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어제(31일) 이 시간을 통해 같은 공간에서 벌어진 한 마을의 초토화 상황과 주둔소를 전해드렸습니다.
4·3 당시 제주에는 수많은 중산간 마을들이 사라졌지만, 아직도 위치조차 확인되지 않은 곳이 적지 않습니다.
이 공간들은 중요한 현장 증거지만, 지명이 사라지면서 추적이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김동은 기자입니다.
(리포트)
4·3 당시 불에 타 사라진 대난도 마을입니다.
폐허가 된 마을 옆에 주둔소가 들어선 건 이 일대 중산간에 마을이 밀집해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난 1948년 항공 사진을 보면, 대난도 마을 위쪽으로 연이어 마을들이 확인되는데,
오리튼 마을에는 40여 가구, 거마을에는 10여 가구가 머물렀던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하지만 이들 마을은 토벌 작전에 모두 불에 타 사라집니다.
문제는 이 마을들의 위치조차 정확히 짚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김덕출(92세)/서귀포시 안덕면
"위치도 (지금은) 모르고, 사람들도 모르지. 대난도는 몇 가구 살았던 사람이 상창 부락으로 돼 있다는 말만 들었지. 친척이나 있으면 혹시나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지난해 위치가 처음 확인된 어오름궤는 이 일대 주민들의 주요 피난처로 불렸습니다.
하지만 인근 큰빅데기 마을은 여전히 실태조차 파악되지 않았습니다.
오기찬(93세)/서귀포시 안덕면
"사람들이 잘 보이지 않고 어두운 곳에 숨었지. 큰빅데기 위에 어오름이 그런 곳이지..."
지금까지 확인된 사라진 마을만 130곳이 넘지만 더 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특히 중산간 일대는 당시 지명을 확인하기조차 쉽지 않습니다.
한상봉/한라산 인문학 연구가
"이 분(증언자)들이 돌아가시다 보니까 그 지역에 대한 지명은 전혀 알 길이 없는...그래서 묻혀지는 공간이 돼 버리는, 4·3이 묻혀지는 공간이 돼 버립니다"
김동은 기자
"제주 중산간 이상 지역에 대한 지명 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서 4·3 피난처 등을 추적하는데 어려움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4·3 토벌과 무장대 활동, 죽음의 피난까지.
이 공간들은 4·3의 중요한 기록이자, 직접적인 현장 증거지만,
당시 사용하던 지명을 알지 못하고선, 지금의 현장 조사가 모래사장에서 바늘찾기와 다름 없기 때문입니다.
이동현/제주4·3 연구소 특별 연구원
"(현재는)시간이나 노력이 몇 배로 더 들어가는 상황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겠죠. 지명에 대한 것이 좀 더 명확하다면, 명확하게 조사가 가능하다면 조사의 범위를 줄여 나갈 수 있는거죠"
더 늦기 전에 증언과 지명, 현장 조사를 연결하는 후속 작업이 필요합니다.
JIBS 김동은입니다.
영상취재 윤인수
JIBS 제주방송 김동은(kdeun2000@hanmail.net) 윤인수(kyuros@jibs.co.kr)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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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31일) 이 시간을 통해 같은 공간에서 벌어진 한 마을의 초토화 상황과 주둔소를 전해드렸습니다.
4·3 당시 제주에는 수많은 중산간 마을들이 사라졌지만, 아직도 위치조차 확인되지 않은 곳이 적지 않습니다.
이 공간들은 중요한 현장 증거지만, 지명이 사라지면서 추적이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김동은 기자입니다.
(리포트)
4·3 당시 불에 타 사라진 대난도 마을입니다.
폐허가 된 마을 옆에 주둔소가 들어선 건 이 일대 중산간에 마을이 밀집해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난 1948년 항공 사진을 보면, 대난도 마을 위쪽으로 연이어 마을들이 확인되는데,
오리튼 마을에는 40여 가구, 거마을에는 10여 가구가 머물렀던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하지만 이들 마을은 토벌 작전에 모두 불에 타 사라집니다.
문제는 이 마을들의 위치조차 정확히 짚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김덕출(92세)/서귀포시 안덕면
"위치도 (지금은) 모르고, 사람들도 모르지. 대난도는 몇 가구 살았던 사람이 상창 부락으로 돼 있다는 말만 들었지. 친척이나 있으면 혹시나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지난해 위치가 처음 확인된 어오름궤는 이 일대 주민들의 주요 피난처로 불렸습니다.
하지만 인근 큰빅데기 마을은 여전히 실태조차 파악되지 않았습니다.
오기찬(93세)/서귀포시 안덕면
"사람들이 잘 보이지 않고 어두운 곳에 숨었지. 큰빅데기 위에 어오름이 그런 곳이지..."
지금까지 확인된 사라진 마을만 130곳이 넘지만 더 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특히 중산간 일대는 당시 지명을 확인하기조차 쉽지 않습니다.
한상봉/한라산 인문학 연구가
"이 분(증언자)들이 돌아가시다 보니까 그 지역에 대한 지명은 전혀 알 길이 없는...그래서 묻혀지는 공간이 돼 버리는, 4·3이 묻혀지는 공간이 돼 버립니다"
김동은 기자
"제주 중산간 이상 지역에 대한 지명 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서 4·3 피난처 등을 추적하는데 어려움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4·3 토벌과 무장대 활동, 죽음의 피난까지.
이 공간들은 4·3의 중요한 기록이자, 직접적인 현장 증거지만,
당시 사용하던 지명을 알지 못하고선, 지금의 현장 조사가 모래사장에서 바늘찾기와 다름 없기 때문입니다.
이동현/제주4·3 연구소 특별 연구원
"(현재는)시간이나 노력이 몇 배로 더 들어가는 상황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겠죠. 지명에 대한 것이 좀 더 명확하다면, 명확하게 조사가 가능하다면 조사의 범위를 줄여 나갈 수 있는거죠"
더 늦기 전에 증언과 지명, 현장 조사를 연결하는 후속 작업이 필요합니다.
JIBS 김동은입니다.
영상취재 윤인수
JIBS 제주방송 김동은(kdeun2000@hanmail.net) 윤인수(kyuros@jibs.co.kr)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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