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관광개발 선구자 故 김평진 박사
농업·관광·교육 등 지역 발전 기여
애향운동장·월드컵경기장 건립 도와
감귤 묘목 제주에 보급...제주개발기금 기부
어릴 적 일본으로 건너가 사업을 일군 후 고향인 제주도의 발전을 위해 한 평생 헌신한 재외재일동포 고(故) 김평진 박사(1926~2007)가 우리나라 첫 '이달의 재외동포'로 선정됐습니다.
오늘(17일) 재외동포청에 따르면, 이번 달부터 대한민국 발전과 거주국 내 한인 위상 제고에 기여한 동포를 발굴해 '이달의 재외동포'로 선정하기로 한 가운데, 첫 '이달의 재외동포'로 재일제주인 김평진 박사를 선정했습니다.
제주도 제주시 회천동에서 태어난 김평진은 1940년 15세의 나이에 일본으로 건너가 친형의 사업을 도우며 일본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20세가 되면서 그는 형의 곁을 떠나 독립적인 삶을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적은 자본으로 거리에서 잡화를 판매하는 행상을 시작했습니다. 이후 자전거와 리어카를 이용하면서 점차 장사 규모를 키워 나갔습니다.
1945년 전쟁이 끝난 후에는 오사카의 비누 공장에서 일하다가 직접 비누를 제조해 판매하는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당시 일본은 생활필수품이 부족한 시기였기 때문에 그의 비누는 큰 인기를 끌었고, 사업이 번창하면서 점차 안정적인 생활 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이후에는 음식업으로 눈을 돌려 라면 가게를 운영하기 시작했습니다. 작은 공간에서 시작한 그의 가게는 빠르게 성장했고, 초밥집을 인수하며 사업을 확장했습니다. 다방을 개점하는 등 사업을 다각화하면서 점포를 늘려 나갔습니다.
특히, 이 시기 그는 일본에서 큰 성장 가능성이 있는 파친코 산업에 주목하게 됐습니다. 1959년 김해철공소 등을 직접 경영하며 사업 확장을 본격화했습니다. 이후 1967년에는 도쿄도 타이토구 우에노에서 김해상사(주)를 설립해 파친코, 레스토랑 등의 사업을 운영하며 큰 성공을 일궈냈습니다.
김평진은 일본에서 기업가로서 성공을 거둔 후, 대한민국, 특히 제주도의 발전을 위해 다양한 분야에서 기여했습니다. 1982년에는 재일한국인상공연합회 회장을 맡아 한국과 일본 간 경제 협력 관계를 강화하는 데 큰 기여를 했습니다.
■ 제주 첫 관광호텔 건립
김평진은 1960년대 초반, 제주도를 방문한 후 관광 산업의 발전 가능성을 인식했습니다. 당시 제주도는 천혜의 자연환경을 갖고 있었지만, 외국인이나 관광객이 머물만한 현대적인 숙박시설이 전무한 상태였습니다.
이에 그는 1963년 사재를 투입해 제주 최초의 현대식 관광호텔인 '제주관광호텔'(현재 하니크라운호텔)을 건립했습니다. 이 호텔은 당시 건평 2,890㎡ 규모로 최신 시설을 갖췄으며, 제주도의 관광 인프라를 구축하는 출발점이 됐습니다.
이어 1964년에는 서귀포 허니문하우스(옛 파라다이스호텔)와 서귀포관광호텔을 차례로 건립했습니다. 특히, 허니문하우스는 제주도를 신혼여행의 명소로 자리 잡게 만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 경영난 여학교 인수해 정상화
김평진은 또 1966년 경영난으로 폐교 위기에 처해 있던 제주여자학원(제주여자고등학교, 제주여자중학교)을 인수했습니다. 당시 제주여자학원은 재정난으로 인해 정상적인 운영이 어려운 상태였습니다.
그는 학교를 인수한 후 학업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막대한 사재를 투자했습니다. 학교 부지를 제주시 아라동으로 확장 이전해 당시 제주도에서 가장 현대적인 시설을 갖춘 교육기관으로 만들었습니다.
