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 말하지만, 정책은 여전히 현실을 따라가지 못한다
“손님은 돌아왔는데, 남는 게 없다.”
제주시 구좌읍에서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는 이모(36)씨의 말은 짧고 단호했습니다.
“행정은 관광객 숫자만 센다. 돈이 돌지 않는데, 무슨 회복인가.”
한국은행 제주본부는 최근 발표한 3분기 지역경제 동향에서 “관광 회복에 따른 소폭의 경기 반등세”를 언급했습니다.
관광객은 늘고, 숙박·레저업은 살아났다고 평가했습니다.
하지만 그 ‘회복’은 현장이 아닌 보고서 속 단어에 불과합니다.
[김지훈의 ‘맥락’] 연속기획 [섬의 속도] 2편은 섬의 산업이 아닌, 행정이 멈춰선 이유를 짚습니다.
■ “사람은 늘었는데, 돈은 돌지 않는다”
지난달 제주를 찾은 관광객은 133만 명(잠정).
전년 같은 달보다 12% 늘었지만, 같은 기간 소매판매지수는 –15.1%를 기록했습니다.
관광 시장은 온기를 점치는데, 정작 소비는 줄었습니다.
그래프는 오르는 모습이지만, 지갑은 닫혀 있습니다.
제주시 연동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자영업자 A씨는 “개별만 아니라 단체관광까지 돌아왔다고 하지만, 결제는 단체카드 한 번 긁으면 끝난다”라며 “테이블은 꽉 차도 잔고가 빈다”라고 말합니다.
줄어든 씀씀이 규모가 여실히 드러나는 대목입니다.
한국은행 제주본부 역시 “숙박·음식·도소매업 등 관광기반 업종의 영업 지속성이 약화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자료에서도 올해 제주 자영업 폐업률은 11.5%로 전국 평균(9.8%)보다 높았습니다.
관광은 회복했지만, 삶은 아직 회복하지 못했습니다.
■ “신고는 쌓이는데, 내용은 닫혀 있어”
제주도는 지난해 11월 5일 ‘공정 관광질서 확립’을 명분으로 ‘관광불편신고센터’를 개설했습니다.
운영 1년차를 코앞에 둔 시점(4일)까지 접수된 신고는 991건, 1,000건에 육박합니다.
하루 평균 2~3건꼴로 민원이 제기된 셈입니다.
접수 건 대부분은 ‘처리 완료’로 분류돼 있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모두 비공개입니다.
개인정보 보호를 이유로, 신고자 본인이 아니면 무엇이 접수됐고 어떻게 해결됐는지조차 알 수 없습니다.
결과적으로 행정의 투명성은 지켜졌지만, 신뢰는 오히려 닫힌 셈입니다.
제도는 ‘작동 중’이지만, 그 결과를 체감할 방법은 없습니다.
한 여행업계 관계자는 “센터가 있다는 건 알지만, 뭘 어떻게 처리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라며 “신고는 공개되지 않고, 개선은 느리니까 결국 또다시 같은 민원이 반복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행정은 개인정보 보호를 말하지만, 현장은 ‘책임 회피의 벽’을 체감합니다.
이 구조에서는 신뢰가 자라지 않고, 피로만 누적되고 있습니다
■ “적발은 2,000곳, 처분은 30% 남짓”
관광시장의 신뢰는 여전히 ‘관리 중’입니다.
불법숙박 단속만 해도 매년 이어지지만, 실질적 제재는 제자리입니다.
최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손솔 의원이 공개한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2020년부터 2025년 9월까지 전국 불법숙박업소 적발 2,568건 중 2,020건(78.7%)이 제주에서 발생했습니다.
전국 불법숙박 10곳 중 8곳이 제주에 몰렸지만, 행정처분이나 형사조치로 이어진 비율은 30% 수준에 불과했습니다.
렌터카 요금도 여전히 들쑥날쑥하고, 숙박 중개 수수료는 15~20%(한국소비자원 기준)에 머물고 있습니다.
행정의 역할은 ‘점검’에 멈추고, 결과는 보고서 속에만 남습니다.
서귀포에서 숙박업체를 운영하는 B씨는 “도는 매년 같은 회의, 같은 대책을 반복한다”며 “현장은 AI가 아니라 ‘사람의 리듬’으로 돌아가는데, 행정은 여전히 오프라인 속도에 갇혀 있다”라고 지적했습니다.
