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은 달리고, 우리는 따라가지 않는다… 말을 그린 것이 아니라 말해지지 못한 마음의 궤적을 그렸다
감정은 언제나 우리보다 먼저 달립니다. 우리는 늘 한 박자 늦게 깨닫고, 한 장면 늦게 이해합니다. 이런 지연은 결함이 아니라 인간의 조건입니다. 오지원의 개인전 ‘말의 숨결’은 이 조건을 피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자리에 서 있습니다. 이미 지나간 감정, 흩어진 마음, 말하지 못한 언어를 작가는 그림이라는 가장 느린 매체로 붙잡아 둡니다. 말을 그린 전시가 아닙니다. 감정이 지나간 자리에 남은 공기의 결을 시각화한 기록입니다. 달리지 않는 말, 소리 없는 숨결, 형태를 가진 침묵이 화면을 채웁니다. 오지원은 지금 감정을 그리는 사람이 아니라 감정이 놓일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사람으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위로를 주는 전시가 아닙니다. 대신 위로가 생기기 이전의 상태를 남겨둡니다. 아직 울지 않았던 순간, 아직 말하지 않았던 마음, 아직 이해되지 않았던 감정이 머뭅니다. 이 전시는 그것들을 해석하지 않습니다. 대신 사라지지 않게 둡니다. 그 태도 자체가 전시의 메시지입니다. 감정이 도착하기 전에 예술은 먼저 자리를 만듭니다. 바로 그 자리와 만납니다. 7일부터 다음 달 4일까지 서귀포 복합문화공간 라바르-갤러리 뮤즈에서 열리는 청년 작가 오지원의 개인전 ‘말의 숨결’입니다. 빠른 감정의 시대, 예술이 어떤 방식으로 속도를 거부할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 말은 동물이 아니라 감정이 지나가는 통로 오지원의 화면 속 말은 달리지 않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머뭅니다. 전시에서 말은 감정을 싣는 존재가 아니라 감정이 지나가는 자리입니다. 그림 속 말은 식물과 섞이고, 배경과 흐려지며 경계를 잃습니다. 말이 중심이 아니라 감정이 통과하는 장면이라는 뜻입니다. 말은 감정을 운반하지 않습니다. 감정이 말을 통과합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흔적이 남습니다. ■ 감정을 남겨두는 전시 작가는 작업노트에서 “작품은 사라질 감정을 잠시 머물게 하는 그릇이며, 지나간 마음을 되짚는 일기장과 같다”고 밝혔습니다. “감정을 설명하고 싶지는 않았다. 다만 사라지기 전에 잠시라도 머물 수 있는 자리를 만들고 싶었다”라고 전시 취지를 설명했습니다. 이 전시는 감정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감정이 지나간 뒤의 상태를 그대로 둡니다. 정리하지 않고 해석하지 않습니다. 다만 유지합니다. ■ 붉은 말의 해, 속도가 아니라 방향을 꺼내다 2026년은 병오년, 붉은 말의 해입니다. 달리는 이미지를 떠올리기 쉬운 해입니다. 하지만 이 전시는 그 이미지를 호출하지 않습니다. 작가는 “모두가 달리는 해에 저는 멈춰 있는 말을 그리고 싶었다. 감정도 그렇게 잠시 멈출 수 있었으면 했다”라고 말합니다. 이 선택은 느림의 취향이 아니라,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되묻는 태도에 가깝습니다. ■ 흔적을 씻던 곳, 남기는 곳으로 바뀌다 라바르-갤러리 뮤즈는 과거 대중목욕탕이었습니다. 원래 흔적을 씻어내는 장소였습니다. 지금 이곳은 흔적을 남기는 장소입니다. 씻어내던 공간이 남기는 공간으로 바뀌었습니다. 이 전환은 전시의 성격과 겹칩니다. ■ 감정을 그리는 일, 다루는 일로 이동하다 오지원은 감정을 그리는 작가로 출발했습니다. 최근 작업은 감정을 표현하는 일을 넘어 감정이 머물고 사라지는 조건을 다루는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감정을 주제로 삼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둘러싼 환경을 만드는 작업입니다. ‘말의 숨결’은 그런 이동의 현재형입니다. ■ 감정의 환경을 만드는 회화 작가 오지원은 2021년 세종대학교 회화과 서양화전공을 졸업했습니다. 초기 작업은 개인의 내면 감정과 기억의 잔상을 이미지로 옮기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습니다. 첫 개인전 ‘세상에 단 하나뿐인 당신’(2021·서귀포감귤박물관)을 시작으로 ‘ᄆ · ᄅ봐’(2023·이룸갤러리), ‘말달리자’(2023·상향평준화)로 이어지는 개인전은 감정의 재현에서 감정의 배치로 이동하는 흐름입니다. 아트스페이스 이색, 서귀포 예술의전당, 산지천갤러리, 기당미술관 등에서 단체전에 참여했고, 국립국악원 ‘국악누리’ 표지 선정(2018), 앙데팡당 KOREA 입선(2019), 예래마을 문화풍경 기록 프로젝트(2020), 제주국제화랑미술제 참여(2023) 등으로 활동을 이어왔습니다. 전시는 다음 달 4일까지 이어지며, 10일 작가가 직접 작업을 소개하는 아티스트 토크도 예정돼 있습니다.
2026-01-03
제주방송 김지훈(jhkim@ji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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