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꽃집에서 피어난 인생의 춤 ‘동백꽃당신’
“무대 위에 홀로 선 시간의 서사”
한 무용수가 있습니다.
말보다 먼저 몸이 움직였고, 말없이 울고 웃던 시간이 어느새 20년이 흘렀습니다.

이제 혼자서 ‘말’ 대신 ‘춤’으로, 그리고 ‘몸’으로 극을 만듭니다.
‘동백꽃당신’.

한 송이 꽃처럼 피어났다가, 고요히 낙화하는 삶.
그리고 그 꽃잎을 묵묵히 받아 안던 엄마의 손길.

춤꾼 박수현이 무대 위에서 홀로 펼치는 이야기.
엄마와 딸, 꽃과 사람, 그리고 그 사이에 놓인 따뜻한 침묵의 시간입니다.


■ 무대에 홀로 선 몸, 전통춤이 만든 서사적 반역

한국춤의 고유 형식인 ‘홀춤(獨舞)’은 원래부터 서사를 품고 있었습니다.
북과 장구, 피리와 해금이 이끄는 장단 속에서, 무용수는 자신의 삶을 덧입고 세상의 이치를 발밑으로 휘감습니다.

하지만 ‘극’이라는 이름을 달고 모든 것을 혼자 감당하는 무대는 또 다른 차원의 도전입니다.
‘동백꽃당신’은 그저 한 사람의 무용 리사이틀이 아닙니다.
오로지 혼자서 춤으로 극을 구성하면서, 음악과 이야기로 감정을 직조하는 ‘무용극’입니다.

연극계에서 1인극이 서사성과 몰입도의 대안으로 주목받는 지금, 한국무용이 그 흐름을 따라 첫 장면을 써내려가는 순간입니다.

■ 제주라는 무대, 꽃이라는 은유.. ‘몸’으로 시간의 풍경을 말하다

이야기의 배경은 ‘엄마의 꽃집’입니다.
관객은 무대를 마주하며 어느새 꽃집의 한켠에 들어선 딸이 됩니다.

짧은 인생을 꿋꿋이 살아낸 엄마와, 도시로 떠났던 딸, 그리고 그 둘을 잇는 동백꽃이 무대 위에서 피고 집니다.

제주에서 활동해온 무용가 박수현은 이 작품에서 지역성과 보편성을 동시에 풀어냅니다.
4·3의 기억을 환기시키는 동백꽃이라는 상징은 개인의 기억 속 ‘엄마’로 옮겨지고, 꽃의 생애는 인간의 삶과 겹쳐집니다.

화려하지만 짧고, 고요하지만 강인한 삶의 흐름이 춤사위마다 조용히 흘러나옵니다.

■ 말하지 않아도 닿는 감정.. ‘대사 없는 연극’의 진짜 실험

무대에는 대사가 없습니다.
연극배우처럼 또렷한 발음도, 내면을 쥐어짜는 독백도 없습니다.

대신, 보컬 라난의 내레이션이 잔잔한 서사를 열어주고, 인물의 몸짓은 그 길을 따라가며 감정의 변주를 만들어냅니다.

작곡가 허준혁의 전통악기 선율이 춤의 호흡을 살리고, 조명 디자이너 김도경의 설계는 공간을 살아 있는 시간으로 탈바꿈시킵니다. 연출은 시나리오 실험에 강한 오상운이 맡아, 무용극이라는 장르를 낯설지만 세련되게 조율합니다.


■ 1인 무용극의 진짜 가능성.. ‘몸’으로, 동시대 예술을 말하다

‘동백꽃당신’은 물리적 독무(獨舞)를 넘은 서사적 홀로서기입니다.
극도로 감각이 절제된 반면, 표현은 오히려 더 깊고 넓어졌습니다.

감정은 소리보다 느리게 도달하지만, 그 여운은 오랫동안 관객의 마음에 머뭅니다.

1인극이 연극계 대안으로 떠오른 지금, ‘동백꽃당신’은 한국무용이 어떻게 동시대의 서사를 감당할 수 있는지를 ‘몸’으로 증명합니다.

춤은 언어가 아닙니다. 경험입니다.
무대에선 말이 사라졌지만, 감정은 오히려 더 가까이, 더 깊이 다가옵니다.

공연은 24일 오후 3시와 7시, 단 두 차례. 예매는 인터파크에서 가능합니다.

누군가의 엄마를, 누군가의 딸을, 그리고 바로 당신을 위한 무대.
당신 안의 ‘동백꽃 한 송이’.

이제 무대 위에서 피어날 차례입니다.


JIBS 제주방송 김지훈(jhkim@jibs.co.kr)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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