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주Zoom'은 제주에 대해 어디선가 들어본 적이 있지만, 알고 있다고 하기엔 애매한 '그 무언가'를 풀어주는 코너입니다. 박식한 수준까진 아니지만 애매한 '그 무언가'를 조금이나마 긁어줄 수 있도록 준비했으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제주도는 돌과 여자, 바람 세 가지가 많은 섬이라고 해서 예로부터 삼다도(三多島)라고 불렸다는 이야기, 한 번쯤 들어보셨을 텐데요.
여자가 많은 섬이라는 타이틀은 이미 2010년대 초반에 남성 인구가 여성 인구를 추월하며 옛이야기가 됐습니다.
돌이 많다는 특징 역시 돌담이 자취를 감추고 돌로 만든 생활용품도 더 이상 사용하지 않게 되면서 먼 이야기처럼 느껴지게 됐습니다.
그렇다면 이 가운데 하나 남은 것이 바람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요.
눈에 보이지 않는 바람이 얼마나 많이 불길래 이런 수식어가 생겨난 것인지, 이 말처럼 제주에 실제로 바람이 많이 부는지에 관해 한번 알아봤습니다.

■ 제주도, 진짜 바람이 강할까?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그렇다'입니다.
국내 기후통계를 낼 때 각 지역의 대표성을 띠는 지점을 기준으로 자료를 작성하는데요.
이 지점들이 전국적으로 62곳에 산재해 있습니다.
제주에서도 제주(제주 북쪽), 성산(동쪽), 고산(서쪽), 서귀포(남쪽)이 여기에 포함됩니다.
이 62개 지점들의 평년(1991~2020년) 연평균 풍속은 초당 2.0m입니다.
즉, 우리나라의 평균적인 바람의 속도(세기)가 이 정도라는 말인데요.
제주도의 평년 연평균 풍속은 초당 3.9m로 전국 평균의 2배에 달한다고 합니다.
이밖에 주요 도시들은 서울(2.3m/s), 인천(2.9m/s), 대전(1.7m/s), 천안(1.7m/s), 청주(1.6m/s), 광주(2.0m/s), 목포(3.7m/s), 부산(3.5m/s), 대구(2.2m/s), 춘천(1.2m/s), 강릉(2.6m/s), 울산(2.1m/s) 등의 분포를 보였습니다.
특히, 제주도 고산은 전국에서 가장 바람이 강한 지역으로 나타났습니다.
무려 연평균 풍속 초당 6.8m의 바람이 부는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주요 도시를 포함해 30년 연평균 기후값을 집계한 전국 219개 지점으로 영역을 확장해도 제주도 고산만큼 바람이 부는 곳은 없었습니다.
두 번째로 바람이 강한 곳은 흑산도로 연평균 풍속이 초당 5.4m에 달했는데, 이 지점은 섬 지역이라는 특수성을 갖고 있어 주요지점 62곳에는 포함되지 않은 곳입니다.
연평균 풍속의 분포를 알 수 있는 기후도를 보면 더욱 파악하기 쉬운데요.
기후도를 보면, 제주가 전국에서 비교해 강한 바람이 불고 있고, 특히 제주 서쪽이 유독 강한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림]기상청 기후평년값. 전국 평년(1991~2020) 평균풍속 현황.(기상청 제공)
한편, 일제시기 제주에 머물며 제주의 자연환경은 물론 문화풍습 등 다방면으로 제주에 대해 연구했던 일본인 인류학자 이즈미 세이치는 그의 저서 『제주도』(김종철 譯, 2014)를 통해 제주의 풍속이 전국 제일이라고 언급한 바 있습니다.
이즈미 세이치는 1924년~1935년 사이의 기상관측 자료를 토대로 "연간 폭풍일수가 무려 일 년의 3분의 1을 차지, 한국에서 가장 심한 강풍지대"라고 제주의 특징을 설명했습니다.
100년 전쯤 당시에도 지금처럼 제주의 바람이 강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해 9월 태풍 힌남노가 제주에 내습했을 당시 강풍에 굴러온 바위가 서귀포시 대정읍 영락어촌계 해녀탈의장 입구를 막았습니다.
■ 바람 세서 '못살포', 대정읍 바람은?
62개 주요 관측 지점엔 들어가지 않지만, 제주에서 바람이 강하기로 유명한 대정읍 바람에 대해서도 알아봤습니다.
대정은 제주도민들 사이에서 흔히 모슬포라고도 불립니다.
이는 대정읍에 있는 대표적인 항구인 모슬포항에서 따온 것인데, 얼마나 바람이 거칠고 셌으면 이 모슬포의 어원이 바람 때문에 살기가 어렵다 해서 '못살포'라는 이야기도 내려오고 있습니다.
모슬포 바람은 전국 최강 고산 바람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명불허전으로 역시 강했습니다.
대정읍은 지난 2000년부터 풍속 계측이 이뤄졌는데, 지난해(2018년 데이터 누락)까지 연평균 풍속은 초당 4.0m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대정지역에서 풍속을 측정하는 계측기는 대정읍 일과리 소재 대정농협 산지유통센터 인근에 있습니다.
이 지점에 자동기상관측장비(AWS)가 설치되어 있는데, 해안가와는 200m 이내로 거의 인접해 있고, 모슬포항과는 3.6km 정도 거리가 있는 곳입니다.
이 밖에도 당근으로 유명한 제주 동쪽 구좌의 바람이 평균 풍속 초당 4.1m(1998~2022년 평균, 1999년, 2018년 데이터 누락)를 기록했습니다.
'섬 속의 섬' 우도를 비롯해 가파도, 마라도는 부속 도서라는 지형적 특성으로 초당 6m 내외의 강한 평균 풍속을 기록했습니다.

