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 예술 ‘아기이불’, 돌봄이 예술이 되는 순간
바늘과 실이 꿰맨 건 천이 아니라, 인간의 존재였다
175명의 손이 한 장의 천 위에서 다시 사회를 엮었습니다.
제주에서 시작한 공동체 예술 프로젝트 ‘아기이불’이 7일부터 13일까지 제주시 컬쳐스페이스 H에서 전시로 이어집니다.
지난 6월과 9월, 두 차례에 걸친 시민 바느질 프로젝트의 결과물로, 19개 단체와 시민이 함께 만든 10채의 이불이 공개됩니다.
각기 다른 색과 질감의 천이 이어져 하나의 직물이 되었고, 그 안에는 이름 없는 시간과 손길이 겹겹이 스며 있습니다.
■ 불완전함이 모일 때, 완전함이 깨어난다
조각보는 규칙을 거부합니다.
색도 다르고, 질감도 다르고, 크기도 제멋대로입니다.
그 불완전함이 모여 하나의 세계를 만듭니다.
이번 프로젝트는 그 차이의 조각들을 사회적 회복의 구조로 바꾸려는 예술적 시도입니다.
신소연 ‘손의 기억’ 대표는 “누군가의 손을 따라 천이 이어질 때, 그것은 더 이상 개인의 작업이 아니라 사회적 실천이 된다”며 “‘아기이불’은 관계가 느슨해진 시대에 다시 함께 짓는 감각을 되살리는 움직임”이라고 말했습니다.
바느질은 오래된 행위이지만, 그 속에는 여전히 살아 있는 리듬이 있습니다.
한 땀씩 꿰매며 사람들은 자신의 존재를 느끼고, 서로의 체온을 확인했습니다.
완성된 이불은 단지 결과물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관계의 결을 시각화한 직물로 남았습니다.
■ 예술이 ‘돌봄’으로 돌아오는 구조
‘보는 자리’가 아니라, 함께 짓는 자리에서 출발한 프로젝트였습니다.
전시장 한편에는 바늘과 실, 그리고 천 조각이 놓였습니다.
관람객은 누구나 앉아 한 조각의 천을 이어붙일 수 있고, 그 조각은 다음 세대의 이불로 전해지도록 구성했습니다.
예술은 이렇게 관객의 몸을 거쳐 사회로 흘러가며, 감상의 대상에서 돌봄의 구조로 변환됩니다.
전시가 끝나면 완성된 이불은 제주의 미혼모센터 ‘애서원’에 전달됩니다.
감상으로 시작된 행위가 실제 돌봄으로 닿는 순간, 예술의 순환이 완성됩니다.
제주문화예술재단 관계자는 “한 사람의 바늘땀이 모이면 사회 전체를 덮는 온기가 생긴다”며 “이번 전시가 제주의 공동체 예술이 가진 가능성을 다시 증명하길 바란다”고 밝혔습니다.
■ 세계 미술계의 ‘케어링 프랙티스(Caring Practice)’, 제주에서의 응답
이 움직임은 제주의 바느질에서 시작해 세계 예술의 감수성과 맞닿습니다.
2022년 베를린 그로피우스 바우(Gropius Bau)에서 열린 전시 ‘YOYI! Care, Repair, Heal’은 예술이 치유와 관계, 그리고 생태적 공존의 회복을 탐구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습니다.
케어(Care·돌봄), 리페어(Repair·복원), 힐(Heal·치유)의 개념은 인간과 사회, 그리고 비인간 존재를 잇는 감각의 구조로 제시되었습니다.
2023년 국제 순회전 ‘Actions for the Earth: Art, Care & Ecology’는 돌봄과 생태, 관계적 회복을 예술의 본질로 다루며, 창작을 돌봄의 행위로 선언했습니다.
최근까지 이어지는 이른바 케어링 프랙티스(Caring Practice)는 결과보다 과정, 개인의 표현보다 함께 살아가는 실천을 예술의 중심에 두고 있습니다.
‘아기이불’은 이런 세계적 흐름을 제주의 언어로 옮겨낸 사례입니다.
돌봄과 연대의 감각이 지역의 일상 속에서 이어지고, 예술은 사회의 균열을 메우는 가장 따뜻한 형태로 살아납니다.
■ “작은 바늘땀 하나가, 사회 전체를 덮는다”
신소연 대표는 “바느질은 작은 동작이지만, 함께 모이면 사회를 덮는 힘이 있다”라며 “작은 손길이 모여 사회를 바꾸는 예술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밝혔습니다.
그 말은 감상이라기보다 선언에 가깝습니다.
한 사람의 바늘땀이 또 다른 사람의 숨결을 잇고, 낯선 체온이 천 위에서 만나는 과정.
예술이 아니라 삶의 회복 그 자체입니다.
이불은 아기를 덮고, 그 온도는 결국 우리 모두를 감쌉니다.
‘아기이불’은 인간의 삶을 다시 감싸는 예술의 한 방식입니다.
그리고 그 답은 지금도 제주의 손끝에서, 조용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JIBS 제주방송 김지훈(jhkim@jibs.co.kr)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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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늘과 실이 꿰맨 건 천이 아니라, 인간의 존재였다
완성된 색동 조각보 이불이 겹겹이 쌓여 있다. 서로 다른 색의 조각들이 하나의 온기를 완성했다. (손의 기억 제공)
175명의 손이 한 장의 천 위에서 다시 사회를 엮었습니다.
