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끄곡 모닥치곡 이야홍”… 다섯 번째 제주비엔날레, 9년 묵은 숙제는 풀렸나
“허끄곡 모닥치곡 이야홍.” 지난달 25일 개막한 제5회 제주비엔날레의 주제입니다. ‘허끄곡 모닥치곡’은 섞이고 모인다는 뜻의 제주어이고, ‘이야홍’은 제주민요 ‘이야홍 타령’의 후렴에서 가져왔습니다. 서로 다른 문화가 제주에 들어와 섞이고 변화해온 과정을 ‘변용의 기술’로 풀었습니다. 20개국 69팀이 참여해 제주도립미술관과 제주돌문화공원 오백장군갤러리, 제주아트플랫폼, 예술공간 이아, 갤러리레미콘 등 5곳에서 오는 11월 15일까지 83일간 전시를 이어갑니다. 개막 뒤에는 작품보다 행사명과 홍보물, 안내 방식을 두고 벌써 말이 나왔습니다. 평화로에 설치된 홍보물을 알아보기 어렵다는 반응이 온라인에 올라왔고, 제주도 홈페이지 ‘제주도에 바란다’에는 행사 정보를 문의하는 과정에서 각 미술관에 직접 알아봐야 했다는 내용의 글이 게시됐습니다. 제주어를 사용한 행사명에 글자를 해체하고 다시 조합한 디자인까지 더해지면서 무엇을 홍보하는지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왔습니다. 비슷한 문제는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제주비엔날레는 올해 다섯 번째를 맞았습니다. 그동안 운영체계와 홍보, 도민 참여 문제가 여러 차례 제기됐고 제주도도 전담인력 확보 등 개선책을 내놨습니다. 올해 포스터와 안내를 둘러싼 지적도 지난 9년 동안 제주비엔날레가 무엇을 바꿨는지와 함께 살펴볼 대목입니다. ■ 9년 동안 다섯 번째, 실제 개최는 네 차례 제주비엔날레는 2017년 출범했습니다. 첫 행사에는 16억 5,000만 원이 투입됐고 15개국 73팀이 참여했습니다. 이후 제주도감사위원회 감사에서 행사 추진과 운영 과정의 문제들이 지적됐습니다. 2019년부터 준비한 제2회는 코로나19와 내부 갈등 등을 겪은 끝에 취소됐습니다. 다시 열린 것은 2022년입니다. 18억 5,000만 원을 투입한 제3회 《움직이는 달, 다가서는 땅》에는 16개국 55명·팀이 참여했습니다. 두 번째 행사가 무산되고 5년 만에 비엔날레가 재개되면서 안정적인 운영 기반을 갖춰야 한다는 논의도 이어졌습니다. 제주도가 2023년 작성한 제4회 제주비엔날레 사전준비 계획에는 ‘전담 인력 2인 이상 확보’와 미술관 내 ‘제주비엔날레과 구성’이 추진 과제로 명시됐습니다. 행사가 없는 해부터 예술감독을 선정하고 전시 준비에 들어가 개최연도에 집중되는 업무를 분산하는 방안도 담겼습니다. 전담조직과 준비 기간 문제는 외부에서 새로 제기한 지적이 아니었습니다. 제주도가 이미 2023년 개선 과제로 문서에 명시했던 사안입니다. ■ 절반 가까이 알았지만 관람 경험은 3.1% 관객 수치는 더 구체적입니다. 2023년 제주도민 1,000명과 문화예술계 관계자 20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성과평가 설문에서 제주비엔날레를 알고 있다는 도민은 46.8%였습니다. 절반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직접 관람한 경험이 있다는 응답은 3.1%였습니다. 홍보와 소통이 미흡하다는 응답은 61.8%였고, 충분하다는 응답은 4%에 그쳤습니다. 다음 비엔날레를 관람할 의향이 있다는 응답은 52.9%였습니다. 행사를 알고 있다는 응답과 직접 관람했다는 응답 사이에는 43.7%포인트(p)의 차이가 났습니다. 이듬해에는 관람객이 크게 늘었습니다. 제4회 제주비엔날레에는 10만 1,683명이 찾아 출범 이후 처음 10만 명을 넘어섰습니다. 