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8년 6월, '도민 폭압' 박진경 9연대장 직접 암살
'도민·민족 위해'...손 하사, 법정서 암살 사유 밝히기도
같은 해 사형 언도 받고 9월 23일 총살 당해
총살 직전 "민족 위해 싸우는 국방군 되게 하소서"
대한민국 1호 사형수로 역사에 기록제주4·3 의인(義人)으로 평가받는 손선호 하사의 본명이 '손순호(孫順鎬)'였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손 하사는 4·3 당시 제주도민 강경진압의 책임자로 지목된 박진경 9연대장을 직접 암살한 인물입니다.
제주4·3연구소(연구소)는 오늘(23일) 이 같은 조사 성과를 공유했습니다. 연구소는 "연구소 이사장을 지낸 김영범 대구대학교 명예교수가 손 하사의 친족 후손들을 만나고 족보 등의 자료로 추적해 새로운 사실에 확인됐다"라고 했습니다.
김 전 연구소 이사장 조사에 따르면, 손 하사(본명 손순호)는 경주 손씨 낙선당파(樂善堂派) 22세손으로, 부친 손태익(孫泰翼)의 1926년생 외아들이었습니다. 출생지는 경북 경주시 강동면 오금2리였습니다. 이곳에 있는 그의 생가 위치도 확인됐습니다. 손 하사가 입대 당시 결혼을 하지 않은 상태였다는 점도 후손들의 증언을 통해 확인했습니다.
앞서 잘못 알려졌던 이름인 '손선호(孫善鎬)'는 그의 6촌 형이란 사실도 밝혀졌습니다. 손선호 본인은 초등학교 교장을 역임했고, 족보 발간 시점인 1996년까지 생존해 있었습니다.
손순호가 어째서 '손선호'로 불렸는지에 대해선 정확한 답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김 전 이사장은 "경상도 방언 특유의 'ㅡ' 발음이 흔히 'ㅓ'로 들리곤 한다"라고 전제하며, "손 하사도 입영 시 본인 이름을 '순호'라고 발음했지만 모병관에게는 '선호'로 들려서 그렇게 적혔을 수 있다. 그로부터 그의 군 시절 이름이 '선호'로 굳어져 버리면서 본인도 그냥 받아들여 쓴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추측이 가능해 보인다"라는 추측을 내놨습니다.
연구소는 "손 하사의 시신이 어떻게 처리됐는지 현재로서 불명이고, 더 추적해야 할 사안"이라며 "그의 헛묘는 향리 앞산의 '녹방골'에 있다는데, 지금은 숲이 너무 우거져 진입이 어렵고 묘의 정확한 위치를 확인하기도 어려웠다"고 전했습니다.
한편, 손순호 하사 손에 암살된 박진경 대령은 4·3 당시 제주도에 주둔한 9연대 연대장으로 부임해 제주도민에 대한 무차별적인 폭압을 자행했습니다.
심지어 그는 연대장 취임식에서 "폭동사건을 진압하기 위해서는 제주도민 30만을 모두 희생시켜도 무방하다"고 발언하는가 하면, 재임 기간 한 달 동안 검거 선풍을 일으켜 무고한 민간인 수천 명을 잡아들이는 등 사태를 악화시켰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박 대령은 결국 부임 한 달 만인 1948년 6월 18일, 대령 진급 축하연을 마치고 숙소에서 잠을 자던 중 손순호 하사 등 부하들에 의해 암살됐습니다.
당시 암살에는 손 하사를 비롯해 문상길 중위, 배경용 하사, 양회천 이등상사, 이정우 하사, 신상우 하사, 강승규 하사, 황주복 하사, 김정도 하사 등 9명이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손순호 하사는 1948년 8월 9일 통위부 고등군법회의실에서 열린 재판에서 "3천만을 위해서는 30만 제주도민을 다 희생시켜도 좋다, 민족상잔은 해야한다고 역설해 실제 행동에 있어 무고한 양민을 압박하고 학살하게 한 박 대령은 확실히 반민족적이며 동포를 구하고 성스러운 우리 국방경비대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박 대령을 희생시키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라고 진술했습니다.
그는 며칠 후인 8월 14일 열린 결심공판 최후 진술에서 "박 대령을 암살하고 도망할 기회도 있었으나 30만 도민을 위한 일임으로 그럴 필요도 없었다"라며 " 하나의 생명이 30만의 도민을 위한 것이며 3천만 민족을 위한 것인 만큼 달게 처벌을 받겠다"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결국 손 하사와 문상길 중위는 같은 해 9월 23일 경기도 수색의 한 산기슭에서 총살형을 당했습니다. 당시 언론에 따르면, 손 하사는 총살형 집행 직전 '혈관에 파도치는 애국의 깃발'로 시작하는 군가를 부르다가 "오, 하나님이시여! 민족을 위하여 싸우는 국방군이 되게 하여 주십소서"라고기도를 올리고 최후를 맞았습니다. 손 하사와 문 중위는 대한민국 제1호 사형 집행수로 남게 됐습니다.
JIBS 제주방송 신동원 (dongwon@jibs.co.kr)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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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민·민족 위해'...손 하사, 법정서 암살 사유 밝히기도
같은 해 사형 언도 받고 9월 23일 총살 당해
총살 직전 "민족 위해 싸우는 국방군 되게 하소서"
대한민국 1호 사형수로 역사에 기록제주4·3 의인(義人)으로 평가받는 손선호 하사의 본명이 '손순호(孫順鎬)'였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손 하사는 4·3 당시 제주도민 강경진압의 책임자로 지목된 박진경 9연대장을 직접 암살한 인물입니다.

