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양민학살 확대 계기 ...'오라리 방화' 사건 잊혀져
제주 4.3 당시 오라리 방화 사건은 당시 가장 큰 사건 중 하나었습니다.
이는 4.3 양민학살로 확대되는
도화선이 됐습니다.
그런데 당시 당시 방화 현장은 사라졌고, 진실규명에서도 점차사라져가고 있다고 합니다.
조창범 기자가 현장을 취재했습니다
제주 4.3 당시 가장 큰 사건 가운데 하나가 지금의 제주시 오라동인 오라리 방화사건이었습니다.
4.3 양민 학살의 확대되는 계기가 됐던 사건이지만, 당시 유적은 사라지고 역사속에서도 지워져 가고 있습니다.
조창범 기잡니다.
1948년 5월.
제주시 오라리가 모두 불에 탔습니다.
당시 경찰은 무장대의 소행이라며, 대대적인 무장대 토벌에 나서는 계기가 됐습니다.
오라리 방화사건이 벌어졌던 현장은 이미 다세대 주택들이 들어서 있어 옛 모습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당시 오라리 북쪽 끝집, 가장 먼저 불에 탄 집이 고봉식 전 교육감의 생가였습니다.
고봉식 前 교육감/
연미 마을 지식인들 말살 위해 조작 주장
고 전 교육감은 당시 경찰이 무장대 토벌의 빌미를 만들기 위해, 지식인들이 많이 살던 오라리 방화사건 조작했다고 전했습니다.
고봉식 前 교육감
"이 연미는 빨갱이가 많고, 그래서 연미부터 소탕해야 한다, 경찰이 그렇게 했는데...'
이 일대에 우회도로가 조간만 생길 예정이라, 당시 흔적은 물론 기억에서도 지워질 상황입니다.
고봉식 前 교육감
"화려한 것이 허물어졌다, 이것을 폐허가 됐다고 얘기하지만, 지금 화려한 빌딩들이 들어오니까 오히려 연미마을은 빌딩으로 폐허가 되버린거죠."
4.3 70주년을 계기로 오라리 방화사건의 흔적을 기록하는 사업이 시작됐습니다.
오라리에 제주 4.3길이 조성되고, 불에 타 없어진 마을터 3곳에 표지석이 세워질 예정입니다.
박연호 오라동주민자치위원장
"묻혀져 가는 불타는 오라리를 이제 세롭게 우리들이 알아야 되겠다 해서 표지석을 세우고 4.3 연미길을 형성하게 됐습니다."
도심 개발 여파 속에 제주 4.3 당시 역사적 장소와 흔적들이 안타깝게 하나둘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JIBS 조창범입니다.
조창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