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OPING IN THE BOX’
관람이 아니라 침투, 감상이 아니라 동기화
전시, 인간을 인터페이스로 쓰다
전시는 걸려 있지 않습니다.
켜져 있습니다.
벽은 표면이 아니라 파동이 되고, 바닥은 무대가 아니라 센서가 됩니다.
관람객은 움직이는 대상이 아니라 계산되는 변수로 들어갑니다.
‘LOOPING IN THE BOX’는 예술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예술이 작동하는 조건을 열어둡니다.
이 전시는 완성된 이미지를 제시하지 않습니다.
대신 이미지가 스스로 발생하는 시스템을 구축합니다.
그리고 그 시스템에 관람객을 삽입합니다.
보는 사람이 아니라 환경을 교란하는 존재가 되는 순간입니다.
이때부터 전시는 감상의 대상이 아니라 사건(event)이 됩니다.
■ 전시는 이미지가 아니라 ‘이미지의 날씨’
이 공간에서 이미지는 고정된 장면이 아닙니다.
그것은 일종의 기후처럼 흐르고, 증발하고, 응결합니다. 푸른 입자는 바람처럼 밀려오고, 녹색은 지층처럼 번지고, 보라색은 잔상처럼 공간에 남습니다.
각각은 의미를 전달하기보다 상태(state)를 생성합니다.
이 전시는 실시간 인터랙티브 미디어아트 제작 툴인 터치디자이너(TouchDesigner)를 기반으로 작동합니다.
화면은 미리 완성된 영상을 재생하는 것이 아니라, 데이터 입력과 알고리즘 연산에 따라 매 순간 새롭게 생성됩니다.
이 때문에 전시는 전시 기간 내내 같은 모습을 반복하지 않습니다.
디지털이 가진 가장 중요한 특성을 정면으로 사용한 사례입니다.
본래 사물을 재현하지 않는 디지털은, 조건을 생성합니다.
전시는 바로 그 점을 전면에 내세웁니다.
이미지를 메시지가 아니라 환경(environment)으로 다룹니다.
■ 화이트 큐브는 더 이상 중립이 아니다
전통적 전시 공간은 ‘중립적 배경’을 자처해왔습니다.
하지만 전시에서 공간은 결코 배경이 아닙니다. 공간은 하나의 거대한 연산 장치입니다.
벽은 출력 장치이고, 바닥은 입력 장치이며, 관람자의 이동은 실시간 데이터로 환원됩니다.
이 전시는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아트코리아랩(Arts Korea Lab)의 시연 인프라를 활용해 제작됐습니다.
공공 인프라가 예술 창작의 실험장으로 기능하는 사례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습니다.
이때 예술은 더 이상 객체(object)가 아니라 시스템(system)입니다.
관람은 해석이 아니라 접속(connection)입니다.
이 구조는 철학자 베르나르 스티글레르(Bernard Stiegler)가 말한 기술적 조건으로서의 감각(technicized sensibility)과도 맥락이 맞닿아 있습니다.
감각은 더 이상 개인의 것이 아니라 기술적으로 매개됩니다. 느끼는 동시에 계산됩니다.
■ ‘완성’을 거부하는 전시
전시는 결코 완성되지 않습니다. 매 순간 조금씩 다릅니다.
관람객의 수, 이동 경로, 체류 시간, 공간의 온도, 장비의 미세한 오차까지 전부 변수로 흡수됩니다.
전시는 반복되지만 복제되지 않습니다. 루프(loop)는 있지만 동일성이 없습니다.
반복은 여기서 동일한 것을 되풀이하는 행위가 아니라, 차이를 생산하는 메커니즘입니다.
질 들뢰즈의 말처럼 반복은 동일성의 반대편에 있습니다. 반복은 차이를 만든다는 방식입니다.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14인의 작가가 참여하는 협업 구조로 구성했습니다.
각자의 미적 언어는 하나의 통일된 스타일로 수렴되지 않고, 동일한 시스템 안에서 서로 다른 방식으로 작동합니다.
전시가 ‘통합된 메시지’가 아니라 ‘공존하는 차이’를 목표로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합니다.
■ 제주에서 출발한 감각, 중앙 시스템을 흔들다
이 전시의 구조를 설계한 이는 제주 출신 김수민 작가입니다.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개별 작품의 제작자가 아니라, 전체 시스템을 조율하는 프로듀서 역할을 맡았습니다.
