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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정전 70주년 특별기획 : 드라마&영화 속 제주평화기행 (20) 영화 이재수의 난과 신축민란
2023.10.25.수.제라진DAY
6.25 정전 70주년 특별기획 : 드라마&영화 속 제주평화기행 (20) 영화 이재수의 난과 신축민란
- 1953년 7월 27일. 비로소 한반도에 총성이 멈췄습니다.
6·25 전쟁의 정지와 평화적 해결을 위한 정전 협정이 체결되었는데요.
그로부터 오랜 세월이 흘러, 올해 ‘6.25전쟁 정전협정 70주년’을 맞았습니다.
정전 이후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역사적 순간들을 되돌아보며,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미래를 실현하는 특별한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6.25 정전 70주년 특별기획: 드라마와 영화 속 제주평화기행]
제주에서 촬영된 드라마와 영화를 통해 6.25 전쟁 정전 70년을
기억하는 시간, 평화의 여정을 함께할 분을 모셨어요.
영화칼럼니스트, 사회학박사 이정원씨를 모시고 이야기 나누어보겠습니다.
지금 함께 떠나보실까요?
(인사)
1. [6.25 정전 70주년 특별기획: 드라마와영화 속 제주평화기행] 20번째 시간입니다.이 프로그램은 방송통신위원회의 방송통신발전기금을 지원받아 제작한것입니다. 어느덧 마지막 시간입니다. 오늘은 어떤 작품을 만나볼까요?
- 평화기행의 대미를 장식할만한 의미있는 작품을 소개함
- 그동안 특정 지역에서 촬영된 영화와, 그 지역에 담긴 이야기를 소개했는데 오늘은 제주 전 지역을 아우르고 우리나라 근현대사를 통찰하는 영화를 골라옴
- 바로 영화 [이재수의 난]으로 평화기행을 떠나겠음

2. 영화 [이재수의 난]이 1901년 신축년에 일어나서 ‘신축민란’이라고 부르는데 관점에 따라 다르게 불리는 사건이죠.
- 신축민란이라고 부르는데 사건을 주도한, 가장 앞에 서서 도민들을 진두지휘한 장두인 이재수의 이름을 따서 ‘이재수의 난’으로 잘 알려져 있음
- 하지만 관점에 따라서 ‘1901년 제주항쟁’이라고 불리기도 하고 이 사건으로 큰 비극을 겪은 천주교 측에서는 ‘신축교안’이라고 부름
- 지금으로부터 122년이 지난 비극적인 사건인데, 그 원인과 전개의 흐름, 관점에 따라 명칭이 달라지는 4.3사건과 유사해서 4.3 사건의 역사적 기원이 됐다는 평가를 받음
- 이재수의 난이 제국주의에 의한 구한말 개방기에 벌어진 비극이고, 4.3이 해방정국에 벌어진 비극적 사건이란 점에서 제주가 한국 근현대사에서 얼머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지를 알 수 있음

3. 영화 [이재수의 난]을 소개해주세요.
- 지금은 제주가 영화 촬영지로서 매우 익숙하지만 [이재수의 난]이 제작된 1999년만해도 대규모의 상업영화가 제주에서 만들어진다는 건 엄청난 사건이자 화제였음
- 그도 그럴 것이 영화 [이재수의 난]은 당시에도 엄청난 물량을 들여 제작한 블록버스터급 규모 영화였음
- 그런데 그 영화의 소재가 제주의 역사를 바탕으로 한 것이니, 제주도민들이 환영하고 기대한 것이 당연할 수 밖에 없음
- 영화는 1999년 6월 개봉했고 박광수 감독이 연출함
- 이재수 역을 이정재씨가 연기하고 심은하씨가 이재수의 연인 숙화를 연기하면서 당시 톱스타들이 출연함
- 규모가 어마어마했는데, 준비기간 15년이 걸렸고 제작비 32억이 투입됨
- 최초의 한국과 프랑스 합작 영화임. 출연 배우 100명, 촬영스텝 120명, 엑스트라 1만명이 참여함
- 하지만 흥행은 그야말로 참패를 해서 도민들의 실망이 매우 컸음

