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가 한 예술가의 별을 끝내 다른 뜻으로 바꿨다… 이상홍 《우아한 집착》
한 사람이 오래 살아낸 시간은 어느 순간 형태를 얻습니다. 붙들어온 감정은 선이 되고, 지워지지 않던 흔적은 화면이 되며, 말로 다 꺼내지 못한 마음은 끝내 하나의 형식으로 드러납니다. 이상홍의 개인전 《우아한 집착》은 바로 그 장면을 보여줍니다. 제주에 들어와 지나온 시간이 이번에는 흐릿한 기억이 아니라 또렷한 조형 언어로 모습을 드러냅니다. 전시는 4월 3일부터 제주시 관덕로15길 6 대동호텔 아트센터 비아아트에서 열립니다. 평면과 드로잉, 오브제 90여 점이 관객과 만납니다. 지하 1층에는 2023년 제주 첫 개인전 《그때 그냥 제주》 이후 이어온 ‘별’과 ‘선’ 작업이 들어서고, 지상 1층에는 상자 속 오브제와 드로잉, 선으로 조형한 작업이 펼쳐집니다. 제주에서 여는 두 번째 개인전입니다. ■ 두 번째 개인전, 비어 있지 않았던 시간을 드러내다 이번 전시를 붙드는 힘은 횟수보다 그 사이 축적된 시간에서 나옵니다. 첫 개인전과 두 번째 개인전 사이에는 이력 몇 줄로는 담기지 않는 세월이 있습니다. 어디에 몸을 두고 살았는지, 무엇을 붙들고 건너왔는지, 생활과 작업이 어떤 식으로 서로를 바꿨는지가 그 시간을 채웁니다. 이상홍에게 제주가 바로 그런 시간이었습니다. 출발점은 2017년 가을 비아아트의 〈예술가와 여관〉 프로젝트였습니다. 2018년에는 제주문화예술재단 예술공간 이아 레지던시 작가로 활동하며 제주 원도심과 서귀포를 오갔습니다. 그 시간을 지나며 작가는 봄과 가을 두 달씩 제주 원도심에서 지내기로 마음먹었고, 결국 2019년 봄 서울에서 제주로 삶의 자리를 옮겼습니다. 그 뒤의 시간이 이번 전시를 더 깊게 만듭니다. 대동호텔 앞 옥림장 마당집을 빌려 살며 원도심을 돌아다녔고, 그 과정에서 〈이작가와끼니〉를 시작했습니다. 2022년 봄에는 제주목 관아 옆 옛집에 작업실이자 복합문화공간 ‘아트스페이스 빈공간’을 열었습니다. 2021년 산지천갤러리 기획공모 〈떠 있는 섬〉 10인전, 2024년 《엄마 없는 엄마를 위하여》 3인전, 2025년 《빈공간에서 빈공간으로》 프로젝트 전시까지 이어진 흐름도 모두 그 연장선 위에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전시는 ‘두 번째’라는 말 하나로 정리되지 않습니다. 첫 전시 뒤의 시간이 비어 있지 않았고, 그 세월이 생활과 작업을 함께 밀어 바꿨기 때문입니다. 제주에서 아홉 번째 봄을 맞은 작가가 이번에 꺼내 보이는 것은 신작 몇 점의 목록이 아니라, 원도심에서 통과한 길고 질긴 시간입니다. ■ 우아함은 눌러 담은 태도이고 집착은 끝내 놓지 않는 힘이다 《우아한 집착》이라는 제목은 멋을 내기 위한 수사로 소모되지 않습니다. 우아함은 표면의 세련됨보다 오래 견딘 뒤 남는 태도를 건드리고, 집착은 과장된 열정보다 끝까지 붙드는 힘을 끌어올리기 때문입니다. 이상홍은 전시 서문에서 집착을 “과잉이 아닌 지속”으로 정의합니다. 또 ‘별세우기’를 “빛나는 것에 대한 찬미가 아닌, 추락하지 않게 붙잡는 노동”이라고 적었습니다. 이번 전시의 중심은 이 짧은 문장들 안에 압축돼 있습니다. 화면은 조용하지만 그 아래에는 오래 눌린 감정이 흐르고, 형식은 절제돼 있지만 그 안에는 멈추지 않는 반복이 살아 있습니다. 우아함과 집착은 이 전시 안에서 서로를 밀어 올립니다. 정돈된 형식은 안쪽의 압력을 더 또렷하게 드러내고, 오래 붙든 감정은 화면의 절제와 긴장을 더 팽팽하게 만듭니다. 아름다움보다 버팀이 먼저이고, 장식보다 지속이 먼저라는 사실이 작업 전체를 관통합니다. ■ 별, 칭찬의 표식에서 이해받지 못한 삶의 흔적으로 옮겨가다 전시를 관통하는 이미지는 ‘별’입니다. 그 별은 반짝이는 상징으로 흘러가지 않습니다. 작가는 유년의 ‘참잘했어요’와 결별한 뒤, 별을 칭찬의 표식으로 두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 사연과 바람을 품고도 이해받지 못한 삶, 끝내 다 설명되지 않는 감정, 그래도 붙잡고 세울 수밖에 없는 흔적으로 돌려놓았습니다. ‘별세우기’라는 표현도 여기서 힘을 얻습니다. 빛나는 것을 예찬하는 일이 아니라, 무너질 수 있는 감정과 삶의 흔적을 계속 세워두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번 전시의 ‘별’은 장식보다 표식으로 읽힙니다. 지하의 ‘별’과 ‘선’, 지상의 상자 속 오브제와 드로잉은 서로 다른 형식을 띠지만 결국 같은 질문으로 모입니다. 무엇을 끝내 버리지 못했는지, 무엇을 계속 세우려 했는지, 무엇이 이 사람을 여기까지 데려왔는지를 향한 질문입니다. 작품의 완성도만 살피다가는 절반만 보게 됩니다. 그 안에는 반복되어온 손의 시간과 설명으로는 다 닿지 않는 감정을 형상으로 남기려는 고집이 함께 들어 있습니다. 별은 여기서 예쁜 기호가 아니라, 오래 붙들어 온 삶의 좌표로 바뀝니다. ■ 원도심이 바꿔놓은 시간, 다시 작업과 공간의 언어가 되다 또한 이번 전시에서 선명하게 드러나는 것은 제주 원도심이 한 예술가의 시간을 실제로 바꿨다는 점입니다. 원도심은 여기서 배경이 아니라 조건입니다. 골목과 집, 생활의 속도가 감각을 바꿨고, 그 감각은 다시 작업의 형식과 공간 운영으로 이어졌습니다. 이상홍은 제주로 옮겨온 뒤 개인 창작에만 힘을 쏟지 않았습니다. ‘빈공간’을 기반으로 전시와 프로젝트를 이어왔고, 〈이작가와 희곡읽기〉, 〈연극을 읽고 상상을 그린다〉, 〈꿈의 스튜디오 제주〉 같은 프로그램도 함께 벌여왔습니다. 예술가와 애호가, 실천가들이 한 동네 안에서 만나고 부딪히고 다시 연결되는 지점 역시 그의 작업 반경 안으로 들어와 있습니다. 원도심이라는 장소가 한 예술가의 세월을 어떻게 바꾸고, 그 변화가 다시 작업과 공간, 지역 문화의 장면으로 어떻게 넓어졌는지 이번 전시는 그 흐름을 함께 보여줍니다. 전시는 4월 28일까지 이어집니다. 기간 중에는 ‘작가와의 대화’도 예정돼 있습니다.
2026-03-30
제주방송 김지훈(jhkim@ji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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