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주 제18회 개인전 《싸는물 시민 드는물 싯나》 8월 3~12일 갤러리레미콘
밀물에 잠기고 썰물에 다시 열리는 종달리… 포말과 현무암, 철새 사이로 흐르는 바다의 시간
거대한 철새 무리를 다시 보고 싶어 새벽 어둠을 뚫고 종달리 바다로 향했습니다.
도착해 두 눈을 부릅뜨고 찾아도 새는 서너 마리뿐이었습니다.
아내가 말했습니다.
“물 들엄싱게.”
물이 들어오던 때였습니다.
새가 사라진 게 아니었습니다. 새들이 머물던 자리와 검은 현무암 사이로 열렸던 물길이 차오르는 바다 아래로 잠기고 있었습니다.
김용주의 제18회 개인전 《싸는물 시민 드는물 싯나》가 오는 8월 3일부터 12일까지 갤러리레미콘에서 열립니다.
■ 바다가 시간을 바꾸는 순간
‘싸는물’은 물이 빠지는 때, ‘드는물’은 물이 차오르는 때를 이르는 제주어입니다.
전시 제목은 지금 바다가 어느 쪽으로 움직이는지를 묻습니다.
빠지는 중인지 들어오는 중인지, 드러나는 때인지 잠기는 때인지 가늠하는 말입니다.
작가는 집에서 큰길을 따라가면 만나는 세화 바다와, 아침 해를 보며 조금 더 달리면 닿는 종달리 바다를 오랫동안 그려왔습니다.
사람들은 왜 다른 바다는 그리지 않느냐고 물었습니다. 작가도 자신에게 되물었습니다.
“왜 매일 종달리야?”
같은 자리에 서도 바다는 같지 않았습니다.
물이 들면 현무암과 갯가가 잠기고, 물이 빠지면 가려졌던 바닥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철새가 무리를 지어 날아드는 날도 있고, 몇 마리만 남는 날도 있습니다.
장소는 그대로인데 물때가 풍경을 바꿉니다.
■ 가까이에서는 물감, 멀어지면 바다
이번 작품들은 그 차이를 또렷한 윤곽보다 물의 움직임으로 풀어냅니다.
가까이 다가가면 흰 점과 짧은 선, 겹쳐진 붓질이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물감은 튀고 번지고 엇갈리며 캔버스 곳곳으로 뻗어갑니다.
몇 걸음 물러서면 흩어진 점은 포말이 되고, 거친 선은 파도로 바뀝니다.
검은 현무암과 수면을 가르는 새들도 그제야 제 모습을 갖춥니다.
가까이에서는 물감이고, 멀어지면 바다입니다.
구체적인 해안이나 추상에 가까운 흔적은 한 작품 안에서 갈라지지 않습니다. 관람자가 거리를 옮길 때마다 물감과 풍경이 번갈아 앞으로 나옵니다.
작가는 바다의 외형을 가지런히 옮기기보다 물결이 깨지고 빛이 흩어진 뒤 다시 물속으로 뒤섞이는 순간을 붙잡습니다.
대표작 〈고성리의 아침Ⅰ〉은 가로 193.9㎝, 세로 130.3㎝ 크기의 아크릴화입니다.
시선을 붙드는 것은 수평선보다 잘게 부서지는 수면입니다. 흰색과 청색, 짙은 녹색이 겹치고 갈라지며 물의 방향을 만들고, 그 사이를 스치는 작은 새들이 바다의 규모를 가늠하게 합니다.
다른 작품에서는 검은 현무암이 아래쪽을 묵직하게 받칩니다. 또 다른 작품에서는 바위와 물의 경계가 포말 속에서 풀어집니다.
물이 빠진 바다는 사물의 윤곽을 내어주고, 물이 들면 그 경계를 덮으며 움직임을 앞세웁니다.
■ 바다를 그리며 몸의 때를 묻다
물때는 바다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새들이 힘차게 날고 붓도 거침없이 나아가는 날이 있는가 하면, 아무리 애써도 그림이 풀리지 않아 손을 놓아야 하는 날도 있습니다.
작가는 이를 두고 “몸의 기운도 든 날이 있고 싼 날이 있다”고 표현합니다.
바다가 늘 같은 속도로 들고 빠지지 않듯 작업도 작가의 뜻대로만 나아가지 않습니다. 기운이 차오를 때와 빠져나갈 때, 밀고 갈 때와 멈출 때가 번갈아 찾아옵니다.
“나에게도 바다가 밀려 들어왔다 싸서 나갔을까? 우리가 이 흐름을 거역할 수 있을까?”
