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과 4.3 ... '제주 굴곡의 역사다'
71년의 긴 역사였지만 정치권에서의 제주 4.3은 굴곡이 심했습니다.
불과 30여년 전에야 처음으로 공론화됐고, 2천년대 초반이 돼서야 제대로 싹이 트기 시작했습니다.
굴곡이 심했던 정치권과 제주 4.3, 하창훈 기자가 정리했습니다.
(리포트)
지난 1987년.
당시 대선 후보였던 김대중 전 대통령은 정치인으로선 처음으로 4.3을 공론화했습니다.
집권하면 4.3의 진상을 밝히고 억울한 사람들의 원한을 풀어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그 약속이 싹을 틔운건 16년 뒤인 2003년이었습니다.
고 노무현 대통령이 현직 대통령으론 처음으로 4.3이 공권력에 의한 양민학살이었다며 공식 사과했고,
3년 뒤 4.3 위령제에선 4.3의 진상 규명과 명예회복은 국가의 책임이라고 밝혔습니다.
사실은 사실대로 분명하게 밝히고, 억울한 누명과 맺힌 한을 풀어주고, 그리고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함께 다짐하자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싹은 긴 꽃샘추위를 맞으면서 제대로 크지를 못했습니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를 거치며 4.3이 홀대되면서 유해발굴은 중단되고, 희생자 추가 신고조차 받지 않게 됐습니다.
4.3을 왜곡한 역사 교과서까지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2018년.
여러분, 제주에 봄이 오고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무엇보다 4.3을 둘러싼 이념 논쟁을 매듭짓고,
4.3의 완전한 해결을 향해 흔들림 없이 나아가겠다고 밝혔습니다.
4.3의 진실은 어떤 세력도 부정할 수 없는 분명한 역사의 사실로 자리를 잡았다는 것을 선언합니다.
그리고 1년 뒤.
4.3은 이제 만개할 준비를 갖추게 됐습니다.
4.3의 실질적 가해자로 지목된 군경이 공식 사과입장을 밝히며 진정한 화해와 상생의 디딤돌 역할을 했기 때문입니다.
4.3 당시 무고하게 희생된 양민들의 영전 앞에 다시한번 머리숙여 깊은 애도를 표합니다.
무고한 희생에 대해선 저희도 사과의 마음을 분명히 갖고 있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정치권에서 4.3의 씨앗이 뿌려지고 꽃이 피기까지 30여년.
그 꽃이 만개해 진정한 화해와 상생의 밑거름이 될지, 아니면 또 다른 길고 차가운 꽃샘추위를 맞이할지 추후 정치권의 움직임에 관심이 커지고 있습니다.
JIBS 하창훈입니다.
-영상취재 오일령
하창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