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제주 4·3 당시 중산간과 한라산 일대에 숨어있던 피난민들은 하산하면 살려주겠다는 선무공작에 속아 대부분 붙잡혀 다른 지역 형무소로 이송됩니다.
4·3 행방불명인 4천여명 가운데 절반 이상은 제주가 아닌 다른 지역에서 행방불명됐는데요.
대구 형무소로 이송된 4·3 수형인들 역시 참혹한 학살의 대상이 됐습니다.
김동은 기잡니다.
(리포트)
경북 경산시의 한 언덕.
굳게 닫혀 있던 철문이 열리자,
길게 뻗은 수평 갱도가 나타납니다.
높이가 1미터 정도에 불과한 갱도를 따라 80미터 가량을 들어가 봤습니다.
갱도 끝은 무너져 더 이상 진입 조차 할 수 없습니다.
갱도 옆 물로 가득찬 웅덩이.
지난 2007년부터 2년간 웅덩이에서 유해 4백여구를 포함해 일대에서 모두 5백구가 넘는 유해가 발굴됐습니다.
일제가 남기고 간 이 코발트 광산에서는 한국전쟁 초기인 지난 1950년 7월부터 2개월동안 3천 5백명이 넘는 민간인들이 학살됐습니다.
150미터 가량되는 수직 갱도 꼭대기에서 총을 쏴 추락시켰는데,
이 거대한 갱도가 시신으로 가득 찼다고 유족들은 말합니다.
나정태 / 경산코발트광산 민간인 희생자 유족회 이사장
"8명씩 묶어서 양쪽 가장자리에 있는 사람에게만 총을 쏘는 거라 (같이 떨어지게..) 나중에는 실탄도 없으니까 빨갱이 쏘는데는 총알도 아깝다고.."
이곳 희생자 중에는 제주 4·3 수형인도 포함돼 있었지만, 아직 몇 명인지 조차 정확히 확인되지 않고 있습니다.
김동은 기자
"이곳에 쌓인 포대 5천여개에는 흙과 함께 유해들이 뒤섞여 있는 상황입니다.
이곳에 대한 추가 발굴이 시급하지만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최근 14년만에 유해 발굴 작업이 재개됐지만,
우선 포대를 꺼내는 작업만 진행할 뿐, 추가 발굴은 아직 계획도 잡지 못한 상탭니다.
정시종(74세) / 코발트광산학살피해자 유족
"정리가 돼서 그래도 양지바른 곳에 모셔지는 것을 보고 우리가 죽어야 될 것 아닙니까..."
산 속에 있던 골짜기는 지금은 거대한 댐이 들어섰습니다.
이 가창골 일대에선 한국전쟁 직후 대구형무소에 수감됐던 4·3 수형인과 10월 항쟁 참여자 등 수천명이 희생됐습니다.
당시 대구형무소에는 4·3 수형인 4백에서 5백명 가량이 수감돼 있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한국전쟁 직후 군경에 인계된 대구형무소 수형인 1천4백2명 중 제주 출신 은 140여명에서 160여명 정도로 파악되지만 여전히 행방을 알 수 없습니다.
양동윤 / 제주 4·3 도민연대 대표
"도대체 500여 명 이상이 수감됐던 대구형무소에서 수감된 사람들이 어디서 죽었는지는 밝혀져야 할 거 아니에요. 죽음의 경과, 진위만이라도 정부는 알려줘야죠"
나정태 / 경산코발트광산 민간인 희생자 유족회 이사장
"해줄수 있는 것은 국가가 해줘야 되고...지금은 누가 잘잘못을 따지기에도 74년이 흘렸잖아요..."
제주 4·3 행방불명인 4천여 명 가운데, 전국 곳곳의 형무소로 끌려가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한 희생자는 절반이 넘습니다.
JIBS 김동은입니다.
