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지 작가, 제주 바다와 들꽃의 틈에서
‘컨템포러리 풍경’을 다시 짓다
26일~6월 7일 제주시 ‘돌담갤러리’서
# 낯선 바람 속에, 감정은 풍경을 따라 눕습니다.
풍경은 이제 멀리 떨어진 감상의 대상이 아닙니다.
그것은 마음이 잠시 기대어 숨 고를 수 있는 자리이며, 기억과 회복이 포개지는 감정의 표면입니다.
자연을 바라보는 대신, 그 안으로 걸어 들어가 눕는 감각을 택합니다.
26일부터 제주시 돌담갤러리에서 시작하는 김미지 작가의 개인전 ‘컨텐포러리 이스케이프(Contemporary Landscape)’는 들꽃과 꺾인 가지, 그리고 그 틈에 포개진 작가의 시간과 심상이 얽힌 회화 20점으로 구성됩니다.
풍경이라는 익숙한 언어를 통해, 회화가 다시 감정의 구조가 되는 순간을 보여줍니다.
■ 꽃잎을 따라 굽은 마음이 다시 피어오르다
김미지 작가는 대구에서 태어나 대구가톨릭대학교에서 서양화를 전공했습니다.
결혼과 육아로 오랜 시간 작업에서 물러나 있었던 그는, 제주라는 낯선 땅에서 다시 붓을 들었습니다.
“지난 8년간 제주에서 작업과 삶에 대해 깊이 고민했고, 나를 대신해 말해줄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는 작가는 “그 답이 바로 제주 바다를 배경으로 한 들꽃 풍경이었다”고 작업의 배경을 전했습니다.
코로나 후유증으로 창작을 멈추고 있던 어느 날, 작가는 서우봉 비탈길에서 널브러진 들꽃과 마주했습니다.
그 순간 “그 풍경 안에 내 모습이 있었다”는 직감이 찾아왔고, 다시 작업실로 돌아가 붓을 들었습니다.
이번 전시는 그 복귀의 시간 속에서 태어난, 가장 조용한 선언입니다.
■ 꺾인 가지에 기대어 그리는 것은 나의 시간
작품 속 자연은 고요하지만 단단합니다.
바람에 눕는 들꽃, 비틀린 가지, 그리고 화면을 조용히 기어가는 작은 생명들.
이들은 모두 한 여성 작가의 복잡한 내면과 감정의 반영이 됩니다.
작가는 “풍경과의 거리를 좁히고 싶었다. 멀찍이서 바라보는 대상이 아니라, 그 안에 들어가 눕고 싶었다”고 전시 취지를 밝혔습니다.
이렇게 펼쳐보이는 회화는 단순히 재현이 아닌, 감정과 존재가 나란히 눕는 자리로서의 풍경입니다.
풍경이 곧 자화상이 되는 방식으로, 작가는 화면 속에 자신을 포개놓습니다.
■ ‘되어가는 존재’로서 자연을 받아들이다
작가의 작업은 프랑스 철학자 들뢰즈(Gilles Deleuze)와 가타리(Félix Guattari)가 말한 ‘되기(becoming)’ 개념과도 깊이 연결됩니다. 이들은 인간이 고정된 본질을 지닌 존재가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고 생성하는 존재라고 보았습니다.
타자와의 접속을 통해 스스로를 변형하는 과정을 ‘되기’라고 명명했듯 작가가 그린 풍경은 단지 자연의 외형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들꽃이 되고, 꺾인 가지가 되고, 벌레가 되어가는 감각 자체를 담고 있습니다.
이는 동물-되기(becoming-animal), 식물-되기(becoming-plant), 소수자-되기(becoming-minor)와 같은 ‘되기’의 흐름 속에서 존재의 경계를 허물고, 감각을 다시 구성하는 회화적 실천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 회화는 자연을 외부에서 바라보는 시선을 거부하고, 자연과의 밀착된 접촉을 통해 감정과 존재를 다시 짓습니다.
