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4·3 기획 순서입니다.
어제(28) 이 시간을 통해 4·3 당시 무장대와 토벌대의 격전지로 추정되는 곳에서 탄피와 철창이 발견됐다는 소식 전해드렸습니다.
하지만 이곳은 아직 정확한 기록이나 증언이 남아있지 않는 상탭니다.
JIBS는 이 탄피의 정체는 무엇인지, 이 일대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증언과 관련 기록들을 토대로 당시 상황을 역추적해봤습니다.
김동은 기잡니다.
(리포트)
제주 중산간 일대 한 궤에서 처음으로 발견된 탄피.
현장에서 확인된 것만 10여개에 이릅니다.
과연 이 탄피는 누가, 언제 사용했을까?
발견된 탄피는 상당부분 부식돼 확인이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하지만 이 일대에서 추가로 발견된 또 다른 탄피에서 단서를 찾았습니다.
탄피 뒷면에는 희미하게 DM이라는 글자가 각인돼 있습니다.
이 영문의 의미는 무엇인지 확인해 봤습니다.
탄피가 가장 많이 발견된 지난 2008년 제주공항 4·3 유해발굴 사업.
당시 현장에서 확인된 수십개의 탄피 가운데 눈에 띄는 탄피가 확인됩니다.
당시 감정결과, 이 DM이라는 글자는 미국 데스모이네스 병기창에서 지난 1940년에 생산된 M1 소총 탄피로 확인됐습니다.
이번에 확인된 탄피 역시 4·3과의 개연성이 높다는 뜻입니다.
박찬식 제주문화진흥재단 이사장
"미군정 시기이기 때문에 미국에서 생산된 카빈총과 M1 소총이 있습니다. 주로 경찰은 카빈총, 군에서는 M1 소총을 썼던 것으로..."
그렇다면 과연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하지만 현재로선 이곳에 대한 증언이나 관련 기록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습니다.
탄피가 발견된 지점은 노로오름에서 북쪽으로 2킬로미터 지점입니다.
이 노로오름 일대는 무장대와 토벌대의 전투가 있었던 것으로 전해지는 곳입니다.
33년전 채록된 증언을 보면, 1949년 1월쯤 각 부락에서 민보단을 전부 동원시켜 창을 메고 노로오름까지 토벌하러 갔다는 증언이 남아있습니다.
탄피가 확인된 지점이 노로오름 전투의 일부분일 수 있다는 얘깁니다.
배기철 / 전 주민자치연대 대표
"한 서너 곳에서 이런게 발견됐는데, 저희가 지금 중산간 이후 한라산 밀림 속을 더 조사해보면 아마 많은 곳에서 이런 흔적들이 나올 것이라고..."
그동안 감춰져 있던 이 곳에 대한 진상을 규명하는 건, 현 세대와 미래세대의 숙제로 남은 셈입니다.
JIBS 김동은입니다.
영상취재 - 고승한
JIBS 제주방송 김동은(kdeun2000@hanmail.net) 제주방송 고승한(q890620@naver.com) 기자
<저작권자 © JIBS 제주방송,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4·3 기획 순서입니다.
어제(28) 이 시간을 통해 4·3 당시 무장대와 토벌대의 격전지로 추정되는 곳에서 탄피와 철창이 발견됐다는 소식 전해드렸습니다.
하지만 이곳은 아직 정확한 기록이나 증언이 남아있지 않는 상탭니다.
JIBS는 이 탄피의 정체는 무엇인지, 이 일대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증언과 관련 기록들을 토대로 당시 상황을 역추적해봤습니다.
김동은 기잡니다.
(리포트)
제주 중산간 일대 한 궤에서 처음으로 발견된 탄피.
현장에서 확인된 것만 10여개에 이릅니다.
과연 이 탄피는 누가, 언제 사용했을까?
발견된 탄피는 상당부분 부식돼 확인이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하지만 이 일대에서 추가로 발견된 또 다른 탄피에서 단서를 찾았습니다.
탄피 뒷면에는 희미하게 DM이라는 글자가 각인돼 있습니다.
이 영문의 의미는 무엇인지 확인해 봤습니다.
탄피가 가장 많이 발견된 지난 2008년 제주공항 4·3 유해발굴 사업.
당시 현장에서 확인된 수십개의 탄피 가운데 눈에 띄는 탄피가 확인됩니다.
당시 감정결과, 이 DM이라는 글자는 미국 데스모이네스 병기창에서 지난 1940년에 생산된 M1 소총 탄피로 확인됐습니다.
이번에 확인된 탄피 역시 4·3과의 개연성이 높다는 뜻입니다.
박찬식 제주문화진흥재단 이사장
"미군정 시기이기 때문에 미국에서 생산된 카빈총과 M1 소총이 있습니다. 주로 경찰은 카빈총, 군에서는 M1 소총을 썼던 것으로..."
그렇다면 과연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하지만 현재로선 이곳에 대한 증언이나 관련 기록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습니다.
탄피가 발견된 지점은 노로오름에서 북쪽으로 2킬로미터 지점입니다.
이 노로오름 일대는 무장대와 토벌대의 전투가 있었던 것으로 전해지는 곳입니다.
33년전 채록된 증언을 보면, 1949년 1월쯤 각 부락에서 민보단을 전부 동원시켜 창을 메고 노로오름까지 토벌하러 갔다는 증언이 남아있습니다.
탄피가 확인된 지점이 노로오름 전투의 일부분일 수 있다는 얘깁니다.
배기철 / 전 주민자치연대 대표
"한 서너 곳에서 이런게 발견됐는데, 저희가 지금 중산간 이후 한라산 밀림 속을 더 조사해보면 아마 많은 곳에서 이런 흔적들이 나올 것이라고..."
그동안 감춰져 있던 이 곳에 대한 진상을 규명하는 건, 현 세대와 미래세대의 숙제로 남은 셈입니다.
JIBS 김동은입니다.
영상취재 - 고승한
JIBS 제주방송 김동은(kdeun2000@hanmail.net) 제주방송 고승한(q890620@naver.com)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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