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제청엔 20일째 답 없는 조희대…30분간 “사법권 독립” 역설
대법관 후보자를 다시 제청해 달라는 청와대의 요구가 나온 지 20일째인 오늘(17일), 조희대 대법원장이 40개국 사법부 수장들이 모인 자리에서 ‘사법권 독립’을 강조했습니다. 당초 10분가량으로 예정됐던 개회사는 30분 가까이 이어졌습니다. 조 대법원장은 어떤 도전에도 사법권의 독립은 지켜져야 한다고 밝혔고, 사법부와 입법부, 행정부 사이에는 상호 존중과 협력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지난달 28일 청와대가 손봉기 대법관 후보자를 다시 제청해 달라고 요구한 뒤 조 대법원장이 공식적인 답을 내놓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나온 발언입니다. 손 후보자나 청와대의 재제청 요구를 직접 거론하지는 않았습니다. ■ 10분 예정됐던 개회사, 30분 이어져 조 대법원장은 오늘 오전 서울 그랜드하얏트에서 열린 제20차 아시아·태평양 대법원장 회의 개회사에서 첫 세션 주제인 ‘사법부의 역할’을 소개하며 사법권 독립을 강조했습니다. 정치·사회적 분쟁이 갈수록 법원으로 향하고 국민의 기대가 커지는 상황일수록 법과 원칙을 지켜야 한다는 취지입니다. 법관에게는 어떤 난관에서도 두려움 없이 법과 원칙에 따라 재판할 용기가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대법원장에게는 법관들이 이런 의무를 다할 수 있도록 지원할 특별한 책임이 있다고 밝혔습니다. 입법부와 행정부도 언급하면서 사법 기능이 제대로 수행되려면 사법부와 입법부, 행정부 사이의 상호 존중과 협력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이어 협력은 각 기관의 고유한 책임을 존중하고 사법부의 독립을 보장하는 가운데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조 대법원장은 고조선의 홍익인간과 포항 중성리 신라비, 세종대왕의 훈민정음 창제를 차례로 꺼내 한국의 법치 전통을 설명했습니다. 한글 ‘나’와 ‘너’, ‘밥’과 ‘법’을 연결하기도 했습니다. 다른 사람의 희생을 대가로 자신의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거나 상대에게만 법을 지키라고 요구하는 행위를 묵과하면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설명입니다. 개회사 말미에는 10대 시절 쓴 자작시를 소개하고 성덕대왕신종의 종소리를 행사장에서 들려줬습니다. ■ 20일 전 청와대도 꺼낸 ‘존중’ 조 대법원장이 강조한 ‘존중’은 대법관 인선을 둘러싼 청와대와 대법원의 입장 차이와도 맞물립니다. 조 대법원장은 지난달 18일 노태악 전 대법관과 이흥구 전 대법관의 후임으로 손봉기 대구지법 부장판사와 김성수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이재명 대통령에게 임명 제청했습니다. 청와대는 열흘 뒤 김 후보자의 임명동의안은 국회에 제출했지만 손 후보자에 대해서는 다른 판단을 내렸습니다. 손 후보자의 임명동의안을 제출하지 않기로 하고 조 대법원장에게 재제청을 요구했습니다. 헌법 제104조 2항은 대법관을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청와대는 당시 제청과 임명이 삼권분립 원칙 아래 서로 다른 헌법기관에 배분된 권한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대법원장의 제청권은 대통령에게 부여된 실질적인 임명권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행사돼야 한다는 입장도 밝혔습니다. 재제청 요구에 대해서는 헌법이 예정한 ‘상호 견제’의 한 방식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당시 청와대가 내세운 논리에도 ‘존중’이 있었습니다. 제청이 각 기관에 대한 존중의 토대 위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설명이었습니다. 오늘 조 대법원장도 3부 사이의 상호 존중을 말했습니다. 이어 각 기관의 고유한 책임과 사법부 독립 보장을 협력의 전제로 제시했습니다. 20일의 시차를 두고 청와대와 대법원장이 모두 ‘존중’을 꺼냈지만 강조한 지점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청와대는 대통령의 실질적인 임명권을 강조했고, 조 대법원장은 각 기관의 고유한 책임과 사법부 독립을 함께 언급했습니다. ■ “다음 주 공식적으로”… 20일째 나오지 않은 답 조 대법원장은 청와대의 재제청 요구가 나온 지난달 28일 퇴근길에서 직접 입장을 밝혔습니다. 국민에게 심려를 끼쳐 송구하다며 내용을 검토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다음 주 중에 정리가 되면 공식으로 알려드리겠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예고했던 시점이 지난 뒤에도 재제청 요구에 대한 공식적인 입장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손 후보자를 다시 제청할지, 추천위원회가 추천했던 다른 후보자를 선택할지, 후보자 추천 절차를 다시 밟을지도 결정된 내용이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청와대는 재제청을 요구하면서 대법관 장기 공석으로 국민의 재판받을 권리가 침해되지 않도록 최대한 신속하게 절차를 진행해 달라고 요구한 상태입니다. 개회사에서도 재제청 문제는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 국내 논쟁 한복판에서 열린 사법수장 회의 이번 아·태 대법원장 회의에는 40개국 사법부가 참여했습니다. 한국 개최는 1999년과 2011년에 이어 세 번째로, 1985년 회의 창설 이후 가장 큰 규모입니다. OECD와 세계은행, 세계사법정의프로젝트(WJP) 등 13개 국제기구도 참석했습니다. 논의 주제 가운데 상당수는 현재 한국 사법부를 둘러싼 현안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첫 세션에서는 각국의 관점에서 본 ‘사법부의 역할’을 다루고, 내일(18일)은 언론과의 소통과 국민 신뢰, 사법부 부패 척결과 독립 수호 등을 논의합니다. 인공지능의 사법 활용도 주요 의제입니다. 조 대법원장은 AI가 사법 접근성을 높이고 절차의 효율을 향상시킬 수 있지만 신뢰성과 책임성, 사법적 판단의 온전성을 둘러싼 의문도 제기된다고 밝혔습니다.
2026-09-17
제주방송 김지훈(jhkim@ji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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