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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씨가 어떻게 사람이 됐을까… 이응노 60년을 관통한 ‘한 획’
사람들이 화면을 가득 메웁니다. 서 있거나 걷고, 팔을 벌리고, 어디론가 향합니다. 얼굴과 표정은 좀처럼 드러나지 않는데 몇 번의 먹선만으로 몸의 방향과 움직임이 살아납니다. 고암 이응노(1904~1989)의 말년을 대표하는 〈군상〉입니다. 이 사람들은 어디에서 왔을까. 시간을 거꾸로 돌리면 파리에서 완성해간 문자추상을 지나 산수와 풍경을 만나고, 더 오래 거슬러 올라가서는 대나무를 그리던 젊은 이응노와 마주칩니다. 서귀포공립 소암기념관이 8일부터 내년 1월 10일까지 선보이는 개관기념전 《이응노, 미친 그리움》은 그 긴 시간을 ‘서예’에서 다시 읽습니다. 1958년 프랑스로 떠나기 이전과 이후를 갈라놓던 경계도 걷어냅니다. 붓글씨와 묵죽, 풍경과 풍물, 문자추상과 인간군상을 한 흐름에 놓고 그토록 다른 작품들을 무엇이 이어왔는지 좇습니다. 이응노의 서예 8점과 회화 43점, 조각 5점 등 56점에 소암 현중화의 서예 14점을 더해 모두 70점이 나옵니다. 오랜 세월과 수차례의 양식 변화를 지나면서도 그의 작업에서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던 흔적이 있습니다. 붓이 종이를 지나며 남긴 획(劃)입니다. ■ 대나무를 그리던 붓은 어떻게 추상에 닿았나 이응노의 출발에는 대나무가 있습니다. 전통 서화에서 출발해 일본 유학 등을 거치며 작업의 영역을 넓혔고, 1958년 프랑스로 건너간 이후 서구 현대미술과 직접 부딪치며 자신의 조형언어를 새롭게 밀어붙였습니다. 이전까지 익힌 서예는 그 변화 속에서도 살아 있었습니다. 오래 다뤄온 한자와 필획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찾았습니다. 문자를 해체하고 획을 다시 배열하면서 뜻을 전달하던 글씨는 형태와 리듬을 가진 화면의 요소로 바뀌어갔습니다. 여기서 이응노의 문자추상이 시작됩니다. 읽기 위한 문자를 보는 대상으로 돌려놓았습니다. 글자의 뜻이 뒤로 물러나자 붓이 지나간 속도와 방향, 먹의 농담, 획과 획 사이의 간격이 앞으로 나옵니다. 전시는 그보다 앞선 묵죽과 산수까지 불러옵니다. 대나무의 줄기와 가지를 만들던 선이 문자의 획으로 옮겨가고, 글자의 구조를 흔들면서 추상의 화면을 이루는 과정을 한 자리에서 더듬어 볼 수 있게 했습니다. 1970년대를 지나면서 문자와 사람의 형상은 차츰 가까워집니다. 1980년대에 이르면 사람은 몇 번의 필획으로 압축됩니다. 팔과 다리, 허리를 이루는 먹선들이 화면을 가로지르고 하나였던 사람은 수십, 수백 명으로 불어납니다. 초기의 묵죽과 말년의 〈군상〉만 떼어놓고 보면 상당히 먼 그림처럼 보입니다. 그 사이에 문자와 추상이 들어가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대나무를 그렸던 선이 글자의 획을 거쳐 사람의 몸으로 이동해온 긴 시간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 글자를 읽지 않자, 그림이 보인다 이응노의 문자추상이 흥미로운 지점도 여기에 있습니다. 문자는 뜻을 전합니다. 글자를 보면 우리는 먼저 읽습니다. 이응노는 그 익숙한 순서를 흔들었습니다. 한자를 나누고 겹치고 변형하면서 읽을 수 있는 의미를 희미하게 만들었습니다. 크고 작은 형태가 맞물리고 검은 먹과 빈 종이가 서로 자리를 나누면서 글씨는 회화에 가까워집니다. 서예와 그림 사이의 경계도 흐려집니다. 이 변화는 1950~60년대 유럽에서 전개된 추상미술과 맞닿았지만, 이응노가 손에 쥔 것은 이미 오래 익혀온 붓과 먹, 문자였습니다. 그래서 문자추상을 서구 추상미술의 한국적 변주로만 읽으면 중요한 한 축을 놓치게 됩니다. 