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은사에 EDM이 퍼지자, 겨울 과일지도… “판이 흔들렸다”
서울 강남. 유행이 가장 먼저 피고 가장 빨리 사라지는, 취향의 속도가 서울에서 가장 빠른 그 중심에서 올해 가장 뜻밖의 주인공이 등장합니다. 감귤입니다. 10년째 이어진 감귤데이는 이번에 아예 ‘행사’의 틀을 해체합니다. 감귤을 상품이 아닌 ‘경험’으로 올리고, 과일이라는 일상의 물건을 도시의 문화 언어로 번역해 봉은사라는 상징적 공간에 펼칩니다. 유통 구조가 빠르게 재편되는 2020년대 중반, 감귤산업이 어디로 향하는지는 이번 실험에서 확실히 드러납니다. “왜 사찰인가”, “왜 EDM인가”, “왜 강남인가.” 모든 질문이 곧 답입니다. 이 행사는 지금의 소비를 가장 날카롭게 읽고 있습니다. ■ ‘봉은사×EDM×감귤’… 이 기묘한 조합, 현재 시장을 겨냥하다 26일 제주자치도와 제주농협, 감귤연합회, 감귤의무자조금관리위원회는 12월 6~7일 봉은사에서 감귤데이 10주년 행사 ‘너의 꽤 달음을 찾아라’를 연다고 밝혔습니다. 올해 선택한 무대는 ‘절’입니다. 그리고 그 절 한가운데, 뉴진스님(윤성호)의 EDM 세트와 비오의 공연이 올라섭니다. 이 파격은 관심 유도용 장식이 아닙니다. 지금 과일 시장은 가격만으론 경쟁이 성립되지 않는 지점까지 왔습니다. MZ 소비자들은 “얼마냐”보다 “어떤 세계관을 갖고 있느냐”를 더 먼저 봅니다. 제주 감귤은 이 전환기에서 브랜드로 재정의돼야 하는 과일이었고, 제주는 ‘강남·외국인 관광객·코엑스 소비 축’이 교차하는 봉은사를 정조준했습니다. 여기에 EDM이 겹치는 순간, 감귤은 더 이상 농산물 지위에 머물지 않습니다. 공간·음악·사진·취향이 결합된 콘텐츠로 전환됩니다. ‘무엇을 먹었는가’보다 ‘어디서 경험했는가’가 중요해진 시대, 감귤은 이 무대 위에서 완벽히 다른 언어로 번역됩니다. ■ 10년의 ‘귤루랄라’… 감귤은 결국 경험 산업이 됐다 감귤데이는 시작부터 매년 포맷을 바꿨습니다. 광화문, 성수, 스타필드, 민속촌을 지나, 소비의 흐름이 가장 빨리 움직이는 곳만 골라 걸어왔습니다. 그리고 10년째 되는 올해, 봉은사는 진화의 종착지가 아니라 ‘경험을 어떻게 더 정교하게 설계할 것인가’라는 새로운 페이지의 첫 장입니다. 행사 구성은 복잡하지 않습니다. 대신 정교합니다. 감귤 시식, 품종 비교, 효능 안내, SNS 인증, 감귤 가공식품 플리마켓, 제주 중소기업 제품까지 모든 단계가 하나의 동선으로 연결됩니다. 감귤을 베어 물면 곧바로 인증샷이 되고, 다음 스텝에서 가공식품을 보고, 또 다음 단계에서 기부·답례품 안내로 이어집니다. 이 모든 흐름이 “감귤은 제품이 아니라 경험이다”라는 말을 현실에서 증명합니다. 감귤산업은 지금 “좋은 감귤 드세요”라는 오래된 언어를 버리고 “감귤을 어떻게 경험하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완전히 옮겨 탔습니다. ■ 고향사랑기부제까지 품었다… 과일, ‘기부’라는 서사를 품다 현장에서 고향사랑기부제를 함께 안내한 방식도 눈여겨봐야 합니다. 제주는 감귤·흑돼지·떡·과즐 패키지로 대상을 받은 뒤, 이를 연말까지 행사와 결합했습니다. 전국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방식입니다. 감귤은 여기서 소비재를 넘어 지역경제의 입구가 됩니다. 이제 소비의 질문은 “무엇을 샀나”가 아니라 “무엇을 지지하나”로 바뀌었습니다. 감귤은 ‘지역경제에 기여하는 선택’이라는 가장 현대적인 서사를 손에 넣었습니다. 전통적인 농산물이 새 설득 방식을 가장 빠르게 흡수한 사례입니다. ■ 겨울 과일 경쟁, 제주가 먼저 다음 판으로 넘어갔다 과일 시장은 확실히 달라졌습니다. 이상기후로 생산 구조가 흔들리고, 물가 상승으로 소비의 우선순위도 재편되고 있습니다. 그 사이에서 취향, 브랜드, 지역성, 친환경, 스토리 같은 선택 기준이 더 강해졌습니다. 이 요소들이 겹겹이 작동하는 시대, 가격만으로는 소비자를 움직일 수 없습니다. 사람들이 지갑을 여는 순간은 ‘과일 한 상자’가 아니라 ‘의미와 경험을 품은 패키지’일 때입니다. 제주 감귤이 봉은사에서 EDM을 튼 건 바로 이 시대 변화를 정조준한 선언입니다. 감귤은 이제 ‘맛있다’라는 속성의 과일이 아니라 ‘나를 표현하는 경험’으로 올라서야 합니다. 제주는 이 변화를 10년 동안 실험했고, 올해 봉은사 무대는 그 실험이 새로운 언어로 정리되는 자리입니다. ■ 서울 한복판, 감귤 한 조각을 베어 물었을 때 떠오르는 것 이번 봉은사 실험은 제주 감귤산업이 스스로 꺼내 든 아주 선명한 미래 예고편입니다. 강남 봉은사 마당에서 베어 문 감귤 한 조각이 기부 참여로 이어지고, 답례품 패키지로 연결되고, 제주 여행을 떠올리게 하고, 그리고 다시 겨울 감귤 구매로 돌아오는지. 아니면 한순간 스쳐 지나간 이색 풍경으로만 남을지. 그 결과는 이번 겨울, 서울 도심의 소비 흐름에서 구체적이고 냉정한 데이터로 돌아옵니다. 10년을 채운 감귤데이는 그 질문을 지금 가장 도시적이고, 과감한 방식으로 꺼내 들었습니다. 고우일 제주농협 본부장은 “감귤은 이제 제철과일이라는 범주를 넘어, 소비자와 만나는 방식을 처음부터 다시 설계해야 할 시점에 와 있다”며 “봉은사 행사는 제주 감귤의 새로운 가능성을 현장에서 직접 확인하는 무대가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제주 감귤은 이미 ‘겨울 과일’의 울타리를 벗어나 봉은사의 고요함과 EDM의 진동이 겹쳐지는 중심에서 소비자에게 조용하지만 선명하게 손을 내밉니다. “이 맛을 여기서, 지금 경험하세요. 겨울 감귤의 시작은 이제 제주 한곳에서만 정의되지 않습니다.”
2025-11-26
제주방송 김지훈(jhkim@ji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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