제주에서 시작한 공동체 예술 프로젝트 ‘아기이불’이 7일부터 13일까지 제주시 컬쳐스페이스 H에서 전시로 이어집니다.
지난 6월과 9월, 두 차례에 걸친 시민 바느질 프로젝트의 결과물로, 19개 단체와 시민이 함께 만든 10채의 이불이 공개됩니다.
각기 다른 색과 질감의 천이 이어져 하나의 직물이 되었고, 그 안에는 이름 없는 시간과 손길이 겹겹이 스며 있습니다.
9월 조각보 만들기 워크숍 당시, 색을 고르고 천을 잇던 순간.
■ 불완전함이 모일 때, 완전함이 깨어난다
조각보는 규칙을 거부합니다.
색도 다르고, 질감도 다르고, 크기도 제멋대로입니다.
그 불완전함이 모여 하나의 세계를 만듭니다.
이번 프로젝트는 그 차이의 조각들을 사회적 회복의 구조로 바꾸려는 예술적 시도입니다.
한 땀 한 땀, 각자의 조각이 하나의 무늬로 이어졌다.
신소연 ‘손의 기억’ 대표는 “누군가의 손을 따라 천이 이어질 때, 그것은 더 이상 개인의 작업이 아니라 사회적 실천이 된다”며 “‘아기이불’은 관계가 느슨해진 시대에 다시 함께 짓는 감각을 되살리는 움직임”이라고 말했습니다.
바느질은 오래된 행위이지만, 그 속에는 여전히 살아 있는 리듬이 있습니다.
한 땀씩 꿰매며 사람들은 자신의 존재를 느끼고, 서로의 체온을 확인했습니다.
완성된 이불은 단지 결과물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관계의 결을 시각화한 직물로 남았습니다.
완성된 조각보 작품. 서로 다른 색이 질서 없이 조화를 이룬다.
■ 예술이 ‘돌봄’으로 돌아오는 구조
‘보는 자리’가 아니라, 함께 짓는 자리에서 출발한 프로젝트였습니다.
전시장 한편에는 바늘과 실, 그리고 천 조각이 놓였습니다.
관람객은 누구나 앉아 한 조각의 천을 이어붙일 수 있고, 그 조각은 다음 세대의 이불로 전해지도록 구성했습니다.
예술은 이렇게 관객의 몸을 거쳐 사회로 흘러가며, 감상의 대상에서 돌봄의 구조로 변환됩니다.
전시가 끝나면 완성된 이불은 제주의 미혼모센터 ‘애서원’에 전달됩니다.
감상으로 시작된 행위가 실제 돌봄으로 닿는 순간, 예술의 순환이 완성됩니다.
제주문화예술재단 관계자는 “한 사람의 바늘땀이 모이면 사회 전체를 덮는 온기가 생긴다”며 “이번 전시가 제주의 공동체 예술이 가진 가능성을 다시 증명하길 바란다”고 밝혔습니다.
솜과 천이 겹겹이 포개진 이불. 손의 온기가 스며 있다. (손의 기억 제공)
■ 세계 미술계의 ‘케어링 프랙티스(Caring Practice)’, 제주에서의 응답
이 움직임은 제주의 바느질에서 시작해 세계 예술의 감수성과 맞닿습니다.
2022년 베를린 그로피우스 바우(Gropius Bau)에서 열린 전시 ‘YOYI! Care, Repair, Heal’은 예술이 치유와 관계, 그리고 생태적 공존의 회복을 탐구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습니다.
케어(Care·돌봄), 리페어(Repair·복원), 힐(Heal·치유)의 개념은 인간과 사회, 그리고 비인간 존재를 잇는 감각의 구조로 제시되었습니다.
2023년 국제 순회전 ‘Actions for the Earth: Art, Care & Ecology’는 돌봄과 생태, 관계적 회복을 예술의 본질로 다루며, 창작을 돌봄의 행위로 선언했습니다.
최근까지 이어지는 이른바 케어링 프랙티스(Caring Practice)는 결과보다 과정, 개인의 표현보다 함께 살아가는 실천을 예술의 중심에 두고 있습니다.
‘아기이불’은 이런 세계적 흐름을 제주의 언어로 옮겨낸 사례입니다.
돌봄과 연대의 감각이 지역의 일상 속에서 이어지고, 예술은 사회의 균열을 메우는 가장 따뜻한 형태로 살아납니다.
완성된 조각보 베개. 서로 다른 색이 어깨를 맞대듯 이어져 있다. (손의 기억 제공)
■ “작은 바늘땀 하나가, 사회 전체를 덮는다”
신소연 대표는 “바느질은 작은 동작이지만, 함께 모이면 사회를 덮는 힘이 있다”라며 “작은 손길이 모여 사회를 바꾸는 예술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밝혔습니다.
그 말은 감상이라기보다 선언에 가깝습니다.
한 사람의 바늘땀이 또 다른 사람의 숨결을 잇고, 낯선 체온이 천 위에서 만나는 과정.
예술이 아니라 삶의 회복 그 자체입니다.
이불은 아기를 덮고, 그 온도는 결국 우리 모두를 감쌉니다.
‘아기이불’은 인간의 삶을 다시 감싸는 예술의 한 방식입니다.
그리고 그 답은 지금도 제주의 손끝에서, 조용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JIBS 제주방송 김지훈(jhkim@jibs.co.kr)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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