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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여행에 왜 4·3평화공원을?”… 5·18 가르친 교사도 ‘공산당’ 민원
2026-07-09
JIBS 제주방송 김지훈(jhkim@jibs.co.kr) 기자
국민 82.4% “현실 사회문제 교육 필요”… 학교 시민교육 동의 83.7%
교사 84.4%는 정치중립성 민원 우려로 수업·지도 축소
민주화운동·세월호·독도·제주 4·3까지 ‘편향’ 딱지에 흔들린 교실
교사가 역사·시민교육 수업을 진행하는 가운데, 외부 시선과 민원 부담이 교실 안으로 들어오는 상황을 형상화한 이미지. (AI생성)

5·18 민주화운동을 교과서대로 가르친 교사는 “좌파 사상 주입”, “공산당”이라는 민원을 받았습니다.
제주 수학여행 코스에 4·3평화공원을 넣었다는 이유로 항의를 받은 사례도 있었습니다.

조사 결과, 응답자 다수는 학생들이 현실 정치 쟁점과 사회문제를 학교에서 배워야 한다고 봤습니다.
하지만 정작 교실에서는 교사가 역사와 사회문제를 다루는 순간 정치 편향 민원에 노출되는 게 현실이었습니다.

시민교육을 더 해야 한다는 여론과, 그 교육을 맡은 교사가 민원 앞에서 수업을 줄이는 현장이 동시에 확인됐습니다.


교사노동조합연맹이 발표한 ‘학교 내 민주시민교육, 5,000명 대국민 인식조사’ 주요 결과. 현실 정치 쟁점·사회문제 교육이 필요하다는 응답은 82.4%, 학교 시민교육에 동의한다는 응답은 83.7%로 나타났다. (교사노조 제공)

■ “학교에서 배워야 한다”는 여론… 수업을 줄이는 교사

교사노동조합연맹은 9일 서울 영등포구 노총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학교 내 민주시민교육, 5,000명 대국민 인식조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이번 조사는 교사노조 정책연구원이 여론조사 전문기관 마크로밀엠브레인에 의뢰해 지난 4월 17일부터 22일까지 전국 만 16세 이상 70세 미만 남녀 5,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했습니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1.39%포인트(p)입니다.


응답자의 82.4%는 현실 정치 쟁점과 사회문제를 학생에게 교육할 필요가 있다고 답했습니다. 학교에서 시민교육을 하는 데 동의한다는 응답은 83.7%였습니다.
현재 학교 시민교육 수준이 부족하다는 응답도 66.0%로 나타났습니다.

학생들이 현실 정치 쟁점과 사회문제를 주로 어디에서 배워야 하느냐는 질문에는 ‘학교’라는 응답이 66.4%로 가장 많았습니다.
가족은 14.6%, TV는 6.3%, 온라인은 5.6%, 학원은 0.5%였습니다.

교사가 수업에서 현실 정치·사회 쟁점을 교육적 소재로 다루는 데 찬성한다는 응답도 67.4%였습니다.
반대는 20.8%, 잘 모르겠다는 11.8%였습니다.

여론만 보면 학교 시민교육에 대한 사회적 요구는 비교적 뚜렷해 보이지만, 학교 현장은 다른 양상을 드러냈습니다.

교사노조가 지난해 11월 실시한 ‘교사 교육권 침해 및 정치 관련 민원 사례 조사’에서는 응답 교사 84.4%가 정상적인 교육활동이 ‘정치중립성 위반’으로 오해될 것을 우려해 수업이나 지도를 포기하거나 축소한 적이 있다고 답했습니다.

정상적인 교육활동을 정치중립성 위반이라고 주장하는 항의나 민원을 받은 경험은 20.2%였습니다. 신고나 고소를 하겠다는 위협을 받은 경험도 8.8%로 조사됐습니다.

교사노조가 공개한 시민교육 관련 민원 사례 주요 언급 단어. ‘민원’, ‘학부모’, ‘지도·생활지도·훈육’, ‘정치인’, ‘5·18·광주’ 등이 두드러졌다. (교사노조 제공)

■ 4·3평화공원도, 5·18도 민원 대상

민원은 선거와 정당 수업에만 집중된 게 아니었습니다. 역사교육과 생활지도까지 정치 편향 논란에 휘말렸습니다.
교사노조가 공개한 사례를 보면 초등학교 5학년 사회과 수업에서 일제강점기와 3·1운동, 유관순 열사를 다룬 뒤 “교사와 학교 교육과정이 좌파로 치우쳐 있다”는 민원이 제기됐습니다.

5·18 민주화운동을 교과서 내용 그대로 가르친 교사는 “좌파 사상 주입”, “공산당”이라는 항의를 받았습니다.

박정희·전두환·이승만 전 대통령 등 독재 정권의 공과를 설명했다가 “국부 희화화”, “독재자 비하”라는 민원이 들어온 사례도 있었습니다.
영화 ‘서울의 봄’이나 ‘택시운전사’를 활용한 역사 수업 뒤 항의를 받은 경우도 접수됐습니다.
제주4·3평화기념관 전경. 교사노조 조사에서는 수학여행 코스에 4·3평화공원을 포함했다가 민원이 제기된 사례도 공개됐다.

제주 관련 사례도 확인됐습니다. 수학여행 코스에 4·3평화공원을 포함했다는 이유로 민원이 제기된 경우입니다.
해당 교사는 “제주도에 가면 수학여행 코스 중 당연히 4·3평화공원을 가지 않느냐. 거기에 간다고 민원이 들어왔다”며 “그런 일이 벌어지면 교사를 보호해 준 적이 있는지”를 따져 묻기도 했습니다.

