셔틀버스의 흔들림, 대기공간의 무료함까지.. 이제 ‘제주의 첫 경험’이 되다
감귤 티셔츠·해녀 모자·리몬첼로.. 기다림마저 추억으로 바뀌는 공항의 변신
제주공항에 도착한 여행객들. 수화물을 챙기고 곧장 셔틀버스를 향해 발길을 옮깁니다.
바퀴가 덜컹이며 굴러갈 때마다 활주로는 검은 선을 남긴 채 멀어지고, 창밖 햇살은 고요히 어깨를 타고 스며듭니다.

손에는 예약 바우처를 꼭 쥔 채, 어색함과 설렘이 교차하는 짧은 침묵이 이어집니다.

그 길은 오래도록 ‘심심한 기다림’으로 불려 왔습니다.
하지만 지금, 그 기다림조차 기억해야 할 장면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제주공항 렌터카하우스가 제주의 색과 향을 담은 팝업스토어로 재탄생하면서, 발걸음이 멈춘 그곳은 더 이상 스쳐 지나가는 대기실이 아닙니다.
이제 여행의 첫 무대가 됩니다.

■ ‘비장소’를 ‘장소’로 바꾸는 실험

프랑스 인류학자 마르크 오제(Marc Augé·1935~2023)는 공항·터미널·고속도로 휴게소처럼 수많은 이가 오가지만 누구의 흔적도 남지 않는 공간을 ‘비장소(non-place)’라 불렀습니다.
머무름이 지워지고, 기억이 스치듯 사라지는 곳. 렌터카하우스는 오랫동안 그런 비장소의 전형이었습니다.

이번 팝업스토어는 그 공백을 채웁니다.

감귤빛 티셔츠를 입고, 해녀의 상징을 담은 모자를 고르고, 레몬 술 향을 들이마시는 순간.
익명의 대기실은 더 이상 무표정한 통로가 아닙니다.

공항이 제주의 첫 기억을 새겨 넣는 장소로 바뀌고 있습니다.

■ 로컬 감성을 입고, 향으로 마시다

렌터카하우스에 문을 연 팝업스토어에는 두 개의 로컬 브랜드가 자리했습니다.

‘아일랜드 프로젝트’는 감귤과 해녀를 모티브로 한 티셔츠·모자·가방을 내놓았습니다. 대표 캐릭터 ‘귤토리’와 함께하는 포토존은 여행객에게 “이제 제주에 도착했다”는 생생한 실감을 안깁니다.

‘제주곶밭’은 무릉리 개복숭아, 한라봉, 댕유자, 레몬 등 제주의 원물을 담아낸 술 라인을 선보였습니다.

특히 ‘제주 리몬첼로’는 공항의 공기를 상큼하게 흔들며, 떠나는 순간까지 여행자의 감각 속에 제주를 오래 각인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 기다림이 설렘으로 바뀌는 순간

렌터카하우스는 수많은 여행객이 지나쳤지만, 기억에 남지 않는 회색 공간이었습니다.
이번 변화는 그 공백을 메우는 첫 실험입니다.

장세환 한국공항공사 제주공항장은 “여행의 설렘을 가장 먼저 느낄 수 있는 장소로 만들겠다”며, “제주의 고유성을 담은 콘텐츠를 공항 곳곳에 확장해 관광 가치를 높여가겠다”고 밝혔습니다.

머무는 시간은 이제 ‘공허’가 아니라 기대감으로 채워집니다.
잠시 정적조차 설렘으로 변주되며, 공항은 더 이상 스쳐 지나가는 관문이 아닌 여행의 서막을 여는 무대로 바뀌었습니다.

■ 제주의 첫 장면을 다시 쓰다

공항은 오랫동안 출발과 도착만을 잇는 기능적 공간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러나 지금, 여행객은 셔틀버스의 흔들림마저 기억의 한 조각으로 간직합니다.

포토존 앞에서 웃고, 리몬첼로 향을 맡으며, 감귤빛 티셔츠를 고르는 순간.
공항 한켠에서는 이미 여행이 시작되고 드라마의 서사가 막을 올립니다.

팝업스토어는 제주의 고유성을 새겨 넣은 선언입니다.
익명의 대기실로 남았던 공항은 이제 제주의 향과 색을 품은 장소로 변했습니다.

여행은 활주로가 아니라, 짧은 기다림 속에 이미 출발선을 밟고 있습니다.


JIBS 제주방송 김지훈(jhkim@jibs.co.kr) 기자
<저작권자 © JIBS 제주방송,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