어옵니다. 사진에는 분명 남았는데 정작 그 사진 속 풍경은 다시 만날 수 없습니다. 정미숙의 여덟 번째 개인전 《머무르지 않는다》는 이 어긋남에서 시작합니다. 사진 한 장을 얻는 동안 사라져버린 시간. 작가는 그것을 되돌리려 하지 않습니다. 사라지는 대로 바라보고, 끝내 붙잡히지 않은 것까지 사진의 일부로 받아들입니다. 오는 10월 17일부터 11월 1일까지 서귀포 원도심 서귀중앙드리미센터 2층 미술관에 제주 하늘과 구름을 담은 사진들이 걸립니다. 구름의 모양보다 구름이 그 모양이었던 시간을 오래 바라봤습니다. ■ 한 장을 얻는 동안 하나의 풍경을 잃었다 작품을 보고 있으면 구름은 자꾸 다른 것이 됩니다. 짙푸른 덩어리가 화면을 거의 삼킨 사진에서는 거대한 파도가 밀려드는 듯하다가 어느 순간 산의 능선이 보입니다. 검은 구름 한 덩이는 밝은 하늘을 길게 가로지릅니다. 그 아래 작은 새 한 마리가 지나갑니다. 함께였던 시간은 길지 않았을 겁니다. 다른 사진에서는 거대한 구름이 솟습니다. 한쪽은 빛을 받아 풀어지고, 다른 쪽은 푸른 하늘을 밀어내듯 짙어집니다. 이 사진들에는 공통점이라기보다 하나의 사건이 있습니다. 찍히는 동안에도 달라졌습니다. 흔히 사진은 시간을 멈춘다고 말합니다. 1초보다 훨씬 짧은 시간을 잘라 한 장 안에 남길 수 있으니 틀린 말은 아닙니다. 구름 앞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초점을 맞추는 동안에도 움직입니다. 바람 한 점에 경계가 흐트러지고 빛이 조금만 옮겨가도 다른 얼굴이 됩니다. 셔터가 닫힌 순간 하나의 모습은 얻었습니다. 그 앞과 뒤에 있던 수많은 변화는 놓쳤습니다. 정미숙은 그 놓침을 실패로 밀어내지 않습니다. 흐려지고 흔들리고, 때로는 온전히 포착되지 않은 이미지까지 작업 안으로 들입니다. 작가는 “완전히 붙잡기 위한 기록이라기보다, 붙잡을 수 없었던 순간의 흔적에 가깝다”고 말합니다. 그렇게 보면 이 사진에는 찍힌 것보다 찍히지 않은 시간이 더 많이 들어 있습니다. ■ 사진에는 있는데, 세상에는 없다 《머무르지 않는다》라는 제목은 여기서 묘해집니다. 벽에 걸리는 순간 구름은 멈춥니다. 더는 흩어지지 않고 빛도 달라지지 않습니다. 내일 다시 찾아가도 같은 모습으로 그 자리에 있습니다. 정작 사진 속 구름은 그렇게 존재한 적이 없습니다. 한 번도 멈춘 적 없는 대상을 사진만 멈춰 세웠습니다. 사진은 무언가를 보존하는 매체이지만, 동시에 그것이 이미 지나갔음을 보여주는 매체이기도 합니다. 사진에 남은 순간과 세상에서 사라진 순간이 한 장 안에 함께 있습니다.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가 『밝은 방』에서 사진을 두고 말한 ‘ça-a-été’, 곧 ‘그것은-존재했음(that-has-been)’이 여기서 겹쳐집니다. 바르트가 주목한 것은 사진 속 대상이 실제로 카메라 앞에 존재했다는 사진의 독특한 조건이었습니다. 사진은 지금 여기 없는 대상에게 과거의 시제를 부여합니다. 정미숙의 구름도 그 시제로 남았습니다. 저 구름은 있었습니다. 사진이 그것을 증명합니다. 그런데 바로 그 증거 때문에 우리는 저 구름이 이제 없다는 사실도 압니다. ‘있다’와 ‘있었다’ 사이. 정미숙의 사진은 그 작은 문법의 차이를 이미지로 길게 늘여놓습니다. ■ 결정적 순간이 결정되고 난 뒤 여기서 또 하나의 오래된 사진 언어와 마주칩니다.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Henri Cartier-Bresson)의 사진과 함께 널리 알려진 ‘결정적 순간(the decisive moment)’. 