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0-09] 1009 8뉴스
한국의 매력 '한국어'
한국의 매력 '한국어'
어제는 572돌을 맞는 한글날입니다. 한글의 우수성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는데요.

이 한글을 배우기 위해 제주에서 공부하는 외국인들도 적잖습니다.

이들이 그동안 갈고닦은 실력을 맘껏 뽐내는 뜻깊은 자리가 오늘 마련됐습니다.

하창훈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조금은 어설픈, 외국인들의 한국어 경연이 펼쳐집니다.

한국에서 겪은 경험과 느낀점을 가감없이 전달합니다.

압살로모프 미로림
제가 만약에 한국 남자일 경우에는 한국에서 결혼을 못할지도 모릅니다.

유춘염
만약 그 때 경보음이 울리지 않았다면 저는 여기에 서있지 못했을 것입니다. 안전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습니다.

결혼이나 공부 때문에 제주를 찾은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한국어 말하기 대횝니다.

올해로 벌써 12번째.

외국인들에게 한국어에 대한 흥미를 고취시킬 뿐 아니라, 한국어와 한국문화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갖게하고자 진행되고 있습니다.

신우봉 제주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외국인들이 한국어를 사용함으로써 한국어 뿐만 아니라 한국 문화도 좀 더 알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싶어서 이런 장을 마련했습니다.

거듭되는 대회를 통해 한글의 우수성도 더 각인되고 있습니다.

체계적이고 독창적으로 만들어졌다는 학문적 결과는 물론이고,

한국어의 편리성이나 한국어에 담긴 역사나 문화도 외국인들에게 전달되고 있습니다.

스테크 야시미나 마르타
소리가 정말 아름다운 것 같아요. 그래서 한국사람이 정말 진솔한 사람 같아요.

외국인들의 한국어 말하기 대회는, 단순한 대회가 아닌 한국어와 한글의 우수성을 입증하는 자리가 되고 있습니다.

JIBS 하창훈입니다.
하창훈 기자
수어로 '청각장애인들과 함께 해'
수어로 '청각장애인들과 함께 해'
정부는 지난 2천16년 한국수화언어가가 국어와 동등한 자격을 가진 농인들의 고유한 언어라며 수화언어를 줄여 수어라고 규정한 한국수화언어법을 제정 공포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어를 사용하는 청각장애인들에 대한 환경은 크게 나아지지 않고 있습니다.

특히 정보접근에 있어 여러가지 어려움을 겪는게 사실입니다.

이런 청각장애인들을 위해 제주도농아복지관과 JIBS가 손을 잡고 본격적인 수어방송 확대에 나서기로 했습니다.

이효형 기잡니다.

특수처리 된 화면 앞에서 JIBS 뉴스 영상을 수어로 담아냅니다.

이렇게 촬영된 수어 영상은 교차 편집을 통해 청각장애인들을 위한 수어 뉴스로 새롭게 만들어집니다.

제주도농아복지관이 JIBS의 방송콘텐츠에 수어를 입힌 영상으로 지난달 말 농아복지관의 수어방송채널을 통해 첫 선을 보였습니다.

농아인들을 위한 전문 방송인만큼, 무엇보다도 수어의 비중을 가장 높였습니다.

김주연 / 제주도농아복지관 수어방송채널 담당
"기존 방송은 수어 화면의 비중이 매우 작아 내용을 파악하는데 어려움이 많은데, 저희 방송은 수어 화면의 크기를 키워 농아인들의 많은 호응을 받고 있습니다"

수어로 제작되는 JIBS의 콘텐츠는 뉴스 뿐만 아닌, 주간토픽 뉴스포커스와 4.3 현장을 찾아서 등 다양한 분야의 지역 소식을 수어로 전하게 됩니다.

JIBS 역시 홈페이지 개편을 통해 이달부터 수어 방송물을 전할 예정입니다.

농아복지관에서는 수어방송 확대를 시작으로 시청각중복장애인들을 위한 콘텐츠까지 다양하게 준비하고 있습니다.

문성은 / 제주도농아복지관장
"앞으로도 보다 많은 (수어 방송) 콘텐츠를 확보해 제공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또 시청각중복장애인에게도 다양한 서비스와 의사전달 방법을 교육하고 전달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두 기관은 수어방송 확대에 이어 지역사회의 수어 보급 확산에도 적극 나설 계획입니다.

JIBS 이효형입니다.
이효형 기자
44.3 수형인 조병태..."누구도 원망하지 않습니다"
44.3 수형인 조병태..."누구도 원망하지 않습니다"
(앵커)
4.3 수형인들의 아픔을 들어보는 기획순섭니다.

할머니와 함께 살던 19살 청년에게 4.3은 죽음과도 같았습니다.

수많은 동네 주민들이 이유없이 학살되고, 영문도 모른채 고문을 받아야 했던 이유는 바로 4.3 때문이었습니다.

그 고통의 70년을 보냈지만, 이제는 누구도 원망하고 싶지 않다고 합니다.

조병태(90)
- 1948년(당시 19살) 징역 1년
- 인천형무소 수감
- 할머니와 함께 살다, 체포...고문 끝에 징역살이

옷을 다 벗겨놓고, 사다리에 눕혀서...

밧줄로 묶어놓고...

드럼통에 물을 가득 채워 놓습니다.

그 한 드럼을 제가 다 먹었습니다.

막 먹여서...(배가) 가득 차...

발로 밟으면 팍팍 나오고...

조금 있다가 또 먹이고...

빈 밭이 있었는데 (주민들을) 밭에 몰아다가...

총소리 와다다다 나니까...

우리는 꼼짝도 못했지...거기(마을)에 있던 사람들은...

그때, 아이고 다 죽었구나...

(밭) 골에 피가 가득...

한덩어리로 다 넘어져서...

자기 가족을 찾지 못해 여기 뒤지고 저기 뒤지고...

(고문을) 받는데 무조건 네...

다 했다 이거야...

어짜피 이대로 죽을꺼니까...

(형무소에서) 10년, 7년, 8년 선고되다가...

그래도 전 1년 선고되니까, 날아갈 것 같았어요.

이제 살았다...

누구도 원망하지 않습니다.

시대를 잘못 만나서...

이런 고초를 겪었다...

그 뿐입니다...

"누구도 원망하지 않습니다"

김동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