종달리에서 시작된 물음은 자신의 몸과 붓으로 돌아옵니다. 밀물과 썰물은 작품 속 풍경이면서, 그리는 손을 움직이고 멈추게 하는 시간이 됩니다.
■ 같은 곳으로 돌아가도, 같은 바다는 없어
김용주가 거듭 종달리로 향하는 까닭은 익숙한 풍경을 되풀이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물이 들면 현무암과 물길이 사라지고, 물이 빠지면 가려졌던 바닥이 열립니다.
철새가 몰려들었다 떠나고, 빛은 수면을 따라 잘게 부서집니다. 같은 자리에서도 보이는 것과 가려지는 것이 계속 바뀝니다.
작가는 그때마다 새로 나타난 바다를 그립니다. 한 작품에서는 물결과 새가 선명하고, 다른 작품에서는 형태가 포말 속으로 흩어집니다.
같은 종달리로 돌아가도 같은 바다를 만날 수 없습니다.
《싸는물 시민 드는물 싯나》라는 제목도 결국 그 이야기를 품고 있습니다.
“물 들엄싱게.”
새를 찾아 나섰던 아침, 그 한마디는 물때를 가리키는 말을 넘어 김용주가 같은 바다를 오래 그려온 이유를 다시 들려줍니다.
작가는 《오늘도 바다로 간다》, 《바람 생기는 데》, 《아침에 만나는 바다》, 《바람바당》, 《제주 동쪽》, 《덮치고 파고들고 물러서서》, 《바람 부는 바다》 등 제주 자연과 바다를 주제로 개인전을 이어왔습니다.
또 제4회 제주비엔날레와 제주도립미술관 기획전, 제주미술제, 4·3미술제 등에 참여했으며 현재 한국미술협회 제주자치도지회와 한라미술인협회, 초록동색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관람 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입니다.
이번 전시는 재단법인 현오학술문화재단의 2025년도 제주 문화예술인 지원사업 후원으로 마련됐습니다.
JIBS 제주방송 김지훈(jhkim@jibs.co.kr)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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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물에 잠기고 썰물에 다시 열리는 종달리… 포말과 현무암, 철새 사이로 흐르는 바다의 시간
김용주 作 〈종달리의 아침Ⅲ〉. 종달리 바다를 담은 작품. 물때에 따라 달라지는 바다의 풍경을 짙은 색감으로 풀어냈다.
거대한 철새 무리를 다시 보고 싶어 새벽 어둠을 뚫고 종달리 바다로 향했습니다.
도착해 두 눈을 부릅뜨고 찾아도 새는 서너 마리뿐이었습니다.
아내가 말했습니다.
“물 들엄싱게.”
물이 들어오던 때였습니다.
새가 사라진 게 아니었습니다. 새들이 머물던 자리와 검은 현무암 사이로 열렸던 물길이 차오르는 바다 아래로 잠기고 있었습니다.
김용주의 제18회 개인전 《싸는물 시민 드는물 싯나》가 오는 8월 3일부터 12일까지 갤러리레미콘에서 열립니다.
김용주 作 〈피어오르다Ⅱ〉. 포말과 물결이 겹쳐지며 바다의 움직임을 담아낸 작품.
■ 바다가 시간을 바꾸는 순간
‘싸는물’은 물이 빠지는 때, ‘드는물’은 물이 차오르는 때를 이르는 제주어입니다.
전시 제목은 지금 바다가 어느 쪽으로 움직이는지를 묻습니다.
빠지는 중인지 들어오는 중인지, 드러나는 때인지 잠기는 때인지 가늠하는 말입니다.
작가는 집에서 큰길을 따라가면 만나는 세화 바다와, 아침 해를 보며 조금 더 달리면 닿는 종달리 바다를 오랫동안 그려왔습니다.
사람들은 왜 다른 바다는 그리지 않느냐고 물었습니다. 작가도 자신에게 되물었습니다.
“왜 매일 종달리야?”
같은 자리에 서도 바다는 같지 않았습니다.
물이 들면 현무암과 갯가가 잠기고, 물이 빠지면 가려졌던 바닥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철새가 무리를 지어 날아드는 날도 있고, 몇 마리만 남는 날도 있습니다.
장소는 그대로인데 물때가 풍경을 바꿉니다.
김용주 作 〈차귀도 가는 길〉. 빛과 물결이 만나 만들어내는 수면의 변화를 표현한 작품.
■ 가까이에서는 물감, 멀어지면 바다
이번 작품들은 그 차이를 또렷한 윤곽보다 물의 움직임으로 풀어냅니다.
