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이름으로, 제주에 남을 이유를 만들다
제주에서 자란다는 것은 언젠가 선택의 문제와 마주하게 만듭니다. 이곳에 남을 수 있는가, 아니면 떠나야 할까. 그 갈림길 앞에 선 아이들에게 장학금은 금액이 아니라 하나의 ‘방향’이었습니다. 농협 제주본부는 지난 19일 제주시 국제가정문화원에서 한국–베트남 다문화가정 학생 장학금 전달식을 열고, 제주지역 다문화가정 학생 7명에게 장학금을 전달했다고 22일 밝혔습니다. 규모는 크지 않았지만, 다문화가정 아이들이 제주에서 꿈을 키우며 성장해도 된다는 사회의 공식적인 응답을 분명하게 각인시킨 자리였습니다. 이번 장학금은 한베미래세대교류본부의 장학사업 일환으로 마련됐습니다. 다문화가정 학생들의 교육 기회를 넓히고 학업을 지속할 수 있도록 돕는 동시에, 지역사회에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겠다는 취지입니다. 일회성 지원이 아니라, 미래세대를 지역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이겠다는 방향성이 선명하게 읽힙니다. ■ “꿈을 키울 수 있는 환경이 중요하다” 고우일 제주농협 본부장은 “이번 장학금 지원이 다문화가정 학생들이 자신의 꿈을 키워 나가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며 “앞으로도 유관기관과 협력해 다문화가정이 지역사회에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지원을 이어가겠다”고 밝혔습니다. 이 발언에는 농협의 시선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지원의 목적을 ‘배려’에 두지 않고, 교육을 매개로 한 지역 정착과 농업·농촌의 지속 가능성까지 함께 바라보고 있다는 점입니다. 다문화가정이 지역 공동체 안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어야 농촌 역시 다음 세대를 준비할 수 있다는 인식이 깔려 있습니다. ■ 전달식이 아니라, 현장의 이야기 이날 행사에는 농협과 지역 농협 관계자, 국제가정문화원, 수혜 학생과 가족들이 함께했습니다. 형식은 전달식이었지만, 현장은 대화에 가까웠습니다. 참석자들은 다문화가정이 제주에서 살아가며 겪는 교육과 진로의 고민, 정착 과정의 어려움을 자연스럽게 공유했습니다. 장학금은 그 이야기를 끌어내는 매개였습니다. 지원하는 쪽과 받는 쪽의 경계보다, 같은 지역에서 살아가는 구성원이라는 인식이 먼저 자리 잡았습니다. 장학금이 ‘주는 행위’로 끝나지 않고 관계를 만드는 계기가 될 수 있었던 이유입니다. ■ 교육은 개인 문제가 아니라 지역의 미래 농협이 이번 장학사업을 교육 복지 차원에 그치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아이들이 지역 안에서 성장할 수 있을 때, 그 지역 역시 지속 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문화가정의 안정적인 정착은 농촌 공동체의 구조와 직결되는 문제입니다. 한베미래세대교류본부 역시 한국과 베트남을 잇는 미래세대 교류를 목표로, 교육과 문화, 인적 교류를 중심으로 한 사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번 장학사업은 ‘시혜’가 아니라 ‘연결’에 방점이 찍힌 사례로 읽힙니다. ■ “제주에 남을 수 있다는 감각”… 공동체 소속감의 원천 지역 정착은 주소를 옮긴다고 완성되지 않습니다. 학교와 동네, 일상의 관계 속에서 ‘나도 여기의 일부’라는 감각이 축적될 때 비로소 공동체가 됩니다. 다문화가정 아이들에게 이 감각은 특히 중요합니다. 고우일 본부장은 “아이들의 이름으로 전달된 장학금은, 제주에 남을 수 있다는 확신을 다지는 계기”라며 “그 확신이 쌓일수록 지역의 미래 역시 함께 단단해질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2025-12-22
제주방송 김지훈(jhkim@ji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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