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워둔 ‘X’에 책방이 들어오기로 했다… 매달 달라지는 고씨주택의 책장
한 달이 지나면 책방지기가 달라지고, 책장이 새로 짜이며, 같은 공간을 읽는 방식도 바뀝니다. 빼곡하게 책을 채우는 대신, 책을 고르는 사람을 매달 바꾸기로 한 오래된 집입니다. 27일 제주자치도 도시재생지원센터에 따르면 고씨주택 제주책방에서는 오는 12월까지 지역 독립서점이 차례로 참여하는 북큐레이션 프로그램 ‘X의 어떤 시선’이 운영됩니다. 프로그램 이름의 ‘X’는 정해진 답이 아닙니다. 다음 책방이 들어와 자신의 취향으로 채우는 여백입니다. ■ 같은 공간, 다른 책방 매달 참여 서점은 하나의 주제를 정하고, 그에 맞는 책을 직접 골라 고씨주택의 책장을 새롭게 구성합니다. 책을 진열하는 장소는 같지만, 책과 책을 연결하는 기준은 달라집니다. 한 채의 집 안에 여러 책방의 시선이 한 달씩 머무는 구조입니다. 지난 6월에는 이후북스가 ‘여행과 일상의 풍경’을 주제로 첫 큐레이션을 선보였습니다. 제주와 다른 도시의 풍경, 여행과 생활이 겹치는 순간을 담은 책들을 소개했습니다. 7월에는 비건책방이 ‘함께 읽는 식탁, 함께 먹는 제주’를 주제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제주의 음식과 비건, 음식여행을 다룬 책들을 통해 먹거리와 삶의 방식을 함께 들여다봅니다. 8월에는 제주의 오랜 지역서점인 우생당이 ‘여름나기’를 주제로 바통을 이어받습니다. 여행과 수영, 휴가 등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계절을 보내는 책들을 선보일 예정입니다. ■ 책의 수보다, 고르는 기준 책을 읽고 기록하며 자신의 취향을 드러내는 ‘텍스트힙(Text-Hip)’ 문화가 확산되면서 독서는 개인의 조용한 취미를 넘어 하나의 문화적 표현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무엇을 읽는지뿐 아니라 누가 어떤 이유로 그 책을 골랐는지까지 관심의 대상이 되면서 독립서점의 큐레이션도 다시 주목받고 있습니다. 관련 업계에서는 전국 독립서점이 2024년 기준 1,000곳에 육박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새로 문을 여는 서점의 증가 속도는 이전보다 둔화했습니다. 독립서점이라는 이름만으로 관심을 얻던 시기를 지나, 이제 각 책방은 무엇을 다르게 고르고 어떻게 독자에게 건넬지를 보여줘야 하는 단계에 들어섰습니다. 온라인 서점보다 많은 책을 갖추거나 가격으로 경쟁하기 어려운 작은 책방에서 가장 또렷한 자산은 책방지기의 안목입니다. ‘X의 어떤 시선’은 그 안목을 고씨주택 안으로 한 달씩 옮겨옵니다. 방문객은 제주 곳곳의 독립서점이 가진 개성을 한자리에서 차례로 만나고, 참여 서점은 자신의 선택을 새로운 독자에게 보여줄 수 있습니다. ■ 오래된 집을 계속 새롭게 쓰는 법 고씨주택은 도시재생사업을 통해 원도심 문화 쉼터이자 시민 교류 공간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문화공간은 문을 여는 순간보다, 다시 찾을 이유를 얼마나 오래 만들어내느냐에서 성패가 갈립니다. 고씨주택은 하나의 전시를 오래 붙들기보다 책장을 매달 다른 서점에 내어주는 쪽을 택했습니다. 공간의 성격을 하나로 굳히지 않고, 새로운 취향이 머물 자리를 계속 남겨두는 방식입니다. 책을 소개하는 데서 끝나지 않고, 지역 독립서점과 시민이 만나는 통로를 넓힙니다. 고씨주택은 7월과 8월 주말 오후 8시까지 연장 운영합니다.
2026-07-27
제주방송 김지훈(jhkim@ji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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