작가의 풍경은 통상적인 배경이 아닌, 끊임없이 생성되고 연결되는 되기-자연(becoming-nature)의 장면으로 환치해볼 수 있습니다.
■ 모든 존재, 수평에 놓이는 감각.. 중심이 없는 풍경
화면 위에 주인공은 없습니다. 굳이 누가 주인공인지 묻지 않습니다.
모든 존재는 수평적으로 놓여 있고, 하나하나가 제 위치에서 숨을 쉽니다.
들꽃, 꺾인 가지, 벌레, 그리고 작가 자신의 감정까지, 모두가 한 평면 안에 나란히 존재합니다. 이 위계 없는 구성은 인간이 자연을 지배하거나 해석의 중심에 서지 않고, 그 곁에 조용히 눕는 존재로 자리하는 감각을 보여줍니다.
이 지점에서 회화는 포스트휴먼(posthuman) 시대의 생태 감수성을 회화적으로 실현합니다.
자연은 배경이 아니라 관계이며, 회화는 감정과 생명이 조용히 공존하는 방식으로 다시 쓰입니다.
작가는 “배경이 되었던 바다도 떠나보낸다”고 말합니다. 이제 바다는 멀리 있고, 들꽃과 꺾인 가지가 화면을 가득 메웁니다.
한 사람의 삶이 겹쳐진 감정의 풍경이며, 살아낸 시간의 흔적입니다.
■ 회화는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조용히 살게 한다
미국의 미학자이자 예술비평가인 로잘린드 크라우스(Rosalind E. Krauss)는 예술이 더 이상 특정 매체의 고유성에 머물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이를 ‘포스트미디엄의 조건’(the post-medium condition)이라 명명하며, 현대 예술이 물성 중심의 매체 논리에서 벗어나 감각(sensory experience), 시간성(temporality), 신체의 체류(corporeal duration) 같은 체험 중심의 구조로 이동하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작가는 그 전환을 자신의 화폭에서 조용한 방식으로 감각화합니다. 작품은 어떤 재료로 그려졌는가보다, 그 안에서 무엇이 눕고, 숨 쉬며, 흔들리는지를 보여줍니다.
화면은 이미지의 외곽이 아닌 감정의 밀도로 채워지고, 관객은 그것을 바라보는 자리에 머물지 않습니다.
그 풍경 안에 앉고, 머물고, 숨을 섞는 사람으로 천천히 이끌립니다.
이 회화는 말하지 않지만, 오래 남습니다.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내는 감각이 됩니다.
■ 풍경도 아니고, 나도 아닌.. 새로운 감각을 그리다
작가는 “풍경도 아니고, 나도 아닌 새로운 풍경을 그리고 싶었다. 정형화된 자연이 아니라, 지금의 감각을 담은 풍경을 표현하고 싶었다”며, “조금 더 세련되고 컨템포러리한 존재로 풍경을 다시 구성하고자 했다”고 전시의 방향을 설명했습니다.
회화는 자연의 묘사에만 머무르지 않습니다.
이는 감정의 무늬로 짜인 장소이며, 한 작가가 삶의 외곽에서 다시 중심으로 돌아오는 여정입니다.
그 과정 속에서 풍경은 말없이 자리를 내어주고, 감정은 화면 위에 천천히 놓입니다.
■ 관객은 그 곁에 잠시 앉는 사람
돌담갤러리는 전시 공간 그 이상입니다.
작가가 삶을 눕힌 자리이며, 관객이 자신의 감각과 기억을 조심스럽게 앉혀볼 수 있는 무대입니다.
그림은 말이 없지만, 질문을 건넵니다.
“그 풍경 안에, 당신도 함께 눕고 싶은가요?”
전시는 6월 7일까지 무휴로 운영되며, 매일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6시까지 관람할 수 있습니다.
