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아래로 끌어당기는데, 너는 왜 자꾸 떠오르려 하나”… 중력에 반기를 든 열두 개의 세계
꽃이 위로 자라는 동안 뿌리는 아래로 뻗습니다. 서로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는 두 부분이 하나의 생명을 이룹니다. 땅에 깊이 뿌리내릴수록 줄기는 더 높이 자랄 토대를 얻습니다. 중력은 나무를 땅에 붙잡아두면서 줄기가 자신의 무게를 견디도록 합니다. 예미킴의 꽃밭에는 이와 조금 다른 방식으로 눈을 붙잡는 존재가 있습니다. 요정 캐릭터 미몽(MiMoN)입니다. 붉고 분홍빛으로 번지는 꽃송이들 사이에서 미몽을 발견하면 처음 보았던 꽃밭을 다시 살피게 됩니다. 화려한 꽃잎을 따라 움직이던 눈은 그 뒤편의 작은 틈으로 향합니다. 꽃은 그대로인데 풍경이 달라집니다. 오는 10일부터 16일까지 제주 이룸갤러리 한라일보점에서 열리는 담소미술창작스튜디오 기획전 《중력의 배신(Defying Gravity)》은 그렇게 익숙한 시선이 흔들리는 곳에서 출발합니다. 김남호, 김미란, 김순관, 김연옥, 박금옥, 박세상, 박용운, 예미킴, 이해성, 정재훈, 조이영, 주연 등 열두 작가가 참여합니다. 구름 위에 선 작은 동물들, 바닥에 놓이거나 허공에 매달린 채색 구체, 바람에 기운 풀과 해체된 전자부품까지. 서로 다른 재료와 형상들이 하나의 전시 제목 아래 모였습니다. 중력은 모든 물체를 아래로 끌어당깁니다. 그러나 전시장에 들어서면 아래로 향하는 힘보다 그 힘을 견디는 자세가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 꽃들 사이의 미몽, 무엇을 먼저 보았나 예미킴의 〈Blooming〉에는 꽃이 넘쳐납니다. 붉은 꽃잎과 분홍빛 꽃송이, 짙고 옅은 초록의 잎들이 겹쳐 있습니다. 꽃잎은 다른 꽃잎의 윤곽을 가리고, 줄기는 그 사이를 가로지릅니다. 처음에는 꽃의 색채가 눈에 들어옵니다. 그러다 꽃들 사이에 있는 미몽을 발견합니다. 작고 하얀 요정은 주변의 꽃들보다 눈에 덜 띕니다. 하지만 한 번 알아본 뒤에는 자꾸 그쪽으로 시선이 갑니다. 다른 미몽은 어디에 있는지, 꽃잎 뒤에는 무엇이 가려져 있는지 살피게 됩니다. 흥미로운 것은 꽃이나 미몽의 위치가 달라지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바뀐 것은 바라보는 순서입니다. 우리는 크고 선명한 것을 먼저 찾습니다. 가운데에 놓인 대상을 중요하게 여기고, 배경에 가까운 것은 쉽게 지나칩니다. 그런데 미몽을 발견한 뒤에는 꽃밭의 가장자리까지 눈에 들어옵니다. 처음에는 꽃을 보러 왔다가 어느새 꽃 사이의 빈틈을 찾고 있습니다. 꽃은 미몽을 숨겨주고, 미몽은 꽃밭의 보이지 않던 구석으로 눈을 이끕니다. 그곳에 있었지만 미처 알아보지 못했던 존재. 예미킴의 꽃밭 앞에서는 무엇을 보았는지보다 무엇을 지나쳤는지를 오래 곱씹게 됩니다. ■ 김미란의 허공, 떠 있는 것은 얼마나 무거운가 김미란의 〈신성을 얻는 법〉에서는 흰 동물 형상들이 구름 위에 서 있습니다. 구름은 가느다란 줄에 매달려 있습니다. 그 위에 올라선 동물들도 함께 떠 있습니다. 하나는 받침대 위에 자리합니다. 구름을 올려다보는 데 익숙한 눈에는 발아래 놓인 구름이 낯섭니다. 땅을 딛고 살아가는 동물이 그 위에 서 있으니 더욱 그렇습니다. 이 풍경에서 오래 눈길이 머무는 곳은 동물의 발아래만이 아닙니다. 구름을 매단 줄입니다. 공중에 떠 있는 형상을 보면서도 그것을 붙잡고 있는 가느다란 줄을 함께 보게 됩니다. 줄이 보이는 순간 허공은 더 이상 아무것도 없는 공간이 아닙니다. 떠 있는 것에도 무게가 있고, 그 무게를 받아내는 무엇인가가 있습니다. 김연옥의 〈붉은 기척〉에서는 둥근 구체들이 바닥에 놓이거나 공중에 매달려 있습니다. 붉은색과 분홍색, 노란색과 초록색이 표면을 휘감습니다. 어떤 구체는 가까이 모여 있고, 어떤 것은 떨어져 있습니다. 색채가 겹친 자리는 가만히 있지 않는 듯합니다. 