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값은 겨우 눌렀는데”… 이제 국채·세금·대출금리 흔들리나
주유소 가격표는 여전히 버티고 있습니다. 그 비용은 사라진 게 아니라 뒤로 밀리고 있었습니다. 정부는 중동전쟁 이후 치솟은 국제유가 충격을 막겠다며 두 달 가까이 석유제품 최고가격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휘발유와 경유 가격 급등은 일단 억제했습니다. 그런데 시장 분위기는 조금씩 달라지고 있습니다. 억눌린 유가 상승분이 쌓이는 가운데, 한국은행 내부에서는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까지 공개적으로 거론되기 시작했습니다. 정부는 가격 억제로 유가 상승을 막고, 한국은행은 통화 긴축 가능성을 열어두는 흐름입니다. 고유가 대응 비용이 이제 재정과 국채, 금리 문제로 번지기 시작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 휘발유 묶였다며… 실제 판매가 이미 2,000원 넘어 10일 산업통상부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 3월 13일부터 석유제품 최고가격제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정유사가 주유소에 공급하는 가격에 상한선을 두는 방식입니다. 현재 최고가격은 휘발유 리터(L)당 1,934원, 경유 1,923원, 등유 1,530원입니다. 하지만 이날 한국석유공사 오피넷 기준 전국 평균 판매가격은 휘발유 2,011.93원, 경유 2,006.23원으로 집계됐습니다. 제주만 해도 평균 가격은 휘발유 2,028.92원, 경유 2,020.52원으로 전국 평균을 웃돌았습니다. 정부가 가격을 억제하고 있어도 소비자 체감 가격은 이미 2,000원 선을 넘어선 상태입니다. 특히 제주 지역은 물류·운송 구조상 유가 상승분이 늦게 내려오고 빠르게 반영되는 특성이 있어 체감 부담이 더 크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정부는 지난 8일부터 적용된 5차 최고가격도 이전 수준으로 동결했습니다. 국제 유가 상승분을 추가 반영할 경우 소비자물가를 더 자극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입니다. 그나마 최고가격제와 유류세 인하 효과로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1.2%포인트(p) 낮춘 것으로 정부 당국은 추정하고 있습니다.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6%였습니다. 정부 계산대로라면 관련 조치가 없었을 경우 물가 상승률은 3% 후반대까지 올라갔을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억눌린 가격은 계속 누적되고 있습니다. 산업부에 따르면 현재까지 반영되지 못한 인상 요인은 휘발유 약 200원, 경유 약 400원, 등유 약 600원 수준입니다. 특히 경유는 화물·운송업계 부담과 연결돼 있어 가격이 한꺼번에 반영될 경우 시장 충격이 더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 물가 잡았지만… 정부 재정 부담은 가중 정부는 국제 유가 상승분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해 발생한 정유사 손실을 사후 보전하겠다는 입장입니다. 최고가격제가 길어질수록 재정 부담도 함께 커지는 구조입니다. 정부는 최고가격제를 6개월 유지하는 것을 전제로 목적예비비 4조 2,000억 원을 편성했습니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누적 손실 규모가 이미 3조원 안팎에 접근했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출구전략 역시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지금 가격 통제를 풀 경우 억눌렸던 상승분이 한꺼번에 시장에 반영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현 체제를 계속 유지하면 정부 재정 부담은 더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국제 유가가 다시 오르거나 호르무즈 해협 긴장이 확대될 경우 부담은 더 커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정부 입장에서는 가격을 풀자니 물가가 걱정이고, 계속 묶자니 재정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 한국은행 내부서 나온 ‘인상 사이클’ 최근 한국은행 내부에서는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도 공개적으로 언급되기 시작했습니다. 유상대 한국은행 부총재는 최근 아시아개발은행(ADB) 연차총회 이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인하보다는 인상 사이클 쪽으로 넘어가지 않을까 하는 것이 개인적 견해”라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중동전쟁 이후 유가와 환율이 동시에 오르면서 물가 압력이 예상보다 커질 수 있다는 판단이 반영된 것으로 해석됩니다.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 역시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유가 충격이 상당히 큰 만큼 물가에 무게를 두겠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그동안 경기 부양 쪽에 무게가 실렸다면, 최근에는 해물가 안정 중심으로 정책 분위기가 이동하는 모습입니다. ■ 국채 이미 급증… 금리 오르면 이자 부담 더 커져 문제는 정부 재정도 이미 여유로운 상황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한국은행 ‘2025년 자금순환’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정부 순자금조달 규모는 52조 6,000억 원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습니다. 재정 부족분을 국채 발행으로 메운 결과입니다. 정부와 공공기관 등을 포함한 국채 발행 규모는 127조 원으로, 전년보다 약 2.5배 증가했습니다. 이 상황에서 금리까지 상승 방향으로 움직이면 부담은 더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신규 발행하는 국채 금리가 올라가기 때문입니다. 특히 기존 채권 만기가 돌아올 때마다 더 높은 금리로 다시 차환 발행을 해야 하는 구조라 시간이 갈수록 이자 부담이 커질 수 있습니다. 정부는 올해 국채 이자비용을 약 30조 1,000억 원으로 추산하지만, 시장금리가 예상보다 높게 유지될 경우 추가 부담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 6,500조 빚 쌓였는데… 고금리 압박은 이제 시작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한국의 비금융부문 총부채는 처음으로 6,500조 원을 넘어섰습니다. 특히 가계와 기업 부채 상당수가 변동금리 구조인 만큼, 금리 상승이 본격화될 경우 민간 이자 부담도 빠르게 커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결국 지금 시장은 ‘기름값이 얼마나 오를까’보다, 억눌린 비용이 앞으로 세금·국채·대출이자 가운데 어디로 번질지를 보기 시작했습니다.
2026-05-10
제주방송 김지훈(jhkim@ji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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