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의 낙인...비극은 끝나지 않았다
JIBS는 4.3 수형인들의 생생한 증언을 통해 4.3 진상 규명의 필요성과 과제 등을 집중적으로 전해드렸습니다.
그만큼 4.3 수형인 문제는 4.3의 아픔을 고스란히 안고 있는 대표적 사안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직도 제대로 주목받지 못했고, 관련 연구나 조사도 부족합니다.
김동은 기잡니다.
우리가 만난 4.3 수형인들의 증언은 놀랍도록 한결 같았습니다.
영문도 모른채 잡혀 가족을 잃고, 모진 고문까지 당해야만 했습니다.
박순석(91세) 전주형무소 수형인
"나의 누명을 좀 벗겨달라고...폭도, 간첩 이 누명만 벗겨달라고 나는 폭도도 아니고, 간첩도 아니라고..."
오계춘(94세) 전주형무소 수형인
"내가 무슨 잘못한게 있나요? 내가 무슨 잘못을 했나요? 내 아기만 다니면서 죽였지..."
70년의 세월이 지나면서 고령의 수형 생존자들은 거동조차 힘들었고,
고문 후유증으로 평생을 고생하다, 투병 생활하는 수형인들도 늘고 있습니다.
정기성(97세) 마포형무소 수형인
"억울하고 잊어버리지 않고 생각만 하면 억울하고..."
그 지옥같은 4.3의 실상을 목격하고 경험한 사람들이 사라지고 있는 겁니다.
박내은(88세) 전주형무소 수형인
"다시 그 사태(4.3)를 마주한다면 자살해서 죽어버리지, 그 꼴을 보지 않겠습니다. 본 사람 밖에는 말해도 몰라요"
심지어 재심 청구를 한 4.3 수형 생존자 18명 가운데 1명은 인터뷰 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워낙 고령인데다, 고통의 기억을 꺼내는게 가족들에게도 힘들다는 이유 때문입니다.
전과자라는 낙인에 가족들에게 피해가 갈까, 여전히 수형인 30% 정도는 4.3 희생자로 등록하지도 않았습니다.
김영란 제주4.3도민연대 조사연구원
"(억울하지만) 자기가 겪은 것으로 마무리 하고 싶은거에요. 세상이 다시 뒤바꿔서 우리 아이들이 전부 끌려가서 죽으면 누가 책임질꺼냐고...그래서 (4.3 지원금) 그 몇 푼 받으려고 등록할 생각 전혀 없다고..."
전국 6곳의 형무소 가운데 그나마 일부라도 조사가 이뤄진 곳은 절반 수준에 그치고 있습니다.
한국전쟁으로 재수감되거나, 사형수 관련 조사는 한번도 이뤄진 적이 없습니다.
현창용(86세) 인천형무소 수형인
"첫 번째 징역살이가 1년 7개월 정도 살았고, 나중에 20년...(출소하니까) 어머니가 아들인지 의심을 했어..."
현우룡(94세) 대구형무소 수형인
"취조에 못이겨서 사람 죽였다라고 한 사람도 있고 그런 사람 전부 사형 당했습니다"
70년의 세월이 지났지만 아직도 현재 진행형인 수형인들의 비극은 갈 길이 먼 제주 4.3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JIBS 김동은입니다.
김동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