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증원, 숫자가 아니라 배치 규칙을 바꿨다
정부가 2027학년도부터 5년간 의과대학 정원을 단계적으로 늘리기로 했습니다. 겉으로 보이는 변화는 490명, 613명, 813명이라는 숫자입니다. 그러나 이번 결정의 중심에는 증원 자체보다 더 큰 전환이 있습니다. 2024학년도 정원 3,058명을 초과하는 인원을 전부 지역의사로 선발해, 인력 확충과 동시에 배치 경로까지 제도화했습니다. 의사 인력 정책의 초점이 “얼마나 더 뽑을 것인가”에서 “어디에서 일하게 할 것인가”로 이동한 셈입니다. ■ 490명으로 물꼬 열고... 613명·813명으로 올라가는 단계 설계 보건복지부는 10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7차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에서 서울을 제외한 32개 의과대학을 대상으로 2027년부터 2031년까지 의사 인력 양성 규모를 연평균 668명 늘리기로 결정했다고 밝혔습니다. 이 결정에 따라 의대 정원은 2027학년도 3,548명, 2028·2029학년도 3,671명으로 전망됩니다. 2030년부터 공공의대와 신설 지역의대가 각각 100명씩 신입생을 모집하면 2030년 이후 정원 규모는 3,871명 수준으로 커진다는 구상입니다. 정부는 첫해 증원 규모를 목표치의 80% 수준으로 반영한다고 설명했습니다. 교육 현장의 부담을 이유로 들었지만, 현실적으로는 의정 갈등 이후 정책의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해 속도를 조절하면서도 방향을 고정한 설계로 읽힙니다. 증원 속도는 조절했지만, 이동 규칙은 되돌리기 어렵게 묶었습니다. ■ 증원분 전원이 지역의사전형으로 선발... 10년 복무 의무 이번 결정의 가장 큰 변화는 선발 방식입니다. 2024학년도 정원 3,058명을 넘는 증원분은 모두 지역의사로 뽑습니다. 선발은 서울을 제외한 32개 의대에서 이뤄지며, 지역의사제는 대전·충남, 충북, 광주, 전북, 대구·경북, 부산·울산·경남, 강원, 제주, 경기·인천 등 9개 권역의 의대 소재지를 기준으로 적용됩니다. 지역의사전형으로 입학한 학생은 등록금과 교재비, 실습비, 기숙사비 또는 이에 준하는 생활비 지원을 받는 대신, 졸업 후 지역 공공의료기관 등에서 10년간 복무해야 합니다. 정부는 지역의사지원센터를 설립해 학업 지원과 진로 탐색, 졸업 후 경력개발까지 원스톱으로 지원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지원과 의무가 한 세트로 결박되는 구조입니다. 이는 의대 증원이라기보다 지역 근무를 전제로 한 인력 배치 정책에 가깝습니다. ■ 교육 여건 개선을 말했지만, 성패는 현장의 수련 수용력 좌우 정부는 의과대학 교육 여건 개선 방향도 함께 제시했습니다. 강의실과 실험·실습실 확충, 단계별 실습 기자재 확보, 교원 확보 계획 점검을 통해 교육의 질을 보장하겠다는 입장입니다. 대학병원에는 임상교육훈련센터 건립과 연구개발 지원을 확대해 교육·연구·임상의 선순환 구조를 구축하겠다는 구상도 담겼습니다. 다만 정책의 성적표는 강의실 면적이 아니라 수련의 자리에서 나올 가능성이 큽니다. 지역 상급종합병원 중심의 수련 프로그램 강화, 네트워크 협력수련 확대, 수련환경 평가 내실화를 제시했지만, 실제로 지역에서 필수의료를 맡을 수 있는 수련 경험과 지도 인력이 얼마나 확보되는지가 관건으로 보고 있습니다. 배출된 인력이 지역에 남을지 떠날지의 갈림길은 졸업 직후가 아니라 수련 과정에서 열릴 수 있습니다. ■ 제주는 대상 권역으로 확정, 정원 숫자는 아직 확정 전 제주는 이번 정책의 적용 권역으로 명시돼 있습니다. 지역의사제 권역에 제주가 포함되고, 비수도권 도 지역 중진료권 38개 가운데 제주 몫이 2개로 제시돼 있습니다. 제주는 제도 설계의 외곽이 아니라, 애초부터 포함된 전제 위에서 움직이게 됩니다. 실제로 제주에서 몇 명이 늘어나는지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습니다. 대학별 정원은 교육부 배정위원회 심의와 정원 조정, 이의신청 절차를 거쳐 4월 중 최종 확정될 예정입니다. 현 단계에서 확정적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은 적용 대상이라는 점과 증원분 전원이 지역의사전형이라는 점, 그리고 졸업 후 10년 복무 의무가 붙는다는 사실입니다. ■ 결론은 증원 숫자가 아니라 정주 가능성 정부는 이번 결정을 “지역·필수·공공의료 개혁의 출발점”으로 규정했습니다.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은 “의사인력 증원 결정은 우리 보건의료가 피할 수 없는 위기 상황에 봉착했다는 공통된 인식 아래 협의와 소통으로 이뤄낸 결과물”이라며, “교육부 등 관계 부처와 긴밀히 협조해 의사인력 양성과 관련 대책을 충실히 이행해 나가겠다”라고 밝혔습니다. 이번 정책은 의사 수를 늘리되, 그 증가분의 이동을 제도로 관리하는 방식입니다. 관건은 정책이 약속한 전폭 지원이 현장에서 어느 수준까지 체감되느냐입니다. 지역에서의 주거·경력·교육 지원이 실질화되지 않을 경우, 의무 복무는 배치로는 작동하더라도 정주로 이어지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지역 의료계의 한 관계자는 “지역의사제가 제주의 공공의료 공백을 메우는 장치가 될지, 아니면 의무 기간을 채우고 떠나는 통로가 될지는 정원표가 아니라 현장의 근무 조건과 수련 설계에 달려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2026-02-10
제주방송 김지훈 (jhkim@ji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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