제주에서 개인전과 퍼포먼스를 통해 공간·신체·기술의 관계를 실험해 온 경험이 이번 전시의 구조적 토대가 됐습니다.
기술을 전면에 내세우기보다 기술이 감각을 따라오게 만드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제주의 자연 환경에서 체화된 리듬, 순환, 비선형적 시간 감각이 전시의 논리입니다.
차갑지 않습니다. 기계적인데 유기적입니다.
디지털인데 생물처럼 느껴집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성취입니다.
기술이 자연을 모사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논리를 기술 안으로 이식합니다.
■ “나는 더 이상 관객이 아니다”
이 전시는 관람객을 환대하지 않습니다.
대신 구조 안으로 집어넣습니다.
해석자가 아니라 일종의 입력값(input)이 됩니다.
전시에서 나와 너, 당신은 대상이 아니라 변수입니다.
그래서 전시는 항상 누군가를 포함한 상태로 존재합니다.
이는 예술의 윤리적 지형을 바꿉니다.
우리는 더 이상 예술을 소비하지 않습니다. 예술이 작동하는 조건의 일부가 됩니다.
감상은 끝났고, 공존이 남았습니다.
“당신은 이 공간을 보았습니까, 아니면 이 공간에 들어갔습니까.”
“당신은 이미지를 보았습니까, 아니면 시스템의 일부가 되었습니까.”
예술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예술과 관계 맺는 방식을 바꾸는 그런 전시입니다.
2일 시작한 전시는 9일까지 서울 종로구 트윈트리타워 A동 지하 1층 아트코리아랩 시연장 D에서 열립니다.
평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 무료로 관람할 수 있습니다.
JIBS 제주방송 김지훈(jhkim@jibs.co.kr) 기자
<저작권자 © JIBS 제주방송,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람이 아니라 침투, 감상이 아니라 동기화
전시, 인간을 인터페이스로 쓰다
아트코리아랩 시연장 D에 설치된 미디어아트 전시 ‘LOOPING IN THE BOX’ 전경.
전시는 걸려 있지 않습니다.
켜져 있습니다.
벽은 표면이 아니라 파동이 되고, 바닥은 무대가 아니라 센서가 됩니다.
관람객은 움직이는 대상이 아니라 계산되는 변수로 들어갑니다.
‘LOOPING IN THE BOX’는 예술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예술이 작동하는 조건을 열어둡니다.
이 전시는 완성된 이미지를 제시하지 않습니다.
대신 이미지가 스스로 발생하는 시스템을 구축합니다.
그리고 그 시스템에 관람객을 삽입합니다.
보는 사람이 아니라 환경을 교란하는 존재가 되는 순간입니다.
이때부터 전시는 감상의 대상이 아니라 사건(event)이 됩니다.
벽과 바닥을 동시에 활용한 몰입형 미디어 설치 작업이 관람자의 위치와 이동에 반응하며 계속해서 새로운 장면을 만든다.
■ 전시는 이미지가 아니라 ‘이미지의 날씨’
이 공간에서 이미지는 고정된 장면이 아닙니다.
그것은 일종의 기후처럼 흐르고, 증발하고, 응결합니다. 푸른 입자는 바람처럼 밀려오고, 녹색은 지층처럼 번지고, 보라색은 잔상처럼 공간에 남습니다.
각각은 의미를 전달하기보다 상태(state)를 생성합니다.
이 전시는 실시간 인터랙티브 미디어아트 제작 툴인 터치디자이너(TouchDesigner)를 기반으로 작동합니다.
화면은 미리 완성된 영상을 재생하는 것이 아니라, 데이터 입력과 알고리즘 연산에 따라 매 순간 새롭게 생성됩니다.
이 때문에 전시는 전시 기간 내내 같은 모습을 반복하지 않습니다.
디지털이 가진 가장 중요한 특성을 정면으로 사용한 사례입니다.
본래 사물을 재현하지 않는 디지털은, 조건을 생성합니다.
전시는 바로 그 점을 전면에 내세웁니다.
이미지를 메시지가 아니라 환경(environment)으로 다룹니다.
‘LOOPING IN THE BOX’ 전시 모습. 고정된 작품이 아니라 관람자의 움직임과 환경 변화에 따라 화면이 실시간으로 반응한다.
■ 화이트 큐브는 더 이상 중립이 아니다
전통적 전시 공간은 ‘중립적 배경’을 자처해왔습니다.
