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분만 허용”… 공간 없이 시간만 조인 제주공항, “이게 해법인가?”
오늘(1일) 새벽 0시부터 제주국제공항 도착장 앞 차량 정차 허용 시간이 기존 5분에서 1분으로 줄어들었습니다. 제주시는 공항 혼잡과 보행 안전을 이유로 들었습니다. 단속은 매일 오전 7시 30분부터 밤 11시까지 진행됩니다. 기존 5분 이상 정차할 경우에만 과태료가 부과됐던 게 적발 시 일반 승용차는 4만 원, 승합차 이상은 5만 원의 과태료가 책정됩니다. 핵심은 다른 데 있었습니다. 픽업존도, 잠시 머물 수 있는 대기 공간도, 실제 승하차 시간을 고려한 구조 보완도 없이 ‘단속 체계’만 먼저 가동했다는 사실입니다. 짐을 내리고 가족을 태우는 행위는 누구에게나 일상의 풍경인데, 이곳에서는 그 일상이 잠재 위반으로 전환됐습니다. 행정이 가장 먼저 선택한 건 공간 정비가 아니라 ‘시간 축소’였습니다. ■ 렌터카와 택시는 공간 있고, 도민 차량은 설 자리가 없다 제주공항은 혼잡 해소를 명분으로 렌터카 인수·반납을 외부 차고지로 옮기고, 택시에겐 승강장과 대기 라인을 내어주었습니다. 버스 역시도 전용 접근 동선을 확보했습니다. 이처럼 공항이 영업 목적 차량을 위해 설계한 공간과 구조는 분명히 존재합니다. 그런데 가족을 맞이하러 온 도민 차량만 그 체계 밖에 남았습니다. 도착장 앞 어디에도 잠시 머무를 자리 하나 없고, 숨 고를 틈도 없이 차량 흐름에 떠밀리듯 지나가야 합니다. 정차가 아니라, 머물 수 없는 통과가 강요되는 곳. 지금의 구조가 그 사실을 보여줍니다. 공항은 이미 렌터카와 택시를 위해 충분한 설계 경험과 예산 집행의 전례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일상적으로 공항을 이용하는 도민 차량에도 같은 원칙이 적용됐어야 합니다. 같은 이용자라면 같은 접근권과 공간을 보장해야 하는 것이 공공 기반시설의 기본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번 1분 단속은 그 원칙이 얼마나 쉽게 제외될 수 있는지를 드러냈습니다. 공항에서 도민은 이용자가 아니라 통제 대상이었습니다. ‘잠시 머무를 권리’가 아니라 ‘일정 시간을 넘기면 처벌받는 존재’로 규정됐습니다. 픽업 공간을 갖지 못한 채, 단속만 앞세운 정책은 도민 차량을 구조 속 이용자가 아니라, 관리해야 할 객체로 규정한 행정의 시선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습니다. ■ 현실은 이미 증명하고 있다 운전자가 내려 짐을 옮기고,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을 부축하고, 아이 안전띠를 확인하고 문을 닫기까지 그 어떤 행위도 1분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공항 주차장 또한 만차가 잦고, 어렵게 비어 있는 공간을 찾는다 해도 도착장까지 거리가 있어 도보 이동이 필수적입니다. 이 구조가 바뀌지 않았는데 정차 시간을 줄였다는 것은 결국 이용 현실을 외면한 조치입니다. 시간을 줄였다면 시간 단축이 가능한 구조부터 먼저 제시했어야 합니다. 그렇지만 오늘까지도 그 구조란 게 보이지 않습니다. 도민이 느낀 불편은 단순히 불만이 아니라, 이 공간에서 자신이 배제됐다는 ‘불평등‘이란 감각입니다. ■ “가족 태우러 온 사람이 위반자?” 도착장 앞에서 부모님을 기다리던 도민 A씨는 “트렁크를 여는 순간부터 과태료 생각이 먼저 들었죠. 가족을 태우러 왔는데, 애초에 위반하는 걸 전제로 본다는 느낌이 무척 불편했어요”라고 말했습니다. 또 다른 이용자는 도착장을 여러 차례 맴돌며 “설마 했는데, 잠시 세울 틈조차 없네요. 짐을 던져놓고 떠나라는 구조가 돼버렸어요”라고 했습니다. 공항 앞에서 실제로 마중을 기다려본 사람이라면 이런 경험들이 결코 과장이 아님을 바로 이해합니다. 승하차 과정에 필요한 최소한의 시간과 공간은 부재한 채 ‘1분’이라는 단속 기준만 먼저 등장했다는 점을 도민들은 몸으로 확인하고 있는 셈입니다. 결국 이 현장은 하나의 결론을 남깁니다. 