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빛은 머물다 흘러가고, 그 자리에 시간이 남는다”
# 별빛은 이미 사라졌을지 모릅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우리를 비춥니다. 오래된 흔적이 지금 이 순간 눈앞에서 반짝이며, 머무는 듯 흘러가고, 사라지는 듯 남습니다. 그 모순된 빛 앞에서 우리는 멈춰 서서 묻게 됩니다. “사랑은 어디까지 머무는가, 존재는 어떻게 기억되는가, 시간은 왜 흘러가면서도 흔적을 남기는가.” 그 질문에서 시작되는 회화입니다. 흩뿌려진 점은 ‘원자(原子)’이자 꽃잎이고, 누군가의 얼굴이며 다시 별빛이 됩니다. 화면 위에 켜켜이 쌓인 자취는 장식이 아니라 이야기입니다. 관계와 기억, 제주의 하늘과 바다가 품은 무수한 결이 점과 선으로 번져나갑니다. 그 작업 앞에서 우리는 ‘보는 것’을 넘어 ‘사는 것’을 체험합니다. 이 빛과 시간, 머묾과 흐름의 역설을 담아낸 전시를 서귀포에서 만납니다. 9일부터 10월 31일까지 서귀포 노바운더리갤러리에서 김연숙 개인전 ‘별이 머물다 흐르고’가 열립니다. 별빛이 폭포처럼 쏟아지고, 연못에 잠시 머물다 다시 흘러가는 듯한 최근작들을 선보이는 초대전입니다. 작가는 아크릴 물감을 흩뿌리고 덧입히는 과정을 끊임없이 이어갑니다. 그렇게 태어난 점과 선은 작은 입자로 시작해 꽃잎처럼 번지고, 때로는 밤하늘의 빛으로 흩어집니다. 그 흔적은 결국 인간의 존재를 닮아갑니다. 재현을 넘어 시간과 관계, 소멸과 생성을 한 화면 안에 응축한 풍경입니다. ■ 사라진 빛, 남겨진 존재.. “제주의 확장” 작가는 “우리가 보는 별빛은 이미 사라진 별의 흔적일 수 있다”며, “그럼에도 그 빛을 보며 희망을 노래하는 것이 인간”이라고 말합니다. 화면 속 작은 점들은 하늘에 머물다 흘러가는 존재들이자, 기억과 사랑, 관계와 소멸을 동시에 품고 있습니다. 조은정 미술평론가는 “(작가의) 화면은 자연을 단순히 옮기지 않고, 내면의 심상을 드러낸다”면서, “흩뿌려진 색의 방울들은 별이 되어 촘촘히 박히고, 이는 낭만적 감상을 넘어 제주의 풍경을 미적 세계로 확장하는 힘을 갖는다”라고 짚었습니다. ■ 관객과 마주하는 시간 전시는 기간 내 상시 관람이 가능하며, 20일 오후 3시에는 ‘작가와의 대화’가 열립니다. 관객은 작품 속 점과 선, 빛과 흐름의 리듬을 작가와 직접 나누며 더 깊은 공감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 제주의 시간을 기록하다 작가는 이화여자대학교 서양화과와 제주대학교 교육대학원을 졸업했습니다. 제주와 서울, 삿포로, 춘천 등에서 개인전 19회를 열었고, 국내외 단체전과 초대전에 350여 차례 참여했습니다. 한국현대판화공모전 우수상, 제주도미술대전 대상 등을 수상했습니다. 작품은 제주도립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박수근미술관 등에 소장돼 있습니다. 제주도립미술관장을 지낸 작가는 지금도 제주의 하늘과 바다, 그리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점과 선으로 기록하며 창작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2025-09-07
제주방송 김지훈(jhkim@ji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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