서예 안에 있던 획과 공간을 꺼내 당대의 회화 언어로 바꿨다는 데 이응노의 독자성이 있습니다. 전통과 현대는 어느 순간 자리를 바꾼 게 아니라 화면 안에서 부딪치고 섞이며 새로운 형식을 만들었습니다. 그 실험은 다시 사람에게로 향합니다. 글자의 획이 인간의 몸을 만나기 시작했습니다. ■ 글자가 사람이 되는 순간 말년의 〈군상〉 앞에서는 가까이 섰다가 몇 걸음 물러나 볼 필요가 있습니다. 가까이에서는 먹선이 먼저 들어옵니다. 붓이 종이를 밀고 지나간 속도와 방향이 보이고, 먹이 짙어졌다 옅어지는 순간도 남아 있습니다. 거리를 두면 그 선들이 사람이 됩니다. 걷고 뛰고 서로 어깨를 맞댄 형상이 나타납니다. 더 물러나면 한 사람 한 사람보다 화면 전체를 휩쓰는 움직임이 커집니다. 문자추상에서 화면을 조직했던 획이 〈군상〉에서는 인간의 몸을 얻습니다. 이번 전시가 ‘서예’를 중심에 놓은 이유도 이 흐름에서 읽힙니다. 묵죽과 산수, 문자추상과 인간군상을 이어 읽는 실마리입니다. 이응노 자신도 서예를 두고 “무궁무진한 예술이며, 앞으로도 마르지 않는 거대한 예술”이라는 뜻의 글을 작품으로 남겼습니다. 서예는 새로운 형태를 끊임없이 길어 올리는 원천이었습니다. ■ 감방에서 만난 ‘대자유’ 작품의 변화만 따라가서는 《미친 그리움》이라는 제목에 온전히 닿기 어렵습니다. 이응노가 지나온 20세기가 함께 놓여 있기 때문입니다. 식민지와 해방, 전쟁과 분단을 겪었고 프랑스로 건너간 뒤인 1967년에는 동백림 사건에 연루돼 한국에서 옥고를 치렀습니다. 수감 중에도 작업은 이어졌습니다. 소암기념관은 이번 전시에 그 시간을 ‘감방(監房)의 대자유’라는 이름으로 끌어들였습니다. 좁은 감방에서도 그림을 놓지 않았던 이응노에게 예술과 자유가 어떤 관계였는지를 들여다보는 대목입니다. ‘미친 그리움’에는 고국을 떠난 예술가의 향수보다 더 많은 시간이 포개져 있습니다. 소암기념관은 이응노에게 서예가 한국인이자 세계인으로서 자신의 존재와 정체성을 확인하는 언어였으며, 독립과 통일에 대한 염원과 삶의 그리움을 담아내는 예술적 언어였다고 설명합니다. 그리움과 자유, 분단과 통일에 대한 생각은 글씨와 그림을 지나 말년의 사람들에게까지 스며듭니다. ■ 파리의 고암과 제주의 소암 전시의 다른 한 축은 소암 현중화(1907~1997)입니다. 이응노보다 세 살 아래인 현중화도 격동의 20세기를 지나며 자신만의 서예를 일궜습니다. 고암은 프랑스로 건너가 문자를 해체하고 추상과 인간군상으로 영역을 넓혔습니다. 소암은 제주에 뿌리를 두고 자신의 필법을 다듬었습니다. 제주 바다와 한라산의 맛과 멋은 선풍도골(仙風道骨)의 ‘소암체’에 스며들었습니다. 같은 필묵에서 두 사람의 서로 다른 현대가 나왔습니다. 전시는 ‘고암·소암의 서예’에서 시작해 산수풍경과 동물·정물, ‘감방의 대자유’, ‘서예, 추상미술의 원점’, ‘글자, 사람이 되다’를 차례로 짚습니다. 마지막 ‘고암·소암의 시대서사’에서 두 사람의 시간을 다시 포개놓습니다. 청관재와 가나문화재단, 아트해피니스가 작품 출품에 협력했습니다. 1920년대 묵죽에서 1980년대 인간군상까지 반세기가 넘게 흘렀습니다. 이응노는 그 사이 조국을 떠났고 감옥을 거쳤습니다. 대나무와 산수를 그리던 화면은 문자와 추상을 지나 수많은 사람으로 채워졌습니다. 전시는 그 변화를 거꾸로 더듬습니다. 대나무의 줄기에서 글씨의 획으로, 다시 사람의 몸짓으로 이어진 시간입니다. 말년의 〈군상〉까지 돌아오면 처음에는 보이지 않던 흔적 하나가 눈에 걸립니다. 수많은 사람을 이루는 선입니다.  젊은 이응노가 대나무를 세우던, 바로 그 붓의 획입니다. 《이응노, 미친 그리움》은 8일부터 2027년 1월 10일까지 소암기념관 전시실에서 열립니다. 개막일 오후 2시에는 이동국 전 경기도박물관장이 ‘고암과 소암―필묵의 언어와 20세기 한국미술’을 주제로 특별강연을 하고, 오후 3시 30분 개막식이 이어집니다. 매주 월요일 휴관하며 관람료는 무료입니다.