시간보다, 먼저 보완됐어야 할 구조가 없었다는 점입니다. ■ 교통 전문가 “공간 없는 시간 규제는 혼잡 줄이지 못해” 교통 분야 전문가들은 이번 조치를 두고 “공간 없이 시간을 줄이는 규제는, 공항 주변을 돌며 대기하는 차량을 늘려 혼잡을 오히려 키울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반면 해외 공항들은 승용차 픽업존, 무료 대기 주차장(셀폰랏), 단기 정차 허용 구역 등을 우선 확보한 뒤 그 위에 시간 제한과 단속을 얹습니다. 즉 해외에서 검증된 방식은 공간 먼저, 단속은 그 다음입니다. 제주공항에서 시행된 방식은 그 구조적 순서를 완전히 뒤집은 사례로 남습니다. 비판의 중심에 세우는 지점도 바로 여기입니다. ■ “도민 차량에 대한 배려가 빠졌다” 송규진 제주YMCA 사무총장은 이번 조치가 실제 이용 행태를 반영하지 않았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노약자의 보행과 짐을 옮기고 안전을 확인하는 과정은 결코 1분 안에 끝나지 않는다”며 “렌터카나 택시는 이미 체계를 가지고 있는데, 도민 차량만 아무 대안 없이 단속 대상으로 놓인 셈”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송 사무총장은 미국 주요 공항의 사례를 예로 들며 “픽업존과 무료 대기구역 같은 구조가 먼저 마련되고, 그 기반 위에서 정차 시간 제한과 단속이 이뤄지는 것이 해외의 일반적인 방식”이라며 “지금 제주공항처럼 공간 없이 시간을 먼저 줄이는 정책은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그 지적은 불만을 넘어서, 이번 조치가 도민 접근권을 구조적으로 제외한 결정이라는 핵심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 공항공사의 수익 구조, 그리고 설명해야 할 책임 더구나 이같은 뒤집힌 단속 구조의 근간에는 공항공사의 방치도 한몫하고 있습니다. 한국공항공사는 공항 이용료, 주차장 운영 수익, 시설 임대료 등으로 상당한 규모의 재원을 확보하는 공기업입니다. 렌터카 관리 시스템 개편과 택시 승강장 구조 재정비를 비롯해 영업 목적 차량을 위한 공간 설계에는 실제 예산이 투입돼 왔습니다. 그렇다면 도민 차량을 위한 구조 설계는 왜 비어 있는가라는 질문이 남습니다. 픽업존, 단기 대기구역, 회전 차로 같은 최소한의 공간조차 마련하지 않은 채 정차 시간을 줄인 조치는 공기업 역할과 책무에 대한 의문을 남깁니다. 공항이 단속 카메라와 과태료 고지 행정보다 먼저 보여줘야 할 것은 바로 공간 설계에 대한 책임 있는 설명이라는 말입니다. ■ 제주시 역시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아 단속을 적용한 행정은 도민 차량 이동 특성을 실제로 조사했는지, 공항공사에 구조 보완을 요청한 적은 있는지, 혹은 대체 공간 활용 가능성을 검토했는지조차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준비와 설계가 빠진 상태에서 시간을 줄이고 단속 체계를 강화한 이번 결정은, 행정이 도민의 이용 현실보다 규제의 속도를 우선에 둔 조치였다는 사실을 스스로 증명합니다. 공항이라는 공공 공간에서 행정이 가져야 할 시선은 통제가 아니라 ‘함께 이용할 구조’를 만드는 시선이어야 합니다. ■ 단속은 끝이 아니라, 검증의 시작 1분 단속이 정말 혼잡을 줄였는지,아니면 오히려 공항 주변에 회전 차량을 늘리고, 보행 동선을 복잡하게 만들었는지는 곧 확인됩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행정이 내세운 정책의 정당성을 증명할 기준이 됩니다. 제주국제공항은 관광객에게는 입국 관문이고, 도민에게는 일상의 시작과 끝이 교차하는 공간입니다. 그 안에서 도민은 단속 대상이 아니라, 동등한 이용자여야 합니다. 픽업 공간 하나 없이 시간을 먼저 조인 결정은 행정이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이기도 합니다. “공간 설계 없이 시간을 줄이는 방식이 정말 제주공항이 제시할 수 있는 해법인가.” 결과는 곧 드러납니다. 현실이 답할 때까지, 물음은 계속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 다시 묻습니다. “이게 제주공항인가?”
2025-12-01
제주방송 김지훈(jhkim@ji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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