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수궁 회화나무는 왜 아직 그 자리에 서 있을까
도시는 늘 앞으로 나아간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 말은 종종 질문을 대체합니다. 무엇을 새로 만들었는지는 설명하지만, 무엇을 지나쳐 왔는지는 묻지 않습니다. ‘덕수궁 회화나무 프로젝트’는 그 질문을 회피하지 않습니다. 한 그루의 나무 앞에서, 도시가 스스로에게 던져야 할 질문을 끝까지 세웁니다. 사진은 장면을 요약하지 않고, 기록은 결론을 서두르지 않습니다. 책이 택한 방식은 제법 단순합니다. 끝까지 바라보는 일입니다. ■ 제주에서 스친 한 번의 만남, 작업의 윤리를 먼저 보다 스치듯 만난 기억이 있습니다. 대화는 길지 않았고, 자신을 설명하려는 태도도 두드러지지 않았습니다. 대신 장면과의 거리가 유난히 정확했습니다. 풍경을 앞서 해석하지 않았고, 의미를 먼저 붙이지도 않았습니다. 제주에서는 흔히 ‘아름답다’는 말로 많은 것이 정리되곤 합니다. 작가는 그 말을 서두르지 않았습니다. 멈췄고, 그 멈춤이 오래 남았습니다. 이 책을 마주한 지금, 그때의 거리가 우연이 아니었음을 알게 됩니다. 그것은 그의 작업 전반을 관통하는 윤리였습니다. ■ 죽었다고 분류된 존재가 다시 시간을 틔웠을 때 덕수궁 선원전 터의 회화나무는 한때 ‘이미 끝난 대상’으로 분류됐습니다. 화재 이후 고사 판정을 받았고, 행정과 기억의 언어 속에서 정리된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몸통에서 새싹이 돋았습니다. 이 사건은 기적의 서사가 아니라 ‘분류의 실패’를 드러냅니다. 우리는 무엇을 기준으로 생과 사를, 보존과 폐기를 구분해 왔는가라는 질문이 그 자리에서 발생합니다. 이 질문 앞에 멈춘 이는 사진가 이명호입니다. 대상을 앞서 가지 않습니다. 사계절에 걸쳐 같은 거리를 유지하며 시간을 통과합니다. 회화나무는 더 이상 유물이 아닙니다. 복원과 개발, 기억과 망각이 중첩된 도시의 시간 구조를 드러내는 존재가 됩니다. 사진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며, 관찰은 소비되지 않습니다. ■ 작품의 핵심은 이미지가 아니라 ‘조건’입니다 이명호의 작업은 사진의 통념을 반복적으로 비껴갑니다. 면을 포착하지 않습니다. 대신 장면이 성립되는 조건을 구축합니다. 가림막 설치, 현장 체류, 반복과 대기는 시각적 효과를 위한 장치가 아닙니다. 배경을 통제함으로써 대상이 놓인 관계망과 권력 구조를 노출시키는 방식입니다. 작가가 ‘사진-행위(Photography-Act)’라 명명해 온 방법론은 이 지점에서 실체를 갖습니다. 사진은 셔터의 순간에 완성되지 않습니다. 준비와 설치, 기다림과 반복, 그리고 촬영 이후 남겨지는 질문까지 포함해 하나의 행위로 존재합니다. 이 때문에 그의 사진은 재현이 아니라 재연으로 읽힙니다. 이미지는 닫히지 않고, 관계는 지속됩니다. 존재와 부재, 주체와 객체, 자연과 인공의 대립은 해소되지 않습니다. 그 대신 긴장 상태로 남겨집니다. 이명호는 해답을 제시하지 않고, 질문이 사라지지 않도록 배치합니다. ■ 회화나무는 미학의 대상이 아니라 공공의 질문이 된다 ‘덕수궁 회화나무 프로젝트’는 미학의 성취에 머물지 않습니다. 법, 생태, 건축, 조경·궁궐 연구, 도시 행정의 시선이 회화나무를 중심으로 교차합니다. 인간 중심의 규범을 확장해 비인간 존재를 사유하는 법적 관점, 기후와 문화의 시간을 함께 견뎌온 생태적 해석, 유산을 ‘보존 대상’이 아니라 ‘도시 운영의 문제’로 재정의하는 논의가 한 장면에 겹칩니다. 