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4·3기획-탄피와 철창...들굽궤오동이의 진실
(앵커)
제74주년 제주4·3 추념식이 6일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제주4·3 당시 중산간 지역에 살던 수많은 주민들은 군인과 경찰의 무차별 토벌을 피해 한라산과 중산간 동굴로 숨어들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피신처는 그동안 제대로 조사된 바가 없습니다.
JIBS는 제주 4·3 제74주년을 맞아, 그동안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4·3 피난처들을 추적해 봤습니다.
이 과정에서 4·3 당시 사용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피난처에서 탄피와 포탄, 그리고 철창까지 처음으로 발굴됐습니다.
김동은 기잡니다.
(리포트)
휴대전화 신호도 잡히지 않는 제주 중산간 일대의 깊은 숲 속.
허리까지 자란 조릿대들을 헤치고 20여분 가량 능선을 올랐습니다.
능선 한쪽 암반 사이의 조그만 공간, 일명 '궤'가 나타납니다.
이 일대는 두릅이 많이 자라는 언덕이라는 뜻의 '들굽궤 오동이'라고 불렸던 곳입니다.
전문가와 함께 이 궤 인근을 금속탐지기로 확인해봤습니다.
금속탐지기에서 갑자기 신호가 감지됩니다.
조심스럽게 흙과 낙엽들을 걷어내자, 길죽한 모양의 쇠붙이가 발견됩니다.
"탄피다. 탄피...M1 소총 탄피네"
인근에서는 비슷한 신호도 계속 확인됩니다.
"여기 여기, 이건 쇠 종류..."
끝이 뾰족하고 뒷부분이 구부러진 형태의 철창입니다.
4·3 당시 무장대가 사용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심지어 궤 인근에서는 박격포 탄으로 추정되는 물체도 발견됩니다.
이 일대에서만 10개가 넘는 탄피와 탄두, 놋숟가락과 총알을 끼워넣는 클립까지 무더기 확인됐습니다.
한 곳에서 무장대와 토벌대의 유물이 동시에, 그것도 대량으로 확인되는 건 상당히 이례적입니다.
배기철 / 전 제주주민자치연대 대표
"이렇게 많이 탄피가 나오고 놋 숟가락, 그다음 철창 이런 것까지 나온 것으로 봐서 여기에 무장대가 있었고, 토벌대가 지나가다가 아마 조우해서 교전을 한 상황이 아닌가..."
4·3 당시 무장대와 토벌대의 치열한 교전이 있었다면, 4·3 관련 유해가 묻혀 있을 가능성도 높다는 뜻입니다.
김동은 기자
"이 일대에서 치열한 전투의 흔적인 상당량의 탄피와 이런 철창까지 발견되면서 추가 연구가 시급한 상황입니다"
하지만 아직 이 일대는 기초 조사도 이뤄진 적이 없습니다.
증언 기록도 남아있지 않아 언제, 누가, 어떻게 피신했고, 어떤 교전이 벌어졌는지 기본적인 내용도 확인되지 않고 있습니다.
한상봉 / 한라산 인문학 연구가
"그때 당시 10살 이상되신 분들이 그나마 기억을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84세 이상 그런 분들인데, 그 분들 세대가 이제 다 저물어가고 있다는 말이예요. 다 돌아가셨고, 그래서 증언해 줄 사람이 거의 없고..."
4·3 당시 군인과 경찰의 토벌을 피해 해발 200에서 600미터 즉, 제주 중산간에 살던 주민 상당수는 한라산과 중산간 동굴이나 궤로 몸을 숨겼습니다.
70년이 넘는 세월 속에 묻혀 있던 당시 흔적들은 4.3의 참상을 기억해달라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JIBS 김동은입니다.
영상취재 - 고승한
제주방송 김동은(kdeun2000@hanmail.net) 제주방송 고승한(q890620@naver.com)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