이후 도민 관람이 얼마나 늘었는지를 보여주는 자료는 아직 충분하지 않습니다. 2023년 3.1%였던 도민 관람 경험이 이후 얼마나 높아졌는지, 10만여 명 가운데 도민과 관광객은 각각 얼마나 됐는지 등을 확인할 수 있는 데이터가 필요합니다. 관람객 총수와 함께 누가 비엔날레를 찾았고, 지역의 관람 기반이 얼마나 넓어졌는지까지 지속적으로 측정해야 성과와 과제를 제대로 짚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 원도심으로 들어오고 제주 작가 늘려 올해는 전시장을 제주도립미술관과 제주돌문화공원에서 제주아트플랫폼과 예술공간 이아, 갤러리레미콘 등 제주시 원도심까지 넓혔습니다. 참여한 69팀 가운데 국내 작가는 44명, 해외 작가는 25명이며 국내 작가 가운데 제주 작가 비율은 약 30%입니다. 제주 신화와 유배, 돌문화를 전시의 주요 축으로 삼고 제주어를 주제 전면에 내세웠습니다. 세계 여러 도시에서 비엔날레가 열리는 상황에서 제주에서 개최하는 국제미술행사가 무엇을 보여줄 것인지에 대한 고민도 올해 기획에 반영됐습니다. 관람객 참여 방식도 다양해졌습니다. 일부 해외 작가는 제주에 머물며 도민과 작업했고, 원도심까지 전시 공간을 넓히면서 미술관 밖에서 비엔날레를 접할 기회도 늘렸습니다. 올해 논란을 단순하게 ‘제주어가 어렵다’는 문제로만 좁혀 볼 수 없는 이유입니다. 제주어와 지역의 역사, 문화를 국제미술행사의 전면에 내놓는 시도는 제주비엔날레의 정체성을 만드는 작업과 맞닿아 있습니다. 전시를 처음 접한 사람이 행사명의 뜻을 이해하고, 흩어진 전시장의 위치와 프로그램을 쉽게 파악하도록 만드는 일은 운영에서 풀어야 할 문제입니다. 작품과 시각 디자인의 실험성을 살리면서도 홍보와 안내에서는 필요한 정보를 분명하게 전달해야 합니다. ■ 20억 원 들인 뒤 제주에 무엇이 남나 올해 제주비엔날레에는 20억 원이 투입됐습니다. 행사가 끝나면 올해 관람객 수도 집계됩니다. 제4회에서 처음 10만 명을 넘어선 만큼 올해 몇 명이 찾았는지도 주요 성과 가운데 하나입니다. 또 함께 확인할 부분도 있습니다. 도민 관람이 얼마나 늘었는지, 원도심으로 넓힌 전시가 주변 문화공간 이용으로 이어졌는지, 제주 작가들이 비엔날레 이후 국내외 전시와 교류를 이어가는지, 행사에서 확보한 전문인력과 네트워크가 다음 회차까지 유지되는지 등입니다. 제주 출신으로 수도권에서 활동하는 미술인 K씨는 “관람객 10만 명을 넘겼다는 것만으로 국제미술행사의 성과를 설명하기는 어렵다”며 “제주 작가가 비엔날레 이후 어디에서 누구와 작업하게 됐는지, 지역 기획자가 성장했는지, 국내외 미술계와 이어지는 네트워크가 남았는지를 봐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이런 축적이 없다면 2년마다 큰 전시를 한 번씩 여는 것과 무엇이 다른지 묻게 된다”고 지적했습니다. 도내 미술계 관계자 L씨는 “초기에는 행사를 제대로 치르는 것 자체가 중요했지만 다섯 번째라면 평가 기준도 달라져야 한다”면서 “전담조직과 도민 참여처럼 앞선 행사에서 지적된 문제가 9년이 지나도록 계속 과제로 남는다면 개별 행사의 문제가 아니라 운영체계 자체를 점검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라고 평가했습니다. 이어 “행사가 끝날 때마다 조직과 인력이 흩어지고 다음 회차에서 다시 시작하는 방식으로는 경험과 전문성이 쌓이기 어렵다”며 “앞선 네 차례에서 무엇을 고쳤고 무엇을 남겼는지, 그 결과가 다음 비엔날레 준비에 어떻게 이어지는지를 제주도와 미술관이 구체적으로 보여줘야 한다”고 주문했습니다.
2026-09-16
제주방송 김지훈(jhkim@ji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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