움직이는 현실에서 형태와 의미가 응축되는 찰나를 포착한다는 사진의 오랜 미학입니다. 하지만 구름 앞에 서면 ‘결정적’이라는 말부터 난처해집니다. 어느 순간이 가장 구름다운 구름일까. 가장 높이 솟았을 때인지, 빛이 가장 아름답게 걸렸을 때인지, 윤곽이 무너지기 직전인지 알 수 없습니다. 하나를 선택하는 순간 다른 형태가 시작됩니다. 그래서 《머무르지 않는다》는 결정적 순간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그 순간이 결정되고 난 뒤에도 시간이 계속됐다는 사실을 봅니다. 셔터는 한 장면을 선택했지만 구름은 선택받았다는 사실을 모릅니다. 사진 안에서는 멈췄고, 사진 밖에서는 계속 흘렀습니다. 그 때문에 작품을 보고 있으면 프레임 바깥의 공간보다 먼저 프레임 바깥의 시간이 궁금해집니다. 셔터가 닫힌 1초 뒤, 10초 뒤, 그리고 저 구름이 흔적 없이 흩어진 뒤까지. 사진은 보여주는 매체인데, 이 사진들은 자꾸 보여주지 않은 다음을 생각하게 합니다. 브레송의 ‘결정적 순간’이 찰나에 시선을 모은다면, 정미숙의 구름은 그 찰나가 지나간 자리에서 시간을 다시 흘려보냅니다. 바르트가 사진에서 ‘있었음’을 읽었다면, 정미숙의 사진에서는 그 ‘있었음’이 만들어지는 동안조차 대상이 다른 모습으로 건너가고 있습니다. 굳이 둘의 사진론을 정미숙의 작업에 그대로 대입할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흥미로운 것은 두 질문 사이에서 이번 사진들이 슬쩍 빠져나가는 방식입니다. 있었던 순간을 붙잡았는데, 그 순간은 도대체 어디까지가 한순간일까. 구름은 대답할 틈도 주지 않습니다. 이미 달라졌습니다. ■ 구름을 보는데, 어느새 내 기억이 들어왔다 시간만 움직이는 것도 아닙니다. 보는 사람의 눈도 가만있지 않습니다. 구름은 파도가 되었다가 산이 되고, 어느 순간 얼굴이나 동물처럼 보입니다. 조금 전까지 분명했던 형상도 다시 보면 사라집니다. 무작위적인 형태에서 익숙한 모습을 찾아내는 시지각 현상을 ‘파레이돌리아(pareidolia)’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이 작품들 앞에서는 용어보다 그다음에 일어나는 일이 더 흥미롭습니다. 사진가가 찍지 않은 것까지 보게 만듭니다. 같은 사진에서 누군가는 바다를 떠올리고, 누군가는 어린 시절의 하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아무런 형상을 찾지 않은 채 흑과 백, 빛과 어둠의 움직임에 오래 시선을 둘 수도 있습니다. 구름은 정미숙이 찍었습니다. 그 구름에서 무엇을 꺼내는지는, 온전히 보는 사람에게 넘어갑니다. 제주의 어느 날, 어느 시각의 하늘이 낯선 사람의 아주 사적인 기억을 건드립니다. 사진가의 시간이 관람객의 기억을 통과하면서 전혀 다른 시간대와 포개집니다. 작가가 구름을 “감정과 기억, 그리고 상상을 불러오는 매개체”라고 적은 이유는 이쯤에서 한층 더 선명해집니다. ■ 사진이 넘치는데, 보는 시간은 줄었다 지금은 웬만한 순간을 놓치지 않습니다. 하늘이 아름다우면 찍고 여행을 가서 찍습니다. 음식이 나오고 사람이 모여도 찍습니다. 휴대전화 사진첩에는 다시 다 보지 못할 만큼 많은 시간이 쌓여 있습니다. 이제는 무엇을 남길지보다 무엇을 지울지가 고민입니다. 사진을 얻는 일은 쉬워졌습니다. 한 장을 오래 보는 일은 그만큼 드물어졌습니다. 굉장한 광경을 찾아 먼 곳으로 떠난 것도 아닙니다. 늘 머리 위에 있었던 제주 하늘을 바라봤습니다. 그런데 오래 보고 있으니 익숙했던 하늘이 낯설어집니다. 매일 있었지만 한 번도 같은 적이 없었습니다. 