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지 작가 개인전 ‘Moving White Garden–Yeon dong(연동)’
6~23일 제주시 ‘담소창작스튜디오갤러리’서
버려진 껍질은 더 이상 쓰레기가 아닙니다.
한때 하나였다가 떨어져 나간 파편은 흩어진 순간에도 서로를 기다리듯 모여 또 다른 질서를 만듭니다.
공허 속에서 이어진 작은 반복은 우연처럼 시작되지만, 시간이 쌓이면 필연으로 남습니다.
그 흔적은 공백조차 삼켜 새로운 얼굴을 드러내고, 멈춤의 시간마저 하나의 재료가 됩니다.
치밀한 설계도, 완성의 강박도 없습니다.
붙이고 떼어내는 행위가 우연을 필연으로 바꾸고, 흔적은 돌봄의 질서로 확장됩니다.
고요 속에서도 떨림은 끊임없이 번지고, 그 미세한 떨림은 살아 있다는 증거로 다가옵니다.
20년의 공백을 지나 다시 세운 자리에서 만나는 예술.
미학의 경계에서 가만히 자신의 호흡을 일상으로 얹습니다.
김미지 작가의 개인전 ‘Moving White Garden–Yeon dong(연동)’이 6일 제주시 담소창작스튜디오갤러리에서 막을 올렸습니다.
■ 버려진 껍질, 흰 정원으로 피어나다
붙잡은 재료는 공업용 핫멜트(hot-melt)입니다. 물건을 감싸고 떼어내며 생겨난 얇은 껍질은, 원래라면 버려질 부산물입니다.
그러나 작가의 손끝에서 모이고 겹쳐져, 전시장 전체를 흰 정원으로 확장했습니다.
가까이 다가서면 기포가 남은 표면, 갈라진 결, 빛을 머금은 반투명한 질감이 눈에 들어옵니다. 단순히 재료들의 집합체가 아니라 돌봄과 반복의 시간이 남긴 시간의 피부입니다.
작가는 “붙였다가 떼어낸 조각들이 다시 모여 생명이 되는 과정을 지켜보는 일이 내겐 큰 힘이 된다”고 설명합니다.
그렇게 온갖 흔적들이 새로운 생명으로 되살아나는 장면을 작품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 떨림의 조각, 현장이 만든 리듬
작품은 고요히 놓여 있는 듯하지만 결코 멈춰 있지 않습니다. 와이어에 걸린 껍질은 관람객의 호흡과 공기의 흐름에 따라 흔들립니다.
작가는 “내가 설계한 게 아니라 재료 스스로 보여준 움직임”이라 전합니다.
이 의도치 않은 떨림이 작품의 언어가 됩니다.
순간적으로 발생한 흔들림은 보는 이들의 감각에 각인되고, 작품은 오브제에서 살아 있는 현장으로 탈바꿈합니다.
■ 흔적과 돌봄, 동시대 미학의 언어
작가의 작업은 완성된 형상보다 흔적, 돌봄, 반복의 과정에 가치를 두는 동시대 미학과도 닮았습니다.
국제 미술계에서는 파편을 감추지 않고 드러내며, 수리와 돌봄을 예술적 가치로 바라보는 흐름이 뚜렷하게 관찰됩니다.
2018년 영국의 학술지 ‘Third Text’의 ‘Ethico-Aesthetic Repairs’ 특집, 2022년 Routledge의 ‘Care Aesthetics’, 그리고 파리와 헬싱키에서 열린 ‘The Great Repair’, ‘FIX: Care and Repair’가 대표적 사례입니다.
그렇다고 이러한 이론의 답습도 아닙니다. 생활 속에 반복된 행위가 자연스럽게 이 지점에 닿았습니다.
붙이고 떼어내는 행위들이 결국 동시대 미학의 언어로 구현된 셈입니다.
■ 사적인 빛에서 공적인 풍경으로
작업의 부제 ‘연동’은 작가가 생활하며 작업하는 제주의 공간입니다.
창(窓)으로 들어오던 바다 빛은 개인적으로는 위안의 순간이었지만, 전시장에서는 흰 껍질의 군집으로 변주돼 누구나 공유할 수 있는 풍경으로 바뀝니다.
“제주의 생활 속에서 얻은 작은 위안이 전시장에서는 다른 사람의 감각으로 다시 살아나길 바랐다”는 작가의 고백처럼, 사적인 기억은 예술적 매개를 거쳐 타인의 감각으로 확장됩니다.
■ 20년의 공백, 다시 세운 자리
대구가톨릭대학교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작가는 결혼과 육아로 20년 가까운 공백을 겪었습니다.
“남들이 달려가는 동안 멈춰 있었다는 사실이 두려웠다”는 작가는 “하지만 그 시간조차 내 작업의 재료가 되었다”고 회상합니다.
공백을 딛고 복귀한 이후, 작가는 핫멜트 껍질을 기반으로 한 ‘화이트·블랙 가든’ 연작으로 자신만의 언어를 구축했습니다.
서울과 대전에서 개인전을 열었고, 담소미술창작스튜디오 우수작가 대상에 선정(2022)되며 주목 받았습니다.
지금은 제주시 연동에 작업실을 마련해, 생활과 작업이 맞닿은 자리에서 활발히 작업과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전시는 23일까지 이어지며,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관람 가능합니다.
전시 기간 중 휴관일은 없습니다.
