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가 있어도 못 간다, 무슨 이런”… 제주 하늘길, 지금 무너지는 건 좌석보다 ‘선택권’
예약창에는 분명 좌석이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제주행을 포기합니다. 제주 항공권 시장에서는 이런 낯선 장면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평일 낮 시간대 항공권 검색은 됩니다. 하지만 금요일 퇴근 이후 출발편, 토요일 오전편, 일요일 복귀편부터 분위기가 급격히 달라집니다. 원하는 시간은 속속 빠지고, 남은 좌석은 새벽이나 심야편으로 밀립니다. 가족 단위 일정은 더 빨리 꼬입니다. 한두 명 개인이 아니라, 소규모 그룹이나 단체 예약은 사실상 엄두를 내기 어렵다는 말까지 나옵니다. “표가 없다”는 말과는 조금 다릅니다. 지금 제주 하늘길에서는 좌석 자체보다, 사람들이 실제 선택할 수 있는 시간과 가격이 먼저 사라지고 있습니다. ■ “편수 유지됐다”는데, 더 나빠진 체감도 26일 제주자치도관광협회에 따르면 올해 하계 스케줄 기준 제주공항 하루 평균 공급 좌석은 지난해 4만 2,421석에서 올해 4만 1,412석으로 1,009석 줄었습니다. 하루 기준 감소 폭 자체는 크지 않아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항공업계 분위기는 다릅니다.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기업결합 이후 제주 노선 일부 슬롯(Slot·시간당 항공기 운항횟수)이 저비용항공사(LCC) 중심으로 재배치되면서 대형기 비중이 줄었기 때문입니다. 같은 항공기 1편이라도 실제 공급 좌석 수가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제는 운항 횟수보다 “한 번에 몇 명을 실어 나를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해졌습니다. 제주 노선에서는 이 차이가 성수기 예약 상황으로 바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연휴라도 시간을 조금 조정하면 어떻게든 좌석을 맞출 수 있었다는 반응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원하는 시간대 자체가 훨씬 빨리 마감된다는 얘기가 먼저 나옵니다. 특히 가족 단위 수요는 부담이 더 큽니다. 1명 좌석은 어쩌다 잡을지 몰라도, 3~4명이 함께 움직일 수 있는 일정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검색은 되는데 예약 단계에서 포기하는 경우가 반복됩니다. 그래서 현장에서는 “좌석이 있냐 없냐”보다 “실제로 갈 수 있는 시간대 표가 남았냐”를 먼저 따집니다. 국적사 한 관계자는 “예전에는 성수기에도 시간대만 조금 조정하면 좌석을 맞출 수 있었는데 지금은 인기 시간대 자체가 훨씬 빨리 마감된다”며 “특히 가족 단위나 단체 이동은 좌석을 붙여 확보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 제주 검색하다 결국 ‘고재팬’... “후쿠오카 넘어가요” 제주 항공권을 검색하다가 일본 항공권으로 화면을 넘기는 경우도 많아졌습니다. 여행업계에서는 후쿠오카·오키나와·타이베이 같은 단거리 해외 노선을 제주와 함께 비교하는 수요가 눈에 띄게 늘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제주 관광의 경쟁 상대도 달라졌습니다. 강원도나 부산 같은 국내 여행지가 아니라, 일본·대만 단거리 노선까지 동시에 비교 대상에 오르고 있습니다. 항공권 가격이 올라가고 원하는 시간대 좌석까지 줄어들자 소비자들은 해외 일정까지 한꺼번에 놓고 따지기 시작했습니다. 가까운 해외 노선은 빠르게 살아나고 있습니다. 반면 국내 여행은 항공권 가격과 이동 부담 변화 영향을 더 크게 받고 있습니다. “제주 갈 돈이면 일본 간다”는 말이 다시 나오는 이유입니다. 더 뼈아픈 건 가격보다 그 조건입니다. “비슷한 돈이면 차라리 해외 간다” 수준이 아니라, “굳이 이 일정과 비용을 감수하면서?”라는 분위기까지 번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여행업계 한 관계자는 “이제는 제주 항공권을 보다가 바로 일본 노선까지 같이 비교하는 경우가 많다”며 “특히 성수기에는 시간대와 가격 조건이 안 맞으면 다른 목적지로 바로 넘어가는 경우도 확실히 늘었다”고 전했습니다. ■ 배까지 차기 시작했다 항공권 부담은 이동 방식까지 바꾸고 있습니다. 제주도관광협회에 따르면 석가탄신일 연휴 기간 제주행 선박 예약률도 빠르게 올라간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일부 노선은 예약률이 90% 수준까지 오른 것으로 파악됐을 정도입니다. 항공권 가격 부담과 원하는 시간대 좌석 확보 어려움이 겹치면서 제주행 배편 예약까지 함께 늘어나는 흐름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제주 수요 자체가 꺾인 건 아닙니다. 문제는 그 이동 과정이었습니다. 예전에는 “언제 갈까”를 먼저 정했다면, 이제는 “어떻게 가야 덜 부담될까”를 먼저 따지는 분위기가 강해졌습니다. 제주 하늘길에서는 예전 좌석난과 다른 흐름이 확인되고 있습니다. 좋은 시간대가 먼저 빠지고 가족 좌석이 먼저 닫히고, 가격 부담은 빠르게 올라갑니다. 일정 자체를 다시 짜거나 여행지를 바꾸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한 여행업계 관계자는 “예전에는 ‘제주’를 먼저 예약하고 숙소와 일정을 맞췄는데 이제는 항공권 단계에서부터 해외와 비교하는 경우가 많다”며 “특히 가족 단위는 항공권 부담 때문에 제주 대신 다른 여행지로 방향을 돌리는 사례도 체감된다”고 말했습니다. 이 같은 분위기 속에 도관광협회는 항공 좌석 부족 해소와 접근성 개선을 요구하는 서명운동까지 시작했습니다. 관광업계가 공개 서명운동에 나설 정도로 위기감을 드러내고 있지만, 현장에서는 여전히 “운항 편수는 유지되고 있다”는 정책 설명만 되풀이된다는 반응도 나옵니다. 이용객들이 체감하는 건 실감 없는 숫자가 아니라 시간입니다. 원하는 시간대 좌석은 먼저 닫히고, 가격 부담은 가중되고 있습니다. 비행기는 계속 뜹니다. 그런데 목적지 제주는, 점점 좁아지고 더 멀어지고 있습니다.
2026-05-26
제주방송 김지훈(jhkim@ji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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