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4·3 기획, 1. 죽음의 피신처 '종남궤'..."사람뼈가 나왔었다."
(앵커)
4·3 당시 중산간 마을주민 상당수가 토벌대의 무차별 학살을 피해 한라산으로 피난길에 올랐습니다.
하지만 당시에 어디에 피신해 있었는지, 피신처에서 얼마나 학살됐는지 아직도 제대로 조사된 적이 없습니다.
JIBS는 여전히 감춰져 있는 4·3 당시 피난처와 양민 학살 실태를 집중 조명할 예정입니다.
첫번째로, 4·3 당시 중요한 피난처로 추정되는 한라산 종남궤가 처음으로 확인됐습니다.
김동은 기잡니다.
(리포트)
한국전쟁이 끝난 후, 한라산에서 소를 키웠다는 81살의 강상흥 할아버지.
당시 한라산 중턱의 한 작은 동굴인 일명 '궤'에서 뼈만 남은 시신들을 봤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강상흥 할아버지/서귀포시 하원동
(인터뷰)-(자막)-"거기 옷까지 완전히 삭아버리지 않아서, 조금 흔적이 있고, 뼈만 있었다는...(유해) 5구 치웠다거나, 6구 치웠다거나 하는 사람들이 없지 않아 있었습니다"
인근 마을에 소 테우리였던 이원경 할아버지도 1950년대 후반쯤 이곳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여러 뼈들을 수거했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이원경 할아버지/서귀포시 회수동
(인터뷰)-(자막)-"(풀을 치우다가) 호미에 무언가 걸려서 파서 보면 뼈가 보였고, 당시에는 (동물의) 살을 먹고 거기에 집도 아니니까 버린게 아닌가 (생각했었다)"
증언자들이 공통적으로 지목한 곳은 '종남궤'라 불리는 지형입니다.
한라산 볼레오름 서쪽에서 가장 큰 궤로, 제주 4·3 이후 사람이 죽는다는 무서운 속설이 전해지던 곳입니다.
전문가와 함께, 종남궤를 찾아가봤습니다.
허리까지 자란 조릿대와 깊은 숲속을 헤치고 들어간지 1시간.
언덕 사이에서 작은 굴이 나타납니다.
내부는 성인이 서있을 수 있을 정도로 크고, 불을 피웠던 흔적이나 정체를 알 수 없는 뼈들도 확인됩니다.
김동은 기자
(S/U)"이곳 종남궤는 내부가 반원 형태로 이뤄진데다, 외부에서 잘 보이지 않아 피난민들이 피신하기에 최적의 장소로 보입니다"
종남궤 앞쪽에선 오래전 사용했던 깨진 그릇이 발견되고,
인근에서는 4·3 당시에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쇠로 만든 솥까지 확인됩니다.
심지어 종남궤 안쪽에서는 지난 1950년대 후반쯤 실탄을 직접 봤다는 증언도 있습니다.
증언자
(싱크)-(자막)-"(종남궤에서) 실탄 3개, 그리고 탄피, 거기서 총 쏘면서 한 모양인데, 사람도 여럿 죽기는 죽었답니다"
4·3 당시 토벌대에 쫒기던 피난민들이 종남궤에 머물렀을 가능성이 그만큼 높다는 얘깁니다.
한상봉 한라산 인문학 연구가
(인터뷰)-(자막)-"이정도면 한 20여명이 들어와서 머물면서 공동 생활을 할 수 있는 큰 궤거든요. 추운 곳에서 단체로 모일 수 있는 자리에 이런 궤가 있다는 건, 상당히 큰 아지트, 대피처가 되지 않았나 보는 거죠"
영상취재 윤인수
촬영협조 한라산국립공원관리소
피난민들에게 생명의 보금자리이자, 죽음의 피난처가 됐을 종남궤.
이 종남궤에 누가, 어떻게 피신해 왔는지 지금까지 아무도 구체적인 조사를 해 본 적이 없습니다.
강상흥 할아버지/서귀포시 하원동
(인터뷰)-(자막)-"종남궤 뿐만 아니라 이 근처 궤에서 사람이 안 죽었던 궤는 드물 겁니다"
JIBS 김동은입니다.
김동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