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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제주는 굿으로 봄을 연다… 탐라국입춘굿이 다시 땅을 깨운다
2026-01-26
JIBS 제주방송 김지훈(jhkim@jibs.co.kr) 기자
‘몸의 계절’을 바꾸는 의례, 관덕정에서 시작되는 새 철
보고 지나가는 축제가 아니라, 함께 들어가 완성하는 제주의 봄
‘2024 갑진년 탐라국 입춘굿’에서 열린 한해 무사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는 '낭쉐(나무소) 몰이.

입춘은 절기의 이름이지만, 제주에서는 하나의 ‘전환점’으로 제 역할을 합니다.
겨울의 기운이 완전히 물러나기 전, 땅과 사람의 흐름을 먼저 돌려놓는 시간입니다.

2026년 병오년 탐라국입춘굿이 2월 2일부터 4일까지 제주시와 서귀포시 일대에서 열립니다.
한 해 액을 막고 풍요와 안녕을 기원하는 제주의 대표적인 세시 의례입니다.

탐라국입춘굿은 신구간이 끝난 뒤 새 신들이 좌정하는 입춘에 민·관·무(巫)가 함께 모여 공동체의 안녕과 농사의 시작을 알리던 제주 고유의 굿입니다.
‘탐라록’을 비롯한 문헌에는 탐라국 왕이 친히 밭을 갈고 백성과 잔치를 벌이며 풍년을 기원했다는 기록도 전해집니다.


입춘굿은 농경과 생업,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함께 점검하는 제주식 질서 재정비의 장이었습니다.

일제강점기 전승이 끊겼던 이 의례는 1999년 복원된 이후 매년 이어지고 있습니다.
최근 도 단위 축제로 확장되며, 마을과 도시, 제주시와 서귀포를 잇는 공동체 축제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 굿은 액막이가 아니라, 한 해를 다시 배열하는 방식

입춘굿의 핵심은 예전부터 전해져왔다는 게 전부가 아닙니다. 굿판은 지난 시간을 정리하고 다가올 시간을 배치하는 과정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입춘굿에는 늘 ‘몰이’와 ‘비움’의 장면이 함께 등장합니다.


거리굿과 세경제, 낭쉐몰이, 사리살성은 모두 한 해의 액을 밖으로 밀어내고 새로운 기운이 들어올 자리를 만드는 의례입니다.
항아리를 깨고 콩을 뿌리며 액을 씻어내는 장면은 상징적이지만, 동시에 공동체가 함께 결단을 내리는 행위이기도 합니다.

관덕정과 제주목관아, 시장과 거리로 이어지는 동선은 굿의 흐름을 물리적으로 보여줍니다.
평소에는 기능만 남아 있던 공간들이 입춘굿 기간 동안 하나의 이야기로 연결됩니다.
일상의 질서가 잠시 느슨해지고, 공동체가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시간입니다.

(제주민예총 제공)

■ ‘확장’에서 ‘집중’으로

2026년 탐라국입춘굿은 주요 의례와 공연을 관덕정과 관덕정 광장 일원에 집중 배치했습니다. 세경제와 낭쉐코사, 사리살성, 낭쉐몰이 등 핵심 장면을 하나의 흐름으로 엮어 관람객이 의례의 맥락을 자연스럽게 따라가도록 구성했습니다.

입춘을 앞둔 시민 참여 프로그램도 축제의 중요한 축입니다.
소원지 쓰기와 굿청에 이름 올리기, 기원차롱 접수는 축제 이전부터 개인의 바람을 굿판 안으로 끌어들이는 장치입니다.
이 바람들은 축제 당일, 굿과 함께 공동체의 기원으로 전환됩니다.

서귀포 원도심으로 확대된 입춘 기행은 마을 신앙과 생업 문화를 직접 걷고 듣는 프로그램입니다. 축제가 지역을 소개하는 방식도 설명에서 체험으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 전통의 신명, 오늘의 ‘몸’으로 다시 살아나

입춘굿의 밤은 소리와 움직임으로 완성됩니다.
굿의 리듬은 반복과 고조를 통해 몸의 감각을 깨웁니다.

전통음악 창작그룹 ‘노는조합’은 판소리와 민요, 전통 악기를 바탕으로 굿판의 호흡을 음악으로 풀어냅니다. 혼성 중창 ‘에버노트’는 안정적인 화성과 음색으로 축제의 흐름을 넓히고, ‘추다혜차지스’는 무가의 에너지를 현대적 사운드로 확장합니다.
여기에 ‘사우스카니발’은 제주어와 제주의 삶을 리듬에 실어 관객과 공유합니다.

무대 밖에서는 제주 출신 청년 예술인들로 구성된 비보이팀 ‘제주스티즈’가 축제 공간을 누비며 관람객과 즉흥적으로 호흡합니다.
굿판의 신명은 무대 안과 밖을 가르지 않습니다.

■ 세대가 바뀌어도, 농경의 중심이 이어지도록


올해 탐라국입춘굿에서 눈에 띄는 변화는 호장 선정입니다. 지역 원로나 단체장이 아니라 청년 농부가 호장으로 나서며 농경 의례의 현재성을 분명히 합니다.
낭쉐에는 전통적으로 생명력과 풍요를 상징하는 문양이 더해졌고, 농경의 의미를 강조하는 상징들이 보강됐습니다.

축제 구성 역시 의례와 공연, 체험이 유기적으로 이어지도록 재정비했습니다.

지역 상권과 연계한 프로그램도 강화됐습니다.
원도심에서 일정 금액 이상 소비한 방문객에게 입춘굿 굿즈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축제가 지역 안에서 순환하도록 설계했습니다.

■ 봄은 공동체가 함께 연다

탐라국입춘굿은 매년 같은 질문을 반복합니다.
한 해를 어떻게 시작할까.

신과 인간, 자연과 공동체가 한자리에 모여 같은 리듬을 나누는 이 굿판은 제주의 세계관을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줍니다.
과거의 의례는 지금 이곳에서 다시 작동하며, 해마다 새롭게 의미를 얻습니다.

탐라국입춘굿은 그렇게, 제주의 새 철을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열어갑니다.

제주민예총 관계자는 “2026년 병오년 탐라국입춘굿은 전통의 뿌리를 지키면서도 도민과 관광객이 함께 봄을 맞이하는 축제가 될 것”이라며 “신들의 귀환과 땅의 숨 고름 속에서, 탐라국입춘굿이 제주 공동체가 함께 여는 봄의 약속으로 새 철을 여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습니다.




JIBS 제주방송 김지훈(jhkim@jibs.co.kr) 기자
<저작권자 © JIBS 제주방송,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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