1996년 제작된 경주 손씨 낙선당파(樂善堂派) 족보 속 '손순호' 하사. (제주4·3연구소 제공)
제주4·3연구소(연구소)는 오늘(23일) 이 같은 조사 성과를 공유했습니다. 연구소는 "연구소 이사장을 지낸 김영범 대구대학교 명예교수가 손 하사의 친족 후손들을 만나고 족보 등의 자료로 추적해 새로운 사실에 확인됐다"라고 했습니다.
김 전 연구소 이사장 조사에 따르면, 손 하사(본명 손순호)는 경주 손씨 낙선당파(樂善堂派) 22세손으로, 부친 손태익(孫泰翼)의 1926년생 외아들이었습니다. 출생지는 경북 경주시 강동면 오금2리였습니다. 이곳에 있는 그의 생가 위치도 확인됐습니다. 손 하사가 입대 당시 결혼을 하지 않은 상태였다는 점도 후손들의 증언을 통해 확인했습니다.
앞서 잘못 알려졌던 이름인 '손선호(孫善鎬)'는 그의 6촌 형이란 사실도 밝혀졌습니다. 손선호 본인은 초등학교 교장을 역임했고, 족보 발간 시점인 1996년까지 생존해 있었습니다.
손순호가 어째서 '손선호'로 불렸는지에 대해선 정확한 답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김 전 이사장은 "경상도 방언 특유의 'ㅡ' 발음이 흔히 'ㅓ'로 들리곤 한다"라고 전제하며, "손 하사도 입영 시 본인 이름을 '순호'라고 발음했지만 모병관에게는 '선호'로 들려서 그렇게 적혔을 수 있다. 그로부터 그의 군 시절 이름이 '선호'로 굳어져 버리면서 본인도 그냥 받아들여 쓴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추측이 가능해 보인다"라는 추측을 내놨습니다.
연구소는 "손 하사의 시신이 어떻게 처리됐는지 현재로서 불명이고, 더 추적해야 할 사안"이라며 "그의 헛묘는 향리 앞산의 '녹방골'에 있다는데, 지금은 숲이 너무 우거져 진입이 어렵고 묘의 정확한 위치를 확인하기도 어려웠다"고 전했습니다.

손순호 하사의 후손이 재현해 그린 그의 생가모습. (제주4·3연구소 제공
한편, 손순호 하사 손에 암살된 박진경 대령은 4·3 당시 제주도에 주둔한 9연대 연대장으로 부임해 제주도민에 대한 무차별적인 폭압을 자행했습니다.
심지어 그는 연대장 취임식에서 "폭동사건을 진압하기 위해서는 제주도민 30만을 모두 희생시켜도 무방하다"고 발언하는가 하면, 재임 기간 한 달 동안 검거 선풍을 일으켜 무고한 민간인 수천 명을 잡아들이는 등 사태를 악화시켰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박 대령은 결국 부임 한 달 만인 1948년 6월 18일, 대령 진급 축하연을 마치고 숙소에서 잠을 자던 중 손순호 하사 등 부하들에 의해 암살됐습니다.
당시 암살에는 손 하사를 비롯해 문상길 중위, 배경용 하사, 양회천 이등상사, 이정우 하사, 신상우 하사, 강승규 하사, 황주복 하사, 김정도 하사 등 9명이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손순호 하사는 1948년 8월 9일 통위부 고등군법회의실에서 열린 재판에서 "3천만을 위해서는 30만 제주도민을 다 희생시켜도 좋다, 민족상잔은 해야한다고 역설해 실제 행동에 있어 무고한 양민을 압박하고 학살하게 한 박 대령은 확실히 반민족적이며 동포를 구하고 성스러운 우리 국방경비대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박 대령을 희생시키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라고 진술했습니다.
그는 며칠 후인 8월 14일 열린 결심공판 최후 진술에서 "박 대령을 암살하고 도망할 기회도 있었으나 30만 도민을 위한 일임으로 그럴 필요도 없었다"라며 " 하나의 생명이 30만의 도민을 위한 것이며 3천만 민족을 위한 것인 만큼 달게 처벌을 받겠다"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결국 손 하사와 문상길 중위는 같은 해 9월 23일 경기도 수색의 한 산기슭에서 총살형을 당했습니다. 당시 언론에 따르면, 손 하사는 총살형 집행 직전 '혈관에 파도치는 애국의 깃발'로 시작하는 군가를 부르다가 "오, 하나님이시여! 민족을 위하여 싸우는 국방군이 되게 하여 주십소서"라고기도를 올리고 최후를 맞았습니다. 손 하사와 문 중위는 대한민국 제1호 사형 집행수로 남게 됐습니다.

손순호 하사의 모친(왼쪽)과 누이동생 생전 모습. (제주4·3연구소 제공)
JIBS 제주방송 신동원 (dongwon@jibs.co.kr)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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