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색을 입었더니, 삶의 리듬을 찾았다”… ‘감각의 전환’으로 완성한 런케이션을 제주에서 만나다
제주의 자연은 더 이상 배경이 아니었습니다. 옷이 되고, 감각을 환기시키며 배움의 언어로 작동했습니다. 관광과 패션, 웰니스가 느슨하게 결합된 이벤트가 아니라 자연을 해석하는 방식 자체를 바꾸는 실험이 제주에서 진행됐습니다. ‘네이처 투 웨어(Nature to Wear)’. 제주의 색을 관찰하고, 염색하고, 입는 전 과정을 하나의 학습이자 체류 경험으로 설계한 패션·웰니스 융복합 ‘런케이션(Learning+Vacation)’ 입니다. 제주는 지금, 자연을 다시 입는 법을 배우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실험은, 꽤 설득력 있는 작동 방식으로 다가왔습니다. 제주자치도와 제주관광공사는 최근 한국감성과학회와 공동으로 ‘Nature to Wear’ 패션·웰니스 런케이션 프로그램을 기획·운영했다고 15일 밝혔습니다. ‘제주에서 무엇을 볼 것인가’에서 나아가, ‘제주를 어떻게 감각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소환한 이번 프로젝트는 관광은 소비가 아니라 경험의 축적이라는 방향성을 비교적 또렷하게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 ‘보는 관광’에서 ‘입는 관광’으로… Nature to Wear의 설계 ‘Nature to Wear’는 이름 그대로 자연을 관찰하는 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자연을 색으로 분해하고, 재료로 이해하며, 신체 감각으로 체화하는 전 과정을 하나의 코스로 엮었습니다. 프로그램의 중심에는 컬러랩제주(Color Lab Jeju)가 있습니다. 제주의 자연색을 데이터와 감성의 경계에서 해석해 온 컬러랩제주의 문제의식에서 이 프로젝트는 출발했습니다. 색은 감각이지만, 동시에 기록 가능하고 공유 가능한 자산이라는 인식입니다. 참가자들은 컬러헌팅(Color Hunting)을 통해 마을과 해안, 오름의 색을 직접 채집하고 기록했습니다. 관찰이자, 자연을 시각 정보로 번역하는 작업이었습니다. 금오름 능선에서 체험한 노을의 색 변화 역시 풍경 감상에 머물지 않고, 지형과 식생,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 색의 스펙트럼을 몸으로 읽는 과정으로 확장됐습니다. ■ 천연염색과 원소재 농장… 지속가능 패션을 ‘현장’에서 배우다 둘째 날 진행된 씬오브제주의 천연염색 클래스는 프로그램의 핵심 장면이었습니다. 자연염료를 활용해 직접 패브릭을 염색하며, 참가자들은 제주의 색을 ‘기념품’이 아닌 제작물로 완성했습니다. 셋째 날 목화오름 농장을 찾은 참가자들은 목화 씨앗에서 솜, 실, 직물로 이어지는 전 과정을 확인했습니다. 지속가능한 패션(Sustainable Fashion)이 윤리적 슬로건이 아니라, 원소재 단계에서부터 설계돼야 한다는 사실을 현장에서 체득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농업–원소재–컬러–패션. 이 연결 구조는 제주 자연을 산업적 언어로 재해석한 하나의 모델에 가깝습니다. ■ 교수와 학생이 함께 머문 제주… 학·연 기반 런케이션의 가능성 이번 프로그램에는 제주대학교를 비롯해 인하대, 숭실대, KAIST, 경희대 등 10여 개 대학의 교수·학생·연구진이 참여했습니다. 연구자와 학습자가 체류의 주체로 들어왔다는 점에서 런케이션의 의미는 더욱 분명해졌습니다. 첫날 진행된 학회 발표와 ‘제주의 색과 가능성’ 강연은 프로그램의 방향을 명확히 했습니다. 이번 런케이션은 휴식의 변주가 아니라, 학습과 연구가 가능한 체류 구조라는 점에 무게가 실렸습니다. 김주연 숭실대학교 교수는 “여러 차례 제주를 찾았지만, 이번 방문은 가장 신선했고 가장 깊이 쉬는 경험이었다”며, “배움과 웰니스를 결합한 런케이션은 충분히 확장 가능하다”고 말했습니다. ■ 서부권 마을에서 확인한 체류의 밀도… ‘잠깐 들르는 관광’, 그 이상 프로그램은 장전리, 금성리, 금악리 등 서부권 마을을 중심으로 운영됐습니다. 이 지역은 대형 관광 동선에서 비켜난 공간이지만, 오히려 체류의 밀도를 높이기에는 최적의 조건을 갖춘 것으로 평가됐습니다. 마을을 걷고, 해안을 관찰하고, 농장을 방문하는 일정 속에서 참가자들은 ‘이동’이 아니라 ‘머묾’을 경험했습니다. 그 결과 만족도와 재방문 의향이 높게 나타났고, 단기 체험을 넘어 장기 체류형 콘텐츠로의 전환 가능성도 확인됐습니다. ■ 컬러랩제주가 보여준 방향성… 제주는 지금 ‘감각 산업’을 실험 중 이번 ‘Nature to Wear’는 제주 관광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묻는 프로젝트였습니다. 그 답은 분명합니다. 제주는 더 이상 많이 오는 곳이 아니라, 깊게 머무는 방식을 설계해야 하는 단계에 들어섰습니다. 컬러랩제주를 중심으로 한 이번 실험은 자연을 소모하지 않고, 감각 자산으로 전환하는 모델을 제시했습니다. 풍경의 소비를 넘어, 제주 관광은 이제 감각의 학습과 창작이 이루어지는 장으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제주관광공사 관계자는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제주 자연 기반 패션·웰니스 융복합 관광상품의 성장 가능성을 확인했다”며, “앞으로 상품화와 마케팅을 본격화하고, 지역 크리에이터와 관련 산업과의 협력을 강화해 제주형 지속가능 관광모델을 확장하겠다”고 밝혔습니다.
2025-12-15
제주방송 김지훈(jhkim@ji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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