또한, 교직원들에게 경제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으며,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여 보다 많은 여성들이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이러한 노력으로 제주여자학원은 제주 지역 여성 교육의 요람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지난 1981년에는 재일한국교육재단 고문으로 활동하며 재일동포 2세들이 모국을 방문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역사와 국가관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습니다.
■ 제주 농업·체육 등 발전에 이바지
그는 1963년 제주도의 경제 발전을 위해 제주개발 기금 4,500만 엔을 기부하고, 감귤 산업 육성을 위해 감귤 묘목을 제주도에 보급하기로 했습니다. 이는 제주도의 감귤 산업 발전에 기여해 이후 제주 감귤이 한국을 대표하는 농산물로 성장하는 데 역할을 했습니다.
1984년 제주에서 처음으로 전국소년체육대회가 열릴 때, 그는 2천만 원의 기부금을 쾌척해 제주애향운동장 건립을 지원했습니다. 또한, 2002년 대한민국이 한·일 월드컵 개최를 앞두고 300만 원의 건립 기금을 기부하기도 했습니다.
우리 정부는 모국 발전에 기여한 그의 공로를 높이 평가해 1981년 국민훈장 모란장, 1987년 국민훈장 무궁화장 등을 수여했습니다.
이상덕 재외동포청장은 "재외동포는 일제강점기 해외에서 독립운동뿐만 아니라 해방 후 조국 근대화, IMF 외환위기 극복 등에 있어 막중한 역할을 했다"며, "이달의 재외동포 선정을 통해 그들의 공로를 널리 알려 모국과 동포사회 간 유대감을 높이고, 재외동포에 대한 긍정적 인식을 확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습니다.
JIBS 제주방송 신동원 (dongwon@jibs.co.kr) 기자
<저작권자 © JIBS 제주방송,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농업·관광·교육 등 지역 발전 기여
애향운동장·월드컵경기장 건립 도와
감귤 묘목 제주에 보급...제주개발기금 기부

고 김평진 지난 1963년 제주관광의 초석이 됐다는 평가를 받는 제주관광호텔을 건립했다. (현 하니크라운광광호텔) 개관 (재외동포청 제공)
어릴 적 일본으로 건너가 사업을 일군 후 고향인 제주도의 발전을 위해 한 평생 헌신한 재외재일동포 고(故) 김평진 박사(1926~2007)가 우리나라 첫 '이달의 재외동포'로 선정됐습니다.
오늘(17일) 재외동포청에 따르면, 이번 달부터 대한민국 발전과 거주국 내 한인 위상 제고에 기여한 동포를 발굴해 '이달의 재외동포'로 선정하기로 한 가운데, 첫 '이달의 재외동포'로 재일제주인 김평진 박사를 선정했습니다.
제주도 제주시 회천동에서 태어난 김평진은 1940년 15세의 나이에 일본으로 건너가 친형의 사업을 도우며 일본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고 김평진 박사.
그는 20세가 되면서 그는 형의 곁을 떠나 독립적인 삶을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적은 자본으로 거리에서 잡화를 판매하는 행상을 시작했습니다. 이후 자전거와 리어카를 이용하면서 점차 장사 규모를 키워 나갔습니다.
1945년 전쟁이 끝난 후에는 오사카의 비누 공장에서 일하다가 직접 비누를 제조해 판매하는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당시 일본은 생활필수품이 부족한 시기였기 때문에 그의 비누는 큰 인기를 끌었고, 사업이 번창하면서 점차 안정적인 생활 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이후에는 음식업으로 눈을 돌려 라면 가게를 운영하기 시작했습니다. 작은 공간에서 시작한 그의 가게는 빠르게 성장했고, 초밥집을 인수하며 사업을 확장했습니다. 다방을 개점하는 등 사업을 다각화하면서 점포를 늘려 나갔습니다.
