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을 붙이려니 자꾸 어긋난다… 보랏빛 물고기는 날고, 9m 들판엔 균류가 살아
물고기인데 날개가 있습니다. 새는 두 발로 걷고, 노루는 버섯을 먹습니다. 그 옆에는 가로 9m가 넘는 들판이 펼쳐집니다. 전기숙의 2026년작 〈나는나는 자라서 이상하고 멋진 소마가 될 거예요 8〉입니다. 세로 163㎝, 가로 912㎝. 한 자리에서 작품 전체와 세부를 함께 보기 어려운 크기입니다. 오는 24일 서울 인사동 제주갤러리에서 개막하는 기획전 《날개가 한 번 펄럭일 때》입니다. 전기숙과 정은혜 작가가 회화와 설치를 선보입니다. 전시는 10월 12일까지 이어집니다. 두 작가는 제주에서 자연과 생명을 오래 다뤄왔습니다. 전기숙은 말 한 마리에서 시작해 풀과 꽃, 곤충과 균류, 바람까지 시야를 넓혀갑니다. 정은혜의 그림에서는 익숙한 생명의 생김새가 뒤섞입니다. 같은 자연을 두고 전기숙은 주변의 관계를 살피고, 정은혜는 생명의 몸을 자유롭게 바꿉니다. ■ 말 한 마리를 보고 있었는데, 어느새 풀이 보였다 전기숙의 〈나는나는 자라서 이상하고 멋진 소마가 될 거예요 8〉은 그 규모부터 눈에 띕니다. 가로 912㎝의 작품을 한눈에 담기는 쉽지 않습니다. 전체를 보려 물러서면 작은 흔적이 잘 보이지 않고, 가까이 가면 다른 쪽이 시야에서 벗어납니다. 자리를 옮겨가며 봐야 합니다. 함께 출품하는 작품은 2026년작 〈Next body 1〉과 2024년작 〈달빛 아지랑이〉입니다. 긴 그림을 따라가면 말의 몸짓이 있고 풀과 꽃, 곤충과 균류가 있습니다. 바람과 파도도 그 안에 들어옵니다. 작가가 기억하는 섬의 밤 들판에서는 여러 존재가 동시에 움직입니다. 말이 움직이고 풀이 흔들립니다. 곤충이 지나가고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균류도 그 생태의 일부를 이룹니다. 전기숙은 2020년과 2021년 우도창작스튜디오에서 작업했습니다. 이후 2023년 《야행성 풍경》, 2024년 《주술사의 밤》, 지난해 《마주친, 얽혀있는 것들》을 선보였습니다. 작업의 흐름을 따라가면 그 시선이 어떻게 넓어졌는지 보입니다. 밤의 풍경을 들여다보던 눈이 그 안에서 마주친 존재들로 향했고, 최근에는 서로 얽혀 움직이는 관계가 더 큰 자리를 차지하게 됐습니다. 말 한 마리를 보던 눈에 그 옆의 풀이 들어오고, 다시 곤충과 균류가 들어왔습니다. ■ 플라스틱과 산호를 만지던 손, 물고기에 날개를 달았다 정은혜의 작품에서는 분위기가 확 달라집니다. 〈걷는 새〉, 〈물고기와 새〉, 〈버섯 먹는 노루〉. 모두 올해 그린 작품입니다. 둥근 눈과 선명한 색을 가진 생명들이 등장합니다. 물고기는 날개를 달고 새는 두 발로 걷습니다. 이런 형상은 정은혜가 어린 시절부터 그려온 지느러미를 펼쳐 하늘을 나는 물고기, 두 발로 걷는 새의 이미지와 이어집니다. 색을 쌓고 다시 지우며 만들어낸 생명들은 저마다 표정을 갖고 관람객을 바라봅니다. 지금의 작업을 거슬러 올라가면 제주 바다가 나옵니다. 정은혜는 모래사장에서 플라스틱 조각을 주웠습니다. 산호뜨개를 했고 습지와 바다 생명을 작업에 담았습니다. 2016년 〈습지와의 조율〉, 2018년 〈바다숲과 산호〉를 거쳐 〈플라스틱 만다라〉와 〈산호뜨개〉를 선보였습니다. 2024년에는 제주 신흥리 해녀탈의실에서 《보이지 않아도: 연결》을 열었습니다. 올해 〈플라스틱 만다라〉와 〈바다의 눈물〉, 〈Aqua Paradiso〉는 뉴델리에서 소개됐습니다. 미술치료사로 사람들과 만나온 경험도 작업에 스며 있습니다. 모래밭에서 플라스틱을 줍고 사라져가는 산호를 생각해온 시간이 그림 속 생명들의 모습으로 이어집니다. 물고기와 새가 한 몸에서 만나고 노루는 버섯을 먹습니다. 정은혜가 오래 다뤄온 생태 서사가 이번에는 조금 낯설고 유쾌한 얼굴을 얻었습니다. ■ 바라본 자연, 도시까지 들어오다 전기숙의 작품에서는 말 주변으로 풀과 꽃, 곤충과 균류가 들어옵니다. 정은혜는 물고기와 새의 몸을 섞고, 현실에 없는 생명을 만들어냅니다. 서로 다른 작업은 뜻밖의 장소에서 다시 만납니다. 아스팔트 틈에서 풀이 자라고, 빗물은 배수구를 따라 흐릅니다. 전시가 ‘정령이 있다면 어디에 있을까’라고 물으며 바라보는 곳도 깊은 숲이나 산이 아닌 이런 일상의 공간입니다. 건물과 도로 사이에서도 생명은 자라고 이동합니다. 전기숙은 제주에서 말과 풀, 곤충과 균류를 오래 지켜봤습니다. 정은혜는 해변에서 플라스틱을 줍고 산호와 바다를 작업해왔습니다. 이번에는 두 사람이 제주에서 포착한 생명들이 서울 인사동에서 만납니다. 전시장 밖 아스팔트 틈의 풀과 배수구도 그 시선 안에 들어옵니다. 관람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까지이며 입장은 오후 6시 30분 마감합니다. 매주 화요일 휴관하며 관람료는 무료입니다.
2026-09-21
제주방송 김지훈(jhkim@ji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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