■ “청년은 떠나고, 버티는 사람만 남았다”
제주의 관광산업이 안고 있는 진짜 위기는 ‘사람의 부재’입니다.
손님이 돌아와도, 일할 사람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제주는 2023년 8월 이후 25개월 연속 순유출 상태를 보이고 있습니다.
올해 상반기만 해도 순유출 인구가 3,026명, 그중 20대 청년층이 절반(1,442명)을 차지했습니다.
청년이 빠져나간 자리를 외지 노동력과 단기 인턴이 메우는 구조.
이제 제주의 관광산업은 회복이 아니라 ‘공백의 관리’가 되고 있습니다.
제주시내 카페를 운영하는 30대 대표 C씨는 “손님은 늘었는데 사람은 없다”라며, “청년들이 떠난 자리에서 무대책으로 대응해야 하는 셈”이라고 호소했습니다.
■ “행정이 섬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
제주도정은 ‘관광 회복’과 ‘신뢰 회복’을 말하지만, 현장은 여전히 답보 상태입니다.
행정의 리듬이 산업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행정은 매뉴얼대로 움직였다고 말하지만, 실제 현장은 그 매뉴얼이 작동하지 않는다고 느낍니다.
“현장은 매일 변하는데, 행정은 보고서가 끝나야 움직인다. 그 사이에 계절이 바뀌고, 시장은 이미 다른 방향으로 가 있다.”
이는 곧 제주행정의 현주소입니다.
운영은 있지만 작동은 없고, 시스템은 있지만 신뢰는 없습니다.
섬이 다시 움직이려면, 행정이 먼저 현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따라가야 할 건 관광객의 발걸음이 아니라, 도민의 삶의 속도입니다.
제주의 경제는 이미 움직이고 있습니다.
멈춘 건 산업이 아니라, 행정의 시간입니다.
JIBS 제주방송 김지훈(jhkim@jibs.co.kr) 기자
<저작권자 © JIBS 제주방송,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행정의 신뢰는 숫자가 아닌 작동으로 증명돼야 한다. 회복을 말하지만, 체감은 여전히 식어 있다. (편집 이미지)
“손님은 돌아왔는데, 남는 게 없다.”
제주시 구좌읍에서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는 이모(36)씨의 말은 짧고 단호했습니다.
“행정은 관광객 숫자만 센다. 돈이 돌지 않는데, 무슨 회복인가.”
한국은행 제주본부는 최근 발표한 3분기 지역경제 동향에서 “관광 회복에 따른 소폭의 경기 반등세”를 언급했습니다.
관광객은 늘고, 숙박·레저업은 살아났다고 평가했습니다.
하지만 그 ‘회복’은 현장이 아닌 보고서 속 단어에 불과합니다.
[김지훈의 ‘맥락’] 연속기획 [섬의 속도] 2편은 섬의 산업이 아닌, 행정이 멈춰선 이유를 짚습니다.
■ “사람은 늘었는데, 돈은 돌지 않는다”
지난달 제주를 찾은 관광객은 133만 명(잠정).
전년 같은 달보다 12% 늘었지만, 같은 기간 소매판매지수는 –15.1%를 기록했습니다.
관광 시장은 온기를 점치는데, 정작 소비는 줄었습니다.
그래프는 오르는 모습이지만, 지갑은 닫혀 있습니다.
제주시 연동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자영업자 A씨는 “개별만 아니라 단체관광까지 돌아왔다고 하지만, 결제는 단체카드 한 번 긁으면 끝난다”라며 “테이블은 꽉 차도 잔고가 빈다”라고 말합니다.
줄어든 씀씀이 규모가 여실히 드러나는 대목입니다.
한국은행 제주본부 역시 “숙박·음식·도소매업 등 관광기반 업종의 영업 지속성이 약화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자료에서도 올해 제주 자영업 폐업률은 11.5%로 전국 평균(9.8%)보다 높았습니다.
관광은 회복했지만, 삶은 아직 회복하지 못했습니다.
■ “신고는 쌓이는데, 내용은 닫혀 있어”
제주도는 지난해 11월 5일 ‘공정 관광질서 확립’을 명분으로 ‘관광불편신고센터’를 개설했습니다.