특히, 이 시기 그는 일본에서 큰 성장 가능성이 있는 파친코 산업에 주목하게 됐습니다. 1959년 김해철공소 등을 직접 경영하며 사업 확장을 본격화했습니다. 이후 1967년에는 도쿄도 타이토구 우에노에서 김해상사(주)를 설립해 파친코, 레스토랑 등의 사업을 운영하며 큰 성공을 일궈냈습니다.
김평진은 일본에서 기업가로서 성공을 거둔 후, 대한민국, 특히 제주도의 발전을 위해 다양한 분야에서 기여했습니다. 1982년에는 재일한국인상공연합회 회장을 맡아 한국과 일본 간 경제 협력 관계를 강화하는 데 큰 기여를 했습니다.
■ 제주 첫 관광호텔 건립

서귀포관광호텔 건립 (재외동포청 제공)
김평진은 1960년대 초반, 제주도를 방문한 후 관광 산업의 발전 가능성을 인식했습니다. 당시 제주도는 천혜의 자연환경을 갖고 있었지만, 외국인이나 관광객이 머물만한 현대적인 숙박시설이 전무한 상태였습니다.
이에 그는 1963년 사재를 투입해 제주 최초의 현대식 관광호텔인 '제주관광호텔'(현재 하니크라운호텔)을 건립했습니다. 이 호텔은 당시 건평 2,890㎡ 규모로 최신 시설을 갖췄으며, 제주도의 관광 인프라를 구축하는 출발점이 됐습니다.
이어 1964년에는 서귀포 허니문하우스(옛 파라다이스호텔)와 서귀포관광호텔을 차례로 건립했습니다. 특히, 허니문하우스는 제주도를 신혼여행의 명소로 자리 잡게 만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 경영난 여학교 인수해 정상화
제주여자중·고등학교 (재외동포청 제공)
김평진은 또 1966년 경영난으로 폐교 위기에 처해 있던 제주여자학원(제주여자고등학교, 제주여자중학교)을 인수했습니다. 당시 제주여자학원은 재정난으로 인해 정상적인 운영이 어려운 상태였습니다.
그는 학교를 인수한 후 학업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막대한 사재를 투자했습니다. 학교 부지를 제주시 아라동으로 확장 이전해 당시 제주도에서 가장 현대적인 시설을 갖춘 교육기관으로 만들었습니다.
또한, 교직원들에게 경제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으며,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여 보다 많은 여성들이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이러한 노력으로 제주여자학원은 제주 지역 여성 교육의 요람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지난 1981년에는 재일한국교육재단 고문으로 활동하며 재일동포 2세들이 모국을 방문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역사와 국가관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습니다.
■ 제주 농업·체육 등 발전에 이바지
그는 1963년 제주도의 경제 발전을 위해 제주개발 기금 4,500만 엔을 기부하고, 감귤 산업 육성을 위해 감귤 묘목을 제주도에 보급하기로 했습니다. 이는 제주도의 감귤 산업 발전에 기여해 이후 제주 감귤이 한국을 대표하는 농산물로 성장하는 데 역할을 했습니다.
1984년 제주에서 처음으로 전국소년체육대회가 열릴 때, 그는 2천만 원의 기부금을 쾌척해 제주애향운동장 건립을 지원했습니다. 또한, 2002년 대한민국이 한·일 월드컵 개최를 앞두고 300만 원의 건립 기금을 기부하기도 했습니다.
우리 정부는 모국 발전에 기여한 그의 공로를 높이 평가해 1981년 국민훈장 모란장, 1987년 국민훈장 무궁화장 등을 수여했습니다.
이상덕 재외동포청장은 "재외동포는 일제강점기 해외에서 독립운동뿐만 아니라 해방 후 조국 근대화, IMF 외환위기 극복 등에 있어 막중한 역할을 했다"며, "이달의 재외동포 선정을 통해 그들의 공로를 널리 알려 모국과 동포사회 간 유대감을 높이고, 재외동포에 대한 긍정적 인식을 확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습니다.
JIBS 제주방송 신동원 (dongwon@jibs.co.kr) 기자
<저작권자 © JIBS 제주방송,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