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3단체들, 보훈청 '박진경 추도비' 이전 적절성 지적
제주4·3 학살의 주범 중 하나로 꼽히는 군인의 추도비가 제주도보훈청 소관 토지로 이전된 것과 관련해 적절성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이 추도비의 이전이 '베트남전 참전용사 위령시설' 이전 사업에 슬쩍 끼어 '꼼수'로 이뤄졌다는 주장입니다.
26일 제주4·3기념사업위원회와 제주자치도 보훈청 등에 따르면 논란이 되는 박진경 대령의 추도비는 지난해 말께 제주시 한울누리공원 인근 소재 제주보훈청 소관 토지(공유재산)로 이설했습니다.
문제는 당시 제주보훈청이 해당 토지로 이설하는 과정에서 집행된 공문인 '공유재산 용도 변경 승인 신청서' 내 용도 변경 사유 및 활용방안에 베트남전 참전용사 위령제 관련 내용만 있을 뿐 제주4·3과 관련한 내용을 한 줄도 명시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4·3을 알리는 비영리단체 사단법인 제주다크투어는 오늘(26일) "제주보훈청은 박진경 추도비에 시민단체가 무단으로 설치물을 설치했다는 이유로 강제 집행하면서, 정작 보훈청은 사전협의나 근거 없이 박진경 추도비를 제주시로부터 이관받은 땅에 이설했다"고 꼬집었습니다.
이어 "국가공권력에 의한 제주4·3의 역사에 보훈청도 분명한 책임이 있다"며, "보훈청은 박진경 추도비를 즉각 철거하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그러면서 "국가를 위해 헌신한 분께 보답하는 게 국가보훈처의 역할"이라고 전제하며, "그러나 헌신의 뒤에 무자비한 학살이 있었고, 그 학살의 땅에 학살자의 추도비를 세워두는 것이 정말 국민이 원하는 보훈인가"라고 힐문하고 추도비의 철거를 촉구했습니다.
앞서 제주도 내 시민사회단체 및 4·3단체로 구성된 제주4·3기념사업위원회도 같은 취지의 성명를 냈습니다.
제주4·3기념사업위원회는 "제주보훈청이 당초 제주시 소유였던 이 토지의 재산관리권을 이관받는 과정에서 용도변경 사유로 제시한 것이 '베트남전 참전위령탑 이설'이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4·3 학살의 주역 중 하나인 박진경 추도비를 제주 땅에 다시 기억하라고 양지바른 곳으로 옮기는 것이 타당한 것인지, 그것이 제주보훈 행정의 태도인지 납득하기 어렵다"라고 비판했습니다.
토지를 이관한 제주시측도 해당 부지에 박진경 추도비가 들어서는 것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그러나 제주보훈청은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입장입니다.
제주보훈청 관계자는 "당초 해당 추도비를 옮길 생각은 없었지만 이설 예정지에서도 반대가 있었고 박 연대장의 유족측도 인도를 거부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함께 옮기게 된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다만, "애시당초 해당 시설물들이 충혼묘지에 함께 있던 것이고 (박진경 추도비 이전이) 원래 용도 목적에 크게 벗어나지 않다고 본다. 크게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해명했습니다.
한편, 이번 논란은 박진경 대령 추도비에 시민사회에서 만든 '감옥' 형상의 조형물 덧씌우고 이를 보훈청이 철거하며 불거진 논란 과정에서 파생되었습니다.
일본군 소위 출신의 박진경 대령은 제주4·3 발발 초기 제주에서 복무한 군 지휘관으로 제주도민을 탄압하는 강경한 작전을 펼치다 부하들에 의해 암살당한 인물입니다.
제주에는 1952년 박 대령을 기리는 추도비가 세워졌는데, 제주시민사회는 줄곧 박 대령의 추도비 철거를 요구해 왔습니다.
제주도의회에서도 최근 이러한 시민사회의 요구에 응답해 추도비의 철거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왔습니다.
그러나 제주보훈청이 지난해 말쯤 추도비를 자신들이 관리하는 토지(공유재산)로 이관해 재설치했습니다.
제주4·3기념사업위원회를 비롯한 16개 시민사회단체는 지난 3월 10일 박진경 연대장 대령 추도비에 '역사의 감옥에 가두다'라는 이름의 감옥 형태의 조형물을 덧씌웠습니다.
제주보훈청은 이 조형물을 철거하라고 시민단체에 통보했고, 시민단체들이 이에 불응하자 지난 20일 행정대집행을 벌여 조형물을 강제 철거했습니다.
시민사회단체는 이후 성명을 통해 보훈청의 조형물 철거를 비판하며 이같은 문제점을 지적했습니다.
JIBS 제주방송 신동원 (dongwon@jibs.co.kr)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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