JIBS 제주방송 김지훈(jhkim@jibs.co.kr) 기자
<저작권자 © JIBS 제주방송,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컨템포러리 풍경’을 다시 짓다
26일~6월 7일 제주시 ‘돌담갤러리’서

김미지 作
# 낯선 바람 속에, 감정은 풍경을 따라 눕습니다.
풍경은 이제 멀리 떨어진 감상의 대상이 아닙니다.
그것은 마음이 잠시 기대어 숨 고를 수 있는 자리이며, 기억과 회복이 포개지는 감정의 표면입니다.
자연을 바라보는 대신, 그 안으로 걸어 들어가 눕는 감각을 택합니다.
26일부터 제주시 돌담갤러리에서 시작하는 김미지 작가의 개인전 ‘컨텐포러리 이스케이프(Contemporary Landscape)’는 들꽃과 꺾인 가지, 그리고 그 틈에 포개진 작가의 시간과 심상이 얽힌 회화 20점으로 구성됩니다.
풍경이라는 익숙한 언어를 통해, 회화가 다시 감정의 구조가 되는 순간을 보여줍니다.
■ 꽃잎을 따라 굽은 마음이 다시 피어오르다
김미지 작가는 대구에서 태어나 대구가톨릭대학교에서 서양화를 전공했습니다.
결혼과 육아로 오랜 시간 작업에서 물러나 있었던 그는, 제주라는 낯선 땅에서 다시 붓을 들었습니다.
“지난 8년간 제주에서 작업과 삶에 대해 깊이 고민했고, 나를 대신해 말해줄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는 작가는 “그 답이 바로 제주 바다를 배경으로 한 들꽃 풍경이었다”고 작업의 배경을 전했습니다.
코로나 후유증으로 창작을 멈추고 있던 어느 날, 작가는 서우봉 비탈길에서 널브러진 들꽃과 마주했습니다.
그 순간 “그 풍경 안에 내 모습이 있었다”는 직감이 찾아왔고, 다시 작업실로 돌아가 붓을 들었습니다.
이번 전시는 그 복귀의 시간 속에서 태어난, 가장 조용한 선언입니다.

김미지 作
■ 꺾인 가지에 기대어 그리는 것은 나의 시간
작품 속 자연은 고요하지만 단단합니다.
바람에 눕는 들꽃, 비틀린 가지, 그리고 화면을 조용히 기어가는 작은 생명들.
이들은 모두 한 여성 작가의 복잡한 내면과 감정의 반영이 됩니다.
작가는 “풍경과의 거리를 좁히고 싶었다. 멀찍이서 바라보는 대상이 아니라, 그 안에 들어가 눕고 싶었다”고 전시 취지를 밝혔습니다.
이렇게 펼쳐보이는 회화는 단순히 재현이 아닌, 감정과 존재가 나란히 눕는 자리로서의 풍경입니다.
풍경이 곧 자화상이 되는 방식으로, 작가는 화면 속에 자신을 포개놓습니다.
■ ‘되어가는 존재’로서 자연을 받아들이다
작가의 작업은 프랑스 철학자 들뢰즈(Gilles Deleuze)와 가타리(Félix Guattari)가 말한 ‘되기(becoming)’ 개념과도 깊이 연결됩니다. 이들은 인간이 고정된 본질을 지닌 존재가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고 생성하는 존재라고 보았습니다.
타자와의 접속을 통해 스스로를 변형하는 과정을 ‘되기’라고 명명했듯 작가가 그린 풍경은 단지 자연의 외형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들꽃이 되고, 꺾인 가지가 되고, 벌레가 되어가는 감각 자체를 담고 있습니다.
이는 동물-되기(becoming-animal), 식물-되기(becoming-plant), 소수자-되기(becoming-minor)와 같은 ‘되기’의 흐름 속에서 존재의 경계를 허물고, 감각을 다시 구성하는 회화적 실천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 회화는 자연을 외부에서 바라보는 시선을 거부하고, 자연과의 밀착된 접촉을 통해 감정과 존재를 다시 짓습니다.