결론은 하나로 수렴되지 않습니다. 대신 질문의 밀도만 높아집니다. 우리는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너무 쉽게 끝났다고 선언해 왔는가라는 물음입니다. ■ 이 작업이 감수한 위험, 그리고 그 불편함 여기서 한 가지는 분명히 짚어야 합니다. 예술이 도시 담론의 중심으로 들어올 때, 언제나 과잉의 위험을 감수합니다. 사진가의 시선이 공공의 언어를 대신하려는 순간, 예술은 설명의 역할을 떠맡게 될 수 있습니다. 『덕수궁 회화나무 프로젝트』 역시 그 경계 위에 서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명호의 선택은 다릅니다. 말로 밀어붙이지 않습니다. 주장으로 봉합하지도 않습니다. 대신 조건을 배치합니다. 해석의 책임을 독자와 시민에게 돌려놓는 방식입니다. 이 절제가 이 작업을 지탱하는 힘입니다. ■ 이력은 성취의 목록이 아니라 태도의 누적 ‘나무 연작’을 비롯한 일련의 작업을 통해 이명호는 사진을 이미지 생산의 결과가 아니라 행위로서의 조건으로 다뤄왔습니다. 그 작업은 시적 정서에 기대기보다, 존재와 부재, 주체와 객체, 재현과 재연 사이의 긴장을 끝까지 유지하는 방식으로 예술의 본질을 환기합니다. 스스로 ‘사진-행위(Photography-Act)’ 혹은 ‘예술-행위(Art-Act)’로 명명해 온 작업은, 사진이라는 매체를 넘어 예술이 현실과 관계 맺는 방식을 묻는 지속적인 실험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태도는 특정 연작에 국한되지 않고, 작업 전반에 걸쳐 일관되게 이어져 왔습니다. 그의 작품이 장폴 게티 미술관, 암스테르담 사진미술관, 프랑스 국립도서관, 빅토리아 국립미술관을 비롯해 국립현대미술관과 서울시립미술관, 고은사진미술관 등에 소장돼 있는 이유 역시 성취의 누적이라기보다 방법의 지속성에 가깝습니다. 이력의 무게보다 중요한 것은 작업의 일관성입니다. 설명하지 않고, 서두르지 않으며, 질문을 공공의 장으로 옮기는 선택입니다. ‘덕수궁 회화나무 프로젝트’는 누적된 태도가 도시라는 현실과 정면으로 맞닿는 지점입니다. ■ 더 멀리 가기보다, 더 오래 머무는 작업 이 책이 제시하는 방향은 확장이나 정복이 아닙니다. 더 멀리 가기보다 더 오래 머무는 일입니다. 속도를 늦추고, 판단을 유보하며, 한 존재를 끝까지 바라보는 윤리입니다. 개발과 재생의 언어가 도시를 앞당길수록, 이 작업은 시간을 되돌려 묻습니다. 무엇이 관계를 성립시키는가, 무엇이 공공의 기억으로 남아야 하는가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프로젝트가 호평을 요구하는 것은 아닙니다. 추천을 설득하지도 않습니다. 기록으로 남습니다. 그리고 그 기록은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도시를 다시 보게 만듭니다. 한 권의 책이 도시를 다시 사유하게 만드는 경우는 드뭅니다. 이 책은 그 드문 경우에 속합니다. (‘덕수궁 회화나무 프로젝트’ 이명호·이은주·정혜진·공우석·최종덕·소현수·심경미·임희정·김서영 지음, 민음사, 2026년 1월 9일 출간)
2026-02-08
제주방송 김지훈(jhkim@ji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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