늘 그 자리에 있다고 여겼는데 어느 순간도 그 자리에 그대로 있지 않았습니다. 그러고 보면 《머무르지 않는다》는 구름에만 해당하는 말도 아닙니다. 구름이 지나가는 동안 사진가의 시간도 흘렀습니다. 사진을 보는 사람 역시 조금 전과 같은 시간에 있지 않습니다. 그 가운데 사진만 이상하리만큼 오래 남습니다. 여기서 전시 제목과 사진이라는 매체가 서로 반대 방향을 봅니다. 머무르지 않는 것을, 머무르게 하는 사진. 오래 남은 사진이 끝내 보여주는 것은 보존보다 소멸에 가깝습니다. ■ 여덟 번째 전시, 가장 가벼운 것을 향해 이쯤에서 사진가 정미숙의 시간이 보입니다. 여덟 번째 개인전입니다. 2017년 《색, 삶의 결이 되다》를 시작으로 2019년 《섬의 빛·닿다》, 2020년 《인물전 한정수 Ever glow》, 2021년 《제주의 지붕과 나무》, 2022년 《이유》, 2024년 《깊은(Deep)》, 지난해 《살아,》까지 개인전을 이어왔습니다. 카메라 안에는 사람도 있었고 집과 나무도 있었습니다. 《제주의 지붕과 나무》에서는 마을의 지붕과 곁을 지켜온 나무를 바라봤고, 《살아,》에서는 겨울 한라산으로 들어가 눈과 나무, 혹독한 계절을 건너는 생명을 좇았습니다. 이번에는 구름입니다. 사람과 집, 나무에는 다시 찾아갈 좌표가 있습니다. 구름에는 없습니다. 어디에 있었다고 말할 수는 있어도 그곳으로 돌아가 다시 만날 수 없습니다. 이름을 붙이는 동안에도 모양이 달라집니다. 여덟 번째 전시에서 사진가가 택한 것은 손에 잡히지도, 같은 자리에서 다시 만날 수도 없는 대상입니다. 그 구름을 좇다 사진 자체에 대한 질문에 닿습니다. 남길 수 없는 것을 찍는 일은 무엇을 남길까. 정미숙은 답을 정해놓지 않고 “사라지는 것을 붙잡기보다 바라보며, 변화하는 자연과 그 곁에 머무는 시간을 기록한다”고 이번 작업 배경을 설명합니다. 작업은 전시장 밖에서도 지속됐습니다. 2011년부터 서귀포 장애인자립생활센터 사진동아리 강사로 활동했고 청소년 쉼터와 장애인종합복지관 등에서 사진 수업을 진행했습니다. 2017년에는 지역신문에 포토에세이 《노고록이》를 격주 연재했습니다. 공연과 지역 현장의 아카이브 촬영도 이어왔습니다. 사람과 장소 가까이에서 시간을 기록해온 카메라는 이번에 하늘을 향했습니다. 대상은 멀어졌고 형태는 이전보다 불확실해졌습니다. 대신 사진이 무엇을 남길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더 또렷해졌습니다. 정미숙이 말한 ‘기록’도 그래서 보존과 조금 다른 뜻으로 읽힙니다. 사라지는 것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사라지고 있었다는 사실은 남길 수 있습니다. 《머무르지 않는다》는 10월 17일부터 11월 1일까지 서귀중앙드리미센터 2층 미술관에서 열립니다. 휴관일 없이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관람할 수 있습니다. 첫날인 17일 오후 4시에는 이성홍의 사회로 ‘작가와의 대화’가 마련됩니다. 바람슷긴 사진관이 주최·주관하고 제주자치도와 제주문화예술재단이 후원합니다. 정미숙이 사진에 담은 구름들은 이미 없습니다. 남은 것은 어느 날 제주 상공을 지나간 구름 자체라기보다, 그것이 달라지는 동안 그곳에 머물렀던 시선들입니다. 사진 한 장이 생겨나는 그 짧은 사이에도, 세계는 이미 이전과 달라지고 있었습니다.
2026-09-29
제주방송 김지훈(jhkim@ji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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