운영 1년차를 코앞에 둔 시점(4일)까지 접수된 신고는 991건, 1,000건에 육박합니다.
하루 평균 2~3건꼴로 민원이 제기된 셈입니다.
제주도관광협회 내 운영 중인 제주관광불편신고센터(오른쪽), 온라인 홈페이지 내 게시판 캡처.
접수 건 대부분은 ‘처리 완료’로 분류돼 있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모두 비공개입니다.
개인정보 보호를 이유로, 신고자 본인이 아니면 무엇이 접수됐고 어떻게 해결됐는지조차 알 수 없습니다.
결과적으로 행정의 투명성은 지켜졌지만, 신뢰는 오히려 닫힌 셈입니다.
제도는 ‘작동 중’이지만, 그 결과를 체감할 방법은 없습니다.
한 여행업계 관계자는 “센터가 있다는 건 알지만, 뭘 어떻게 처리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라며 “신고는 공개되지 않고, 개선은 느리니까 결국 또다시 같은 민원이 반복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행정은 개인정보 보호를 말하지만, 현장은 ‘책임 회피의 벽’을 체감합니다.
이 구조에서는 신뢰가 자라지 않고, 피로만 누적되고 있습니다
■ “적발은 2,000곳, 처분은 30% 남짓”
관광시장의 신뢰는 여전히 ‘관리 중’입니다.
불법숙박 단속만 해도 매년 이어지지만, 실질적 제재는 제자리입니다.
최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손솔 의원이 공개한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2020년부터 2025년 9월까지 전국 불법숙박업소 적발 2,568건 중 2,020건(78.7%)이 제주에서 발생했습니다.
전국 불법숙박 10곳 중 8곳이 제주에 몰렸지만, 행정처분이나 형사조치로 이어진 비율은 30% 수준에 불과했습니다.
렌터카 요금도 여전히 들쑥날쑥하고, 숙박 중개 수수료는 15~20%(한국소비자원 기준)에 머물고 있습니다.
행정의 역할은 ‘점검’에 멈추고, 결과는 보고서 속에만 남습니다.
서귀포에서 숙박업체를 운영하는 B씨는 “도는 매년 같은 회의, 같은 대책을 반복한다”며 “현장은 AI가 아니라 ‘사람의 리듬’으로 돌아가는데, 행정은 여전히 오프라인 속도에 갇혀 있다”라고 지적했습니다.
■ “청년은 떠나고, 버티는 사람만 남았다”
제주의 관광산업이 안고 있는 진짜 위기는 ‘사람의 부재’입니다.
손님이 돌아와도, 일할 사람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제주는 2023년 8월 이후 25개월 연속 순유출 상태를 보이고 있습니다.
올해 상반기만 해도 순유출 인구가 3,026명, 그중 20대 청년층이 절반(1,442명)을 차지했습니다.
청년이 빠져나간 자리를 외지 노동력과 단기 인턴이 메우는 구조.
이제 제주의 관광산업은 회복이 아니라 ‘공백의 관리’가 되고 있습니다.
제주시내 카페를 운영하는 30대 대표 C씨는 “손님은 늘었는데 사람은 없다”라며, “청년들이 떠난 자리에서 무대책으로 대응해야 하는 셈”이라고 호소했습니다.
■ “행정이 섬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
제주도정은 ‘관광 회복’과 ‘신뢰 회복’을 말하지만, 현장은 여전히 답보 상태입니다.
행정의 리듬이 산업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행정은 매뉴얼대로 움직였다고 말하지만, 실제 현장은 그 매뉴얼이 작동하지 않는다고 느낍니다.
“현장은 매일 변하는데, 행정은 보고서가 끝나야 움직인다. 그 사이에 계절이 바뀌고, 시장은 이미 다른 방향으로 가 있다.”
이는 곧 제주행정의 현주소입니다.
운영은 있지만 작동은 없고, 시스템은 있지만 신뢰는 없습니다.
섬이 다시 움직이려면, 행정이 먼저 현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따라가야 할 건 관광객의 발걸음이 아니라, 도민의 삶의 속도입니다.
제주의 경제는 이미 움직이고 있습니다.
멈춘 건 산업이 아니라, 행정의 시간입니다.
JIBS 제주방송 김지훈(jhkim@jibs.co.kr)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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