2026-10-07 제주방송 김지훈 (jhkim@jibs.co.kr) 기자

좌석난만 걱정할 때인가… 제주 관광, 사람은 제자리·소비와 비행기는 줄었다
제주를 찾는 내국인이 좀처럼 늘지 않고 있습니다. 올해 누적 증가율은 0.3%에 그쳤습니다. 관광객이 제주에서 쓰는 돈은 더 줄었습니다. 2분기 내국인 관광소비는 7.7% 감소했고, 국내선 이용객도 4월부터 넉 달 연속 지난해 수준을 밑돌았습니다. 항공사들은 올해 하계 제주 국내선 좌석을 65만 석 넘게 줄였습니다. 추석과 개천절에 이어 한글날 연휴까지 공급 감소가 이어집니다. 제주자치도는 지난 8월 국내선 좌석 부족에 대응하기 위해 항공사까지 참여하는 전담팀을 꾸렸습니다. 그런데 좌석을 더 확보하면 관광객도 다시 늘어날까. 최근 지표는 제주 관광이 공급과 함께 수요를 들여다봐야 할 단계에 들어섰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항공사들이 제주에 넣는 좌석까지 축소되는 상황에서 제주 관광의 부진을 공급 부족만으로 설명할 수 있는지 짚어볼 시점입니다. ■ 내국인 관광객 6.4% 감소… 가을에도 증가세 둔화 7일 제주도와 제주도관광협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제주를 찾은 내국인 관광객은 2024년 같은 기간보다 6.4% 감소했습니다. 반면 외국인 관광객은 31.9% 증가했습니다. 외국인 증가가 전체 관광객 감소폭을 상당 부분 메웠습니다. 가을 들어서는 내국인 관광객이 지난해 수준을 가까스로 웃돌고 있습니다. 올 들어 어제(6일)까지 제주를 찾은 내국인은 869만여 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0.3% 증가하는 데 그쳤습니다. 3분기까지 증가폭도 1% 수준입니다. 추석 연휴 닷새 동안 찾은 내국인은 17만399명으로 당초 예상했던 19만1,900명보다 2만1,501명 적었습니다. 이번 한글날 연휴에도 내국인 감소가 예상됩니다. 8일부터 11일까지 예상 입도객은 16만 5,000명으로 지난해보다 0.6% 늘지만, 내국인은 13만 5,100명으로 1.1% 감소합니다. 외국인은 2만9 ,900명으로 9.3% 증가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전체 관광객 숫자만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는 변화입니다. ■ 관광객 증가세 둔화에 씀씀이도 줄어 소비 지표는 더 뚜렷합니다. 최근 제주관광공사의 카드데이터 분석 결과 올해 2분기 내국인 관광소비는 5,187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7% 감소했습니다. 4월 2.7%, 5월 8.4%, 6월 12.0%씩 줄어 분기 후반으로 갈수록 감소폭도 커졌습니다. 연령별로는 20대 이하가 22.9% 감소했고, 30대 12.1%, 40대 10.6%, 50대 7.0% 줄었습니다. 60대 이상만 7.7% 증가했습니다. 상반기 전체 내국인 관광소비도 1조 91억 원으로 1.5% 감소했습니다. 같은 기간 외국인 관광소비는 3,050억 원으로 44.4% 증가했습니다. 외국인 소비가 크게 늘면서 전체 관광소비는 1조3,141억 원으로 6.4% 증가했습니다. 