하지만 전시에서 공간은 결코 배경이 아닙니다. 공간은 하나의 거대한 연산 장치입니다.
벽은 출력 장치이고, 바닥은 입력 장치이며, 관람자의 이동은 실시간 데이터로 환원됩니다.
이 전시는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아트코리아랩(Arts Korea Lab)의 시연 인프라를 활용해 제작됐습니다.
공공 인프라가 예술 창작의 실험장으로 기능하는 사례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습니다.
이때 예술은 더 이상 객체(object)가 아니라 시스템(system)입니다.
관람은 해석이 아니라 접속(connection)입니다.
이 구조는 철학자 베르나르 스티글레르(Bernard Stiegler)가 말한 기술적 조건으로서의 감각(technicized sensibility)과도 맥락이 맞닿아 있습니다.
감각은 더 이상 개인의 것이 아니라 기술적으로 매개됩니다. 느끼는 동시에 계산됩니다.
■ ‘완성’을 거부하는 전시
전시는 결코 완성되지 않습니다. 매 순간 조금씩 다릅니다.
관람객의 수, 이동 경로, 체류 시간, 공간의 온도, 장비의 미세한 오차까지 전부 변수로 흡수됩니다.
전시는 반복되지만 복제되지 않습니다. 루프(loop)는 있지만 동일성이 없습니다.
반복은 여기서 동일한 것을 되풀이하는 행위가 아니라, 차이를 생산하는 메커니즘입니다.
질 들뢰즈의 말처럼 반복은 동일성의 반대편에 있습니다. 반복은 차이를 만든다는 방식입니다.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14인의 작가가 참여하는 협업 구조로 구성했습니다.
각자의 미적 언어는 하나의 통일된 스타일로 수렴되지 않고, 동일한 시스템 안에서 서로 다른 방식으로 작동합니다.
전시가 ‘통합된 메시지’가 아니라 ‘공존하는 차이’를 목표로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합니다.
‘LOOPING IN THE BOX’ 전시는 터치디자이너(TouchDesigner)를 기반으로 공간 자체를 하나의 작동하는 시스템처럼 구성했다.
■ 제주에서 출발한 감각, 중앙 시스템을 흔들다
이 전시의 구조를 설계한 이는 제주 출신 김수민 작가입니다.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개별 작품의 제작자가 아니라, 전체 시스템을 조율하는 프로듀서 역할을 맡았습니다.
제주에서 개인전과 퍼포먼스를 통해 공간·신체·기술의 관계를 실험해 온 경험이 이번 전시의 구조적 토대가 됐습니다.
기술을 전면에 내세우기보다 기술이 감각을 따라오게 만드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제주의 자연 환경에서 체화된 리듬, 순환, 비선형적 시간 감각이 전시의 논리입니다.
차갑지 않습니다. 기계적인데 유기적입니다.
디지털인데 생물처럼 느껴집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성취입니다.
기술이 자연을 모사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논리를 기술 안으로 이식합니다.
■ “나는 더 이상 관객이 아니다”
이 전시는 관람객을 환대하지 않습니다.
대신 구조 안으로 집어넣습니다.
해석자가 아니라 일종의 입력값(input)이 됩니다.
전시에서 나와 너, 당신은 대상이 아니라 변수입니다.
그래서 전시는 항상 누군가를 포함한 상태로 존재합니다.
이는 예술의 윤리적 지형을 바꿉니다.
우리는 더 이상 예술을 소비하지 않습니다. 예술이 작동하는 조건의 일부가 됩니다.
감상은 끝났고, 공존이 남았습니다.
제주 출신 김수민 작가가 프로듀싱한 ‘LOOPING IN THE BOX’ 전시는 이미지보다 이미지가 생성되는 조건과 구조를 드러내는 데 초점을 둔다.
“당신은 이 공간을 보았습니까, 아니면 이 공간에 들어갔습니까.”
“당신은 이미지를 보았습니까, 아니면 시스템의 일부가 되었습니까.”
예술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예술과 관계 맺는 방식을 바꾸는 그런 전시입니다.
2일 시작한 전시는 9일까지 서울 종로구 트윈트리타워 A동 지하 1층 아트코리아랩 시연장 D에서 열립니다.
평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 무료로 관람할 수 있습니다.
JIBS 제주방송 김지훈(jhkim@jibs.co.kr)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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