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하와이에서 포로로 붙잡혔던 제주도민 등 한국인들도 1945년 해방을 맞게 됩니다.
해방 이후 꿈에 그리던 고향으로 귀국하게 되는데요.
말 그대로 기적의 귀환이었지만,
제주도민 생존자들은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곧바로 4·3을 마주하게 됩니다.
김동은 기잡니다.
(리포트)
태평양 티니안 섬.
일본군이 만든 남양군도 최대 비행장 인근에 무언가 설치돼 있습니다.
미군이 인류 최초의 핵폭탄을 이 곳에서 싣고 출발했다는 자리입니다.
에드윈 알단 / 티니안 시장
"(당시 티니안이 전략적으로 중요한 이유는) 일본에 더 가까이 가고 싶어 했기 때문입니다. 괌을 포함한 마리아나 제도는 일본에 도달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폭격 거리였습니다"
우리에게 광복은 이처럼 순식간에 찾아왔습니다.
"1945년 8월 15일 해방과 광복의 새역사를 시작한 그날, 그 감격"
하와이 포로수용소에서도 광복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이 곳에 있던 포로들의 귀환 작업이 시작됐습니다.
지난 1945년 12월 하와이 호놀룰루 항에서 한국인 포로들을 실은 배가 출항합니다.
일제강점기, 수천 킬로미터나 떨어진 남태평양의 강제징용부터,
하와이 포로수용소를 거쳐,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는 겁니다.
삶과 죽음의 경계, 2만 킬로미터에 달하는 엄청난 여정이었습니다.
당시 신문 기사에서도 하와이에서 2천5백여명이 인천항에 도착했다는 내용이 확인되고 있습니다.
말 그대로 기적의 귀환이었습니다.
한양자(81세)/타라와 생존자 故 한공섭 딸
"1년 상, 2년 상, 3년 상 지나고 제사가 돌아올 때쯤 아버지가 돌아오셨다고 하더라고. 그러니까 다 죽은 걸로 알고, 동네 사람들, 마을 사람들 잔치하다시피 했고..."
하지만 돌아온 제주 상황은 그리 녹록치 않았습니다.
해방을 맞으면서 제주는 일본 등에서 유입된 갑작스런 귀환 행렬로 인구가 크게 늘어납니다.
게다가 기근까지 겹치면서 경제와 생활이 불안정해지기 시작합니다.
박찬식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장
"제주도의 사회 경제 상태는 아주 열악함 속에 있었던 것이죠, (1945년) 8월 해방 전까지의 모습과 그 이후에 바로 3.1사건과 4·3으로 이어지는 그 시기는 해봤자 2, 3년 차이 밖에 나지 않습니다. 연속될 수 밖에 없는 것이지요
죽음의 강제징용과 하와이 포로수용소, 그리고 기적의 귀환까지.
하지만 제주도민들의 삶과 죽음의 루트는 4.3의 소용돌이에 그대로 휘말려 격랑에 빠지게 됩니다.
JIBS 김동은입니다.
영상취재 윤인수
JIBS 제주방송 김동은(kdeun2000@hanmail.net) 윤인수(kyuros@jibs.co.kr)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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