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에서 밀린 제주] ③ 숫자는 지켰다. 그러나 ‘왜 제주여야 하는지’는 답하지 못했다
제주 관광은 아직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항공 노선은 유지되고, 성수기 좌석은 채워집니다. 관광객 수도 급감이라고 단정하긴 어렵습니다. 그러나 이 수치들이 말해주지 않는 변화가 분명히 있습니다. 제주는 더 이상 ‘자동으로 선택되는 여행지’가 아닙니다. 지금 제주 관광이 마주한 문제는 침체가 아닙니다. 이미 드러난 것은 선택 구조에서의 이탈입니다. 연속기획 3편은 이 지점에서 출발합니다. 소비자의 계산이 바뀐 이후에도, 정책과 마케팅은 왜 여전히 과거의 기준에 머물러 있었는지 를 묻습니다. ■ 수요는 남았지만, 설득은 길어졌다 2026년 2월 현재, 제주 관광 상품에 대한 문의는 여전히 이어집니다. 검색량도 급격히 꺾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현장에서 반복되는 말은 분명합니다. “제주는 좋은데, 고민이 길어졌어요.” 통상적인 제주 2박 3일 기본형 패키지는 20만 원대 초반에서 출발합니다. 하지만 이동 자유도를 높이거나 체험을 추가하는 순간, 가격은 빠르게 30만 원대에 진입합니다. 이때 소비자의 질문은 명확합니다. “이 비용을 감수할 만한가.” 여행을 포기한 것이 아닙니다. 제주가 비교표에서 ‘설명해야 하는 대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제주 시내에서 개별여행객 중심 상품을 운영하는 한 중견 여행업체 ‘H’사 대표는 “가격이 비싸서 안 오는 게 아니라, 비용이 어디서 얼마나 더 붙는지를 설명해야 하는 순간이 제법 늘었다”며 “설명 과정에서 고객의 에너지가 먼저 소진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합니다. “결국 ‘괜찮다’가 아니라 ‘번거롭다’는 인상이 남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덧붙였습니다. ■ 문제는 가격이 아니라, 계산 방식 소비자의 기준점은 이미 바뀐지 오래였습니다. 국내 여행에서는 ‘하루 평균 비용’이라는 암묵적 출발선이 작동합니다. 이 선 안에서 여행지 경쟁은 점점 치열해지는 실정입니다. 제주는 이 구조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항공, 숙박, 렌터카, 체험이 분절된 채 계산되기 때문입니다. 같은 2박 3일 일정이라도 내륙 여행지는 “이 안에서 무엇을 더 누릴까”를 고민하지만 제주는 “이 정도를 감수할 가치가 있는가”를 먼저 묻게 됩니다. 이 차이는 단순히 인식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선택까지 걸리는 시간, 여행 중 체감 만족도, 그리고 ‘다시 올까’라는 판단까지 좌우하는 구조적 차이입니다. 온라인 여행 플랫폼에서 제주 상품을 기획, 판매하는 한 관계자는 “항공과 숙소를 묶어 제시하면 반응은 좋은데, 렌터카나 체험이 분리되는 순간 이탈률이 확 올라간다”며 “금액보다 ‘선택해야 할 항목 수’가 부담이 되는 게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고 있다”라고 설명합니다. ■ 정책은 ‘유지’에 머물고, 선택의 질문에는 답하지 못해 제주 관광 정책은 오랫동안 항공 노선 유지, 탑승률 방어, 관광객 수 관리에 초점을 맞춰 왔습니다. 단체 관광 인센티브와 좌석 지원은 급락을 막는 데 일정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 정책들은 왜 제주여야 하는지, 왜 다시 선택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성과 지표는 ‘얼마나 왔는가’에 머물렀고, ‘왜 선택됐는가’는 측정 대상조차 되지 않았습니다. 제주 관광 정책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사실 그동안 정책의 목표는 ‘줄지 않게 만드는 것’이었지, ‘다시 고르게 만드는 것’은 아니었다”며 “관광객 수가 유지되면 정책이 작동한다고 평가받는 구조 자체가 한계”라고 말합니다. ■ ‘노출’ 늘었지만, ‘설득’은 줄어든 이유 지금 제주의 문제는 홍보의 양이 아닙니다. 설명의 방향입니다. 소비자가 실제로 고민하는 지점은 분명합니다. 이동의 번거로움, 추가 비용이 발생하는 순간, 일정의 자유도와 체험의 밀도입니다. 하지만 정책과 마케팅은 여전히 이미지 노출과 방문 유도에 머물러 왔습니다. 제주 관련 캠페인을 다수 집행해온 한 마케팅 실무자는 “노출 지표는 계속 좋아졌지만, ‘그래서 어떻게 가면 되느냐’는 질문에는 답하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고 돌아봅니다. ‘가고 싶다’는 감정은 만들었지만, ‘고른다’는 결정을 돕지는 못했다는 말입니다. 이 어긋남이 제주를 선택지에서 밀어낸 셈입니다. ■ 할인으로는 넘을 수 없는 벽 제주의 문제는 비싸다는 인식 그 자체가 아닙니다. 그 가격을 정당화할 설명이 약해졌다는 점입니다. 할인과 인센티브는 결정을 앞당길 수는 있어도 다시 선택하게 만들지는 못합니다. 한 특급호텔 관계자는 “객실은 찬다. 신규 수요는 몰라도, ‘다음에 또 오겠다’는 말을 듣는 빈도가 확실히 줄었다”면서 “요즘은 만족과 재선택이 완전히 다른 문제라는 걸 체감한다”고 전했습니다. ■ 제주의 대안은 이미 시장이 보여주고 있다 해법은 새롭지 않습니다. 시장은 이미 방향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첫째, 항공·숙박·이동·핵심 체험을 하나의 계산으로 묶는 총액 설계형 체류 상품이 필요합니다. 비용 자체보다, 비용에 대한 불안을 먼저 줄여야 합니다. 실제로 일부 숙박업체와 소형 여행사는 항공 시간대에 맞춘 픽업은 물론, 필수 이동 동선을 포함한 총액형 상품을 시험 중입니다. 업계에서는 “이런 상품은 마진보다 재방문율이 먼저 반응한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습니다. 둘째, 노출 중심 홍보에서 결정 보조형 마케팅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가고 싶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고르기 쉽게 만드는 전략이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셋째, 정책의 성과 지표를 관광객 수가 아니라 재방문율·재선택률로 바꿔야 합니다. 측정하지 않는 것은 개선되지도 않습니다. 넷째, 제주다움은 풍경이 아니라 체류 경험으로 증명돼야 합니다. 짧은 일정에서도 “이건 제주라서 가능했다”는 기억을 남길 수 있어야 합니다. ■ 숫자를 넘는 순간, 선택은 돌아올 수 있다 제주 관광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다만 선택의 규칙이 바뀌었을 뿐입니다. 하루 평균 비용이라는 기준선 위에서 그 이상을 지불할 이유를 설명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제주는 다시 비교표의 가운데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이번 연속기획은 그 지점을 확인했습니다. 남은 질문은 하나입니다. 제주는 언제, 이 계산을 바꿀 준비를 할 것인가. 그 대답은 이제 정책과 현장의 몫입니다.
2026-02-07
제주방송 김지훈(jhkim@ji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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