4. 영화 소개 내용 중에서 준비 기간이 15년이 걸렸다고 하는데 이는 영화의 원작 소설로 인한 것이죠.
- 영화는 제주를 대표하는 작가 현기영 작가의 1983년작 [변방에 우짖는 새]를 바탕으로 함
- 이재수의 난을 연출한 박광수 감독이 소설을 보고 반드시 영화로 만들겠다는 생각을 하고 15년이 지난 1998년에 실제 제작에 착수한 것임
- [변방에 우짖는 새] 탄생의 배경이 있음
- 현기영 감독의 대표작하면 1978년에 출간된 4.3을 다룬 [순이삼촌]임
- 이 작품으로 인해 현기영 작가가 군부로부터 모진 고문을 받음
- 더 이상 4.3을 정면으로 다루기가 어려워 4.3과 유사한 비극적 사건이 있는 과거로 돌아감
- 그 결과가 제주 도민들과 천주교 사이에 벌어진 비극적 충돌인 신축민란을 소재로 한 [변방에 우짖는 새]임
5. 도민들의 많은 기대 속에 영화가 개봉을 했지만 아쉽게 흥행에 실패한 이유도 방대한 소설을 영화화 하는데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죠.
- 4.3을 영화화하기가 어려운 것과 같은 이유
- 많은 이들이 4.3 영화 제작에 관심을 갖고 추진을 했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성공 사례는 [지슬]이 거의 유일무이함
- 이는 왜냐하면 4.3의 역사적 배경과 전개 과정이 너무 방대하기 때문
- 보통 4.3을 말할 때 1947년 3월1일부터 이야기하는데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보다 훨씬 이전인 일제강점기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하고 이야기의 규모도 엄청 커짐
- 영화 [이재수의 난]도 마찬가지임. 제주도민과 천주교의 비극적 충돌이 우발적으로 일어난 것이 아니라 조선시대 말기의 문제들이 쌓일 대로 쌓여 폭발한 것
- 이 때문에 제주도의 상황을 제대로 이해시키려면 19세기 말의 조선과 제주도의 시대 배경을 충실히 보여줘야 하는데 이렇게 되면 영화가 매우 방대해짐
- 소설은 그러한 내용을 그리는데 문제가 없지만 2시간 전후로 소설을 축약해야 하는 영화는 부담이 클 수 밖에 없음
- 실제로 [이재수의 난]이 개봉했을 때 반응들이 역사적 사건을 표면적으로만 그렸다, 무슨 이야기인지 잘 이해가 안되고 어렵다는 반응들이 많았음

6. 영화 내용인 신축민란이 어떤 사건인지 핵심 내용을 요약해 설명해주시면 좋겠습니다.
- 1866년 고종 3년에 조선이 천주교 신자를 처형한 병인박해가 일어나고, 이를 명분으로 프랑스가 조선을 침략해 전쟁을 벌이는데 이것이 ‘병인양요’임
- 이후 고종이 병인양요에 대한 보상으로 프랑스 신부들에게 증표를 주는데 이것을 ‘여아대’라고 함
- ‘이 증표를 가진 사람은 나, 임금을 대하듯 하라’는 뜻임. 절대적 권력의 증표
- 그런 가운데 제주에도 천주교가 들어오게 되고 프랑스 신부들이 교인들을 모으게 되는데, 그 수단이 ‘여아대’였음
- 문제는 구한말 외세의 침입과 강제적 간섭으로 인해 조정의 권위가 떨어지고 재정도 줄어들게 됨
- 그러니 이런저런 명목으로 세금을 많이 걷게 되는데, 기록에 따르면 나무 한 그루, 심지어 계란에도 세금을 부과했다고 함
- 입에 겨우 풀칠하는 도민들은 반발하게 되지만, 그 때 관료와 결탁한 일부 교인들이 ‘여아대’를 들고 세금을 걷으러 다니니 임금의 명이기 때문에 불만이 크지만 어쩔 수 없이 수용할 수 밖에 없음
- 세금폐해와 종교폐해에 시달리던 도민들은 분노에 휩싸여 결국 민란을 일으키게 되는데 그 때 도민들의 장두에 선 대표 인물이 바로 21세 청년 이재수임
- 이재수를 포함한 3명의 장두는 무장봉기를 결심하는데 참여한 사람들이 수 천 명이었음
- 이재수는 제주성에서 가까운 황사평에 진을 치고 제주관아와 협상을 하는데 협상이 지지부진하자 교인들을 처형하기 시작함
- 제주성에 입성한 후에도 처형이 이어져 300여명의 교인들을 처형한 것으로 알려져 있음
- 이후 프랑스 함대를 타고 온 신임 제주목사가 세금폐해와 종교폐해를 없애겠다고 약속하고, 이를 확약받은 이재수 등 3명의 장두들은 서울로 압송되어 교수형에 처해지면서 민란이 정리됨