전체 관광소비는 늘었지만 내국인 시장만 떼어놓으면 흐름이 다릅니다. ■ 국내선 이용객 줄고 항공사도 좌석 축소 항공시장에서도 변화가 이어졌습니다. 지난해 같은 달과 비교한 제주 국내선 이용객은 올해 4월 0.6%, 5월 6.0%, 6월 9.9%, 7월 5.5% 감소했습니다. 공급 좌석도 같은 기간 줄었습니다. 올해 하계 운항기간 제주 국내선 공급 좌석은 1,715만 3,208석으로 지난해보다 65만 1,394석, 4% 감소했습니다. 하루 평균 3,102석이 적습니다. 대한항공은 17%, 아시아나항공은 26% 공급을 줄였습니다. 일부 저비용항공사가 좌석을 늘렸지만 전체 감소분을 메우지는 못했습니다. 항공사들의 공급 축소에는 국제선 확대와 항공기 운용 등 여러 요인이 작용합니다. 내국인 관광객 감소가 곧바로 좌석 감소를 불렀다고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 추석·개천절·한글날… 연휴에도 좌석 감소 추석 연휴 국내선 공급 좌석은 지난해보다 1만 5,449석, 개천절 연휴에는 1만 429석 줄었습니다. 한글날 연휴에는 16만 8,140석이 공급됩니다. 지난해 18만 40석보다 1만 1,900석, 6.6% 감소했습니다. 운항편도 917편에서 891편으로 줄었습니다. 국제선은 증가했습니다. 한글날 연휴 국제선 공급 좌석은 2만 6,418석으로 지난해보다 20.1% 늘고, 운항편도 120편에서 144편으로 증가합니다. 국제선 이용객은 2만 3,100명으로 지난해보다 56.8% 늘어날 것으로 예상됩니다. ■ 좌석 부족에 TF 띄웠지만… 공급만의 문제인가 제주도는 국내선 좌석 감소가 이어지자 지난 8월 ‘항공좌석 공급 안정화 전담팀(TF)’을 출범시켰습니다. 제주도와 도의회, 한국공항공사, 관광기관과 전문가, 8개 국적항공사 등이 참여해 증편과 특별기 운항, 대형기 투입 등을 논의하고 있습니다. 좌석 확보는 필요합니다. 제주도민에게 국내선은 병원 진료와 출장, 가족 방문 등을 위해 육지를 오가는 생활 교통수단입니다. 관광객에게도 항공편 감소는 원하는 시간대의 좌석 확보와 여행비용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도민 이동권을 위한 좌석 확보와 관광수요 회복은 구분해서 접근할 필요가 있습니다. ■ 제주 관광, 무엇을 걱정해야 하나 올해 들어 외국인 관광객과 소비는 큰 폭으로 늘고 있습니다. 반면 내국인 관광시장은 증가세가 둔화됐고 소비는 감소했습니다. 국내선 이용객과 공급 좌석도 같은 시기에 줄었습니다. 제주도가 항공사에 좌석 확대를 요구하는 것과 별개로 내국인 관광수요가 왜 약해지고 있는지 살펴봐야 하는 이유입니다. 업계 전문가들은 “관광객 감소와 국내선 공급 축소 가운데 어느 한쪽을 원인으로 단정하기는 어렵다”면서도 “좌석 부족만으로 최근 제주 관광시장의 흐름을 설명하기 어려워진 것은 분명하다”고 진단하고 있습니다. 이어 “좌석을 얼마나 확보할 것인지와 함께 내국인이 왜 제주를 덜 찾고, 찾아와서도 왜 덜 쓰는지까지 제대로 들여다봐야 할 시점”이라고 지적했습니다.
2026-10-07 제주방송 김지훈 (jhkim@jibs.co.kr)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