둥근 형태는 하나의 완결된 세계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표면의 색들은 서로 섞이고 갈라지며 경계를 흐립니다. 김미란의 동물들이 어디에 발을 딛고 있는지 묻게 한다면, 김연옥의 구체들은 둥근 표면 안에서 무엇이 움직이고 있는지 궁금하게 만듭니다. 하나는 구름을 발판으로 삼고, 다른 하나는 바닥과 허공에 흩어져 있습니다. 중력을 벗어난 듯 보이는 형상들 앞에서 오히려 그것들을 지탱하는 힘이 눈에 들어옵니다. ■ 손을 벗어나는 순간, 물질이 남기는 것 재료를 선택하는 것은 작가이지만, 재료의 성질까지 마음대로 정할 수는 없습니다. 종이는 접히는 방향에 따라 주름을 남기고, 천은 제 무게를 이기지 못해 아래로 처집니다. 어떤 재료는 손이 닿은 자리를 오래 간직합니다. 박용운의 〈대지의 숨결〉에서는 한지의 거친 결이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겹쳐진 표면은 갈라지고, 일부는 아래로 길게 늘어집니다. 찢어진 틈 사이로 섬유질이 드러납니다. 반듯하게 정돈된 부분보다 어긋나고 벌어진 자리에 시선이 머뭅니다. 한지를 다룬 작품인데 오래된 땅의 표면을 보는 듯합니다. 이해성의 〈숨골-지각변동〉에서는 푸른색과 흰색이 뒤섞인 형상이 벽면을 차지합니다. 그 아래에는 어두운 암석을 닮은 입체물들이 놓여 있습니다. 위쪽의 푸른 결을 보다가 아래쪽의 거친 표면으로 눈을 내리면 땅속에서 일어나는 움직임을 상상하게 됩니다. 숨골은 땅속으로 물이 스며드는 통로입니다. 겉으로 보이는 지표 아래에도 눈에 잡히지 않는 길이 있습니다. 이해성의 푸른 형상과 암석 같은 덩어리 사이에서는 그 보이지 않는 땅속의 움직임을 떠올리게 됩니다. 주연의 〈인(人) 없는 간(間)〉에는 전자부품과 회로가 등장합니다. 한때 기계 안에서 각자의 기능을 수행했을 부품들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원래의 자리에서 벗어나 낯선 배열을 이룹니다. 회로를 따라가다 보면 기계 내부를 들여다보는 듯하다가도, 부서진 도시의 일부를 마주한 듯합니다. 박용운의 한지에는 찢어지고 늘어진 흔적이, 이해성의 형상에는 갈라진 땅의 기척이, 주연의 전자부품에는 한때 쓰였던 물건의 이력이 남아 있습니다. 세 작가가 다루는 재료도, 그 성질도 다릅니다. 작가의 손을 거친 뒤에도 저마다의 물성을 잃지 않는다는 점은 닮았습니다. ■ 바람에 몸을 낮춘 풀은 패배한 것일까 김순관의 〈검은 수풀, 붉은 사슴의 시간〉에서는 검은 숲 사이로 붉은 사슴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나무와 풀이 빽빽하게 들어선 숲입니다. 흑백의 수풀 사이에서 사슴의 붉은 몸은 유난히 선명합니다. 사슴을 먼저 보게 되지만 곧 그 주변을 둘러싼 숲으로 눈이 옮겨갑니다. 사슴이 서 있는 자리와 수풀이 만들어낸 어둠은 서로를 더욱 또렷하게 합니다. 정재훈의 〈짧은 휴식〉에서는 바람에 기운 억새와 푸른 하늘을 만납니다. 바람은 보이지 않습니다. 한쪽으로 기운 풀의 몸을 통해 그 방향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풀은 바람을 막아서지 않습니다. 몸을 기울입니다. 그 움직임을 연약함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단단한 가지가 부러질 만큼 거센 바람에도 풀은 낮게 엎드려 그 시간을 건너갑니다. 어쩌면 버틴다는 것은, 끝까지 곧게 서 있는 일과는 다른 이야기인지도 모릅니다. 김남호의 〈신(神)의 사랑〉에는 분홍빛과 보랏빛이 겹쳐진 형상들이 있습니다. 심장을 연상시키는 윤곽 안쪽으로 색채와 질감이 쌓입니다. 가까이 들여다볼수록 표면의 흔적이 두드러집니다. 몸 안쪽에서 일어나는 박동을 색으로 옮겨놓은 듯합니다. 박세상의 〈고독(Solitude)〉은 반대로 넓은 공간을 비워둡니다. 노란 대지와 푸른 하늘이 맞닿은 곳에 작은 녹색 형상이 놓여 있습니다. 