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흩어진 것들이 서로를 부를 때”… 2026 제주비엔날레, 신화·돌·유배로 제주의 시간을 다시 엮다
제주가 다시 움직입니다. 이번에는 방식이 다릅니다. 흩어져 있던 신화와 돌, 유배의 시간까지 한 자리로 모입니다. 바람이 스친 자리마다 남아 있던 이야기, 돌담 사이에 켜켜이 쌓여 있던 시간, 불리지 않던 이름들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사라졌다고 여겨졌던 기억들이 다시 감각으로 돌아옵니다. 2026 제5회 제주비엔날레는 그 지점을 겨냥합니다. 작품을 채워 넣기보다, 제주의 시간을 다시 배열하는 방식으로 전시의 틀을 세웠습니다. 제주도립미술관은 20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참여 작가와 공식 포스터를 공개했습니다. 전시는 8월 25일부터 11월 15일까지 83일간 이어지며, 제주도립미술관을 중심으로 제주돌문화공원과 원도심 일대에서 펼쳐집니다. 떨어져 있던 공간들은 하나의 흐름 안에 놓입니다. 이번 비엔날레에는 20개 국 69팀, 85명이 참여합니다. 국내 작가 44명 가운데 제주 작가가 21명으로 약 30%를 차지합니다. 규모보다 먼저 읽히는 것은 구성입니다. 공간의 배치, 주제의 전개, 관객의 동선까지 하나의 서사로 맞물립니다. 전시는 이야기를 정리하지 않습니다. 흩어져 있던 요소들이 서로를 향해 맞닿고, 그 사이에서 새로운 형상이 생겨납니다. 하나로 수렴되지 않는 제주의 시간은 여러 갈래로 남아 지금을 이룹니다. 결과를 제시하기보다, 과정 자체를 드러냅니다. 들어가면, 중간에 나오기 쉽지 않습니다. ■ 흩어짐을 전제로 설계하다 이번 비엔날레의 제목은 ‘허끄곡 모닥치곡 이야홍: 변용의 기술’입니다. 제주어 ‘허끄곡 모닥치곡’은 뒤섞이고 모인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이 전시는 완성된 형상을 앞세우지 않습니다. 서로 다른 요소들이 흩어지고 다시 모이며 형태를 바꾸는 과정, 그 자체를 중심에 둡니다. 공식 포스터는 이 방향을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줍니다. 글자의 구조를 해체한 뒤 다시 엮은 타이포그래피는 고정된 형태를 거부하고, 변화하는 리듬을 전면에 드러냅니다. 서로 다른 요소들이 맞물리는 순간의 긴장이 화면 위에 남습니다. 제주는 하나의 이미지로 환원되지 않습니다. 변화하는 상태, 그 자체로 놓입니다. ■ 유배, 돌, 신화… 시간의 층위가 교차하다 전시는 세 갈래로 나뉩니다. 유배, 돌, 신화. 제주도립미술관의 ‘유배 Human’은 고립의 시간을 새로운 감각의 출발점으로 끌어옵니다. 낯선 환경과 단절의 경험이 조형 언어로 자리 잡는 과정을 따라갑니다. 추사 김정희의 체류 경험에서 시작해, 이현태는 그 시간 속 감각을 현재로 불러냅니다. 아슬란 고이숨과 알라아 에드리스는 전쟁과 폭력 이후에도 남아 있는 기억을 통해 개인과 공동체의 층위를 짚습니다. 제주돌문화공원의 ‘검으나 돌은 구르고 굴러: 돌문화 Stone’는 현무암을 시간의 집적으로 바라봅니다. 생활 속에 스며든 질감이 하나의 문화로 굳어지는 과정을 읽어냅니다. 김정헌은 생명과 물질의 경계를 넘나드는 조형을 선보이고, 오카베 마사오와 미나토 치히로는 제주와 홋카이도를 교차시키며 장소에 축적된 기억을 호출합니다. 원도심의 ‘큰 할망의 배꼽: 신화 Deities’는 전시의 중심을 이룹니다. 제주아트플랫폼과 예술공간 이아, 갤러리 레미콘으로 이어지는 공간은 제주의 역사와 생활이 겹쳐 있는 곳입니다. 김상돈은 일상의 사물에서 토테미즘을 재구성하고, 곽윤주는 굿의 장면을 통해 공동체의 목소리를 끌어냅니다. 참여형 작업은 신화적 감각을 현재의 경험으로 치환합니다. ■ 관객이 들어오는 순간, 전시는 다른 장으로 넘어간다 이번 비엔날레는 관람의 위치를 다시 설정합니다. ‘접속, 지속, 결속’이라는 구조 아래 관객은 전시 안으로 들어옵니다. 참여형 미디어 설치와 퍼포먼스는 관객의 움직임에 따라 장면을 바꾸고, 원도심 곳곳에 배치된 인터페이스는 공간을 탐색의 경로로 바꿉니다. 전시는 고정된 결과로 남지 않습니다. 관객의 개입에 따라 계속 달라집니다. ■ 미술관을 넘어, 도시 전체가 하나의 구성으로 이번 비엔날레의 핵심은 연결입니다. 제주도립미술관에서 시작된 전시는 제주돌문화공원을 거쳐 원도심 전역에 걸쳐 펼쳐집니다. 각기 다른 장소에 쌓인 시간과 감각이 한 축으로 묶입니다. 원도심은 그 중심에서 작동합니다.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생활이 겹쳐 있는 공간 위에서, 전시는 장소와 맞닿습니다. 관람은 이동을 낳고, 이동은 경험으로 바뀝니다. ■ 전시를 다시 짜는 방식 비엔날레는 작품을 나열하는 데서 그치지 않습니다. 제주라는 장소 전체를 하나의 구성으로 다시 짜는 데 초점을 둡니다. 2017년 시작된 제주비엔날레는 10년의 축적 위에서 다음 단계를 향합니다. 제주의 시간과 공간, 기억과 감각을 함께 다루는 방식으로 전환을 시도합니다. 이종후 제주도립미술관장은 “이번 제주비엔날레는 전시를 보여주는 데서, 제주의 장소와 시간 그리고 그 안에 남아 있는 감각을 다시 체험하는 자리로 만들고자 한다”며 “원도심 곳곳에서 예술을 보고, 참여하고, 어우러지는 장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습니다.
2026-04-20
제주방송 김지훈(jhkim@ji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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