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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이 기도가 될 때”… 한 손으로 엮은 세계, 김혁종의 ‘기도’
2025-11-11
JIBS 제주방송 김지훈(jhkim@jibs.co.kr) 기자
실과 숨, 그리고 하루의 무게를 짜다
11~17일 제주시 도바나아트스페이스
김혁종 作 ‘쉬어가도 괜찮아요’ (아래)

고요하지만, 낮게 가라앉은 공기에 손의 리듬이 남아 있습니다.

섬유공예 작가 김혁종의 개인전 ‘기도’.
한 손으로 세계를 엮어온 시간의 기록이며, 느림으로 다져진 생의 증언을 만납니다.

‘기도’라는 단어는 종교처럼 들리지만, 그의 작업은 신에게 바치는 의식이 아닙니다.
실을 감고, 매듭을 짓고 그 모든 반복 속에서 살아 있음을 확인하는 일입니다.


작가에게 ‘기도’는 믿음이 아니라, 삶의 태도 그 자체입니다.
김혁종 작가(왼쪽), 작가의 창작 조력자로서 함께 작업 중인 류지희 매니저.

■ 실의 리듬, 몸이 쌓은 시간

면로프 150미터를 감아 만든 작품 ’쉬어가도 괜찮아요’는 손끝이 아닌, 몸 전체로 엮어낸 결의 기록입니다.

매듭마다 호흡이 스며 있고, 그 느림은 멈춤이 아니라 존재의 지속을 말합니다.


한쪽 손으로만 실을 감는 동안, 작가는 하루를 온몸으로 안으며 걸어갔습니다.
속도는 더뎠지만 매듭은 단단했고, 그 반복이 곧 그의 리듬이자 세상과 다시 관계 맺는 방법이 되었습니다.
작품 작업 중인 작가.

■ 불완전함의 조형, 인간의 결

‘우리가 어떤 모습일지라도’는 면로프를 감아 만든 그릇 시리즈입니다.
균형은 흔들리고, 선은 일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불안정함 속에 온기가 피어납니다.
손끝의 떨림이 그대로 남은 곡선, 삶의 모양입니다.

균열이 있어야 숨이 통하고, 틈이 있어야 빛이 들어옵니다.
완벽하지 않아 오히려 더 단단한, 그 결이 이번 전시의 정직한 진심입니다.

■ 기억의 얼굴, 관계의 회복

펀치니들 자수로 완성된 ‘얼굴들’에는 학창 시절 친구들의 얼굴이 하나씩 놓여 있습니다.
짧은 문장 몇 줄이 실 위에 새겨집니다.
“이제 괜찮아.” “보고 싶었어.”

그 자수는 초상이 아닌, 회복의 기록입니다.
잊혀진 관계를 다시 꿰매듯 붙이며, 과거와 화해하며 세상과 다시 연결됩니다.
김혁종 作

■ 일상의 의식, 삶의 예배

김혁종에게 ‘기도’는 절이나 의식이 아닙니다.
매듭을 짓는 순간마다 하루가 조금씩 깊어지고 실이 연결될 때마다 마음이 하나 더 자랍니다.

그의 작업은 노동보다 느리고, 예배보다 인간적입니다.
카펫은 제단이 아니라 식탁이며, 실의 흔적은 찬송이 아니라 기록입니다.

삶이 곧 의식이고, 그 의식은 신이 아닌 사람을 향해 있습니다.
엮어낸 세계는 그렇게, 예술이 된 삶으로 남습니다.

■ 함께 짜는 감각, ‘두번째집’의 철학

이번 전시는 커뮤니티아트랩 KOJI가 운영하는 장애예술가랩 ‘두번째집‘의 기획자이자 공예 부문 마스터인 신소연 씨가 기획했습니다.

커뮤니티아트랩 KOJI가 주최한 프로젝트 ‘두번째집’의 연장선으로 2022년부터 이어진 이 협업은 장애 예술인을 돕는 ‘지원’의 틀을 넘어, 예술을 통해 세상을 다시 읽는 연대의 실험이 되어왔습니다.

신소연 대표는 “김혁종 작가의 실은 기술이 아니라 마음의 기록”이라며 “자신의 속도를 존중하며 세상과 관계 맺는 법을 배워온 그의 작업은 우리가 잃어버린 감각을 되돌려준다”고 말합니다.

이번 전시는 ㈜장스푸드, 제주메세나협회, 제주자치도가 함께했습니다.
민간의 감성과 공공의 구조가 합을 맞추며, 예술이 복지의 언어를 넘어 사회적 감각으로 확장되는 장면을 보여줍니다.

■ 실의 언어, 존재의 기도

김혁종의 실은 말보다 먼저 태어난 언어입니다.
선이 하루를 쓰고, 그 하루가 다시 세계를 감쌉니다.

한 손으로 쌓아 올린 시간 속엔 신앙보다 깊은 숨이 천천히 깃듭니다.

그 작업은 세계를 향한 몸의 응답이자, 조용히 자신을 부르는 방식입니다.

기도는 위로가 아니라, 이 자리에서 다시 살아내려는 의지로 번집니다.

한 가닥의 선이 만들어내는 결은 단단하면서도 부드럽습니다. 그 안에서 인간의 약함과 강함이 동시에 빛납니다.

김혁종의 작품은 신념이 아니라, 느림으로 다져진 마음의 언어입니다.

그 리듬을 따라가다 보면 문득 깨닫게 됩니다.
예술은 결국, 살아 있는 시간의 또 다른 이름임을.

도바나아트스페이스.
낯선 공기 속, 실 한 올이 빛의 틈 사이로 흩날립니다.
“그래. 우리 하루는 이렇게 또 하루로 이어지는 거야.”

전시는 11일부터 17일까지 제주시 서사로 29 도바나아트스페이스에서 열립니다.
관람 시간은 오전 10시 30분부터 밤 8시 30분까지입니다.


JIBS 제주방송 김지훈(jhkim@jibs.co.kr) 기자
<저작권자 © JIBS 제주방송,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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