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번 제주를 돈 게 아니다, 101번 내 인생을 다시 걸었다… 74세, 다시 신발 끈을 묶다
101번입니다. 제주올레 27개 코스, 437km를 한 바퀴 도는 길을 101번 반복했습니다. 만 74세 오세흥 씨 이야기입니다. 신발은 32켤레를 갈아신었고, 길 위에서 만난 이들에게 사준 밥공기만 수백 그릇이라고 합니다. 기록은 숫자로 남았지만, 변화는 사람 사이에 새겨졌습니다. 이제 200회 완주를 향해 신발 끈을 다시 묶었습니다. ■ 같은 길을 걸었지만, 같은 사람으로 남지 않았다 사단법인 제주올레는 지난 10일 오세흥 씨가 101회 완주를 달성했다고 12일 전했습니다. 경기도 안성에 거주하는 오 씨는 2016년 첫 완주 이후 10년 만에 101회라는 기록을 세웠습니다. 제주올레는 부속섬 코스를 포함해 총 27개, 437km로 이어진 장거리 도보길입니다. 배편이 맞아야 들어갈 수 있는 구간도 있고, 오르내림이 만만치 않은 코스도 적지 않습니다. 한 번 완주도 쉽지 않습니다. 이 길을 101번 걸었습니다. 오 씨에게 완주는 목표 달성이 아닙니다. 생활입니다. “사람은 돌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걷기 시작하잖아요. 걷기는 기본이고 당연한 일이에요.” 미소를 띠고 말을 이었습니다. “올레길이 왜 좋으냐고요? 솔직히 뭐라 설명을 못 하겠어요. 그래서 200회까지 걸어보려고요.” 좋다는 이유를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됩니다. 계속 걷는다는 선택이 이미 답입니다. 어느새 걷기는 취미를 넘어 삶의 리듬이 됐습니다. ■ “스벅 왜 가냐”던 아버지, 지금은 젊은 세대와 밥을 나눈다 오 씨의 변화는 가족의 말에서 가장 또렷하게 드러납니다. 101회 완주를 축하하기 위해 제주를 찾은 둘째 딸은 “예전엔 커피를 왜 스타벅스에서 마시냐며 질색하던 아빠였는데, 올레길을 걸으며 다양한 사람을 만난 뒤 훨씬 열린 사고로 이야기할 수 있는 상대가 됐어요”라고 전했습니다. 그래서 길에서 먼저 말을 건네게 됐다는 오 씨입니다. 어디서 왔느냐고 묻고, 같이 걸어보자고 권합니다. 2016년 캠핑카를 끌고 제주를 돌던 시절, 우연히 만난 청년 두 명에게 열흘 가까이 식사를 챙겨준 일도 있습니다. 101회 완주 소감을 이렇게 전하는 오 씨. “신발은 32켤레 갈았고, 밥은 수백 그릇 샀다.” 유쾌한 문장이지만, 그 안에는 스스로를 밀어붙인 시간이 들어 있습니다. 걷는 동안 체력만 키운 것이 아니라 사람을 남겼습니다. ■ 은퇴는 축소가 아니라 확장이라는, 몸의 증명 2010년 은퇴 후 한 달 살이를 위해 제주에 내려왔을 때 처음 올레길을 걸었습니다. 당시에는 길 표식과 정보가 지금처럼 정비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길이 좋아 안내소를 찾아가 현금으로 후원했습니다. 지금도 제주올레 후원자로 이름을 올리고 있습니다. 이번 101회 완주를 기념해 101만 원을 추가로 기부했습니다. 은퇴 이후의 시간도 비워두지 않았습니다. 반복해 걷는 순간은 흘려보내는 게 아니라 쌓아 올린 의미들이었습니다. 10년 동안 101번 완주한 것은 거리가 아닌, 태도의 축적입니다. 최근 제주올레에는 혼자 걷는 청년 여행자, 일과 이동을 병행하는 이들, 새로운 루틴을 찾는 중장년층이 함께 걷고 있습니다. 혼자 출발하지만 길 위에서는 서로 눈빛과 말을 섞습니다. 오세흥 씨는 그 한가운데서 자연스럽게 세대를 잇는 매개가 됐습니다. ■ 200회, 기록이 아니라 질문이 되다 왜 걷느냐는 질문에 길게 답하지 않습니다. 대신 이렇게 말합니다. “제주올레길 걷기는 멈출 수가 없다는 게 매력이죠.” 101번 완주한 것은 길이 아니었습니다. 자기 삶입니다. 32켤레의 신발은 닳았지만, 마음의 경계는 그 이상 옅어졌습니다. 밥공기 수백 그릇은 비용이 아니라 연결이었습니다. 사회는 빠르게 고령화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 씨는 굳이 가는 나이를 아쉬워하지도, 숨기려 하지도 않습니다. 대신 시야를 넓혔습니다. 74세의 한 남자가 제주를 101번 완주했습니다. 체력의 기록이 아니라, 삶의 방향을 고쳐 쓴 시간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제주를 101번 돈 사람이 아니라, 101번 자기 인생을 다시 시작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2026-02-12
제주방송 김지훈 (jhkim@jibs.co.kr)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