주변에는 그 형상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한 대상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 작은 존재가 얼마나 외로운지 설명하는 대신, 그 주위에 넓은 공간을 남겨둡니다. 김남호의 밀집된 색채와 박세상의 여백은 전혀 다른 밀도로 다가옵니다. 김순관의 숲에는 생명들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고, 정재훈의 풀은 보이지 않는 바람에 몸을 맡깁니다. 어떤 존재는 주변과 맞닿아 있고, 어떤 존재는 멀찍이 떨어져 있습니다. 어느 쪽이 더 단단하게 살아가는지 쉽게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 중심을 옮길 때마다 달라지는 질서 박금옥은 세 가지 서로 다른 형상을 내놓습니다. 〈생명〉에는 해마가, 〈기분좋은날〉에는 꽃이, 〈월아천충〉에는 겹겹의 원이 등장합니다. 해마의 굽은 몸과 꽃잎의 부드러운 윤곽, 안쪽으로 거듭 포개지는 원은 서로 닮지 않았습니다. 같은 작가의 표현이지만 어느 한 가지 형태로 묶이지 않습니다. 조이영의 〈존재의 고양(高揚)〉에서는 원형들이 마름모꼴 구도 안에 놓입니다. 중앙의 원과 주변의 형상들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마주합니다. 처음에는 가운데 놓인 원이 눈에 들어오지만, 곧 주변의 형태와 그 사이의 빈 공간을 따라가게 됩니다. 박금옥의 세 형상도 서로 나란히 놓였을 때 각자의 차이가 더욱 뚜렷해집니다. 해마의 굽은 선 옆에서 꽃잎의 윤곽이 달라 보이고, 그 곁의 동심원은 전혀 다른 리듬을 만듭니다. 이 전시에는 유난히 시선을 옮겨 다니게 하는 형상들이 많습니다. 구름을 올려다보다가 바닥의 구체를 내려다보고, 꽃들 사이의 작은 요정을 찾다가 전자부품의 복잡한 배열 앞에 멈춥니다. 어느 하나가 나머지 열한 작가의 중심이 되지는 않습니다. 각자의 세계가 제자리를 차지한 채 서로 다른 높이와 거리를 만들어냅니다. ■ 끝내 떠오르려는 것들에 관하여 《중력의 배신》이라는 제목에는 묘한 반항심이 있습니다. 중력은 누구에게나 작용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오래전부터 높은 곳을 동경하고, 중심에 가까워지려 하며, 흔들리지 않는 상태를 안정이라고 불러왔습니다. 그 기준을 전시장 안으로 가져오면 뜻밖의 장면들과 마주합니다. 구름 위의 작은 동물은 가느다란 줄에 의지해 서 있습니다. 바람에 기운 억새는 뿌리를 놓지 않고, 꽃들 사이에 숨어 있던 미몽은 뒤늦게 발견된 뒤에야 눈길을 끕니다. 처음에는 불안정해 보였던 자세가 다른 방식의 균형으로 읽힙니다. 작고 눈에 띄지 않던 존재가 풍경을 다시 보게 만듭니다. 전시를 기획한 주연 작가는 《중력의 배신》을 당연하게 믿어온 질서에 질문을 던지고, 그 틀을 벗어나려는 예술적 움직임을 탐색하는 자리로 설명합니다. 전시는 10일부터 16일까지 제주 이룸갤러리 한라일보점에서 열립니다. 개막 행사는 10일 오후 5시이며, 관람 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입니다. 담소미술창작스튜디오가 주최·주관하고 이룸갤러리 한라일보점이 후원합니다. 중력에 반기를 든다는 것은 반드시 공중으로 날아오르는 일만을 뜻할까. 바람에 몸을 낮추는 일도, 보이지 않는 곳에 뿌리를 내리는 일도 때로는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한 선택이 됩니다. 세상이 아래로 끌어당기는 동안에도, 어떤 것들은 자신만의 높이를 찾아갑니다.
2026-11-07
제주방송 김지훈(jhkim@ji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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