JIBS 제주방송 김지훈(jhkim@jibs.co.kr) 기자
<저작권자 © JIBS 제주방송,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6~23일 제주시 ‘담소창작스튜디오갤러리’서
김미지 作. (우측면 모습)
버려진 껍질은 더 이상 쓰레기가 아닙니다.
한때 하나였다가 떨어져 나간 파편은 흩어진 순간에도 서로를 기다리듯 모여 또 다른 질서를 만듭니다.
공허 속에서 이어진 작은 반복은 우연처럼 시작되지만, 시간이 쌓이면 필연으로 남습니다.
그 흔적은 공백조차 삼켜 새로운 얼굴을 드러내고, 멈춤의 시간마저 하나의 재료가 됩니다.
치밀한 설계도, 완성의 강박도 없습니다.
붙이고 떼어내는 행위가 우연을 필연으로 바꾸고, 흔적은 돌봄의 질서로 확장됩니다.
고요 속에서도 떨림은 끊임없이 번지고, 그 미세한 떨림은 살아 있다는 증거로 다가옵니다.
20년의 공백을 지나 다시 세운 자리에서 만나는 예술.
미학의 경계에서 가만히 자신의 호흡을 일상으로 얹습니다.
김미지 작가의 개인전 ‘Moving White Garden–Yeon dong(연동)’이 6일 제주시 담소창작스튜디오갤러리에서 막을 올렸습니다.
김미지 作. (부분)
■ 버려진 껍질, 흰 정원으로 피어나다
붙잡은 재료는 공업용 핫멜트(hot-melt)입니다. 물건을 감싸고 떼어내며 생겨난 얇은 껍질은, 원래라면 버려질 부산물입니다.
그러나 작가의 손끝에서 모이고 겹쳐져, 전시장 전체를 흰 정원으로 확장했습니다.
가까이 다가서면 기포가 남은 표면, 갈라진 결, 빛을 머금은 반투명한 질감이 눈에 들어옵니다. 단순히 재료들의 집합체가 아니라 돌봄과 반복의 시간이 남긴 시간의 피부입니다.
작가는 “붙였다가 떼어낸 조각들이 다시 모여 생명이 되는 과정을 지켜보는 일이 내겐 큰 힘이 된다”고 설명합니다.
그렇게 온갖 흔적들이 새로운 생명으로 되살아나는 장면을 작품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김미지 作. (후면 모습)
■ 떨림의 조각, 현장이 만든 리듬
작품은 고요히 놓여 있는 듯하지만 결코 멈춰 있지 않습니다. 와이어에 걸린 껍질은 관람객의 호흡과 공기의 흐름에 따라 흔들립니다.
작가는 “내가 설계한 게 아니라 재료 스스로 보여준 움직임”이라 전합니다.
이 의도치 않은 떨림이 작품의 언어가 됩니다.
순간적으로 발생한 흔들림은 보는 이들의 감각에 각인되고, 작품은 오브제에서 살아 있는 현장으로 탈바꿈합니다.
■ 흔적과 돌봄, 동시대 미학의 언어
작가의 작업은 완성된 형상보다 흔적, 돌봄, 반복의 과정에 가치를 두는 동시대 미학과도 닮았습니다.
국제 미술계에서는 파편을 감추지 않고 드러내며, 수리와 돌봄을 예술적 가치로 바라보는 흐름이 뚜렷하게 관찰됩니다.
2018년 영국의 학술지 ‘Third Text’의 ‘Ethico-Aesthetic Repairs’ 특집, 2022년 Routledge의 ‘Care Aesthetics’, 그리고 파리와 헬싱키에서 열린 ‘The Great Repair’, ‘FIX: Care and Repair’가 대표적 사례입니다.
그렇다고 이러한 이론의 답습도 아닙니다. 생활 속에 반복된 행위가 자연스럽게 이 지점에 닿았습니다.
붙이고 떼어내는 행위들이 결국 동시대 미학의 언어로 구현된 셈입니다.
■ 사적인 빛에서 공적인 풍경으로
작업의 부제 ‘연동’은 작가가 생활하며 작업하는 제주의 공간입니다.
창(窓)으로 들어오던 바다 빛은 개인적으로는 위안의 순간이었지만, 전시장에서는 흰 껍질의 군집으로 변주돼 누구나 공유할 수 있는 풍경으로 바뀝니다.
“제주의 생활 속에서 얻은 작은 위안이 전시장에서는 다른 사람의 감각으로 다시 살아나길 바랐다”는 작가의 고백처럼, 사적인 기억은 예술적 매개를 거쳐 타인의 감각으로 확장됩니다.
■ 20년의 공백, 다시 세운 자리
대구가톨릭대학교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작가는 결혼과 육아로 20년 가까운 공백을 겪었습니다.
“남들이 달려가는 동안 멈춰 있었다는 사실이 두려웠다”는 작가는 “하지만 그 시간조차 내 작업의 재료가 되었다”고 회상합니다.
공백을 딛고 복귀한 이후, 작가는 핫멜트 껍질을 기반으로 한 ‘화이트·블랙 가든’ 연작으로 자신만의 언어를 구축했습니다.
서울과 대전에서 개인전을 열었고, 담소미술창작스튜디오 우수작가 대상에 선정(2022)되며 주목 받았습니다.
지금은 제주시 연동에 작업실을 마련해, 생활과 작업이 맞닿은 자리에서 활발히 작업과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전시는 23일까지 이어지며,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관람 가능합니다.
전시 기간 중 휴관일은 없습니다.
JIBS 제주방송 김지훈(jhkim@jibs.co.kr)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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