7. 대정과 황사평에 신축 민란을 설명하는 비석이 있는데 다른 관점으로 역사를 서술하고 있어 더욱 안타까움을 주었습니다.
- 제주 추사관이 있는 대정읍 안성리 네거리에 가면 ‘제주 대정 삼의사비’라고 있음
- 신축 민란을 이끈 이재수 등 세 명의 장두를 기리는 비석임
- 비석 뒷면 첫 문장을 보면 ‘종교가 본연의 역할을 저버리고 권세를 등에 업었을 때 폐단이 그 폐단이 어떠한가를 보여주는 교훈적 표석이 될 것이다.’라고 적혔음
- 반면 제주시 황사평 성지의 순교자 묘역을 가면 추모비가 있는데 거기에는 ‘제주에 복음의 씨앗을 뿌리기 위해 목숨을 바쳤던 신앙의 선각자들을 기억하고 우리 역시 선배들의 순교정신을 받들어 복음선포에 매진할 것을 다짐한다’라고 쓰여있어 역사적 사실에 대한 다른 관점, 평가가 분명하다는 것을 알 수 있음
- 이를 보면 무기력한 조정과 각종 제도적 폐단과 착취, 외세에 의한 폭력적 지배가 제주와 제주도민들에게 얼마나 참혹한 상처와 피해, 갈등을 남겼는지를 알 수 있음
8. 이런 슬픈 역사가 남긴 의미와 관련하여 현기영 작가가 [변방에 우짖는 새]에 남긴 글이 있어요.
- 자신이 왜 이 소설을 쓰게 되었는지, 120년 전의 비극을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야 하는지,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등을 현기영 작가가 소설을 마치면서 ‘작가의 글’로 남겼는데 함께 들으면 좋겠음
-성우 이현애(KBS41기)-
가렴주구와 탐관오리의 발호가 도저히 민중이 감내할 수 없을 정도로 가학적일 때 필연적인 결과로 발생하는 것이 민란이다.
전(前) 시대의 백성은 먹이 피라미드의 하부구조를 이루는 자신의 숙명을 여간해서는 거역하려 들지 않았다.
민란은 도탄에 빠진 백성들의 살려달라는 아우성이지 결코 거역의 몸짓은 아니었다.
언론이 없는 민중이 입을 열 수 있는 방법이란 오직 그 길 밖에 없던 시절이었다.
조선조 말기에 제주도에서 일어난 이재수란은 과연 천주교 측에서 주장하듯이 '박해'인가, 아니면 마을 촌로들이 말하듯이 '의거'인가.
제주시 동남쪽 황사평의 교인 묘지에는 그 때 죽은 교인들을 순교자로 모시고 있고, 민란의 진원지인 대정읍 안성리 네거리에는 이재수 등 민란의 세 장두를 기리는 ‘삼의사비’가 세워져 있다.
민란은 결코 평지충돌 현상이 아니다.
화산의 분출은 그것의 지질학적 까닭이 있고, 종기가 곪아 터짐은 그것의 병리학적 연유가 있게 마련이다.
민란이 있게 한 당시의 정치적, 사회적 병리현상을 찾아내고 그것을 국사의 문맥에서 파악해보려는 것이 이 소설이 지닌 최대의 의의일 것이다.

9. 아픔을 기억하고 평화의 희망을 키워가자는 노력으로 인해 2000년 초에 화해가 이뤄졌어요.
- 천주교 제주교구와 제주도민을 대표한 ‘1901년 제주항쟁기념사업회’는 2003년 11월 ‘신축년 제주항쟁 102주년 기념 학술대회’에서 [화해와 기념을 위한 미래선언]을 채택함
- 천주교측은 선교과정에서 벌인 제주 도민에 대한 잘못에 사과했고 제주항쟁 쪽은 저항하는 과정에서 무고한 인명살상의 비극을 초래한 데 대하여 사과함
- 화해의 움직임은 계속 이어졌음. 천주교 측은 2016년 순례길인 ‘신축화해 길’을 개통함
- 신축민란 120주년이던 2021년 5월에는 천주교 제주교구와 신축항쟁 120주년 기념사업회 공동 명의로 ‘화해의 탑’을 황사평에 세움
- 탑에는 ‘신축교안 120주년을 맞아 참된 화해와 상생의 길을 걸어갑시다’라는 문구가 새겨짐
- 기회가 될 때 대정과 황사평에 들러 비석과 화해의 탑 등을 보고 순례길도 걸으면서, 비극의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한 평화의 희망을 키우는 게 좋겠음
10. 20주에 걸쳐서 함께 나눈 평화의 희망이 살아있는 삶 속의 평화로 승화되길 바라며, 특집의 대단원을 마무리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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