가까이 다가가면 흰 점과 짧은 선, 겹쳐진 붓질이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물감은 튀고 번지고 엇갈리며 캔버스 곳곳으로 뻗어갑니다.
몇 걸음 물러서면 흩어진 점은 포말이 되고, 거친 선은 파도로 바뀝니다.
검은 현무암과 수면을 가르는 새들도 그제야 제 모습을 갖춥니다.
가까이에서는 물감이고, 멀어지면 바다입니다.
구체적인 해안이나 추상에 가까운 흔적은 한 작품 안에서 갈라지지 않습니다. 관람자가 거리를 옮길 때마다 물감과 풍경이 번갈아 앞으로 나옵니다.
작가는 바다의 외형을 가지런히 옮기기보다 물결이 깨지고 빛이 흩어진 뒤 다시 물속으로 뒤섞이는 순간을 붙잡습니다.
대표작 〈고성리의 아침Ⅰ〉은 가로 193.9㎝, 세로 130.3㎝ 크기의 아크릴화입니다.
시선을 붙드는 것은 수평선보다 잘게 부서지는 수면입니다. 흰색과 청색, 짙은 녹색이 겹치고 갈라지며 물의 방향을 만들고, 그 사이를 스치는 작은 새들이 바다의 규모를 가늠하게 합니다.
다른 작품에서는 검은 현무암이 아래쪽을 묵직하게 받칩니다. 또 다른 작품에서는 바위와 물의 경계가 포말 속에서 풀어집니다.
물이 빠진 바다는 사물의 윤곽을 내어주고, 물이 들면 그 경계를 덮으며 움직임을 앞세웁니다.
■ 바다를 그리며 몸의 때를 묻다
물때는 바다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새들이 힘차게 날고 붓도 거침없이 나아가는 날이 있는가 하면, 아무리 애써도 그림이 풀리지 않아 손을 놓아야 하는 날도 있습니다.
작가는 이를 두고 “몸의 기운도 든 날이 있고 싼 날이 있다”고 표현합니다.
바다가 늘 같은 속도로 들고 빠지지 않듯 작업도 작가의 뜻대로만 나아가지 않습니다. 기운이 차오를 때와 빠져나갈 때, 밀고 갈 때와 멈출 때가 번갈아 찾아옵니다.
“나에게도 바다가 밀려 들어왔다 싸서 나갔을까? 우리가 이 흐름을 거역할 수 있을까?”
종달리에서 시작된 물음은 자신의 몸과 붓으로 돌아옵니다. 밀물과 썰물은 작품 속 풍경이면서, 그리는 손을 움직이고 멈추게 하는 시간이 됩니다.
김용주 作 〈고성리의 아침Ⅰ〉. 물이 빠진 해안의 현무암과 철새를 담은 작품.
■ 같은 곳으로 돌아가도, 같은 바다는 없어
김용주가 거듭 종달리로 향하는 까닭은 익숙한 풍경을 되풀이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물이 들면 현무암과 물길이 사라지고, 물이 빠지면 가려졌던 바닥이 열립니다.
철새가 몰려들었다 떠나고, 빛은 수면을 따라 잘게 부서집니다. 같은 자리에서도 보이는 것과 가려지는 것이 계속 바뀝니다.
작가는 그때마다 새로 나타난 바다를 그립니다. 한 작품에서는 물결과 새가 선명하고, 다른 작품에서는 형태가 포말 속으로 흩어집니다.
같은 종달리로 돌아가도 같은 바다를 만날 수 없습니다.
《싸는물 시민 드는물 싯나》라는 제목도 결국 그 이야기를 품고 있습니다.
“물 들엄싱게.”
새를 찾아 나섰던 아침, 그 한마디는 물때를 가리키는 말을 넘어 김용주가 같은 바다를 오래 그려온 이유를 다시 들려줍니다.
작가는 《오늘도 바다로 간다》, 《바람 생기는 데》, 《아침에 만나는 바다》, 《바람바당》, 《제주 동쪽》, 《덮치고 파고들고 물러서서》, 《바람 부는 바다》 등 제주 자연과 바다를 주제로 개인전을 이어왔습니다.
또 제4회 제주비엔날레와 제주도립미술관 기획전, 제주미술제, 4·3미술제 등에 참여했으며 현재 한국미술협회 제주자치도지회와 한라미술인협회, 초록동색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관람 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입니다.
이번 전시는 재단법인 현오학술문화재단의 2025년도 제주 문화예술인 지원사업 후원으로 마련됐습니다.
JIBS 제주방송 김지훈(jhkim@jibs.co.kr)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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