영상취재 윤인수
JIBS 제주방송 김동은(kdeun2000@hanmail.net) 윤인수(kyuros@jibs.co.kr)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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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4·3 당시 중산간과 한라산 일대에 숨어있던 피난민들은 하산하면 살려주겠다는 선무공작에 속아 대부분 붙잡혀 다른 지역 형무소로 이송됩니다.
4·3 행방불명인 4천여명 가운데 절반 이상은 제주가 아닌 다른 지역에서 행방불명됐는데요.
대구 형무소로 이송된 4·3 수형인들 역시 참혹한 학살의 대상이 됐습니다.
김동은 기잡니다.
(리포트)
경북 경산시의 한 언덕.
굳게 닫혀 있던 철문이 열리자,
길게 뻗은 수평 갱도가 나타납니다.
높이가 1미터 정도에 불과한 갱도를 따라 80미터 가량을 들어가 봤습니다.
갱도 끝은 무너져 더 이상 진입 조차 할 수 없습니다.
갱도 옆 물로 가득찬 웅덩이.
지난 2007년부터 2년간 웅덩이에서 유해 4백여구를 포함해 일대에서 모두 5백구가 넘는 유해가 발굴됐습니다.
일제가 남기고 간 이 코발트 광산에서는 한국전쟁 초기인 지난 1950년 7월부터 2개월동안 3천 5백명이 넘는 민간인들이 학살됐습니다.
150미터 가량되는 수직 갱도 꼭대기에서 총을 쏴 추락시켰는데,
이 거대한 갱도가 시신으로 가득 찼다고 유족들은 말합니다.
나정태 / 경산코발트광산 민간인 희생자 유족회 이사장
"8명씩 묶어서 양쪽 가장자리에 있는 사람에게만 총을 쏘는 거라 (같이 떨어지게..) 나중에는 실탄도 없으니까 빨갱이 쏘는데는 총알도 아깝다고.."
이곳 희생자 중에는 제주 4·3 수형인도 포함돼 있었지만, 아직 몇 명인지 조차 정확히 확인되지 않고 있습니다.
김동은 기자
"이곳에 쌓인 포대 5천여개에는 흙과 함께 유해들이 뒤섞여 있는 상황입니다.
이곳에 대한 추가 발굴이 시급하지만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최근 14년만에 유해 발굴 작업이 재개됐지만,
우선 포대를 꺼내는 작업만 진행할 뿐, 추가 발굴은 아직 계획도 잡지 못한 상탭니다.
정시종(74세) / 코발트광산학살피해자 유족
"정리가 돼서 그래도 양지바른 곳에 모셔지는 것을 보고 우리가 죽어야 될 것 아닙니까..."
산 속에 있던 골짜기는 지금은 거대한 댐이 들어섰습니다.
이 가창골 일대에선 한국전쟁 직후 대구형무소에 수감됐던 4·3 수형인과 10월 항쟁 참여자 등 수천명이 희생됐습니다.
당시 대구형무소에는 4·3 수형인 4백에서 5백명 가량이 수감돼 있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한국전쟁 직후 군경에 인계된 대구형무소 수형인 1천4백2명 중 제주 출신 은 140여명에서 160여명 정도로 파악되지만 여전히 행방을 알 수 없습니다.
양동윤 / 제주 4·3 도민연대 대표
"도대체 500여 명 이상이 수감됐던 대구형무소에서 수감된 사람들이 어디서 죽었는지는 밝혀져야 할 거 아니에요. 죽음의 경과, 진위만이라도 정부는 알려줘야죠"
나정태 / 경산코발트광산 민간인 희생자 유족회 이사장
"해줄수 있는 것은 국가가 해줘야 되고...지금은 누가 잘잘못을 따지기에도 74년이 흘렸잖아요..."
제주 4·3 행방불명인 4천여 명 가운데, 전국 곳곳의 형무소로 끌려가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한 희생자는 절반이 넘습니다.
JIBS 김동은입니다.
영상취재 윤인수
JIBS 제주방송 김동은(kdeun2000@hanmail.net) 윤인수(kyuros@jibs.co.kr)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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