세월호 참사를 안전교육 차원에서 설명했는데도 “좌파 사상 주입”이라는 공격을 받은 교사가 있었고, 독도 교육을 하다 “반일 감정 조장”, “빨갱이”라는 말을 들은 사례도 있었습니다.

확인된 역사적 사실과 교육과정상 필요한 내용까지 정치 민원으로 번지면서, 일부 교사들은 배경 설명을 줄이고 교과서 문장만 읽는 방식으로 수업을 바꾸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현실 정치 쟁점·사회문제 수업에 대한 우려 조사 결과. ‘교사의 정치적 편향교육으로 왜곡된 시각이 주입될 우려’가 63.6%로 가장 높았다. (교사노조 제공)

■ “편향 주입” 우려도 커… 기준 없는 시민교육은 불신 키워

시민교육 확대에 대한 동의가 높다고 해서 우려가 없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현실 정치 쟁점과 사회문제를 수업에서 다룰 때 가장 걱정되는 점으로는 ‘교사의 정치적 편향교육으로 학생에게 왜곡된 시각이 주입될 우려’가 63.6%로 가장 높았습니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주제를 다룰 경우 학교 내 갈등이나 혼란이 발생할 수 있다는 응답은 16.2%였습니다.

반면 ‘정치 쟁점은 학교교육의 범위를 벗어난다’는 응답은 5.8%에 그쳤습니다.
응답 흐름은 쟁점교육 자체를 학교 밖으로 밀어내자는 쪽보다, 수업 방식과 기준을 요구하는 쪽에 가까웠습니다.
현실 정치 쟁점·사회문제 수업의 전제 조건 조사 결과. 다양한 입장의 균형 제시와 특정 정당·후보 지지 유도 금지가 높은 응답을 보였다. (교사노조 제공)

학교 수업에서 현실 정치 쟁점과 사회문제를 다룰 때 필요한 조건을 묻는 질문에서도 ‘하나의 관점만 제시하지 않고 다양한 입장을 균형 있게 다뤄야 한다’는 응답이 52.1%로 가장 높았습니다.
‘특정 정당이나 후보를 지지하도록 유도해서는 안 된다’는 응답도 49.2%였습니다.

이는 학생에게 특정 결론을 주입하지 말고, 사실과 근거, 다양한 관점, 토론의 규칙을 학교가 제시해야 한다는 요구로 해석됩니다.
학교 시민교육을 하자는 구호만으로는 교실이 움직이기 어렵고, 수업 원칙과 자료 기준, 민원 대응 절차가 함께 마련돼야 한다는 뜻입니다.

■ 혐오와 조롱은 이미 교실에 들어와

교사노조는 학생들이 이미 온라인과 미디어, 또래 관계 속에서 정치·사회적 표현을 접하고 있다고 봤습니다.
학교가 이를 다루지 않는다고 해서 학생들이 현실 쟁점에서 떨어져 지내는 구조가 아니라는 지적입니다.

현장 사례에는 학생들이 일베 용어를 쓰며 웃거나, 교사에게 “선생님 좌파냐”고 묻는 경우도 포함됐습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 비하 발언을 비롯해 일베 용어 사용을 금지시킨 교사가 “특정 정당 지지자”라는 공격을 받은 사례도 있었습니다.

최근 고교 야구 경기에서 조롱과 혐오 표현이 나온 뒤, 학교가 이런 언어를 어떻게 다뤄야 하느냐는 문제도 다시 제기됐습니다.

핵심은 정치 성향이 아니라 교육의 기준입니다. 학생들이 사실과 의견, 비판과 혐오, 표현의 자유와 타인의 존엄 침해를 구분하도록 가르치는 일이 학교 시민교육의 중심에 놓여야 한다는 말입니다.

학교가 침묵하면 학생들은 검증되지 않은 정보와 조롱의 언어를 통해 사회를 먼저 배웁니다.
교사가 설명을 피하고, 토론을 접고, 민원을 걱정해 교과서 문장만 읽는 방식으로 물러서면 시민교육의 공간은 온라인 댓글과 숏폼 콘텐츠가 대신 차지할 것이란 우려도 나오고 있습니다.

■ 교사 개인의 용기로 버틸 문제 아니

송수연 교사노조 위원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지금 필요한 것은 침묵이 아니라 현실 사회의 갈등을 시민교육의 언어로 다루는 학교 교육”이라며 “교사와 학교의 침묵이 아니라 학생의 시민적 판단을 보장하는 교육 원리가 작동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또 “학생들이 이미 온라인과 미디어에서 접하고 있는 현실 속 혐오와 조롱 표현을 비판적으로 읽어내는 힘을 기르지 못했다는 건 어른들과 공교육의 책임”이라며 교육당국 차원의 제도적 환경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습니다.

교사노조는 학교 시민교육이 안정적으로 이뤄지려면 교사 개인의 판단에만 맡겨서는 안 된다고 보고 있습니다.
교육과정 안에서 다룰 수 있는 주제와 자료 기준을 분명히 하고, 정당한 교육활동을 정치 민원으로부터 보호할 장치가 필요하다는 입장입니다.

4·3평화공원을 수학여행 코스에 넣는 일까지 민원 대상이 되고, 5·18 민주화운동을 교과서대로 가르치는 일마저 공격받는 상황에서 교육당국이 어떤 기준을 제시할지가 향후 쟁점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JIBS 제주방송 김지훈(jhkim@jibs.co.kr) 기자
<저작권자 © JIBS 제주방송,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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