작가의 풍경은 통상적인 배경이 아닌, 끊임없이 생성되고 연결되는 되기-자연(becoming-nature)의 장면으로 환치해볼 수 있습니다.
■ 모든 존재, 수평에 놓이는 감각.. 중심이 없는 풍경
화면 위에 주인공은 없습니다. 굳이 누가 주인공인지 묻지 않습니다.
모든 존재는 수평적으로 놓여 있고, 하나하나가 제 위치에서 숨을 쉽니다.
들꽃, 꺾인 가지, 벌레, 그리고 작가 자신의 감정까지, 모두가 한 평면 안에 나란히 존재합니다. 이 위계 없는 구성은 인간이 자연을 지배하거나 해석의 중심에 서지 않고, 그 곁에 조용히 눕는 존재로 자리하는 감각을 보여줍니다.
이 지점에서 회화는 포스트휴먼(posthuman) 시대의 생태 감수성을 회화적으로 실현합니다.
자연은 배경이 아니라 관계이며, 회화는 감정과 생명이 조용히 공존하는 방식으로 다시 쓰입니다.
작가는 “배경이 되었던 바다도 떠나보낸다”고 말합니다. 이제 바다는 멀리 있고, 들꽃과 꺾인 가지가 화면을 가득 메웁니다.
한 사람의 삶이 겹쳐진 감정의 풍경이며, 살아낸 시간의 흔적입니다.

김미지 作
■ 회화는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조용히 살게 한다
미국의 미학자이자 예술비평가인 로잘린드 크라우스(Rosalind E. Krauss)는 예술이 더 이상 특정 매체의 고유성에 머물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이를 ‘포스트미디엄의 조건’(the post-medium condition)이라 명명하며, 현대 예술이 물성 중심의 매체 논리에서 벗어나 감각(sensory experience), 시간성(temporality), 신체의 체류(corporeal duration) 같은 체험 중심의 구조로 이동하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작가는 그 전환을 자신의 화폭에서 조용한 방식으로 감각화합니다. 작품은 어떤 재료로 그려졌는가보다, 그 안에서 무엇이 눕고, 숨 쉬며, 흔들리는지를 보여줍니다.
화면은 이미지의 외곽이 아닌 감정의 밀도로 채워지고, 관객은 그것을 바라보는 자리에 머물지 않습니다.
그 풍경 안에 앉고, 머물고, 숨을 섞는 사람으로 천천히 이끌립니다.
이 회화는 말하지 않지만, 오래 남습니다.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내는 감각이 됩니다.

■ 풍경도 아니고, 나도 아닌.. 새로운 감각을 그리다
작가는 “풍경도 아니고, 나도 아닌 새로운 풍경을 그리고 싶었다. 정형화된 자연이 아니라, 지금의 감각을 담은 풍경을 표현하고 싶었다”며, “조금 더 세련되고 컨템포러리한 존재로 풍경을 다시 구성하고자 했다”고 전시의 방향을 설명했습니다.
회화는 자연의 묘사에만 머무르지 않습니다.
이는 감정의 무늬로 짜인 장소이며, 한 작가가 삶의 외곽에서 다시 중심으로 돌아오는 여정입니다.
그 과정 속에서 풍경은 말없이 자리를 내어주고, 감정은 화면 위에 천천히 놓입니다.
■ 관객은 그 곁에 잠시 앉는 사람
돌담갤러리는 전시 공간 그 이상입니다.
작가가 삶을 눕힌 자리이며, 관객이 자신의 감각과 기억을 조심스럽게 앉혀볼 수 있는 무대입니다.
그림은 말이 없지만, 질문을 건넵니다.
“그 풍경 안에, 당신도 함께 눕고 싶은가요?”
전시는 6월 7일까지 무휴로 운영되며, 매일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6시까지 관람할 수 있습니다.
JIBS 제주방송 김지훈(jhkim@jibs.co.kr)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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