초가와 돌담
■ 제주 바람 때문에 생긴 돌담 문화
제주지방기상청이 최근 발간한 『제주기상 100년사』에는 제주의 바람과 관련한 흥미로운 대목이 나옵니다.
바로 제주의 전통 가옥 양식 중 하나인 돌담이 바람에 의해 생겨났다는 것인데요.
이 책에 따르면, 제주도의 돌담문화는 최소 탐라시대부터 시작됐습니다.
탐라시대는 내륙으로 치면 삼국시대에 해당한다고 책은 설명하고 있는데, 이러한 사실은 금성리유적과 이도동유적에 남아있는 돌담 흔적으로 확인된다는 설명입니다.
책에는 "돌담 축조는 태풍이나 겨울철 바람의 피해를 줄이기 위한 시설로 여겨지고 있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돌과 바람, 제주에 많은 두 가지가 한데 어우러진 이야기였습니다.

지난해 태풍 힌남노 내습 당시 발생한 월파 피해 현장.
■ 역대 가장 강한 태풍은?
태풍의 강도를 가늠하는 기준은 인명피해나 재산피해, 바람의 세기, 강수량, 태풍의 영향권 크기 등 다양하게 구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순수하게 바람의 세기(풍속)만으로 순위를 꼽자면, 지난 2003년 9월 우리나라에 상륙했던 제14호 태풍 매미라고 합니다.
제주지방기상청에 따르면 제주를 기준으로 1923년 기상 관측 이래 역대 가장 강했던 일 최대순간풍속은 태풍 매미가 상륙했던 지난 2003년 9월 12일로, 이 당시 무려 초당 60m의 돌풍이 불었습니다.
초당 60m의 바람은 건물이 붕괴될 정도의 강풍입니다.
이어 2위는 태풍 차바가 제주를 강타한 2016년 10월 5일로, 초당 47m의 순간돌풍이 불었습니다.
60대 이상 제주도민들에게 최악의 태풍으로 기억된 태풍 '사라'가 세 번째로 강한 일 최대순간풍속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지난 1959년 9월 17일에 제주에 상륙한 태풍 사라는 제주를 비롯한 전국에 막대한 인명 피해와 재산 피해를 남겼는데, 당시 초당 46.9m의 돌풍이 불었다고 합니다.
이밖에도 1986년 태풍 베라(41.6m/s)와 1972년 태풍 리타(41.5m/s)가 역대 가장 바람이 강한 태풍으로 꼽힙니다.
한편, 역사적으로는 태풍 때문에 뱃길이 끊겨 많은 제주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제주지방기상청 『제주기상 100년사』에 따르면, 경신대기근(1670~1671년) 당시 내륙에서 식량을 들여오던 배가 태풍에 끊겨 제주도민 20~30% 정도가 사망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 바람, 새로운 에너지원으로
제주도민에게 큰 시련을 만든 바람이 어느새 새로운 에너지원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기후위기를 심화하는 화석연료를 대체할 새로운 동력원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것인데요.
지난해 10월 기준 제주도내 발전설비는 총 1,867MW로 이 가운데 풍력발전이 차지하는 비중은 295MW로 15.8%에 달합니다.
오영훈 제주자치도지사도 올해 초 청정에너지 로드맵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풍력·태양광 등 재생에너지의 공공성을 확대해 재생에너지에서 발생한 이익을 도민에게 환원하고, 기저전원을 그린수소로 전환하겠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다만, 풍력발전의 경우 현재까지 축전지의 한계로 잦은 출력제어가 일어나는 상황이 지속, 향후 풀어야 할 과제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제주지역의 풍력발전사업을 민간주도로 전환하는 내용의 제주자치도의 계획이 발표됐다가 공공성을 후퇴시키는 방향이라며 역풍을 맞아 조정이 이뤄지는 상황입니다.
JIBS 제주방송 신동원 (dongwon@jibs.co.kr)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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